여느 때같으면 '-깜'도 안 되는 소식인데, 돌림병 시국, 코로나 창궐기라 이 역시 대단한 희소식이 되어 버렸다. 어제 <지바고> 증쇄 소식이 전해졌다. 재판 찍는 데 1년이 조금 넘었다. 사실 기대 이하지만, 나의 욕심을^^; 탓한다.

 

몇 안 되지만 사소한 오탈자, 무엇보다도, 역자 해설에서 년도 틀린 것(1935년 -> 1934년: 작가동맹 2차회의) 등을 고친다. 모두 좋은 소식이다! 천쪽이 넘는(?) 책에 이 정도의 흠이 없을 리 없다. 물론 아예 없으면 더 좋지만, 사람 하는 일에 그러기 쉽지 않다. 이런 것이 두려우면 아주 일을 하지를 못한다. 또 한 가지. 이런 오류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누군가는(심지어 2천+2천 명이나^^;)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인지했다는 것이다. 감사할 일이다. 민세전집은 신간 마케팅을 거의,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시리즈 자체가 이미 마케팅이기도 하다. 여사여사, 앞으로는 더 많은 독자와 만나길! 이번 학기에 강의에서도 다룰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

 

- "야, 원숭이, 그만 까불고 공부 안 해?!"

- "원숭이라고? 그 별명 좋아, 흥!"

 

- "(동영상) 여섯 개 다 봤어, 더 봐야 돼?"

- "쉿!"

 

아이와 이런 얘기, 이런 다툼을 하는 이 일상의 생활이 너무 고맙다.

늙음, 늙어감이, 아줌마와 할머니의 모습이 부럽다는, 이십대 뇌종양 진단 환자의 동영상을 보다가 결국 끄고 말았다... 정말 너무 예쁜 아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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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역자에 내 이름을 달고 있던 <악령>이 새롭게 나왔다. 표지를 바꾸지 않아 빨리 알아채지 못했지만 편집자와 통화도 하고 새 판본도 도착했다. <악령>은 내가 석사논문 쓴(통과된) 직후 번역하기 시작하여 박사과정 중에 출간한, 나의 번역 데뷔작이다. 나름 한시절의 종결^^;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세를 몰아, <악령> 개역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부디!) 일주일 정도만 더 주어지면 깔끔한 새 원고를 만들 수 있겠다. 이쪽 출판사도 일정이 있어 연내 출간은 힘들겠지만, 얼른 보내야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겠다.

 

다음 일이란...

 

첫 정, 무섭다. <악령>은 여러 방식으로 읽혀왔지만, 맨 처음에는 그냥 도스-키의 소설이었고 너무 어려웠다. 서울대 합격 확인한 그해(고등학교) 겨울 방학 때였다. 대학 온 다음 수업 들으면서 다시 읽었다. 키릴로프, 스타브로긴 같은 인물에 중점을 두었던 것 같다. 이후 다각도로 읽고 논문도 썼지만, 주로 형이상학적 측면에 치중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 사실상 쭉 읽어보듯 마지막 손질을 하는 상황에서 제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치소설로서의 <악령>이다. 원래 정치팜플렛으로 기획되었고, 작가가 제 입으로 '문학보다 정치(이데올로기)'를 부르짖었을 정도니까, 새로울 건 없는 얘기다. 그저 이 부분이 지금 내 눈에 들어온다는 것.

 

 

 

 

 

 

 

 

 

 

 

 

 

 

 

 

 

 

 

 

 

 

 

 

 

 

 

 

 

 

 

오래 전에 읽은 것들, 지금 읽는 것들, 앞으로 읽고 싶은 것들. 혁명(레닌/트로츠키/스탈린)에서 곧장 연결되는 것이 소비에트(스탈린)이다. 역시나 사서 읽은 것, 사놓고 안 읽은 것, 읽으려고 펼쳐 놓은 것 등등이다.

 

 

 

 

 

 

 

 

 

 

 

 

 

 

 

 

 

 

 

 

 

 

 

 

 

 

 

 

레닌은 항상 공산당모자(^^;) 쓴, 자전거 타는 작달막한 아저씨의 이미지였고, 스탈린은 루즈벨트, 처칠 등 점잖은 할아버지들과 함께 앉아 있는(아마 얄타 회담?) 무서운 인상의 할아버지 이미미지였다. 옛날 얘기다.^^;

 

다시 현재로 와서, <악령>에서 예언된 혁명은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 실상은 위의 책들에서 얘기되는 대로, 정말 종잡을 수 없다. '악령', 즉, 귀신에 들렸다고 해도 될 터. 내 머리가 딸리는 탓일 수도 있겠다. '인사'의 제곱제곱제곱~ 승이 정치일진대, '어머, 너였어? 니가 내정자(후계자)였어?!'라는 '깜놀' 반응에는 어쩌면 엄청난 운명 예정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너야 말로 '-깜'이었어! 레닌 이후 스탈린 집권 말이다. 어떻든 '제2의 표트르 대제'인 스탈린은 1953년 죽을 때까지 2-30년 동안 소련을 이끈다. 참 오래도 사셨다. 한데 이 세월이 긴가? 푸틴도 얼마 안 남지 않았나, 기록 깰까? 궁금하다. 이런 문제적(=히스테릭) 캐릭터에 끌리는 건 나의 개인적 취향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부분은 배경으로 두고 -

 

 

 

 

 

 

 

 

 

 

 

 

 

 

 

 

 

 

 

 

 

 

 

 

 

 

 

 

 

 

 

 

앞의 다섯 작품(작가)는 소위 '소련' 작가이고(고리키는 '러시아-소련'이라고 해야겠다), 마지막 나보코프는 아주 밖으로 나가서 영어로 썼으니까 '러시아 출신 미국 작가'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노문학자 입장에서는 '미국으로 망명한 러시아 작가'이다. 아무래도 취향상, 보르헤스나 에코 같은 '지적인' 작가 계열, 메타 소설 계열인 나보코프를 좋아했다. 아주 오랜만에, 소련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학과에서 강의를 많이, 또 잘 받을 때는 20세기 문학도 많이 읽었고 저런 작품들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한동안 뜸했는데, 그 사이에 번역도 엄청 많이 돼서 더 군침이 돈다. (한편으론, 예전에 많이 읽혔던 많은 작품들이 문학사에서 아주 죽어버렸다, 역사-문학사의 심판!) 읽지 않는 건 직무 유기. 요컨대, <악령> 이후이다. 이런 주제들.

 

- 혁명,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과 정치, 정치 혁명과 미학 혁명  

 

 

 

 

 

 

 

 

 

 

 

 

 

 

 

 

먼저 가고 있는 자들이 쓴 책, 번역한 책의 도움을 받아, 나도 내 나름의 지형도를 생각해본다. 20세기 문학 관련 논문을 서너 편 쯤 쓴 것 같은데, 그 후속 작업이기도 하다. 19세기 문학 연구서(교과서)가 편집 중이라는(정확히 담당자가 퇴사하여 편집 중단 중 -_-;;) 복음을 듣고서 생각한 것이기도 하다. 공부할 것, 정리할 것, 쓸 것이 많아 당장 끝날 리는 없고 (그 전에 도스-키 연구서를 정리, 편집해야 한다 - 어디서 내준담?-_-;) 한 10년 예정 작업으로 계획해본다. 10년? 길다고?  그 사이 '권태'(스타브로긴)를 비롯, 19세기 주제로 논문 몇 편 쓰고 번역 하고 소설 쓰고 애 키우고, 에휴, 시간만큼 매몰찬 놈이 없다. 그 사이 이변(!)이나 없어야 -

 

*

 

총체적인 불안과 우울의 분위기 속에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아직도 열성 경련을 하는 아이를 둔 엄마이기에 더 막말삼아(-_-;) 말하자면, 이 정도면 거의 독감, 수족구, 장염 등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바이러스가 이토록 급속도로 전파된다는 것, 즉 전파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녀석의 힘이 그나마 약하다는 것이다. (반대도 가능하다, 독한 바이러스는 전염력은/이/ 약하다.) 아이를 돌봄에 보내도 되나마나 고민하다가 오늘도 보냈고, 다음 주가 여전히 걱정이다. '긴급돌봄'을 신청했지만, 굳이 보내야 하나, 도시락까지 싸야 하나 등. 사실 이건 내가 편하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이게 99프로?^^;) 사실상 현재 홈티 작업 치료 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의 '일상(사회성) 교육' 때문이기도 하다. 과연 이 시국에? 어떤 시국? 학교(유치원/얼집) 안 간다고 밖을 아주 안 나갈 것도 아니고 참 고민이다.

 

- "엄마, 오늘 **이 돌봄 왔어. 어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그런 거라서 학교 안 오고~"

- "뭐? 너 똑바로 얘기해야 해, 걔 진짜 코로나야?"

- "응, 독감은 아니고, 코로나인데, 오늘은 왔어, 다 나았대!"

 

-_-;;

 

일개 개인의 일, 집안의 일도 결정하기가 힘든데 국가의 일을 걱정하는 일(정치, 행정)은 참 힘들겠다. 그런데 그 바닥에 그토록 많은 사람과 돈이 들끓는다는 것, 참 놀라운 일이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 '정치'라는 주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20세기 러시아문학에는 필수 항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계속 만지작만지작, 결국 못 팔고(<아이히만>은 밑줄이 많아서 못 팔고), 심지어 조만간 읽을까 한다. <인간의 조건>은 팔기 신청했다, 흑. 아마 내일 가져가시겠지.

 

 

 

 

 

 

 

 

 

 

 

 

 

 

 

속된 얘기지만,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 하고 곱게 늙은 그녀, 너무 멋있다! ^^; 너무 젊었을(어렸을) 때보다 약간 관록이 쌓인 이 얼굴을 (아마 다들 비슷할듯) 더 좋아하는데, 그동안은 몰랐다, 저 사진의 끝에 담배가 있는 줄. 소위 꼬나문 사진도 이번에 발견. 담배 피우고 싶다, 헉. 아래 사진, 아렌트는 정녕 흡연자, 애연가가 맞다. 사실 담배 피우는 건 그렇게 멋있지 않아서, 실제로 꼬나물고 연기를 흡입하고 빨고 할 때는 저런 어리버리, 흐리멍덩, 띨빵, 엉성, 아무튼 그런 표정이 된다. 그게 또 담배의 맛. 아마 목의 주름 역시 담배가 기여한 바 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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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문학을 좋아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환상'에 관심이 많았다. 환상적인 것, 혹은 환상성. The Fantastic. 오래 되었지만 토도로프의 책을 열심히 읽은 기억이 있다. 여기에 그가 환상을 정의하는 개념틀을, 푸시킨의 <스페이드 여왕>에 관한 도스...-키의 언급에서 가져오는 대목이 있다. 요컨대 핵심은 망설임이다. hesitation. 이건지 저건지.

 

 

 

 

 

 

 

 

 

 

 

 

 

 

 

 

 그밖에 많은 개념들이 있다. 경이, 기괴 등. 특히, 기괴는 프로이트에게서 온 것이라 그의 책도 같이 찾아보곤 했다. Uncanny. 이 느낌의 예, 전범을 프로이트는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에서 찾는다. 이 소설에 대해서도 모종의 '원한'(!) 있어서, 수업 시간에도 다루어 보곤 했다. 썩 좋은 소설, 할 말이 많은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작법'(^^;)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아, 동시에 그것을 위해 읽기에는 너무 길고 난해하여 한 두 번 하다가 뺐다. 그렇다, 난해한 소설. 과연 독일 낭만주의(말기)에 쓰인 소설답다. 아이러니한 것, 아니, 난감한 것은 이것이 호프만 소설 중에 가독성이 제일 높다는 거다..ㅠ.ㅠ 창비의 새 버전으로 읽었는데, 훌륭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워낙 작품들이 어려워 애를 먹었다. <수고양이 무어...>도 두툼한 러시아어본을 갖고 있는 책인데, 언제 다시 펼쳐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문은 해야겠다^^;

 

 

 

 

 

 

 

 

 

 

 

 

 

 

 

소설 창작을 강의하면서 한 주 정도는 소위 장르문학 얘기를 꼭 하려고 한다. 판타지, SF, 추리(탐정) 소설 등이다. 그 견본이 마땅치 않아 거의 매학기(두 학기 정도) 간격으로 바뀐다. 읽고 실망한 경우, 적어도 기대에 못 미친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 나라의 장르문학은 아직까지 꽤 안쓰러운 수준이다. 몇 십년 전의 영화 수준을 생각하면 되지 않을지. 그럼 순문학은?^^; 아무튼 장르문학 쪽으로, 피해갈 수 없는 일본문학까지 하여 이것저것 뒤져보았다. 보통은 한 두 번 다루었고, 새로운 좋은 작품이 나와주면 좋겠다.

 

 

 

 

 

 

 

 

 

 

 

 

 

 

 

 

 

 

 

 

 

 

 

 

 

 

 

 

 

 

 

특히 SF는 원래 취향이 별로 없던 장르라, 판타지나 추리소설(홈즈, 루팡 등^^;)에 비해 덜 읽어온 것 같다.(그 흔한 쥘 베른도 안 읽었다.) 비교적 최근에 슬금슬금 관심을 가진 것은,,, 과거의 판타지는 현재의 세태소설이고, 현재의 SF이고 미래의 세태소설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푸시킨, 심지어 신화와 동화 속의 판타지는, 현재의 과학 기술로 어느 정도 예측 가능, 상상 가능하기 때문에 SF 장르로 만들어볼 수 있고, 나아가, 그것이 실용화, 상용화되는 미래,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는 세태소설 장르가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사실주의 세태. 그 점에서 사실상 장르상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비슷하게, 도스-키의 소설이 문자 그대로 범죄소설(<죄와벌>), 법정추리소설(<카라마조프>)인 것도 염두에 둘 수 있다. B급 문화를 애정한 그의 취향이 드러나기도 하고, 극과 극은 통하거니와, 세세계문학(문화유산) 최고의 B급 장르는 희랍(-로마)신화와 고대희비극이다.

 

 

 

 

 

 

 

 

 

 

 

 

 

 

 

 

 

언젠가 공지영이 인터뷰에서,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이 뭔지 묻자, 약간 귀여운(^^;) 표정으로 반쯤은 농담처럼, 그러나 절실하게 "추리소설"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비슷하게, SF역시 많은 작가들의 로망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도, 앞서 계속 썼듯 그 경계가 모호하다. 이 SF라는 것이 과거의 소장르로는 환상소설이고, 세월이 흘러 과학이 발전하면 리얼리즘 소설이 될 테니 말이다. 가즈오 이시구로 같은 작가를 떠올려도 좋겠다.

 

 

   

 

 

 

 

 

 

 

 

 

 

 

다음 학기를 준비하며 꼬박꼬박 사두는, 그러나 항상 다 못 읽은 책이 SF 관련서이다. 읽은지 꽤 된 것 같은데 배명훈의 <신의 궤도>가 재미있었던 것 같다. 우리 문학에도 이런 시도가 있음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기본적으로, 말그대로 '과학'에 대한 지식이, 공부가 필요한데 문과생(^^;)이 이렇게 노력하다니, 그 역시 놀란 대목이다.  

 

 

 

 

 

 

 

 

 

 

 

 

 

 

*

 

믿음의 체계.

이것을 부수기는 불가능하다. 습관을 바꾸기가 힘든 것, 거의 불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내 입장에서는 거의 스무살 이후 형성된 두 습관, 1)흡연 2)저녁형인간, 이 두 가지를 바꾸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마 임신과 출산, 육아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하루 두 갑 골초에 낮 12시 전후(심지어 더 늦게?)에 일어나고 새벽, 심지어 아침에 해뜨는 걸 보고 잠드는 생활을 계속하는 퇴폐-변태 독신여성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다시, 믿음의 체계.

신천지를 보니, 엄마가 보내온 '부적'이 떠오른다. 세상에! 믿음의 체계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누군가에는 이단, 미신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불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평생을 짠순이-짠돌이로 사시는 시부모님이 매주 성당에다가 꼬박꼬박 돈을 갖다 바치는 것도, 또 성당 일이라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도, 솔직히, 놀랍다.

 

비슷하게, 책-물건에 대한 우리의 저 체성 감각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음악도 '스트리밍'으로 듣는다고 한다. 굳이 내 집, 내 방, 내 컴퓨터에 저장할 필요 없다. 서류도 인터넷 공간 어디에 저장한다. 전전자책 판매 인세가 체감된 지도 꽤 됐다.  어제 통화한 어느 출판사 편집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3분의 1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자책 시장이 꽤 커졌다고 한다. 

 

김영하라고 저 체성감각에 대한 애착이 없을까나. 헌 책방을 도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정일의 <햄버기에 대한 명상>을 펼쳐 들고 한 두 편 소리내서 읽기도 한다. 그런 식의 독서도 있고 또 이런 식의 독서(오디오북, 전자책 등등)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판타지가 이미 현실이 된 시대. <블레이드 러너>와 <매트릭스>의 현실화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이 속도가 무섭다. 그 와중에 나는 아이에게 우공비, 기탄수학/국어, 심지어 '훈민정음'까지 시켜야 하는 (-_-;;) 엄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책값은 땅값(집값/방값)"이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경영학도답다.

 

덧붙여, 이동이 많은, 쉬운 시대다. 대부분의 사람이 태어난 곳에서 죽지 않는다, 어쩌면 이방인으로 살다가 이방인으로 죽는다...고 하는데 (어느 <카프카 강연>에서) 그런 것 같다.  나는 경상남도 거창의 깡촌(!)에서 태어났고 부산을 거쳐 (잠깐 러시아 모스크바에 머물다가) 서울에서 주로 살고 있지만 죽을 때는 스위스에 있고 싶다. ^^; 이런 동선에서도 참 최고의 골치거리가 책-물건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 유학 가기 전, 부산 집에 보관(?)해둔 책들의 운명이란!!! 한동안은 집안의 서가를 차지했지만, 남동생의 결혼 즈음, 창고로 밀려나고 몇 년 방치되어 각종 습기, 곰팡이, 벌레의 먹이가 되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건 (차라리 보수동 헌 책방에 팔걸 ㅠㅠ) 고물상이 와서 무게를 달아 사갔다. 이것도 내가 처리(!)한 것이 아니다. 모조리 부모님의 수고가 되어버렸다. 죽(이)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이 사후 시신 처리. 안락사와 그 관련 비용도 비쌀 수밖에 없겠다.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94943)

 

같은 고제면이라도, 내가 태어난 마음은 저곳보다 더 높이 올라간 곳에 있다. '빼제로'인데, (우리 탱자밭 뚫고) 산 뚫고 터널을 만들어, 무주 스키장으로 곧장 갈 수 있다. 저 수내마을의 체성 감각과 스위스의 체성 감각 역시 제법 다르겠지만 그 역시 익숙해지리라. 무엇보다도, 저 마을 풍경이야말로 너무나 동화-신화, 즉 판타지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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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20-03-09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안녕하세요. 질문이 있어서 댓글을 남깁니다.
번역하신 ‘죄와 벌‘의 첫 문장에서 ‘세입자‘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영역과 다른 번역본을 비교했을 때 잘못 쓰신 게 아닌가 싶어서요. ‘세입자‘가 맞나요?!?
제가 ‘죄와 벌‘을 아직 읽은 것이 아니라서 바르게 번역하신 건데도 제가 괜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네요...

푸른괭이 2020-03-09 10:11   좋아요 0 | URL
우선, 문의하신 소설의 첫 문장의 그 대목은 ˝.... из своей каморки, которую нанимал от жильцов...˝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쥘레쯔‘(쥘쪼프)는 아마 다른 분들은 그냥 ‘거주자‘라고 번역하셨을 것 같은데, ‘세입자‘라는 뜻이 더 강합니다. 영어로는 보통 tenant로 옮깁니다. 이어, 소설의 맥락을 보면, 주인공 라스콜-프가 세들어 사는 하숙방은, 그 집 주인조차도, 다른 주인한테 빌린 방(집)을 세놓은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중산층이나(^^;) 요즘 학생들은 잘 이해하지 못더라고요. 93학번인 저만해도 자취, 하숙할 때 대학 주변에 이런 ‘이중세‘가 많았습니다. 즉, 주인 부부도 세들어 살면서, 비는 방을 세주거나 하숙 치면서 살았던 것이죠. 라스콜-프뿐만 아니라 그의 주인 역시도 ‘가난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죄와 벌>의 번역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마음 편히 읽으시기만 하면 됩니다!^^; 후회하지 않을, 정말 좋은 소설입니다!

ㅇㅇ 2020-03-10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답변 감사드립니다.
해당 문장만 봐서는 ‘임대인‘ 정도가 들어갈 것 같았는데, 혹여 선생님께서 오역을 하더라도 정반대의 의미로 하는 것은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아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답변 덕분에 선생님 믿고 <죄와 벌>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푸른괭이 2020-03-10 18:16   좋아요 0 | URL
도스-키가 ‘임대인‘ 혹은 ‘임대사업‘을 알았다면, <죄와 벌> 같은 소설은 못/안 썼겠지요^^; 거기 고리대금업자로 나오는 악덕한 노파조차도 큰 맥락에서는 ‘가난한-불쌍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는걸요.
 

 

고교 시절 <철학> 교과서가 있었으나 주된 과목은 아니었다. 철학을 그나마 맛이라도 본 건 아마 도덕(윤리)이나 사회 교과서를 통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달리 말해, 철학은 모든 학문, 적어도 인문학의 토대. 심지어, 자연과학조차 (어제도 김상욱 강의를 좀 들으며 생각했지만) 철학에서 나왔으니 그 위엄이 과연 대단하다 할 터이다. 하지만 철학은 무엇인가.

 

<도덕> 책에 '실존철학', '실존주의'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 옛날이여! 기억나는 건 단어 몇 개. 키에르케고르, 실존철학의 창시자(선구자), '신앞에 선 단독자', '죽음에 이르는 병' 등. 이 정도만 외워도 적어도 이 주제 때문에 서울대 떨어질 일은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 무렵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던가. 얼마나 많은 정보/지식의 더미 속에 살았던가. 당장 미분적분, 확률통계, 삼각함수 등만 떠올려도 머리가 빙빙 돈다.

 

대학에 들어와 한국문학 강의를 듣는데, '키-'의 이름이 출몰한다. 김윤식 선생님 강의에서이다. 그의 책을 쭉, 쭉 찾아본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런 책이 인용된다. 기억나는 대로 빼 보면. 결혼해라, 후회할 거다, 결혼하지 마라, 후회할 거다. 이런 식이다. 뭘해도 너는 다 후회할 거다, 라는 것. '이것'이든 '저것'이든 우리를 후회(회한)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 그 기저에 깔린 건?? 저 도저한 시간-권태이다. 차라리, '권태'보다는 '나태'가 극복하기 쉽다. '나태'는 게으름인바, 의지력을 발휘하여 일을 하면 된다. 그 즉시 극복된다. 그러나 '권태'는?  일을 하면서 오는 권태야말로 최악의 권태이다. 그러나 극악한 권태 없이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어떤 창조도 없다.

 

쓰다 보니 뒷부분은 지금 내가 읽은 책에서 얻은 지식이다. 어릴 때는 저기까지는 안/못가고 김윤식 선생이 긁어다 놓은 부분을 반복해서 읽고 언제 원서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잊혔다. 그러다가...

 

 

 

 

 

 

 

 

 

 

 

 

 

 

<지루함의 철학>을 읽으며 '키-'를 다시 떠올린다. 그와 나의 명실상부한 첫(!) 인연은 1999년 여름에 맺어졌다. 그해 나는 박사과정에 다녔고 과에서 마련된 여름 연수차 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정말 황홀한(!) 여름이었다. 8주인가, 그랬는데, 러시아-페테르부르크란 딱 그만큼만 체험하면 정말 좋은, 황홀한 시공간이다.(다른 곳도 그런가?^^;) 그때 내가 챙겨간 책이 당시 민음사에서 '이데아총서'라는 이름으로 나오던 시리즈 속 <두려움과 떨림>이다. 러시아어 страх и трепет. 두 단어의 운을 맞추자면 '불안과 전율'. '공포와 전율'. 이런 조합도 생각해볼 수 있고, 우리말을 살리고 싶으면 '떨림'도 그대로 두어도 좋겠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그 책에서 아브라함-이삭, 아가멤논-이피게니아 얘기를 다뤘다는 기억은 남아 있다. 즉, 신의 뜻에 따라 귀한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비, 마찬가지로 대의를 위해(여기도 신탁) 딸을 바쳐야 하는 장군-아비의 고뇌 등. 후자는 괴테의 희곡의 소재이기도 하다.(그랬던 듯.)

 

 

 

 

 

 

 

 

 

 

 

 

 

 

 

흐억, <두려움과 떨림>은 이미지도 뜨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잊고 있던 사이 이런 책들이 나와 있었다. 낼름 주문하며 지금 1권을 삼분의 이 정도까지 읽었다. 아, 잘 읽힌다! 생몰연도를 다시 본다. 1813-1855. 19세기도 한참 초반. 활동기를 따져도 초중반. 하지만 글만 던져주고 가늠하라면 줄잡아도 니체 이후, 그 언저리로 보지 않을까 싶다. 내가 과문한 탓?^^;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키-'가 읽힌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현대성과 의미를 증명해주는 것이리라. 덧붙여, 혼자서 이거 다 번역하신 님은 누구심? 고 임춘갑, 이라고 소개되는 걸 보면 작고하신 듯도 한데, 당신이 누구든 정말 대단하시다!

 

 

 

 

 

 

 

 

 

 

 

 

 

 

덴마크가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안데르센과 키-르일 것이다. 이삼십대 청년이 쓴 글을 세월이 흘러흘러, 아시아의 웬 아줌마가 읽고 감동하는 이런 정황이야말로 '사피엔스'의 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인 듯하다. 대체 어떻게 썼기에! 기회가 되면 몇 부분 옮겨 놓겠지만,  어떤 장르를 쓰든 '필력'이 나날이 '쇠-'해지는 것을 느끼는 요즘, 무엇보다도 부러운 건, 열정!이다. 즉, 이 글은 쓰고 싶어서 쓴 글이다, 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쓴 글이다, 몸과 마음에서 절로 터져 나와서 쓰인 글이다, 이런 느낌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진정성이라고 해도 좋을 법하다. 

 

나이 들 수록 이런 욕구, 열정을 잃게 되어 있다. 세포 분열이 더디기 때문에, 기초 대사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 시간이 긴 사람이 대가로 남는 것 같다. 톨스토이가 대표적. 최근에 근처(?)에서는 이어령 같은 분. 자, 그럼, 모든 청춘은 다 이런 에너지를 갖고 있나?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기에 키-르의 글이 더 절절히 읽힌다.

 

*

 

상당히 미남처럼 보이는데 (칸트나 아인슈타인처럼) 살짝 위트랄까, 유머랄까, 이런 것이 느껴지는 얼굴이라 더 좋다.

 

*

 

겨울의 코펜하겐, 이라고 한다. 굉장히, 모스크바 뒷골목스러운 느낌이라, 가져와 본다. 가끔씩 그립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 나도 한 때는 자작나무의 나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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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알프레드 드 뮈세의 <세기아의 고백>을 읽었다. 아주 꼼꼼, 은 아니더라도 아무튼 다 읽었다. 다 읽고 알았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는 것임을. 세상에. 오랫동안 읽은 책인 줄 알았는데 아마 그 이유는 내가 번역하기도 한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탓인 것 같다. 이 소설의 경우 오래 전 논문도 한 편 썼는데, 무수한 레퍼런스에서 뮈세의 책에 관한 언급을 읽었고 아마 그때문에 오랫동안 기시감(기독감??)을 가졌던 듯하다. 

 

'우리 시대의 영웅'은 제목이 말해주듯,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경험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즉 '역사'의 차원까지 넘보려려는 젊은/어린 작가의 야망이 담긴 작품이다. 야망이 항상 실현되는 건 아니지만^^; 레르-프는 여러 모로 '선전'했다고 할 만하다. 이 책의 말하자면 원조 격이 <세기아의 고백>이다. 스물을 전후한 청년이 스스로를 '세기아'로 내세우고 일견 '일기-수기'나 다름 없는 글을 '고백'이라는 거대한 장르로 내세운다. 여기에는 유구한 문학적(기독교 문학) 전통이 들어 있기도 하다. 아무튼 뮈세 역시, '선전 이상의 선전'을 한 것이다. 사실 소설이 좋으니 뒷 얘기가 궁금한 것이다. 그가 조르주 상드와 뭘 했든, 문학이 좋지 않다면, 아무도 관심 없을 터. 중요한 건 '사소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용의 퀄러티(^^;)이다.

 

 

 

 

 

 

 

 

 

 

 

 

 

 

 

찾아보니 뮈세의 책은 꽤 있는 반면, 조르주 상드는 거의 찾기 힘들다. 비슷한 작업을 대학 초년 시절, <광장>과 <그날> 서점을 뒤지며 해보았다. 그때 상드의 책을 읽은 듯도 싶고 아닌 듯도 싶다. 분명한 건, 그녀는 문학 작품보다는 삶-형상으로 문학사에 남았다는 점이다. 사실 요즘 같으면 '-깜'도 아니었을 텐데, 그 시대에는 애(들?) 딸린 유부녀(이혼녀?)로서 무슨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다시 보니, 뮈세도, 상드도 이십대. 뮈세는, 레르-프도 그렇지만, 요즘 같으면 대학 초년생이다. 글 재주 좀 있는 어린/젊은 제자가 연상의 여자(남자라도 좋다)와 연애한 이야기를 쭉, 쓰면 이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런 가정법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의미는 뭔가를 할(쓸) 때 비로소 생긴다.

 

말이 길어진 건, 솔직히, <세기아의 고백>이 '-시피'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십대 초반에 읽었다면, 레르-프의 경우처럼, 탄복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에 읽으니 그렇고 그런 것이다. 문득, 어린 천재의 걸작(^^;)을 '씹고' 있는 중년 아줌마를 발견한다. 그러는 너는 도대체 뭘 썼니? 아, 이럴 줄은 몰랐다. 내가 이 나이 되도록 변변찮은 소설 한 권 못 쓴 주제에 계속 남욕이나, 즉 남이 쓴 책 욕이나 할 줄은 참 몰랐다는 소리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갑자기 안 하기는 힘들 테고, 좀 줄여가며 대신, 내 글을 쓰는 일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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