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은 다음 소영이는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돌멩이를 갖고 공기놀이를 했다. 옆에서는 아이들이 늑목을 타고 있었다. 은학이와 태형이도 그 틈에 끼여 있었다. 둘이 몸 차이가 너무 나서, 어떨 때는 둘이 한 몸으로 움직이는 것처럼도 보였다. 은학이의 굵은 팔뚝 밑으로 태영이의 발이 혹처럼 달랑거렸다. 그리고 은학이의 어깨 너머로 태형이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춤을 추듯 팔랑댔다. 바로 그 때 다들 얼음 망치로 얻어맞은 듯 화면이 정지되고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3초쯤 뒤에는 이전보다 더 부산한 움직임과 더 요란한 소리가 시작됐다. 그 사이로 여느 때와 달리 몹시 흥분한 은학이의 굵직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데려와, 빨리!”
서너 명의 아이들이 다급하게 건물 안으로 뛰어갔다.
소영이의 눈앞에는 얼굴 아랫부분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태형이가 서 있었다. 딱딱한 철봉이 살짝 벌어진 입에 탁 받히는 순간, 태형이는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이제는 경악과 공포와 통증이 한꺼번에 태형이를 덮쳐버렸다. 급기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누나! 누나, 누나 미워!”
입에서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태형이는 눈물을 훔친 손으로 아파서 미칠 것 같은 입에 손을 살짝 댔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감지되자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양손은 온통 피범벅이 됐다. 소영이도 눈물을 줄줄 흘리며 태형이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의사 선생님이 다 고쳐 줄 거야!”
이렇게 말하며 소영이는 태형이의 손을 잡았다. 피 칠갑을 한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소영이는 태형이의 손을 살짝 펴보았다. 손바닥 위에는, 도무지 어느 순간에 손에 넣었는지 알 수 없는 이빨 두 개가 피를 뒤집어 쓴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그나마 하나는 삼분의 일 정도가 부서져 나간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다시 붙여 줄 거야, 그치, 누나?”
“응, 응!”
소영이는 풀었던 태형이의 손을 다시 꼭 쥐어 주었다. 태형이의 믿음은 정녕 소영이의 믿음이기도 했다.
태형이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은학이는 자기도 가겠다고 박박 우겼지만 그냥 제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우는 걸로 끝났다. 결국 섬마을 병원으론 해결이 안 돼, 태형이는 시내 병원으로 이송됐다. 위쪽, 아래쪽 앞니 네 개는 완전히 나가버렸다. 그 중 하나는 영구치였다. 이빨이 부서진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잇몸 뼈에 금이 간 것이었다. 태형이는 한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야했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아직 성장 중인 아이라 앞으로 이빨을 제대로 유지하는 데 얼마나 더 돈이 들지도 몰랐다.
뒤늦게 태형이 어머니가 도착했다. 그녀는 부두 근처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허름한 옷에 양념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병원 안으로 음식 냄새가 확 퍼졌다. 그녀는 생각보다 큰 사고가 아니어서 오히려 안심하는 눈치였다. 간호사가 한마디 했다.
“이 어머니 정말 답답하시네. 사실 학교 측 잘못이거든요? 그 학교, 놀이시설 낡은 걸로 유명한데…. 어머니가 좀 적극적으로 나서시면 시민단체 같은 곳에서도 도와줄 거예요.”
담임교사와 보건교사는 잠자코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과는 별개로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태형이 어머니는 교사들과 간호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이만하길 다행이지요, 뭐. 우리 어릴 때는 이러다가 병신 되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태형이 어머니는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한숨과 함께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도 은학이를 나무라진 않았다. 실제로도 키도 작고 힘도 부치는 녀석이 기필코 은학이를 따라 위로 올라가겠다고 우긴 것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은학이는 자기가 때문에 태형이가 사고가 났다고 생각했다. 피범벅이 된 태형이의 손에 들려져 있던 이빨 두 개는 은학이가 보관하기로 했다.
은학이와 소영이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곧장 태형이를 보러갔다. 마취에서 막 깨어난 태형이는 입과 턱 주변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어찌나 아픈지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형, 내 이빨은? 잘 있어? 안 버렸지, 응? 누나랑 형은 이빨이 다 붙어 있어서 좋겠다….”
태형이는 찔끔 거리던 눈물을 왕창 쏟아내기 시작했다. 소영이도 따라 울었고, 은학이도 옆에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영이가 킥킥 웃기 시작했다. 은학이가 옆에서 근엄하게 훈계를 했다.
“소영아, 너는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에이, 웃긴 걸 어떡해? 뽀얀 밤톨이 시뻘건 사과가 됐잖아!”
“누나, 미워! 아픈 사람 놀려!”
하지만 태형이 역시 눈에 눈물을 그득히 담은 채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멎자 또 통증이 찾아왔다. 그러자 다시금 이빨의 존재가 상기되었다.
“형, 내 이빨 잘 지켜줘야 해, 알았지?”
“그럼! 이제 너만 나으면 돼.”
“응, 응, 네가 다 나으면 의사 선생님이 이빨 다시 붙여 줄 거야.”
소영이도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다음에 올 때는 이빨 가져와, 형.”
태형이의 부탁대로 다음번에 은학이는 유리병에 담긴 이빨 두 개를 들고 갔다. 태형이는 이빨을 꺼내 조심스레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형, 여기 깨진 이빨도 붙일 수 있겠지, 응?”
“당연하지!”
“맞아, 내가 나을 때쯤이면 이빨도 알아서 커져 있을 거야.”
태형이가 신이 나서 말했다. 은학이는 약간 의아스러웠지만 태형이의 희망에 찬물을 들이붓지는 않았다. 반쪽이라도 붙일 수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퇴원을 하자마자 태형이는 곧장 이빨부터 접수했다. 언젠가는 의사 선생님이 이 이빨을 제자리에 붙여 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두 이빨 중 큰 녀석이 있던 자리가 간질간질해졌다. 자꾸만 혀끝을 그 쪽에 갖다 대고 후비는 버릇도 생겼다. 한 날은 혀끝에 뭔가 딱딱한 것이 감지되었다. 손가락을 넣어봤다. 정말로 뭔가 딱딱하고 평평한 돌멩이 같은 것이 생겨 있었다. 태형이는 이 모든 것이 양치질을 게을리 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빨을 닦을 때마다 그 부분을 유난히 더 세게 문질렀다.
*
별채 건물은 겨울이 빨리 왔다. 10월 중순부터 특수반에는 특별 난방이 시작됐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도록 교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기만 했던 녹슨 난로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수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난로 청소를 했다. 장작도 주문했다. 우체부는 한 해 동안 묵혀 놓았던 리어카를 꺼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위해 아껴온 사흘간의 휴가를 냈다. 그는 성 주변 숲 속에서 하루 종일 나무를 벴다. 다음 날에는 그 나무를 열심히 쪼갰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작을 리어카에 가득 싣고서 우물이 있는 학교까지 직접 갖고 왔다. 우체부가 우람한 육체를 뽐내며 할 수 있는 가장 보람찬 일 중 하나였다. 그는 아들의 손을 빌려 장작을 교실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았다. 일이 끝나자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땀을 주먹으로 닦아냈다. 은학이도 옆에서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땀을 훔쳐냈다.
“해마다 이렇게 고생을 하시니…. 내년엔 연탄으로 바꿀까요?”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나무가 있는데 연탄을 왜 써요?”
우체부는 웃으며 떠나갔다.
특수교사는 난로 위에 싯누런 주전자를 올렸다. 군데군데가 우그러졌지만 옥수수차를 끓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 옆에는 은박지를 평평하게 깔았다. 그리고 다소 도톰한 크기로 저민 감자와 고구마, 껍질에 칼집을 낸 밤, 말린 가래떡을 얹었다. 늦가을,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이었다. 그 맛을 아이들은 단순히 혀끝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으로 느꼈다. 구워놓은, 말린 인절미는 최고의 상이었다.
소영이는 이 음식도 다 먹지 않고 조금씩 떼 내어 한 곳에 모아두었다. 그러곤 쉬는 시간이 되면 한꺼번에 학교 뒷마당에 갖다 놓았다. 그때마다 “고수레!”라고 외쳤다. 할머니가 왠지 이 음식만은 꼭, 구덩이 속을 나와 먹고 가리라고 믿었다.
태형이는 음식물을 입안에서 용케 돌려가며 악착스럽게 먹어댔다. 소영이나 은학이가 자기보다 더 많이 먹는다는 생각이 들면 또 “누나, 미워!” “형, 미워!”를 연발했다.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감자나 고구마를 먹고 나면 표피가 바싹 구워진 가래떡을 집었다. 한 번 입을 넣으면 태형이는 있는 이빨, 없는 이빨, 반쯤만 있는 이빨을 다 동원하여 열심히, 하지만 조심스럽게 가래떡을 씹었다. 워낙 공을 들였기 때문에 가래떡은 더욱더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