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들은 그 어려움과 난해함이 충분히 설득되기도 한다. (물론 정말 좀 심하다. 나를 향해서 쓰지 않았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의 소외감은 뭐 앞으로의 읽기로 계속 지적 갱신해야 할 몫일 테지만) 어렵게 쓰려고 한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의 습관적 구조(벌랜트 식으로 말하면 이해의 감각중추…? 그것은 개개인의 위치성마다 또 다르고 비슷하게 만들어져 왔을 테다)를 바꾸기 위해서 이기도 할 테니까. 물론. 그 구조를 바꿔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의 대상 독자는 아마도 동료 연구자들일 테니, 나는 아니다. (이래갖고 신자유주의한테 이기겠어? 이러니까 발리지 이 사람들아! 하는 불만은 과연 잦아들 것인가.) 그러나. 내게 읽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2차적 글로 몇 번 접했지만 아직 정동 이론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에 대해 예전처럼 짜증을 느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읽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불편한 편안함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텍스트(말 그대로의 문자라기보다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심상을 포함한 일종의 유동적인 무언가로서 일련의 표현들…이라는 의미로의 텍스트)를 추적하고 하나하나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 의해서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을 완전히 모르게 되어버리고… 그 밀도 높은 과정을 간접 체험하는 (이건 독자가 누리는 특권이다ㅋㅋㅋ) 사유의 그 두꺼움. 그 무게. 그 부피가. “(31) 삶에 매여있다는 것의 복잡한 의미”와 공명할 때.


정말 잘 읽어내고 싶다. 정말로 잘 읽어내고 싶다. 인간이 미련한 존재라는 것. 인간이 하염없이 미련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 연민이 끓어넘치다가도. 그 미련이. 그 미련 때문에 결국 미련을 가차 없이 힐난하고 비난해서라도 상황을 해체해버리고 싶을 때. 불쑥. 그 싶음.의 두터움.을 파고들고 헤집어본 사람들에 의해서. 실은 안 해도 되는걸. 그걸 해야만 하겠던 그 또 다른 의미의 미련함. 


그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 미련한 흔적의 글씨들이 내 안에 있는 신산한 공격성을 겸허한 고요함으로 바꿔 놓는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너무너무나 무력한 나는. 글씨라도. 

어쩔 수 없이. 기도하듯이. 읽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삶을 견뎌야 하니까. 낙관… 하고 싶은 것일까나.

지구상에 환상 없이 제 삶을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언제나 그것은 껴든다. 그러니 누군가의 환상을 비웃을 수가 없다. 패배. 착각. 시련. 암담. 환상. 뭐 다른 거 다 끌어당겨서. 엉망진창이라도 삶은 삶이다. 나는 허우적댄다. 잊기 위해 읽을 수 있다는 환상에 몰두한다. 이다음의 환상과 이다음의 낙관으로 안내받고 싶다. 낙관이 잔인한 게 아니라 삶이 잔인하다는 걸 우리 모두는 사실 안다. 



#로랜벌랜트 #정동이론 #잔인한낙관 #서론 #어렵습니다 


27 환상의 마모
이 책은 어떤 환상의 마모, 즉 집단적으로 이해관계가 투자된 삶, 좋은 삶의 마모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살 수 있는가와는 점점 더 무관하게 그런 환상이 —청사진이 바래면서— 더욱 판타즘적인 것이 되었기에, 생존의 리듬, 체화된 그 정동적 리듬에서 도출된 정동의 리얼리즘을 활용하면서 새로이 등장하는 일단의 미학적 관습에서 좋은 삶이라는 환상의 마모가 드러난다. 나는, 답보 상태 혹은 과도기적 순간들을 열심히 아카이브로 구성해 삶의 유지[지속이]라는 환상의 상실에 적응하는 표본적인 사례들을 제시하고, 우연성의 느낌이 증가하는 가운데에서 잘 산다는 것이 어떤 조건을 수반하는지를 탐구한다. - P27

31 낙관
내 책에서 낙관이란 병리학의 지도가 아니라, 현재를 조직하는 여러 애착심을 수반하는 사회적 관계이다. 낙관은 세계-구축이라는 행위에 결부된 쾌락을 지향하지만, 그 행위는 미래에 몰두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포타미아누와 마찬가지로 나는 삶에 매여 있다는 것의 복잡한 의미를 살펴본다. 잔인한 관계를 수반한다고 판명될 때조차도, 낙관의 부정적 특성을 어떤 도착, 상해, 실수의 증상이나 어두운 진실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낙관은, 양가적으로, 불균등하게, 앞뒤가 맞지 않게 펼쳐지면서도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교섭으로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장면이다. - P31

33 신자유주의라는 교수법적 용어
이 책은 구조적 인과관계와 얽힌 주체성의 힘을 관찰하지만, 잔인한 낙관의 대상을 나쁘고 억압적인 것으로 만들고 잔인한 낙관의 주체들을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불평등의 상징적 증상으로 만드는 징후적 독서의 폐쇄성은 피하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가령, 여러 구조적 세력이 어떻게 국지적으로 구체화되는지에 관심을 갖는 비평가들이 종종 교수법적 용어 "신자유주의"를 사용할 때, 마치 그것이 일관된 의도를 가지고 신자유주의 이해관계에 봉사한 주체들을 생산하는 개념, 세계를 동질화하는 주권적 개념인 것처럼 만들어버린다는 점을, 그래서 그렇게 볼 경우 주체의 단독적 행위는 개인적이고 효과적이고 자유롭게 의도된 것으로 보이기만 할 뿐, 실제로는 강력하고 비개인적인 여러 세력들의 효과에 불과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 P33

그러나 동시에 그런 비평가들이 상정하는 단독성이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개인은 온전히 주권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자신을 완전히 포화시킬 수는 없는 세계를 항해하면서 그 세계를 재구조화하는 일에 몰두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이 변증법적인 설명은, 현재 속에서 계속 살아가기의 물질적 장면들인 애착심, 자기 지속, 삶의 재생산 사이의 매끈하지 않은 역학관계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바로 여기서 ‘정동성affectivity’의 개념화가 빛을 발할 수 있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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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7-12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쉬운 길로만 가고자 하는 (가성비와 빨리빨리의 나라) 이 시대, 이 나라의 현실에서, 어려운 책을 읽고자 하는, 거기에 닿고 싶어하는 쟝쟝님의 마음이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머리에 쥐가 나도록 어려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가 느끼는 겸허함, 위로가 모든 이에게 필요하지만 이걸 인정하기는 혹은 그걸 끝까지 붙잡는 일은 매우 어려우니까요.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이고, 찬찬히 읽어봅시다.

안타까운 말씀 올리자면, 저는 유시민님 만나고 이제 푸코 만나는 중이며, 주말에는 다른 사람 만나기로 해가지고, 쩜쩜쩜.

공쟝쟝 2024-07-17 10:38   좋아요 1 | URL
벌랜트 안 만날거면! 주말에 만난 그 사람 누군지라도 알려줄 페이퍼를 쓰라!! (촤라라라락!) 여러사람 바꿔만나는 바람둥이~단발머리~
 

어제 밤에 #잔인한낙관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 비교적 맑은 아침 정신으로도 읽어보기위해 도서관 오픈런을 해보았으나…. (😔 이 책 못읽을 것 같은뎈ㅋㅋㅋㅋㅋ)
관념적 사유 지양하시기 위해서 새로운 지각(?) 관념 도입하시는 중인데 모든 단어의 개념이 마다마다 생소해서… 일단 꾸역꾸역 읽은 다음에 계속 이 상태(?)인지를 ㅋㅋㅋㅋ 보고 하겠사옵니다..

“(25) 비일상적인 것은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는 일탈이 아니라, 진행 중에 있는 무언가가 증폭되는 현상, 기껏해야 불안정한 경계임이 언제나 사실로 드러난다. 위기에서 유래한 답보 상태에서 존재는 간신히 버틴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에 빠져 죽지는 않는다. *패배했다고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도 삶 속에서 어떻게 삶에 매달려 있을지, 최소한 삶에 매달려 있을 수 있다는 낙관을 어떻게 유지할지 궁리하면서 살아내는 존재들이다.* 전후 미국 사회를 예언적으로 설명했던 마르쿠제가 이를 기록한 바 있다. 사람들은 체제를 극복한 이야기나 체제에 굴복한 이야기로 위안을 삼으면서도 ‘고통스럽고 많은 비용이 드는 한물간 형식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계속 몸부림친다.’”

패배한 우리는 삶 속에 빠져죽지는 않는다. 답보된 채로 허우적대며 낡은 환상에 애착을 가진다. 저자는 트라우마 담론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할 예정이다.

신자유주의 내파에 말 얹기 어렵고만 ㅉㅉ



위기에서 유래한 답보 상태에서 존재는 간신히 버틴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에 빠져 죽지는 않는다. *패배했다고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도 삶 속에서 어떻게 삶에 매달려 있을지, 최소한 삶에 매달려 있을 수 있다는 낙관을 어떻게 유지할지 궁리하면서 살아내는 존재들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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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4-07-09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렵습니다. 누가 골랐냐. -_-

공쟝쟝 2024-07-09 11:29   좋아요 1 | URL
누가 찬동했는가 ㅋㅋㅋㅋ!!

수이 2024-07-09 11:38   좋아요 0 | URL
🤔

단발머리 2024-07-09 1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심심한 사죄의 말씀으로 갈음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나는, 진짜 모르겠어요,의 형국입니다.

공쟝쟝 2024-07-09 12:55   좋아요 2 | URL
역대급… 오전 두뇌 다 짜내서 오후 일 할 기운 없다요…

단발머리 2024-07-09 13:39   좋아요 2 | URL
이를 어쩌나...... 심심한 위로의 말씀..... 🥲

공쟝쟝 2024-07-09 13:20   좋아요 2 | URL
여자가 책을 뽑았응께 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좀 심합니다!!!! 이건 아니지않나요? 마리 루티 선생님? (여기서 왜 찾나)

수이 2024-07-09 13:52   좋아요 2 | URL
우리 마리 루티 언니는 잘못이 없습니다. 읽어봅시다 암튼 ㅋㅋㅋ

cyrus 2024-07-09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이 어렵다고 하시니까 얼마나 어려운지 궁금하군요.. ㅎㅎㅎ

공쟝쟝 2024-07-10 09:28   좋아요 0 | URL
네 사이러스님, 정동이론이라는 게... (저는 잘 모르지만…) 담론에 의거해서 사람들의 감정( action-reaction)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포착하는 거니까. 그 과정을 추적하는 도전을.. 하는 거 같은데..... 요지는....... 단어 하나 하나를 다 해체하고 조립하는 게... 너무 밀도가 높아여... 그래서 서론 한페이지씩 넘기기가… 어려운데… 그래서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꼭 잘 읽어내고 싶습니다!!

2024-07-12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와… #나르시시즘의고통 너무 고통스럽다 ㅋㅋㅋㅋㅋㅋ 내 나르시시즘(이걸 다 알아먹는 이렇게 똑똑한 나)을 넘어서 벌임. 이졸데 카림이 내가 평소 글로 하고 싶었던 말 ‘넘 쉽게’ 다 써버려서 할말이 없음ㅋㅋㅋㅋㅋㅋㅋㅋ 고작 1장을 읽었을 뿐인데 ㅋㅋㅋㅋ 절필해야겠다ㅋㅋㅋㅋㅋ (느닷없는 절필선언) 내 존재의 의미 상실ㅋㅋㅋㅋㅋㅋㅋ 이젠 그만쓰고 겸손하게 돈이나 벌어야 하겠다 ㅋㅋㅋㅋㅋ

“(33)이 관계가 상상적이라는 것, 우리가 주체로서 상상적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와 상반되지 않는다. 관건은 상상적인 것의 베일을 벗기는 것, 그 아래 숨은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는 주체의 가면을 벗기고, 기능을 수행하는 행위자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사회적 무력함을 행동하는 자율적 주체에 대한 예찬으로 전도시키는 것 역시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예찬은 환상이다.”

“(34)(이데올로기란) *개인이 자신의 현실적 실존 조건과 맺는 상상적 관계*라는 일괴암 같은 문장은 자발적 복종의 거대한 공식이다. 자신을 톱니 바퀴로 상상하고 느낀다면 우리는 톱니바퀴로 기능할 수가 없다. 우리가 톱니바퀴 같은 게 아닐 때만 우리는 행위자로서 ‘행동’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자신을 톱니바퀴 같은 걸로 상상하지 않을 때만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상상 적이든 간에 우리 자신을 주체로 느끼고 경험해야 톱니바퀴로 기능할 수 있다. 우리의 사회적 실존이 이러한 분열을 필요로 하고 또 장려한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35) 우리는 분열된 존재다. 우리 모두. 행위자이자 행동하는 자. 수동적으로 매인 자이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자. 우리는 현실적 실존 조건이라는 외부의 필요성에 끼워 맞춰지고, 상상적인 것이라는 ‘자기의’ 필요성에 스스로를 끼워 맞춘다. 이것이 우리의 사회적 실존의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논리다.(…) 우리 모두는 부름을 따른다. 그러나 이 부름은 자꾸만 변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내려지는 부름은 무엇인가?”

알튀세르 쉽게 풀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지금 시대의 지배적 호명을 ‘나르시시즘’이라고 말하면서 논의를 전개할 예정이다. (🤤ㅋㅋㅋ 맛있겠쥬?)


*개인이 자신의 현실적 실존 조건과 맺는 상상적 관계*라는 일괴암 같은 문장은 자발적 복종의 거대한 공식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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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7-05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노트는 안 팔아여?
저 노트필기된 노트요… 🙄🙄🙄

공쟝쟝 2024-07-05 18:34   좋아요 1 | URL
네!! 비매품!!! ㅋㅋㅋㅋ 공부하는 쟝쟝씨의 정신분석 노트입미다 ㅋㅋㅋ 자매품 푸코노트는 따로 있음 ㅋㅋㅋ

바람돌이 2024-07-06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맛없을듯....ㅠㅠ
저의 나르시시즘으로 고통받는 제 주변인들을 볼 때 이것까지 읽고 이해하면 저는 고독사할거같습니다. 저 문장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ㅎㅎ
저는 지금 카프카 소송 보면서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반쯤 읽었는데 주제가 아니라 카프카의 여성관때문에 고통받고 있어요. 주인공 K는 카프카 저신을 반영한것이라는데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 그리고 그를 대하는 k의 태도 가관입니다. ㅎㅎ 각오하고 읽으세요. ㅎㅎ

공쟝쟝 2024-07-07 19:4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아앍ㅋㅋㅋㅋ 이런 자기성찰적 댓글을… (😝) 카프카씨에게 여성관까지 기대할 수는 없겠군요? ㅋㅋㅋ 여친들에게 보낸 편지는 쏘서윗하든데 ㅋㅋ 각오하고 오늘 밤에 진입하도록 하갰숨다 😝
 

오늘은 신나는 날! 책 읽는 날! (나에겐 주말이 없어서 주말 전에 놉니다.)


도서관에 신청한 책 <나르시시즘의 고통>과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는 바로 반납했다. 나 말고 필요한 엄마들이 많을 것 같아서!)와 <향락사회론>다 승인되어 버려서… 하아. 어쩌죠? 우리 동네 도서관 신간 신청이 거의 짤린 적 없는 나의 안목😩 (자뻑 중!…) 



일단 새 책이니 만큼 큼큼 냄시를 맡고 있는 중입니다. (아-🥹황홀) 



<향락사회론> 의 부제는 “현대 라캉주의의 전개이다. 열렬한 푸코빠답게 온 사회의 정신의학화에 반대하는 나는 지금으로서는 라캉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 그전에 라캉에게 좀 익숙해져야 하겠지만… ? 밀쳐둔 라캉 입문서 대여섯 권이 이 글을 적는 중인 나를 뒤에서 째려보고 있다. 얘들아... 니들은 열심히 읽어야 해서 그뤠… 그냥 이 친구는 빌렸으니 맛만 볼게… 맛만… 응…? 


<나르시시즘의 고통>은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찰지게 알아듣기 쉽게 정리해 줘서 감동한 바 있었던 책 <나와 타자들>의 이졸데 카림의 신작이다. 부제가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다. 오메. 신자유주의를 못버리…는 저를 쥐잡듯 패주시길 부탁합니다. (버리는 그 날이 바로 제가 속세를 떠나는 날 일터… 쉽지는 않을 것입니...) 제목과 표지가 이미 맛집의 티가 나지만. 내가 이 책을 도서관에 굳이 신청한 이유.가 다 있다. 


요즘 mbti 만큼 자주 등장하는 유튜브 콘텐츠가 나르시시스트다. (그들에게 고통받은 피해자—여기엔 나도 경험이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전 국민이 피해자 아닌가요?ㅋㅋ 근데 누가 선출했다고요? 나는 아니라고 하면 이 상황이 사라집니까? 말 아낍니닼ㅋㅋ—들에게는 좀 야속한 말이 될 수는 있겠지만…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와 함께) 인간이 은연 중에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특징의 한 부분을 성격 특성으로 규정한 다음 배제할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나르시시즘에 대한 나르시시즘적인 태도 아닐까? 


정신과 의사 영상들 보면서 든 생각이다… 그치만 의사님들은 의사님을 해야 하고요… 다른 말을 해야할 철학자/사회학자들 다 어디 갔어요? 뭐? 인문학이 다 죽어서 대학에 사회학과/철학과가 없다고요? 그러게. 나 때 다 통폐합되더라. 누가 시켰냐. 통폐합. 그렇게 의사들의 말이 가장 권위있는 담론이 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있던 차에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줄 것 같은 책이라서 도서관에 신청했다. 이제 나는 다른 이야기를 원한다. 아메바처럼 자극-반응 좀 싫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과 작동하는 방식의 방식이다. 


물론 이걸 궁금해하는 게 사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나르시스트는 거르는 게 답! 당신 옆의 그 사람을 조심하세욧! 이래버리는 게 확실히 살기 편한 측면이 있다.🤔 그렇게 모두를(에게) 걸러(져)서 옆에 사람이 없는 나는 덕분에 모든 게 궁금해진 스스로를 타박하며 책을 휘리릭~ 살펴봤더니 일단 라캉, 푸코, 알튀세르가 나온다. (에쒸… 진짜… 카림 씨 이러기냐? … 진짜… 혼난다… 하지만 왜 기분이 좋죠?ㅋㅋㅋㅋ)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는 나와 적(ㅋㅋㅋ)은 같지만 노선은 다른(아, 언젠가 공쟝쟝의 장강명론 써야 하는 데 구찮네요.) 그리하여 응원하는 장강명 작가가 가만히 안 있고(ㅋ) 현시대의 소설가들과 지금의 노동을 다룬다 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했다. 그냥 이런 건 안 읽어도(읽을 겁니다) 구매를 해두는 겁니다. 도서관 신청은 나 아닌 사람이 할 것이니까능. 



어쩌면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육아(나는 사실 상관없지만, 상관있다고 생각한다)에 대해서도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지 싶어 책 구매로 연대. 이 책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의 부제는 “이 시대의 육아를 어렵고 복잡하게 꼬아버린 명령들”이다. 


워킹맘 친구가 말했다. 애랑 못 놀아주는 게 미안해서 애한테 뭘 많이 사준다고. 어느 날 뭘 많이 사주는 게 애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기능을 한단 걸 알았다고. 그런데 뭘 많이 사주려면 더 벌어야 하는 거잖아.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걸… 그걸… 그 시간과 돌봄을… 마음을 내서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이 가능한 게 현대 사회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 애 안 키우는 나도 안다. 그런데 왜 출산율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왜.


얼마 전에 택시 기사님이 무슨 이야기를 찬찬히 하시길래 나는 잘 들었다. (원래 잘 들음) 늙어가는 당신 삶의 가치와 행복에 대해 두런두런 하시다가 결국은 이 맛을 모르는 두 아들이 장가를 못 가서 걱정인데… 집은 없어도 생활력 있는 지방 처녀를 골라 사귀라고 했다며…(네? ㅋㅋㅋㅋ)… 끝에 가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애 안 낳는다 알뜰하게 타박하시기에… 아, 이게 어른들의 평균적인 생각이지…. 어쩐지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애 낳으라는 광고를 15초 때리더라. 어이가 없어서. 


이런 말을 적고 싶어서였던 건지 아침에 몇 년 전에 베껴 써둔 문장을 발견했는데. 출처는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의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이다. 


“(p.188) 청중을 위한 또 하나의 전쟁을 그녀는 준비해 두었다 ….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훈육용의 전쟁.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 불신에 보통의 삶을 소위 이상이라는 것과 슬쩍 바꿔치기하려는 이 욕망에 나는 매번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온기를 차디찬 광채와 맞바꾸려는 욕망.”


물론 이것은 잘못된 인용일 것이다. (전쟁만큼 심각한 출생률ᄏᄏᄏ) 내가 끝까지 들어드린(좀 후회했음. 나만 안 듣는다고 안 하지는 않으시겠을 그) 기사님의 이야기가 들을 가치가 없었다는 것도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훈육용’의 이야기. 그 이면에 있는 기사님의 욕망까지는 알 수가 없고... 다만 너무 많이 변해버린 현실에서는, 그런 방식의 이야기가 너무도 너무도 진부한 규범을 생산하는 나머지… 규범에 맞지 않는 나의 존재 방식을 할퀼 때. (저, 이 구역의 ‘뭐 모르고’ 결혼 해보려다가 탈출한 지방 출신 여잔데여… 사람들은 아는 것 같다. 누가 자기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할 수밖에 없는지. 정말인지 권력은 근본적으로 독백적monologisch이다.) 겹겹의 말들 속에서 어떤 말로 나를 보호해야 하는 건지 정말 나는 모르겠다. 


나 역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정말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가족이란~ 마르지 않는~ 눈물의 씨앗~~~🥹🥹) 그래서 내겐. 가족이. 너무. 무겁다. 현실의 조건에서 내 삶의 기동성을 제한하는 굴레가 되었다. (가볍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왜냐면, 여기는 사회의 모든 안전망을 오로지 가족제도에 의탁해 승리한(?) 나머지, 더는 착취할 가족(혹은 자국 내의 여성)이 없어져 버린 곳. 바로 대한민국의 서울이니까. 


이 출산 파업의 자연스러운 진행방식은 ‘1. 아직은 가족이 안전망으로 작동하는 외부의 가난한 이민자(베트남 처녀 포함, 탈북민, 조선족 포함)들 전격 수용 1-1.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 발생 2. 아이를 낳지 않거나 똑바로 키우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혐오. 모든 건 여자들이 눈 높아서 타령 3. 외국인 노동자 및 난민, 이주민에 대한 차별, 배제 4. 그것을 원동력으로 하는 혐오 정치 강화’가 되시겠다. 현대사회는 다음타겟 다음타겟 그 다음타겟. 이 필요하다. 모두가 생각하는 방식을 조금 바꾸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가? 


글쎄. 나는 다른 말이 필요하다는 말이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안 듣겠지.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훈육용의 이야기를 하시고 싶은 분들은. 말을 듣되, 너무 잘 듣지는 말자.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이번 달에는 욕심 안 부리고, 옆으로 안 새고 딱 세 권(그래도 합치면 1500페이지 넘음)만 읽어야지! 하면서 선택한 책은 #잔인한낙관 #감정의문화정치 (다 까먹음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함) #소송 인데… (소송은 문동, 열린책들 살펴본 결과 둘 다 번역이 비슷하게 나쁘지 않아서. 그러나 카프카 책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는데 엔터가 없다. 글 줄이라도 짧은 열린책들 버전으로 읽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글 쓰면서 향락사회랑 이졸데 카림 너무 읽고 싶어져벌임…. 

망했네… 나는 과연 이놈의 옆으로만 끝없이 퍼지는 병렬 독서에 대한 충동을 참을 수 있을 것인가. 


나를 나도 모르지만. 일단 질러놨으니. 쟈니 난~ 낙관을 시작하려고 한다. 오늘은. 오늘은. 시작을 하고. 내일은 또 내일은 또 시작을 하고. 그리고. 나는 독서만큼은 낙관이 제법심한 편이다. 꾸역구역 읽다보면 언젠가는 읽고있다. 그런~ 낙관. 으로. 


시작 시작 시작했습니다! 저와 잔인한 낙관 읽기로 하신분?! 전 오늘 시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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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7-05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르시시즘의 고통>은 저도 도서관에 신청해야겠어요. 참고로 최근 간행물이 아니다(5년이내), 너무 비싸다, 이외의 이유로 제가 신청한 희망도서가 ‘불가‘되는 경우가 최근에 좀 많네요. 책 제목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이유가, 뭐, 특정 분야의 도서만 있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요. 특정 분야의 책의 양이 너무 적은 건 문제가 안 되나봐요.

이 출산 파업은 쟝님의 예상대로 될 것 같기는 해요. 아, 슬프도소이다...

공쟝쟝 2024-07-05 16:21   좋아요 1 | URL
1장 읽고있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이졸데 카림이ㅜ제가 하고 싶은 말 다 쉽게 정리 잘해서 써놔서 저는 이제 절필을 해야겠습니다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7-0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나르시시스트라든가 악덕에 속하는 것들 분석서나 의견들을 보면 본인이 거기 속하지 않는지 돌아보는 법, 그런 사람이 되지 않는 법, 이런 거도 좀 미리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싶은 1인...다들 나는 나쁜 놈이 아니라고 타자화하고 문제있는 건 외부로 돌리거나 피하기 바쁘지 미친놈년 총량 보존의 법칙(이 구역 미친새끼가 나일수도)을 생각하지 않아서 세상이 좀 더 팍팍하다 싶어요... 저는 일단 어디가든 스스로를 빌런으로 상정하고 시작....ㅋㅋㅋㅋㅋ근데 이거도 지나친 수퍼에고 때문이라고...

공쟝쟝 2024-07-05 17:48   좋아요 2 | URL
그런 법을 수월하게 알려줘도 자기분석을 하기 힘든 여유부족의 세상이라… 나를 돌아보려거든 한가로워지는 게 정답인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친밀한 적 - 식민주의하의 자아 상실과 회복, 개정번역판
아시스 난디 지음, 이옥순.이정진 옮김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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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을 읽을까, 벌렁 누워잘까 고민하다가 밀린 독후감을 쓰기로 결단했다. 이번에도 잘 쓸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의 물음표를 내일의 느낌표로 바꿔두기 위해서 짧게라도 (과연?) 적어둔다.


이 책을 두 번째로 읽었으나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책에 나오는 인도의 문화적 특성은 내 경험치를 벗어나는 너무도 불가해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간디가 이렇게 심오한지 몰랐다. 키플링보다 오로빈도가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내가 서구화되었다는 것일 테지. 뱅킴찬드라 차터르지의 양가적 애씀에서는 단재 신채호가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처음 읽을 때는 내 안의 식민주의적 심성에 꽂혀있었다. (약간의 통증은 덤) 이번에는 스피박을 함께 읽고 있어서… 식민통치가 약속하는 세속적 위계질서의 재배치와 신자유주의(각자도생)가 여성에게 약속한 능력주의가(99.9%의 결론은 대출금 or 번아웃) 비슷하다는 심증을 확보했다. 물증은 없다. 심증만 있다(ㅋㅋㅋㅋ).



책의 주장을 요약한 부분을 요약하겠다.

“(236) 식민주의는 그 무엇보다도 심리-정치적인 현상으로서, 문명의 가치지향을 규정하는 범주들 간의 재배열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서구(영국)의 그것은 특별히 ‘젠더화’되어 있었다. “식민통치를 정당화는 문명 간의 위계 확립의 과정”에서 이상적인 성격 유형은 “합리적이고 성숙한 남성성”으로 묘사할 수 있는 서구 근대의 자기상이다. 지배자들도 나름의 대가를 치렀다.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231) 남성성을 훼손하는 여성성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과 경직된 성별 위계, 오로지 성년의 준비로만 아동기를 규정하는 것, 진보와 생산성을 절대화 하는 세속적인 관념으로 인한 살아있는 우주의 속화 desacralization, 급진적인 다양성과 미래에 대한 다원적 비전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협소하고 경직된 자아. 그러나 이 책은 한 문화를 다른 문화의 반대항으로 여기지 않는다. 식민지 사회는 식민지를 운영하는 사회의 반(反)자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이 아닌 심리적 관점으로만 식민주의를 읽어내는 부분도 독특하지만, 책의 백미는 서구가 서구화시킬 수 없었던 인도인들의 세계관(?)이다. 어지간한 SF 판타지보다 더 급진적이기 때문에 내 깜냥에 설명은 불가능하다….

내 생각에 책의 탁월한 지점은. 식민주의의 심리구조를 다루고 정신 분석 이론에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저자가 프로이트를 상대화해버린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푸코를 떠올리는 그대는 공쟝쟝의 친구! 땡큐~) 나는 절반은 벙쪘고, 절반은 동의할 수 없었다. 이 역시 내가 (동양 여자 주제에) 서구화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인도-영국에 비하면 한국과 일본의 식민주의(심리)는… 아, 여기서 일본은 조선을 식민화한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 뭐랄까… 책의 말대로 “(28) 심리적 부패가 더 진전된 단계의 희생자”처럼 여겨진다. 근대화 코인에 뒤늦게 탑승한 나머지 제때에 발 못 빼서 미쳐 돌아가셔버린? ㅋㅋㅋㅋ

2024년, 서구 관점에서 극동에 위치한 두 국가는 완전히 서구화(식민화)가 끝난 것으로 추정되며… 이 상황이 특별히 안됐다고도 생각은 들지 않지만 썩 자랑스럽지도 않다. 그건 세계 최고 자살율과 최저 출생률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함. 지난 100년간 지나치게 도입(해?)되어버린 서구화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 무엇을 저질렀나. 계속 탐구해 보자.

“(41) 정신 상태로서의 식민주의는 외부의 힘에 의해 촉발되지만 식민지 내부의 과정이며, 그 근원은 지배와 피지배자의 정신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아마도 인간의 정신에서 비롯한 것은 역시 인간의 정신 안에서만 종식될 수 있을 것이다. (42) 궁극적 폭력이란 바로 식민주의가 식민지인들이 끊임없이 지배자들이 설정한 심리적 한계 내에서 그들과 투쟁하게끔 유혹하는 문화를 창안해냈다는 것이다.”

우리는/나는 왜 벗어나지 못하는가. 스스로는 스스로를 볼 수 없다. 타자에 비춘 상만 볼 수 있는 거라면. 거울을 깨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꼭 자신을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어쨌든 나는 이 책이 참 좋았다. 책을 덮는데. “왤케 썽이 나있냐”던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핀잔이 떠올랐다. 나는 그에 비하면 사투리도 쓰지 않고 이제 완전히 도시의 여성이 되어버린 듯도 한데....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과거의 나는 단순하고 털털하고 천진했고 발 닦고 잠만 잘 잤었는데. 또 다 그렇지만도 아니었지만서도. 아 모르겠다. 인도의 브라만 사제들에게서 배우기로 했다. 나는 “위선적이고 비겁하며 교활하게 타협해서 살아남”아 보는 것으로. 꼿꼿하지 않겠어. 물렁해지겠어. 킁킁.



나를 재단하는 평가의 말들, 부족하다고 아직 온전하지 못하다고 광고하는 미디어, 무언가를 위계로 나누고, 거기에 속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끈질긴 열등감을 느끼고... 그 비교하는 마음조차도 내면화된 지배의 일종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참 많은 책이 필요했다. 아직도 더 필요하고.

나 스스로를 변화시킬 각오 없이 타자를 쉽게 재단하는 사고방식을 경계하고 싶다. 타자들에게 착하게 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의 평안을 위해서. 나는 그들을 알 수 없다. 마치 이 책 속의 인도인들처럼.

끝으로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정희진 선생님의 문장을 한 스푼 첨가하며 리뷰를 마치겠다.


“(303) 세상은 나를 버리는 과정에서만 해방되는 어려운 곳이다.

인간은, 우리는 아무것도 nothing 아니다. 자아는 갑옷이다.

- 정희진, <밀양> 각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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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7-04 09: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식민주의를 읽을 때 솟아나는 억울함을 어떻게든 ‘처리‘해야할 필요를 느낍니다.
피해자의 위치에 있겠다는 게 아니라(제가 그러지 않다는 걸 쟝쟝님은 이해하고 있겠죠? ㅎㅎ) 날벼락과 같은 피해자라는 함정의 책임 일부가 피해자에게 있다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고요. 이건 임지현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와도 연결되기는 하는데, 오늘은 바쁜 날이 예상되기에 더 이상 생각할 여력이 없네요.

오늘도 화이팅! 전 유시민 책을 읽고 있습니다. 메렁!

공쟝쟝 2024-07-04 10:36   좋아요 3 | URL
그 마음 내 마음처럼 이해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왜 죽이냐고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그러나 규명이 되고 처벌이 되어도 피해는 이미 끝났으므로. (물론 희진샘 말에 의거하면 피해자체가 경합하고 투쟁해야하는 위치가 되어버리는게 지금이지만 ㅠㅠㅠ 피해 호소인ㅠㅠㅠㅠ) 다른 이야기를 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요, 임지현식의 이야기라면 안 읽어봐서 모르지만 ㅋㅋㅋㅋㅋ 저는 지금의 저는 국가와 민족보다 기업이 더 나를 많이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나를 부르면 나는 돌아본다 ㅋㅋㅋㅋ call me by your name~~ (zzzz) 나를 부르지마라 마켓컬리 쿠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