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내 인생
1.
아침 등굣길
조용히 걷던 아이가 입을 연다.
나지막하지만 비장한 어조다.
"엄마, 선생님이 오늘 수학1단원 평가 본다고 했어."
2.
오후 하굣길
아이는 3킬로 책가방을 메고 타박타박 걷는다.
가방을 들어준다고 해도 싫단다.
"몇 점쯤 나올까?"
"100점까지는 아니고 한 80점, 90점 정도?"
*
남의 좋은 점은 배워야 마땅하지만, 그러려고 노력해 볼 필요가 있지만, 그 배움과 이식과 적용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유럽식 교육에 대한 환상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바깥에서, 멀리서 보면 좋아 보이지(유학생 역시 '밖의 시선'이다) 실제 내부로 들어가서 겪으면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우리 교육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 설령 나쁜다고 해도, 그런 점이 있다고 해도 전체적인 틀 안에서 점진적으로 고쳐갈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소위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가 불쌍한가.
아이가 내몰린다기 보다 우리가 내모는 것이다.
간혹 학습과 평가를 '경쟁'과 동일시하는데, 이 태도 자체가 우리 어른의 것이라는 것이다. 학습과 평가는 꼭 필요한 것이다. 유럽은 그렇지 않다고? 말마따나 우리식으로 초등 5-6학년에 이미 결판난다. 아니, 결판낸다. 과연 피아제 말대로 만 10세 ㅠ 공부를 할 놈과 안/못 할 놈이 확연히 보이고, 나중에 다른 식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큰 틀은 다 짜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내 아이의 성향과 학력을 냉혹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대목이 문제다. 쉽지 않다. 믿거나 말거나 유럽의 경우, 담임교사가 '가부'에서 '부'를 결정하면 학부모도 별로 토를 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일찍 직업 교육, 기능 교육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우리 식으로 중학교 때부터 이미. 하지만 우리 나라라면 학부모가 담임의 그 '가부' 결정에 별로 동의할 것 같지 않고^^; 학원이나 과외를 하려 들지 않을까 싶다. 아, 이 역시 유럽이라고 별반 다르겠는가. 우선은 인종(+종교)에서 한 번 걸러질 테고, 외외로(?) 선진국일 수록 계층 이동율은 더 낮다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80년대 내가 다니던 초등과는, 좋은 거 나쁜 거 다 포함, 너무 달라진 초등 풍경에 놀라곤 한다. 코로나 때문에 등교 수업이 원활하지 않아 평가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지만, 수학 단평은 꼭 보려고 하시는 것 같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수학은 정말이지 오직 시험(!)을 통해서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지금 생물 단원이라 재미가 있고, 아이가 국어와 사회에도 흥미를 갖기 시작해서 다행이다.
어제는 집에 와서 "나무매달리기 선수 다람쥐"(?)를 (잘 못 -_-;;) 검색하던데 과학 시간에 선생님이 보여주셨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컴퓨터가 다 있으니 각종 동영상이나 PPT를 대거 활용한다. 하긴, 심지어 줌까지 하니. 5교시 사회. 선생님이 안동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나요, 물으셨는데, 내가 "간고등어"라고 하고 싶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먼저 말해서 말할 시간이 없었어~ 전주 비빔밥, 평양냉면~, 감자옹심이~
초등 교육은 그야말로 기본 교육이지만, 의외로(!) 우리 어른도 꼭 알아야 하는 지식-정보의 총체이다. 교과 내용이나 교습 방식 탓하지 말고(!!! - 부분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고쳐나가도록, 여러 채널을 통해 건의하도록 하고) 열심히 배우도록 하자. 엄마가, 우리가 교과를, 학교를, 선생님의 가르침을 무시하면 아이도 금방 배운다. 각 교과목, 각 단원의 주제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건 '태도'가 아닐까 싶다. 우리 교육이 뿌리부터 썩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자녀들 학교 어떻게 보내시는지, 자녀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ps. 올해는 노벨상 특수가 없구나, 출판계에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