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편의

 

 

 

 

나는야 작가, 사과 그리는 작가

쌍둥이 아들딸의 엄마

아들은 발달이 늦어 딸은

총명, 너무 총명해 경련이 잦아  

 

나는야 작가, 소설 쓰는 작가

잘생긴 한 남자의 아내

남편은 개두술 후에 청각을 잃었어

감마나이프 따윈 껌이라고 으시대

 

나는야 작가, 음악 짓는 작가

아픈 쌍둥이의 엄마이자 뇌종양 환자의 아내 -

이제는, 암, 그렇고 말고 癌 말기암 환자

참, 나이는 서른 다섯이야  

 

시작은 자궁, 확장은 췌장, 대장, 폐, 뼈, 뇌

우리 몸에 이렇게 많은 기관이 있는 줄

전이하는 암세포를 보고야 알았어 cell

나는야 쎌, (암)세포 덩어리 cancer cell 

 

아들, 발달장애라도 괜찮아, 말 잘 하니까

딸, 뇌전증이라도 괜찮아, 똘똘하니까

남편, 뇌종양이라도 괜찮아, 양성이니까

나, 말기암이라도 괜찮아, 지금 여기 있으니까 - 

할머니가 될 수는 있을까 좀 궁금하긴 해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899899&plink=ORI&cooper=NAVER

어제밤에 60대 여성이 20대 발달장애 아들과 차안에서 자살한 뉴스를 읽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하는구나... 하는 곁다리 생각도 잠시. 새 소설을 쓰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핑계는!!!). 영수증에 갈겨쓴 유서. 흑. 오타까지, 흑.

 

"아들딸이 있어 행복했어 / 너도 행복하게 살다오렴 / 후회() 없이 살았다 / "

 

유튜브 동영상도 그렇게 연결이 많이 되어(알고리즘, 이라던가) 젊은(심지어 어린) 암환자, 뇌종양 환자 너무 많다. 아마, 내가, 내 가족이 아프니까 그렇겠지. 내가, 내 가족이 건강할 때는 주변이 다 건강했는데 말이다.  내가 잘 나가는^^; 소설가일 때는 주변도 다 그랬다. 

 

오래 전부터 귓전에 맴돌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던 멜로디의 정체를 찾았다. 특정! 소명!

그 무렵엔 왕정문으로 불렀던 왕페이의 <몽중인>. 원곡인 아일랜드 그룹 크랜베리스의 <드림>. 이 노래를 부른 돌로레스 오리어던은 얼마 전에 죽었더라. 다시 왕페이. 넘사벽, 이론의 여지 없는 완전 미인 임청하에 비해, 왕정문은 어딘가 너무 개구지고 코끝도 너무 동그랗고 선머슴(보이시^^) 같은, 너무나 마른(요즘은 슬렌더, 라고 하지만) 그런 배우였는데, 굉장히 매력 있었다. 동그란 안경에 스튜어디스 복장하고 나타날 때도. 우리 청춘의 영화. 중경삼림. 장만옥, 장국영, 양조위, 매염방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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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의 눈

 

 

 

세로로 반씩 가른 아보카도

하지만 완벽한 2분의 1이 아니다

불평등한 2분의 1 둘은 

눈알 박힌 눈, 눈알 뽑힌 눈

눈알 박힌 눈은 외눈박이 괴물

눈알 뽑힌 눈도 외눈박이 괴물,

단, 음화(陰畵) 

 

아보카도는 악마의 눈알 같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눈알

멕시코 마야 아즈텍의 눈알

불길한 터키옥 푸른 눈알

 

아보카도의 불평등한 2분의 1은

큼직한, 보기 보다 몰랑한 연갈색 상아색 씨앗  때문에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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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마디아 - 꽁지따기

 

 

 

마카다미아는 연두색

연두색은 올리브 그린

그린은 아보카도

아보카도는 다크 그린 

윤기 나는 짙은 초록은

내 고향의 감나무 밤나무

 

마카다미아는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는 캥거루 코알라 웜뱃

웜뱃 똥은 사각형 네모

네모 난 나무는 바오밥

바오밥은 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는 마카다미아

 

신나는 꽁지따기 말놀이

물총새 꽁무늬 꽁지 따다가

부리에 콕, 찍힌 애벌레는

아무개 새 둥지 뻐꾸기 새끼 배 속에   

번데기 낳고 배추흰나비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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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구두,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를 샀어

코가 둥글고 납작한 것이야

아무 데나 갈 수 있어 너무 좋아

아스팔트도 좋아, 신작로도 좋아, 

묏등 사이 흙길 산길도 좋아

 

걸어도 걸어도 계속 걸어

안 걸어도 못 걸어도 계속 걸어

계속 걸어 네 무덤 내 무덤 위를 걸어

계속 타박타박 걷는 빨간 구두 벗지 않을래 

내 발목을 잘라내도 계속 걸을래

 

영원히 걸어야 할까봐 무서웠어, 이제는

안 무서워 쪽빛 잿빛 구두도 사볼까 해

코가 둥글고 납작한 걸로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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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통의 맛

 

 

 

 

내 배 속 장기 맛이 궁금해 

순대 옆 내장을 탐구해보았다 

 

간은 쌉사름하고 텁텁하면서도 

고소하다, 아무래도 돼지간 맛

 

위장은 쫄깃쫄깃 귀엽고 은근한 것이 

오소리감투, 라는 낱말에 부합하는 맛 

 

허파는 구멍 숭숭, 물컹물컹, 흐물흐물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애매한 맛인데, 

사람 허파는 왜 폐라고 하죠? 

 

심장은 염통이라는 말에 부합하도록

뻑뻑, 뻣뻣, 아주 더러운 맛인데, 

이 엽기적인 걸 왜 먹죠? 

 

그냥 그것도 내장이니까요, 콩팥과 자궁과 귓불보다는 먹을 만한 이름이니까요

허파처럼 바람도 들고 양심처럼 털도 날 것 같은 이름이거든요, 염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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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aflashofhope/220871717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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