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입장에서

 

 

 

 

 

 

바다와 하늘이 뽀뽀한 화창한 날

너울성 파도가 인간 한 마리를 낚아

방파제 벽에 쿵, 바다에 풍덩!

 

우리는 신이 났다 만찬을 꿈꾸었다

하지만 구조대가 그 인간을 낚아챘다

우리는 熱불이 났다, 아까운 물고기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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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혼탁해져 

 

 

 

 

엄마는 나귀 타고 장에 가고

아빠는 건너 마을 큰 병원에

아이는 12시간 나비잠에 땀을 뻘뻘

남편은 검은 PE관 속에서 헉, 허우적

그의 엄마는 뽕밭에서 주식을 만지작

그의 아빠는 동해에서 낚시 삼매경에

나는 영혼이 혼탁해져 염증수치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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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잠 없던 당신, 잠을 많이 잔다 그때 알아봤다

한밤중에 깨면 잠들지 못한다 뒤척이며 끙끙댄다

아침녘에 또 잠이 든다 낮에도 초저녁에도 잔다 

우리가 키워온 세 아이의 젖먹이 시절 같다 

먹고 자고 싸고 자고 울고 자고 웃고 자고 

단, 쑥쑥 자라는 대신 픽픽 쓰러진다

당신 몸에 바람이 숭숭 든다 창자가 축축 늘어진다

숨이 거칠다 몸이 자주, 많이 가렵다 딸국질까지 하려나

 

죽을병 걸린 당신, 갑자기 착해졌어

너무 잘 생겨졌어 새 장가 들어도 되겠어

잘가요, 당신. 당신과 아이들이 있어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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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모닥불>(사슴)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력사가 있다

 

*

 

석양

 

 

거리는 장날이다

장날 거리에 녕감들이 지나간다

녕감들은

말상을 하였다 범상을 하였다 쪽재피상을 하였다

개발코를 하였다 안장코를 하였다 질병코를 하였다

그 코에 모두 학실을 썼다

돌체돋보기다 대모체돋보기다 로이도돋보기다

녕감들은 유리창 같은 눈을 번득거리며

투박한 북관말을 떠들어대며

쇠리쇠리한 저녁해 속에

사나은 즘생같이들 사러졌다

 

 

 

 

*

 

북신 - 서행시초2

 

거리에서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향산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숫집에서는 농짝 같은 도야지를 잡어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문드문 백였다

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고기를 물꾸러미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는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을 생각한다

 

 

*

 

허준

 

(...)

 

다만 한 사람 목이 긴 시인은 안다

'도스토이엡흐스키'며 '죠이쓰'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일등가는 소설도 쓰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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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10-03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은 예전 고시공부할때 고시원 방에 누워 항상 읊조렸던 기억이 납니다..^^

푸른괭이 2020-10-04 08:11   좋아요 1 | URL
고시 붙는 데 도움이 되셨는지요?^^: 저는 사실 백석과 아무 상관 없는 논문 쓰다가 -__-;;
 

 

 

윤동주,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하나에 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동경과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서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푸랑시쓰 짬>, <라이넬 마리야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읍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습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1941. 11. 5.(?)

 

*

 

 

 

 

 

 

 

 

 

 

 

 

 

 

 

저 초판본은 너무 해독하기가 힘들어 아무래도 '정본'을 사야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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