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폿불 아래

 

 

 

구김 많은 흙빛 농부들

주름 많은 잿빛 위장에

들이붓는 영롱한 소주야, 넌 참,

이슬 같아 이제 우린 처음처럼

 

맥주 글라스에 소주 한 잔

막걸리 사발에 소주 한 잔

소주 가득 이야기 한 병

얼큰한 칼국수에 돼지머릿고기 

바삭바삭 야채전까지 

무서운 장대비에 대낮부터

 

아저씨들아, 할아버지들아

님들 배 속 부속은 안녕하신가

아비 생각에 내 속이 다 쓰리다

 

남폿불 아래

장대비 지나가고

어스름 내리다

 

 

 

2020. 8. 7.

 

 

*

 

 

지역마다 소주가 달랐다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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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書

 

 

 

 

그가 아랍에미리트로 떠난 날 

나는 어마어마한 성욕을 느꼈다

그곳이 두바이임을 안 날

성욕의 바람이 푹 빠졌다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사하라 사막으로 그를 보냈다  

무시무시한 성욕이 끓어오름을

맨홀 깊숙이 나는 느꼈다

 

가스가 새는 관을 갈아준 남자와

격한 정사에 돌입했다, 거실바닥에서

무지막지한 성욕이 치솟고

모래바람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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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미노 수(스)조우오 타베타이> 일본 애니-션 좋아한다. 이제는 좋아한다는 말도 하기 머쓱할 정도로 거의 못 보고 있지만, 어제 힘들게(즉 쪼개서 ㅠㅠ) 다 보았다. 일본인들은, 참, 이런 걸 어찌 이리도 잘 만드는지. "이런 걸" 어떤 걸? 우선, 정치나 사회나 이데올로기가 하나도 없는(것 처럼 보이는) 미시사를 그려내는 솜씨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일본 사회에서 지진만큼 무섭다는 '묻지마 살인'에, 17세 (아마) 췌장암 환자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일본 애니-션의 트레이드마크인 달착지근한 로맨스까지. 단, <췌장...>은 이른바 베드신이 뭐랄까,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으나, 너무 노골적으로, 이른바 야애니의 양화 버전처럼 보여, 그 부분이 조금 걸렸다. 아마 이 역시 여주가 이른바 시한부 인생이니까(요즘은 이런 표현 잘 안 쓰는 것 같다). 그녀의 다소 오바스러운, 격한 명랑함과 밝음, 까불까불함도 그런 맥락에서. 마지막, <어린 왕자> 재해석 부분도 너무 오글거리지만, 역시 만화인지라. 만화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줌마, 가슴 설렌다. 도키도키시타?^^;

 

다들 아는 그런 영화지만, 나는 '적자 생존'에 대해 생각했다. 적는 자가 산다! 이순신은 <난중일기>를 썼지만, 원균을 아무것도 안 썼기 때문에, 우리는 원균이 뭔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알쓸신잡>) 원균 말도 들어보아야 하지만 당최 들을 수가 있어야지. 한데, <췌장>에서 사쿠라는 <공병문고>라는 제목의 일기, 유서를 남긴다. 여주가 죽은 다음에도 만화가 꽤 지속되는데, 그 내용은 모두 이 기록을 토대로 한다. 살아 남은 자(들)인 남주 하루키(이름!), 쿄쿄 등.  <어린 왕자>는 남주 여주 모두 읽지 않은 책. 남주가 여주 집에서 빌려온, 그러나 돌려주지 못한 책. 어떤 의미에서 <췌장>은 책 읽기와 책 쓰기에 대한 영화로도 볼 수 있겠다. 우리의 기억은 부실하니까, 우리의 존재는 언제든 사라지니까 아쉬운 ㅠㅠ 마음에 뭔가를 쓰는(그리는/ 만드는) 건지도. 그 역시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만드는'(작/쓰꾸루) 우리의 행위는 어쩌면 오로지, 이 시간을 존재하기 위한 한 방식인지도.

 

 

 

 

 

 

 

 

 

 

 

 

 

 

 

 

 

남주 하루키(봄+나무)는 책만 읽는데, 그가 쿄쿄한데 잔소리^^; 들을 때 읽고 있던, 그만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코코로, 다. 그 분위기에 아주 잘 맞는다. 작가 이름만으로도, 책 제목만으로도, 내용으로도. 언제 다시 읽을 기회가 있을지. 내가 맨처음 읽은 나쓰메 소세키 소설이기도 하다.

 

이제는 만화를, 만화영화를 얕잡아 보지는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 적어도, 일본의 경우 잘 만든 만화가 어지간한 소설, 영화보다 낫다. 이 애니-션도 실사 영화 버전이 있지만, 나는 그래도 이 2D애니-션이 좋다. 포근하고 투명하고 영롱한 수채화 느낌. 작화에 많은 한국인이 투입된다던데, 한 편의 애니-션을 보면 역시 문제는 단순히 손재주만이 아님을 절감한다. 일본식 탐미주의, 퇴폐주의에 대해(다른 더 좋은 개념어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내 췌장은 안녕하신지. 아프지 않을 때, 혹은 약발 잔존할 때 공부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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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야(2)

 

 

 

 

藥발이 떨어지자

너의 새 인생이 환영임을 알겠다

부서진 부리는 다시 돋지 않아

거룩한 자해, 굶어 죽거나 썩어 죽겠지

 

히말라야 산맥을 빙빙 돌며

솔개야

살점을 뜯어먹어라

내장을 파먹어라

 

비요비요 소리개 떴다

鳥葬을 끝내야지

비요비요 병아리 감춰라

鳥葬 속에 묻혀라 너도 

 

너의 맹장을 먹고 싶어

솔개야

맹장을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藥발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

우리 인간의 나약하고 악덕한 마음

솔개의 똥집이라도 먹고 싶은 마음

차라리 지푸라기가 낫겠다, 솔개야

 

 

 

 

*

 

... 나약하고 악덕하고...: 도스-키, <카라마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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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야(1)

 

 

 

藥발이 돌면 

솔개야

헌 부리를 찧어라

히말라야 산맥 높은 바위에

헌 부리 부서지고 살점이 뭉개지도록

핏물 속에서 새 부리가 돋도록

 

藥발이 남은 동안

새 부리로 헌 발톱을 뽑아라

하나둘셋, 또 다시 하나둘셋

헌 깃털을 물어 뜯어라

솔개야

핏물 속에서 새 깃털이 돋도록

 

새 인생 헌 인생 될 때까지

솔개야 

藥발 떨어지기 전까지 

마음껏 날려라, 그 깃털을 

마음껏 모아라, 그 발톱을

마음껏 놀려라, 그 부리를  

 

 

 

*

 

그저께 밤에 남편이 <솔개의 눈물(선택)> 얘기를 해주었다. 두 번을 산다는 거다, 간단히. 그렇게 해서 한 70년.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만 너무 재미있어 계속 생각하다가, 헉, 역시나 말이 안 된다는 증거를(?) 찾았다. 나의 남편이 멍청한 사람 아닌데^^; 무엇보다도 어마어마한 현실주의자에 낚시 좋아하고 동물 생태에는 꽤 지식이 있는데, 하, 너도 늙었구나. 사람이 마흔이 넘고 자신도, 아이도, 또 부모도 아프고 (혹은 예비적으로!) 아플 것이니 약해지는 모양이다.

 

낡고 썩고 문드러진 우리의 신체 기관들, 장기들을 저렇게 다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6개월 고생하고 30년쯤 더 살 수 있다면. 지금 힘든 수술과 독한 치료를 견디는 분들의 마음이 다 그러리라. 당장 이 고통을 없앨 수 있다면, 더하여, 이 고통 감내하고 6개월, 1년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목숨이란 과연 이토록 모진 것인지.  

 

엄하게, 맥락없이 찾아본 사육신. 오래 전 성삼문, 박팽년을 시조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들은 거열형을 당했고(흑ㅠㅠ) 그 부인과 딸들은 한명회, 신숙주 등(맞나?)의 집에 노비로 준 모양이다. 거룩한 명분을 위해 고귀한 희생을 감수한 그들이야 그렇다 쳐도(나이가 생각보다 젊었다 ㅠㅠ) 그 처자들은 무엇이냐. 그들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더 이상의 기록은 없나? 그런 상황에서도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걸 보면(오래 전 정신대-위안부 보면서도 생각했지만), 참 목숨이란, 과연 이토록 모진 것인지. 마찬가지로, 단종의 부인. 정순 왕후라고 해서 얼핏 영조 부인을 떠올렸는데, 단종의 비 역시 이런 이름. 그녀는 그 수모 속에서도 자신의 기대 수명을 다 살다간 모양이다. 결국, 살아 남는 것이 이기는 것, 이던가.

 

 

 

 

 

 

 

 

 

 

 

 

 

 

 

- 놀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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