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의 등교일이 너무 적어(자의반, 타의반 돌봄도 못 보낼 때가 많다) <알릴레오 3>를 제대로 못 듣는데, 그 와중에 스치는 유시민의 말을 듣고 다급하게 검색. 그의 명민함이야 다들 알지만, 환갑을 넘긴 시점에서 저 엄청난 학구열과 성실성에 감탄한다. 어떤 책에 대해 한 시간 안팎을 얘기하려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지는 유사 업종 종사만이 알 수 있을 터. 과학서(?) 같은 경우, 패널을 둘 초빙하던데, 그 역시 그의 정직함(?)과 배우려는^^; 의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상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논문은 아직 쓴 바 없지만) 톨-이의 <부활>에 헨리 조지 얘기가 나온다니, 이게 웬일이냐. 중년, 노년의 톨스토이가 저런 따끈한 신간까지 찾아 읽었다니, 톨-이가 놀랍고, 그와 동시에 (감동하기에도 너무 잘 몰라서 -_-;;) "세계는 계속 발전하는데(=진보) 왜 가난(빈곤)은 없어지지 않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너무 당연하지만, '땅-토지'에서 찾으려는 그 시도 역시 놀랍다. 물론, 현실화되기에는... 글쎄, 너무 많은, 어려운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헨리 조지는 워낙 모르고, 가령 톨-이의 경우.
저 <부활>에서 네흘류도프는 토지를 농노들에게 내주려는 시도를 감행하지만, 비웃음에 부닥친다. 이건 물론 톨-이의 시도이기도 하다. 그 시도가 성공한 것도 아니고, 나는 사실 톨-이의 그 시도에 얼마만한 진정성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한편으론, 자식이 13명이나(?) 있는 상황에서, 죽을 때 다 된 자신의 공명심을 위해, 토지를 공공에 환원한다는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거야말로 '지상의 양식' 대신(이미 많이 먹었으니까) '천상의 양식'을 바란 것은 아닌지(카츄사의 대사와 비슷)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19세기 러시아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후예로서 이런 제도의 모순을 깨달았고(군주제, 농노제, 토지 문제, 각종 사유재산, 종교-제도 문제, 남성의 성적 타락 등) 그것을 현실에서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는 '거인'이었음이 분명하다. 토지에 관한 한, 그의 대표 민화-단편 <사람에게는 많은 땅이(땅이 많이) 필요한가>, 일정 부분 <바보 이반...>을 들춰볼 수 있겠다. 아, 이 역시 유토피아.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우리 같이 꾸는 꿈은 꿈이 아니니까(맞나? 존 레논, <이매진>)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볼 수도 있으리라. 음... 하지만 이 역시 꿈은 꿈.
선악에 대한 톨-이의 너무나도 단순한 이해(특히 도-키와 비교하면), 믿음-종교에 대한 역시나 너무나도 순진한 이해, 그런 이해의 저변에 깔린 부유한 귀족-백작의 낙관주의 등을 생각하는 요즘이다. 진정으로 굶주리고 진정으로 노동에 혹사당한 적이 없는 인간-남자이기에, 그는 범죄(선악, 폭력)의 문제, 빈부 격차 같은 것이 무한한 용서와 배려(비폭력 무저항주의^^;)를 통해 해결되리라고 진정 믿었던 것 같다. 그 믿음이 참 부럽다. 가령 <대자> 같은 민화에 표현된 것: 죽은 나무에 매일 물을 주면(그것도 입안 가득 날라야 한다) 싹이 트고 사과나무가 자란다, 라는 식의 믿음. 타-키의 <희생>인데 아마 더 깊은(?) 원전은 이것일 터. 물론 민화 자체가 톨-이의 창작물은 아니기 때문에 더 깊은(?) 원전이 있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