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세일즈포인트가 올라가는 걸 보니 확실히 도-키답다. <악령>은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손에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여러분은 고급 독자다. 다른 한편, 이 소설이 접수가 안 된다고 해서 여러분이 저급^^; 독자인 건 아니다. 정말이지 어려운(난해하고도 난삽한) 책이다.
"표지만 바꿔서 냈나?"
오, 나이브한 질문이여! 여동생의 질문에, 일반 독자들도 그리 생각하리라 생각하니, 조금은 억울하지만, 그것도 세상의 이치, 일의 원리가 아니겠나 싶다...^^;; 모름지기 일이란 내가 좋아서 해야 하는 법, 나는 <악령>이 (어렵지만) 좋고 또 번역 일이 (힘들지만!) 좋다...^^;
<닥터 지바고> 완고, 송고한 다음 열린책들판 <악령>을 스캔 뜨고 그 파일을 한글 파일로 전환하는 작업부터 했다. 물론 다 깨진 파일을 멀쩡한(?) 파일로 일일이 만들고(알바라도 부탁할 조교가 없다 ㅠㅠ), 이른바 개역에 돌입했다. 원래는 한 1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책으로 볼 때는 이 정도 번역도 괜찮다 싶었던 것이, 막상 파일로 만들어 손대기 시작하니 아주 세상이 캄캄했다. 어휴, 내가 뭐하러 이 고생을 사서 하지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하면 할 수록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악령>이 뭔가 굉장히 애절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번역 시작할 때 아이가 초등 입학했다. 원고 넘겼을 때 아이는 (코로나와 함께) 3학년이 되었고, 원고가 책이 되는 동안 아이의 4학년 여름방학이 멀지 않은 시점이 됐다.(4-2 우공비 전과목세트 주문해야 할 때다^^;;)
나의 첫 <악령>은 저것. 편집부를 통해 디자인 관련으로, 저 이미지를 보내면서, 두 가지를 부탁했다. 첫째, 종교성, 즉 퇴마의 느낌이 드는 것을 쓰지 말 것, 둘째, 살인이나 혁명의 느낌 없는 이미지를 쓰면서 은근하게 뭔가 음산한 분위기를 전할 것. 굳이 이런 부탁을 한 것은 <악령> 표지는 노골적으로 후덜덜한 이미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오래 전 대학 시절에 읽은 범우사 <악령>은 참 좋다. 상권은 초록색, 하권은 저런 갈색. (이철 번역, 두고 두고 감사한다!) 그리고 내가 받은 표지 시안은 이것.
표지 그림도 너무 좋고(거의 흙빛의 갈색도 좋고), 진홍색, 적자색의 띠(?) 색깔도 너무 좋았다. 다만, 실물을 받아보니 붉은 느낌보다 갈색 느낌이 강해서, 그게 다소 아쉬웠다. 저 표지의 원화는 에곤 실러.
(self-seer: man and death)
사실 표지 시안이 거의 확정되기 전, 내 나름으로 떠올린(<바니타스 정물화> 검색하다가 새로 알게 된)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것과 너무 결이(!) 비슷하여 놀랐다. 저 시안을 처음 봤을 때 내가 한 말. "앗, 덜 외롭고 좋네요." 정말이지 '인간'만 있지 않고 '죽음'도 있어서, 저렇게 해골만, 담배만 있는 것보다야 낫다. 한편으론, "나는 나의 고독과 함께 결코 혼자가 아니라네", 이런 조르주 무스타키 노래의 가사가 떠오르기도...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놀라워라. 밀밭과 평범한 얼굴들-초상화들과 아늑한 방과 해바라기와, 그리고, 해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