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2년이 흘렀다. 3학년이 되면서 학업에 강도가 붙었다. 거창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꿈도 생겼다. 꿈이 커지면서 희망이라는 괴물들이 어디선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내 뱃속을 간질였다. 어떨 때는 그 괴물들이 내 뱃속을 다 점령해버려, 속 쓰림을 고스란히 안은 채로 날밤을 새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배를 부둥켜안고 쓰러졌다. 척추가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엄마가 소식을 듣고 내려왔을 때는 이미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낸 뒤였다.
“어린 처자가 몸이 이래 부실해서 우짜겠노?”
의사는 내시경을 권했다. 당시로선 드물게 여자 의사였다. 그리고 몸집이 푸짐하고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검은 뿔테를 두른 두툼한 돋보기안경을 낀 할머니였다. 그녀는 거창 출신이었고 이른바 대처에 나가 공부를 한 뒤 다시 거창으로 돌아와 읍내에 조그만 병원을 하나 열었다. 여자 슈바이처가 되겠노라는 어릴 적 꿈을 그녀 나름대로 옹골차게 실현한 셈이었다. 진찰실 벽에는 학사모를 쓴 젊은 날의 그녀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사진 바깥의 늙은 여자와 사진 속의 처녀. 그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얘기해주는 유일한 표식은, 볼록렌즈 때문에 두 세배는 더 커져버린, 쌍꺼풀이 또렷이 진 큰 눈과 그 눈망울 속에 담겨 있는 어떤 온기였다.
의사는 내시경 검사를 할 때도 내 옆에 있었다.
“자, 인제 들어간대이. 그래, 그래, 얼라들처럼 침도 질질 흘리고, 아이구, 구역질 참지 마래이, 그래, 그래, 아이구, 잘 한다, 잘해. 조금만 더 참으래이, 인자 뱃속도 보이네, 그래, 그래. 니 나중에 시집가서 얼라 낳을라 카면 이것보다 더 힘들다, 옳지, 옳지….”
그것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옛날이야기였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였지만 주인공이 나라는 것이 문제였다. 시커멓고 굵은 호스가 (물론 호스의 색깔까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왠지 그것이 시커맸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목구멍을 넘어 식도를 타고 뱃속까지 무자비하게 기어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구토의 연장일 뿐, 통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몸은 굼벵이처럼 웅크려져 통째로 진동하는데도 나는 말하자면 의연했다.
검사가 끝났을 때 의사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린 아가 평소에도 속이 안 좋다케서 어디 큰 이상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고마 염증이 좀 있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고생 안 해도 됐는데…. 얼라 낳는 연습 좀 했다고 생각해라.”
미안한 마음에 덧붙인 말이 또 이것이었다. 아무래도 여자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통증이 산통인 모양이었다.
“어야, 니 자꾸 그래 밥 잘 안 먹고 밤새고 그카면 나중에는 뱃속에 빵구난대이. 위염이 위궤양 되고 그게 위암이 되는 기다. 인자 밥 잘 먹을 기제?”
엄마와 함께 병원을 나갈 때 의사는 손녀를 어르듯 일러주었다. 나의 뒤통수 너머로 그녀가 혼잣말로 웅얼대는 소리가 싸늘한 겨울바람에 실려 왔다.
“하긴, 니가 클 때쯤이면 위암 같은 거야 웬만큼은 안 고치겠나.”
몇 년 전, 서른을 갓 넘긴 이모가 위암으로 죽었을 때도 그녀는 비슷한 말을 했더랬다. 20년만, 아니 10년만 더 늦게 태어났어도 이렇게 부질없이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
당연하지만, 모종의 오기에서 나는 의학을 신뢰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의사가 다 할머니 의사 같지 않다는 것을 안 뒤로 의사라면 더더욱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죽은 후에도 괴물 같은 속도로 발전을 거듭한 의료 기구는 신뢰한다. 추상적인 개념도, 구체적인 인간도 아닌 까닭에 그것을 신뢰하기는 참 쉽다. 도구가 우리를 배반할 가능성은, 물론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제일 낮다.
목구멍과 식도가 흐리멍덩하고 무뎌졌을 때 가느다란 호스가 내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내 얼굴 앞에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몸은 구역질에 점령당했지만 두 눈과 의식만은 바투 부여잡은 채 나는 내 뱃속을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자그마한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부유하는 괴상한 공간, 언젠가 요나 얘기를 처음 듣고 상상해본 고래 뱃속과 같은 불쾌한 표면, 어딘가 에이리언의 분비물을 연상시키는 끈적끈적한 질감. 모니터로 걸러진 내 뱃속은 어떤 말로도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어떻든 저것은 손가락이나 발가락, 콧구멍과는 달리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바로 저것이 거침없이 타액과 점액을 흘려보내고 척추를 몇 번이나 끊어놓는 것 같은 통증을 유발하는 구토의 진앙이었다. 호스가 몸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내 뱃속도 사라졌다. 그런데도 구토는 남았다. 나는 계속 꿱꿱거렸다.
잠시 뒤, 도시 의사는 구토에 파묻힌 나를 앞에 두고 헬리코박터 균 운운하며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내 식으로 요약하자면, 위염과 위궤양과 심지어 위암 사이에 반드시 어떤 발전적 관계가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현재와 같은 만성 위염 단계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오래 전 할머니 의사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 낳는 고통 어쩌고 하는 얘기만 빼면 말이다. 그 때문인지, 그의 말보다 내 뱃속을 담아놓은 사진이 더 인상적이었다. 왠지 물컹하고 끈적거리는 것 같은 사진과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고 탄력이 넘치는 의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의사의 뱃속은 어떤 모양새일까. 사람은 뱃속도 얼굴처럼 다 다르게 생겼을까. 휠체어에 앉은 채 병실로 올라가며 수아에게 물었다.
“네 뱃속이랑 내 뱃속이랑 사진 찍어 놓으면 구분할 수 있을까?”
수아가 뭐라고 대답을 했지만, 나는 구토의 기습을 받으며 고꾸라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또 침대였다. 구토가 내 정신을 되돌려 놓았다. 이제는 위액은커녕 담즙도 올라오지 않았다. 토사물 없는 구토의 연속. 구토의 흔적 내지는 구토의 추억 같은 것이랄까. 그것이 명치끝에서 맴돌며 나를 고문하는 동안, 갈증이 입안과 목안을 넘어 뱃속까지 잡아먹고 있었다. 온 몸이 늦가을의 나뭇잎처럼 바싹 바싹 타들어갔다. ‘금식’ 딱지가 붙은 뒤로 음식은 물론 물도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갈증이 통증을 더 부채질했다. 괴로움을 호소하자 간호사가 진통제를 놓아주었다. 통증이 가라앉는 환상이 제법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척추가 끊어지고 온 몸이 짜부라지면서 명치끝에서부터 숨 막힘이 턱턱 올라왔다.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 라는 오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까 그 주사 다시 놔 주시면 안 돼요?”
나는 숫제 울먹이고 있었다.
“그거 자꾸 맞으면 안 돼요.”
“아픈 걸 어떡해요?”
나도 모르게 눈물마저 찔끔찔끔 흘러나왔다. 이쯤 되면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순간, 나는 민망해졌다. 하지만 눈물은 멎기는커녕 충분히 이럴 권리가 있다며 뻔뻔스럽게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구토 때문에 온 몸이 너무 아파서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 있는 스물일곱의 나. 참 추악하지만 참 정직하기도 한 이 실존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원래 그렇게 아픈 거예요.”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며 던진 마지막 말은 계시나 다름없었다. 통증은 그냥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또 어디까지 가는지를 지켜보는 수밖에. 그 어디의 끝은 의식을 잃는 것이었다.
악몽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더러 아름다운 것들이 섬광처럼 나타났다. 고향집 앞마당의 자두나무에 열린 작고 못 생긴 자두들, 읍내 자취집 마당의 감나무와 노란 감꽃, 주인집 마루의 미닫이 유리문, 늙은 할머니 의사의 곱디고운 처녀적 사진…. 그러다 보면 또다시 고약한 것들이 나를 덮쳐왔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등학교의 복도, 아이들과 함께 마룻바닥에 머리통을 처박고 벌을 받고 있는 나, 똥오줌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리는, 이제 막 청소를 한 고향집의 변소, 다소곳한 찔레 덤불 한 구석에 유령처럼 번져 있는 뱀의 허물, 도라지 밭을 매던 호미 끝에 반 토막이 난 채 딸려 올려온 허옇고 두툼한 굼벵이 몸통….
비명을 지르며 나는 잠에서 깼다. 마침 맞은편 환자를 돌보고 있던 간호사가 달려왔다.
“세상에, 이렇게 몸부림을 치면 어떡해요?”
간호사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배어나왔다. 링거를 꽂아둔 팔뚝이 붉은 피로 물든 채 퉁퉁 부어 있었다. 침대 시트, 이불에도 핏방울이 보였다. 간호사는 링거 위치를 바꿔 반대 팔에 바늘을 꽂으려 했다. 하지만 바늘이 좀처럼 혈관에 꽂히질 않았다.
“무슨 혈관이 이렇게 가늘어요?”
이제는 간호사의 존재 자체가 짜증으로 변했다. 처음부터 오른팔의 혈관이 너무 가늘어 왼팔에 꽂은 것을 잊은 모양이었다. 간신히 바늘을 꽂긴 했지만 간호사는 숫제 울상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턱턱 갈라지고 얼굴이 까칠까칠, 거뭇거뭇한 것이 이제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