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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500페이지가 넘는 많은 목소리와 증언을 읽었지만, 가장 인상 적이었던 부분은 이 목소리들을 기록하는 저자-알렉시예비치-의 관점이었다.
“(p.272) 하늘이나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내게는 현미경 렌즈 아래 놓인 모래 한 알이, 바닷물 한 방울의 세계가 더 소중하다. 그곳에서 내가 빗장을 열고 보게 될 위대하고도 놀라운 한 사람의 삶이. 만약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똑같이 무한하다면, 어떻게 작은 것을 작다고 하고 큰 것을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둘을 구별짓지 않는다. 한 사람만으로도 벅차다. 한 사람 안에 모든 것이 있으므로. 그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맬 만큼.“
작은 것, 평범한 것, 오류와 나약함, 감정, 일상과 느낌을 훑어내는 그녀의 기록들은 (보다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 본질과 비본질 등을 나눠서 생각하기 익숙했을) 소비에트 당국에게는 아쉽게 느껴졌을 것이다. 추측컨대, 때문에 이 글들은 출판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녀도 권력과 불화하지 않았나 싶다.
“(p.36) ..나는 그저 녹취만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고통이 작고 연약한 사람을 크고 강인한 사람으로 빚어내는 곳에서 인간의 영혼을 모으고 그 자취를 좇는다. 인간이 자라고 성장하는 그곳에서. 그러면 그 사람은 이제 더이상 말 못하는 벙어리도, 흔적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프롤레타리아도 아니다. 그 사람의 영혼조차 달라진다. 그렇다면 내가 권력과 갈등을 빚는 이유는 뭘까? 나는 위대한 사상에 필요한 건 작은 사람이지, 결코 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에 큰 사람은 쓸모없고 불편한 존재라는 것을. 큰 사람은 완성되는 데 손이 많이 간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을 찾는다. 작으면서도 큰 사람. 그는 멸시당하고 짓밟히고 학대당했지만, 스탈린 수용소와 배반의 아픔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승리를 거뒀다. 그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17년후) 옛 일기장을 펼쳐본다.... 일기를 쓸 당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리려고 애를 쓴다. 그때의 나는 이미 없다. 심지어 그때 우리가 살았던 나라도 이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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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여성과 전쟁이라는 주제보다는 소련과 사회주의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던 책.
당국이 그녀의 기록을 재단하는 수준의 경직성을 빨리 쇄신했더라면, “보통의 삶을 소위 이상이라는 것과 슬쩍 바꿔치기 하려는 욕망(p.188)“을 누그려뜨릴 수 있었다면, 책 속에서 말하는 ‘작은 의문들’을 포용할 수 있었더라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었던 소련의 사회주의가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을까. 입맛이 썼다. 아쉬워서. 제국주의를 쳐부수자면서 제국주의 만큼의 유연성도 없었던 그곳 혁명가들의 모습이.
그녀의 작업과 초창기 글들에는 (당국의 입장에서는) 문제적인 지적이었을 지언정 분명 애정이 배어있었다. 질문을 용납하지 못하는 검열과 적대가 결국 작가가 애정을 철회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만약을 뒤로하고 어쨌든 세월은 흘러버렸다. 그들이 강조하고 싶었던 승리는 물론, 목숨으로 지키고자 했던 조국마저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삭제시키고 싶어했던 기록들은 남았다. 작고, 사소해서 교훈적이지 않다고 판단된 증언들은 고스란히 책으로 출간되어 2015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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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번의 역설.
현실의 사회주의가 삭제되버린 현재의 나는 소련당국이 강조하고 싶어했던 부분-그들의 위업, 이념, 이상, 대의-의 텍스트를 오히려 찾아 읽기 어렵다. 그들이 남기고자 했던 내용들없이 그들이 버리고자 했던 남은 원고 더미를 더 먼저 읽게 된 것이다.
다행이 알렉시예비치는 성실하게 기록하는 사람이었고, 그녀가 수집한 증언들에는 작은 것과 큰 것들이 뒤섞여 있어서 나는 (당시의) 큰 목소리를 어렴풋이 유추해보았다.
“(p.317-8)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그들은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들이었어. 스탈린이나 레닌을 믿은게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을 믿었지. 나중에 사람들이 이름붙인 것처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믿은 거야. 모든 사람들을 위한 행복.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행복. 바로 그걸 믿었어. 그들이 꿈꾸는 자들이고 이상주의자들이었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해. 하지만 눈먼 자들이었다는 의견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어. 절대로! ... 신념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군대처럼 그렇게 강력하고 군기가 센 유럽 전체를 호령한 그런 무서운 적을 물리치지 못했을 거야. ..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공포가 아니라 신념이었다고, 공산당원의 명예를 걸고 당신한테 말할 수 있어. 나는 전쟁중에 공산당에 가입했어. 그리고 지금까지도 공산주의자야. 나는 내 당원증이 부끄럽지 않아. 포기하지도 않을 거고. 내 믿음은 1941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어.“
2차대전당시 소비에트 군대에는 무려 백만명의 여성들이 자원입대해 용맹하게 싸웠다고 한다. 맹목적 선동과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내면화된 국가주의 만을 소녀병사들의 동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에 와서야 허망하게 들리는 어떤 ism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젊음은 물론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
기실 그들의 참전이 없었다면, 우리의 해방도 장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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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조금 복잡해졌다. 그녀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해야하는 것 인지.. 그저 가엾게만 여긴다거나, 숭고한 희생이라고 마냥 찬미한다거나, 전쟁을 기념/반대하자 뚝딱 정리해버린다거나, 혹은 모른체 한다거나 - 여타의 쉬운 방식으로 간단히 교훈! 끝! 하는 거야 말로 기껏 듣게 된 목소리를 오독해버리는 느낌이라서.
작은 것을 작다고 큰 것을 크다고 할 수 없어져 버렸다.
알렉시예비치가 적었듯. “한 사람 만으로도 벅차다. ... 그 안에서 길을 헤맬 만큼”
“(p.267)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거대한 역사를 인간이 가닿을 수 있는 작은 역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뭐라도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 할말을 찾을 수 잇을 테니까. 하지만 탐색하기 간단해 보이는, 그리 넓지 않은 이 작은영토-한 사람의 영혼의 공간-가 역사보다 더 난해하다. 알아내기 더 힘들다. 왜나하면 내 앞에 있는 그건 살아있는 눈물이고 살아 있는 감정들이기에. (...)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
저자는 가장 어려운 길을 내놓는다.
사랑.
그거야 말로 역사보다 전쟁보다 난해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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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가?
쉬웠으면 좋겠다, 단순했으면 좋겠다, 라고 바라는 뭉툭한 생각이 어떤식의 폭력으로 비화되기도 하는 지를 되짚는 요즘이다.
나는 조금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바라보고 싶다.
그러면서도 애시당초 인간은 불가해한 존재라서 이해할 수 없음을 끌어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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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결론내지 않겠다.
당분간은 결론내지 않음을 견디는 연습을 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