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채만한 황소가 사정없이 나를 들이받아댔던 한 달이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몸마저 고장이 났는 데, 그게 또 묘하게 현실성이 없어서, 치받는 황소들을 남일처럼 응시하면서 바지런히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생로병사와 관혼상제.
이 것들은 삶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것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마치 남일인 듯 무심히 지난 삼십년을 살았는 지 모르겠다.
덕분에 삼년전부터 나는 삼십년치의 상수들을 굉장한 변수처럼 겪어내는 중이고,
아무것도
어떻게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 여덟가지가 사실은 삶처럼 이어지는 모든 것들이라는 안 것 만이라도 다행인 걸까.

그 중에 최고는 역시 엄마의 병.
이건 그냥 꿀꺽 숨을 참게 될 만큼, 사실은 회피하고 있는 주제다.
지금은 그것을 깊게 파고들어 생각하지 않아야만 괜찮은 척 지낼 수 있다.

황소같은 폭염과 끝나지 않은 일과 차곡차곡 쌓이는 카드빚과 아픈 몸. 저 밑바닥에는 엄마의 병이 낫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오빠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꽉 틀어막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한 번 새어나오기 시작하니까,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배고픈 데 밥 함께 먹어주지 않았다고 부러 쫄쫄 굶고 투정하는 거.
나도 이런 나의 퇴행이 싫지만 꼭 이런 식이다.
뭐,결론은 하루 뒤 삼겹살로 극적 화해를 이루었지만.
화해와 동시에 오늘은 엄마의 통증에 차도가 있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에어콘이 왔다는 것.
모처럼 누워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

데우스엑스마키나

알고보니 삶이라는 건 정교하고 거대하게 설계된 절정과 갈등해소의 장 일지도 모르겠다.
무신론자 이지만, 요즘은 간절히 신이 있기를 바란다.
기도하고 싶어서.
아프지않았으면,
건강했으면,
누구라도.
안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이라도. 나 자신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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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 -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
요조 (Yozoh)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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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었는 데 조금 울었다. 왜(무사) 울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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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읽고 싶네요!
 

책 날개만 읽다가 운적 처음. 아빠 생각나서..심호흡하고 마음 갈때만 조금씩 꺼내 읽는다. 책으로나마 아빠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여하튼 거대한 억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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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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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이번 소설이 너무 좋다. 영혼이 통하는 거 같은 느낌 ㅎ 내 일기장 같은 문장들 500개 발견했다ㅠㅠ 물론 모든 팬이 그렇듯 이 절절한 영혼의 공명은 나 혼나만의 것이겠쥐만.. 내맘같은글써줘서고마워여자까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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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말해주 길,
내가 태어났던 날 그 한 겨울에도
눈이 아닌 진눈깨비가 내렸다고 했다.

한강은 분명 여수에 여러번 왔다 갔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이 고장의 눈이 대부분 진눈깨비라는 것도, 기차가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땅의 색이 황톳빛으로 붉어진다는 것도 알 수 없었을 테니까..

“집이 여수입니다.” 라고 하면 서울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다. 
아주 먼 곳. 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의~ 끝.

나의 고향은 여수다. 19살때 까지 떠난 적이 없다. 야자시간에는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렸고, 뒷산에 올라가면 한려수도가 널찍이 펼쳐졌다.
배경음악 같은 뱃고동 소리가 없다는 것도, 산에 올라가면 바다가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도, 겨울에 눈이라는 것이 쌓이면 사람이 미끄러져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스무살이 넘어서야 알았다.

사는 게 어려울 때,
내가 바다를 그리워 한다는 것도.


<여수의 사랑>
집이, 바다가, 여수가 그리워서 읽었고, 두번 읽었고, 천천히 읽느라 
아직 세편의 단편이 남아있다.

그리고
여전히 바다가 보고 싶다.
요즘, 잘 안풀리나보다, 나..


“바로 거기가 내 고향이었던 거예요. 그때까지 나한테는 모든 곳이 낯선 곳이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가깝고 먼 모든 산과 바다가 내 고향하고 살을 맞대고 있는 거에요. 난 너무 기뻐서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죽는 게 무섭지 않다는 걸 그 때 난 처음 알았어요. 별게 아니었어요. 저 정다운 하늘, 바람, 땅, 물과 섞이면 그만이었어요 .... 이 거추장스러운 몸만 벗으면 나는 더 이상 외로울 필요가 없겠지요, 더 이상 나일 필요도 없으니까요... 내 외로운 운명이 그렇게 찬란하게 끝날 거라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큰 소리로 그 기쁨을 외치고 싶었는지, 난 그 때 갯바닥을 뒹굴면서 마구 몸에 상처를 냈어요. 더운 피를 흘려 개펄에 섞고 싶었어요. 나를 낳은 땅의 흙이 내 상처난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 오게 하고 싶었어요. (p.49)”

피를 내서라도 섞이고 싶은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외로움을 적게 느끼는 편인데, 이 부분을 읽을 때는 극단적인 외로움 - 강렬하게 섞이고 싶음- 이라는 감정이 궁금해서 외로워지고 싶더라.
자흔이라는 캐릭터가 으엄청 매력적이었다.
내 팔이 닿는 힘껏, 꽉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_

여수에 대한 시각적 묘사가 두드러진 소설이지만, 소설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짧은 코멘트를 달아두고 싶었다.
내 고향 여수는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이라고. 눈이 내리다가도 녹아 없어지는 따뜻한 바다가 있는 곳이라고. 그날 자흔이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의 바다가 따뜻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

여수같은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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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7-08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에서 20살 가까이 나이먹은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뒷산 바다‘의 애수..... 크- 부럽습니다.
당최 뭐가 부러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요 ㅎㅎㅎ

공쟝쟝 2018-07-08 09:22   좋아요 0 | URL
바다를 그리워 할 수 있다는 게 제 자랑입니다. 저두 당최 그게 어떻게 자랑인진 모르겠지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