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다. 포구라니... 그런 낭만적인 공간의 기행만 모아놓다니... 꿈꾸듯 동경했다.

받아본 책은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은근한 책표지 디자인을 망치는 노란 느낌표 선정도서 표시만 뺀다면!  재생용지로 만들어 들고 다니기 좋게 책 무게도 가볍고,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흙물빛 종이도 좋다. 간간히 숨어있는 포구 모습과, 배가 있는 바다 풍광은 기대하지 못했던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나... 시인의 감성으로 써내린 글을 읽는게 힘들다. 나라는 사람은 어쩌면 이리 메말랐는지. 넘쳐나는 감성을 갈무리하는 아름다운 수식을 그저 짐으로 여기는 나에게 실망하고야 만다.

애써 시인에게서 핑계거리를 찾아본다. 그는 바다와 어우러져 포구에 사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떠받드나, 기행의 도움말에 인색하다. 그 많은 포구들과 해소욕장의 이름들 중 화진을 제일 많이 좋아하면서도 '花津'인지 '花盡'인지 확인하지 않고 어느쪽이든 좋으리라 방치한다. 자기도 궁금하여 삼천포가 왜 사천시로 이름이 바뀌었냐 우연한 도반에게 물어보지만, 속시원한 대답을 받지 못한다.

또한 이 책이 나온 게 2002년이면,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장기현의 이름이 호미로 바뀐지 벌써 7년이 흐른 뒤인데, 언제부터인가 호미리로 더 많이 불리워진다는 뚱딴지 소리를 한다. 꼭 알아야 맛은 아니겠지만, 풍경에만 도취하는 듯하여 나로선 답답하다.

결국 갑갑하게 읽기를 포기하고, 시인 곽재구의 기행 산문이 아니라, 사진작가 곽재구의 포구 사진집이라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하니 좀 더 수월하게 읽혀지긴 한다.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인가? 음... 그건 아닌 듯 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1,2,3부를 나눈 건지는 모르겠으나, 1부에 비해 2,3부는 좀 더 기행문 같다.

하지만 기행문집으로 여기면 또 답답함이 도래하니, 역시 사진집으로 보는게 좋을 듯 하다. 한척의 배는 쪽빛 바다에도, 새까만 바다에도, 노을빛 바다에도 어우러져 있다. 갈매기들의 다리쉼이 되어주는 빈배도 있고, 멸치와 땀이 약동치는 고깃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글쓰기보다 더한 낭만과 사람내를 전해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aho 2004-08-20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기대만 못했는데...전 넘 감성적인 글은 좋아하질 않아서 ...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전호태 지음 / 풀빛 / 2010년 4월
평점 :
일시품절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처음 들었을 때 바르르 흥분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니 내 분노는 늦은 것이었다. 이미 고조선과 발해의 역사가 중국에 의해 상당 부분 가로채졌고, 그 다음 수순으로 고구려가 선택된 것이다. 고구려사 도둑질이 널리 알려진 것은 고조선과 발해에 비해 고구려의 유물과 유적이 많을 뿐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그 수준이 가히 고대 인류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 동명왕릉 주변 고분군(15기/이중 벽화고분 3기), 호남리 사신총 주변 고분(34기/벽화고분 1기), 덕화리 고분군(3기/벽화고분 1기), 강서삼묘(3기/벽화고분 2기) , 독립 고분(8기/벽화고분 8기)에 대한 등재신청을 했었으나, 중국측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지난해의 경우 심사진 중 중국학자가 "보존상태 미비"를 물고 늘어졌는데, 올해의 심사평이 "북한측의 유적 보존과 관리계획이  전반적으로 양호하다"이니, 문화 보편주의에 입각한 세계문화유산조차 문화제국주의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각설하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고구려 고분과 그 벽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만끽할 수는 없다. 책의 성격상 벽화의 도판만 확인할 수 있으며, 그마저도 유적이 북한이나 중국에 있기 때문에 가장 최신의, 혹은 가장 선명한 도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도판 때문에 별점이 깎였다)

이 책의 의의는 제목 그대로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인의 역사와 신화, 종교,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분이 죽은자의 공간이다 보니 우리에게 낯설은 고대 신화와 종교에 대해 흥미롭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중국인들이 창조신인 반고의 유적이라 주장하며 하남성 비양현 성역화에 몸달아 하는 것을 흉내내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내가 우리 고래의 신화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는 것을 반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중화주의를 경계만할 것이 아니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다지는 것이 지금의 몫이리라. 문화를 빼앗기고 역사가 왜곡되는 것의 후과를 우리는 일제의 만행에 의해 이미 경험했으며, 청산하지 못한 그 과거로 아직까지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고구려를 알고자 하는 것은 중국의 야욕에 맞서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를 신의 사자로 여기며 머리에 깃털 꽂기를 즐겨 신라인이 '수탉'으로 칭했던 고구려를 영원히 죽게 내버려두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시 45분...
칼퇴근을 했는데도 놀이방에 도착해보면 벌써 이 시간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에 가고, 마로 외에는 거의 없다. 가슴이 뭉클해져 와락 딸을 껴안는다. 더 자겠다는 애를 강제로 깨운 일, 기웃기웃 마냥 샛길로만 빠지려는 딸을 독하게 혼내며 잡아끌고 놀이방에 간 일 등 아침의 소동이 미안해, 마로가 하자는대로 느긋이 걷는다.

딸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이뻐라 이뻐라 쓰다듬어준다. "개미다 개미" 손뼉치며, 그 집까지 따라가 보기도 하고, "해바라기 꽃 있어요" 두 손 모아 감탄한다.
나는 자동차마다 멈춰서서 번호판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는 딸아이를 칭찬해주기도 하고, 떡집, 책방, 수퍼, 인테리어 가게 모두 들러보는 아이따라 덩달아 인사드린다. 그렇게 나는 딸아이로부터 느림의 덕을 배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처음 읽었을 때는 정치적 주장으로만 받아들였다. 하루 4시간 노동이 과연 쟁취가능한 목표인가, 공동체적 건축이 실현되려면 사회제도가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가, 강력한 달러를 비판하며 차라리 금본위제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지금의 통화제도 비판에 비해, 당시 러셀의 금본위제 비판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인가.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단정한 표지가 마음에 들어 조심스레 다뤘던 책인데, 아끼는 만큼 여러 차례 손이 가니 어느새 손때와 구김으로 초라해져버렸다. 낡아가는 책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나는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 키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책에서 읽어지는 것은 삶을 보는 시각이다. 러셀은 남보다 걸음마가 느렸던 아이의 보폭을 따라 걸어보라며 권유한다. 아이의 속도,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은 내게 더 많은 속내를 보여준다. 나는 이것이 키다리아저씨의 쥬디 애보트가 말했던 인생의 행복이 아닌가 새삼 감탄한다.

때로는 단지 나의 예각이 무뎌진 것은 아닌가 불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숨돌리는 시간이야말로 만인의 여가를 위해 싸우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휴식의 맛을 모르면, 휴식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게으름을 찬양하기 위해 바지런해야 하는 오늘은 역설일 수도 있겠지만, 책 속에 꽂아둔 딸아이와 내 얼굴이 담긴 책갈피는 러셀의 지혜만큼이나 내게 힘을 준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털짱 2004-08-02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체유심종. 모든 것은 사물을 관조하는 마음에 있다. 그런 말씀인가봐요.^^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마로라는 이름도 참 귀엽네요. 제가 좋아하는 만화에도 마로라는 귀여운 꼬맹이가 등장하는데...('1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특명'이라는 만화)

마태우스 2004-08-02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전에 읽었었는데요 이사 과정에서 잃어버린 아픔이... 너무 멋진 리뷰라 추천하고 가요.

sweetmagic 2004-08-02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요 ~ 전 아직 이거 못 읽었는데 꼭 읽을 거예요 ~ ^^

내가없는 이 안 2004-08-0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를 와락 껴안으셨단 부분에서 저 역시 마로를 안아주고 싶군요... 가끔 자신의 예각이 무텨지는 걸 느껴진다면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삶이겠지요... 삶에 대한 님의 열심, 배우고 갑니다. ^^

마냐 2004-08-0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러셀이 저런 책도 썼습니까? 정말 제목부터 끝내줍니다. 이안님 말씀처럼, 님도 참 열씨미 사십니다그려...^^

hanicare 2004-08-18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게으름에 대한 면피'로 제목을 속으로 바꿔 달며 혼자 흐뭇하게 보던 책이었지요.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수학에 대한 사랑으로 참았다는 러셀경이니 뭐 그리 게으르기야 했겠습니까만 유쾌하게 읽었던 기억과 역시 언급하신 쥬디 애보트양의 그 멘트.저도 그 멘트가 아주 인상적이었답니다.잘 읽고 갑니다.
 
고등어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선 표어로 삼았었다. 그리고... 고등어를 읽은 뒤... 공지영에게 실망했고, 인간에 대한 예의는... 한때 좋아했던 작가에 대한 예의로 읽었다. 결국 착한 여자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책을 더 이상 사들이지 않게 되었고, 그녀의 책들은 책장 위로 분류되어 먼지만 쌓여갔다.

얼마전 더 이상 읽지 않는 책, 다시 읽지 않을 책을 골라 방출을 하면서, 문득 고등어를 다시 집어들었다. 아는 이에게 줄 책을 싸면서 가방이 무거워 읽던 책을 집에 놔두고 왔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매끄러운 문체를 따라 거침없이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었고, 난 또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386세대의 일원임을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상기시키며, 역사는 끝났는가 끊임없이 자학하면서, 너희들도 변절했기에 아무도 날 손가락질할 수 없다고 항변하며, 어쨌든 이후 세대에 비해 자기는 정의로운 한때를 살았다고 위안한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 위해 386세대의 피땀어린 희생과 눈물이 있었음을 알기에 그들을 존경하는 사람으로써, 공지영의 자위가 모독으로 여겨진다. 아니, 그녀의 눈에는 유행따라 흘러가는 90년대 이후 학번으로 비춰지는 게 더 치욕스럽다. 그녀는 진정 기득권자들이 말하듯 세상은 이미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더 이상 투쟁의 80년대가 아니라면, 입학 후 첫 등록금투쟁에서 맞아죽은 내 91학번 동기 경대는 어쩌란 말인가. 80년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위해 최루탄에 콜록대며 담배를 배워야만 했던 봄날이 거짓이란 말인가. 함께 풍물을 치던 수석이가 죽고, 함께 회의를 하던 희정이가 죽은 게 96년이 아니었던가. 통일축전을 준비하다가 수십만의 전경들에 의해 연대에 갖힌 채 이적단체가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고 매도당하며, 전대협동우회마저 '폭도'에게 지지를 보내줄 순 없다 등돌렸을 때 취재나왔던 기자가 불쌍하다고 던져준 초코파이 한쪽을 십여명이 갈라먹으며 하루의 양식으로 삼았던 게 꿈이었던 말인가. 참으로 맛나게도 라면을 끓여주던 준배형의 죽음은 5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의문사로 남아있을 뿐인데, 이제 투쟁은 없다고? 아직 상반기도 안 지난 올해 분신하거나 살해당한 노동자가 몇 명인지 그녀는 과연 헤아리고 있을까?

그녀가 '잃어 버린 사람들, 그러나 빼앗기지 않았던 사람들, 그래서 스스로 잃어 버렸던 사람들, 잃어 버리고도 기뻤던 우리들'의 비망록을 끄적이고 있을 때도 언제나 이기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리고 지금도 싸우고 있음을 그녀가 알아주면 참 좋겠다. 밸없는 나는 그녀가 '지금도 수고하네' 한 마디만 던져주면 엉엉 울며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할텐데...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랑녀 2004-05-29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글 잘 쓰는 그녀가 참 얄미웠습니다. 그녀가 살아온 형태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적당히 잘 풀어먹고 사는 거 같아서...(제가 꼬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얄미운데도 그녀의 책에는 자꾸만 손이 갑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도 하고, 적당히 고뇌하는 척하기에도 좋고...
딴소리> 더이상 아름답다고 할 만한 방황은 없다는 건가요, 아니면 이제 더이상은 아름다운 방황을 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제목이 뜻하는 거요. 그때 읽고 나서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진/우맘 2004-05-29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으로 공지영을 읽은 것이 벌써 오년쯤 되었나? 스무살을 전후해서 참 많이 읽었는데 말이죠.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독서를 하던 저는, 공지영을 비판하는 글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하긴, 그 때는 워낙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찬양 일색이기도 했지만요. 읽으면서 매번 울고,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좋은 작가라고만 추앙했는데...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고, 리뷰를 쓰면서 서재지인 중 많은 분들이 공지영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조금 놀랐습니다. 우물밖으로 열심히 기어나가면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있습니다.
인식의 일부분이 님의 리뷰를 읽고 전환되네요. 맞아요, 투쟁은 90년대에도 끝난 게 아닌데 말입니다.^^

밀키웨이 2004-05-31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진우맘님과 비슷한 기분입니다.
전 정말로 공지영에 대해 비판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뭐..서로 살기 바쁜 사람들끼리 이래저래 책비평하는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도 있고
또 그럴 멍석이 깔린 적도 없었기에 그랬겠지요.
또 저처럼 나는 별로던데...하면서도 괜시리 그렇게 이야기했다가 혼자 찐빠맞을까봐 입 다물고 있었던 듯...합니다. 다들 너무너무 좋다고 하시는 그런 분위기에서 말입죠.

하여간 새로운 시각을 접하게 되어 머리가 션~~해지는 기분입니다.
이런 기분 자주자주 맛보게 해주세요 ^^

nemuko 2004-06-0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공지영을 읽으면서 느껴왔던 기분의 변화들을 님이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주시네요. 이제는 그렇게 잊혀진 작가가 되는것 같습니다. 님의 글 추천하고 갑니다^^.

반딧불,, 2004-06-11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공감합니다..
왜 제가 그녀를 싫어하는지..딱 잡아 말하지 못했고.
느낌표에서 봉순이언니가 선정되었을 때도 왜 그녀여야 하는가..
차라리...공선옥이나 하성란이라면 이해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나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싫습니다ㅠ.ㅠ

내가없는 이 안 2004-07-16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이란 작가 이야기, 너무 가슴에 와닿아서 몇자 써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전 위악스럽다거나 가식적이란 느낌이 들면서도, 한때 그 길을 걸어온 작가로서 완전히 다른 배반적인 모습으로 두드러지게 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애정이 느껴져요. 고등어에서 '난 운전면허증도 못 따고 뭘 했나' 하는 작가의 고백에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그럼에도 이문열 같은, 진중권 같은 이의 모습이 아니라 고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어쩌면 그는 묘하게 비껴서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글쎄, 공지영이란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를테면 임종석 씨가 임수경 씨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처럼, 고마울 것까진 없어도 그냥 애정은 남아 있네요...

sayonara 2004-08-3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저도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건데...
막연한 거부감이 무엇때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키타이프 2004-09-0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명쯤은 공지영 사수파가 나올법도 한데, 댓글들이 다들 안티 쪽이네요.
근데 어쩌나, 저도 그런 심정으로 이 글을 보면서 '글치, 글치'라면 동감을 표했는걸요.
고등어를 보는 내내 그 내용들이 그녀의 공치사인것 같아 쳇.쳇 거렸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지라르 매니아 2010-02-27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딱히 공지영에 대한 안티라기 보다는,
유명세라는 것이 원래, 너무 진지하면 안 되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베스트 셀러가 지녀야할 적당한 층,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고,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않은
그런 감각이 공지영에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호랑녀 님의 지적에도 많이 공감합니다.

꼬리별 2010-02-27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공지영에 대한 비판글을 읽어 본 적이 없다는 분들이 오히려 놀랍네요. 공지영 작가 자신은 대중소설가라고 낙인찍혀서 진지한 문학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문단의 분위기에 매우 상처받았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게 고통스럽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너무 잘 팔리는 것이 작가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저는 공지영작가와 일면식도 없지만 같은 학번으로 같은 세대를 그녀와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녀의 후일담소설들, 살아가면서 새롭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한계라면 중산층 출신의 운동권들이 가졌던 존재의 모순이 있다는 거죠. 같은 나이의 공선옥에겐 찾아 볼 수 없는 모순. 그러나 그런 존재의 모순이 오히려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바탕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녀는 무엇보다 솔직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진지하며, 열심히 사는 글쟁이입니다.
 
풍경과 상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199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니까 내 나이 25살 때 이 책을 선물받았다. 그는 시인이 되고 싶은 게 꿈인 사람이었고, 내가 김훈을 모른다고 하자 상처받은 얼굴로 이 책을 선물해줬다. 그때 난 서문을 먼저 펼쳐보고 두둥~하는 북소리를 느꼈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래, 그런 이유였던 거야,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상이 다른 것은. 목숨을 걸고 나의 눈으로 변화를 목격하고 싶은 사람은 상처가 있기 때문. 하기에 주어진 운명의 피해자가 때로는 숭고한 성자가 될 수 있을 지도 몰라. 그의 문장 하나가 나에게 준 사유의 힘에 가슴이 벅차올라 단숨에 책을 읽어갔다.

김훈의 풍경은 자연과, 역사와, 인간을 모두 아우르고 있었다. "탑이 아름답다는 것은, 탑의 체감률이 아름답게 긴장되어 있다는 것은 현세가 고통스럽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탑을 만들고 바라보는 속세의 아득한 고통에 함께 몸을 떨었고, 양립할 수 없는 임금의 지상과 천주의 하늘을 함께 사랑한 정약용의 비애를 강진 초당의 꽃나무와 채소밭에서 읽어냈다. 그는 '大隱은 저잣거리 민중 속에 처하고 小隱은 산 속에 숨는다' 했던 윤선도의 낙원이 보길도가 아니었을 거라고 일러주기도 한다.

대나무 숲을 보고도 피리와 죽창을 동시에 떠올리니, 이쯤되면 "풍경과 상처"를 기행문집이라 하는 이에게 벌컥 화낼만 하다. 나로서도 이 책을 어느 칸에 꽂아야 하나 책장정리를 할 때마다 고민이기도 하다. 가볍게 스쳐가는 에세이와 뒤범벅시키는 건 미안하고, 답사기와 묶자니 아쉽고, 역사책과 병렬시키기엔 어색하고. 결국 이 책으로 역사책과 답사기의 경계를 삼았다(비슷한 책으로 "게으름의 찬양"이 있는데 이걸론 정치철학과 에세이의 경계를 삼았다. ). 그리곤 역사책을 보다가 습관적으로 꺼내보고, 답사기를 뒤지다 슬쩍 열어보게 된다.

그러나 종종 책을 펼치다 속상해지곤 하는데 하필 첫 글이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사꾸라'와 '사이판의 익명의 여자'가 주는 들척지근한 느낌으로 인해 목욕하고 나와보니 이 안 닦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 심충으로 책을 읽다보면 그의 풍경속에 이름가진 여자가 없음에 괜히 화풀이하게 된다(사실 그의 평론에서도 여성작가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속상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포기하지 못 하는 건 장인의 손마디를 꼼꼼하게 거친 영롱한 문장들 때문이리라. 하여 책을 선물한 이의 이름조차 이제는 아물가물하지만, 봄날이면 이 책을 꺼내들고 소년같았던 그의 미소를 떠올리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