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거리 45+47번지에서 생긴 일 1
엘리자베스 허니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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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고자 할 때 제목과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정보만 보고 골라야하는 난감한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선택할까? 독자서평? 저자, 번역자의 이름과 약력? 책에 대한 소갯말? 아니면 어떤 직관같은 것.

나의 경우 이책은 웬지 일상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제목과 뒤죽박죽이지만 어릴적 추억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비밀상자와 비슷한 정겨운 표지, '햇살과 나뭇꾼'의 번역이라면 후회는 하지 않을 것같다는 믿음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을 위해서 동화책을 구입하지만 언제나 내가 먼저 읽는 습관때문에 밤 늦게까지 나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즐겁게 책장을 넘겼다. 1권만 읽고 자리라는 내 다짐은 헛되어 2권도 마저 끝내고서야 이불을 덮었지만 웬지 모를 가슴의 따뜻함으로 난 아마 즐거운 꿈을 꾸었을 듯 싶다.

행간에 숨은 작가의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유머가 아프지는 않게 그러나 시원하게 우리의 마음을 간지럽힌다. 딸 아이의 독서력으로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한 눈치이지만 이 책이 전해주는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행동력은 분명 우리아이의 마음도 유쾌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글쎄. 누군가 본다면 가난한 이들이 분명한 스텔라 거리의 사람들은 가난과 부의 경계나 잣대가 필요치 않은 진정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사람들이 틀림없다. 쓰레기로 버려진 잡동사니 위에 온갖 예쁜 꽃을 가꾸는 다나 아줌마의 삶에 대한 여유와 마구 사들이고 마구 버리는 이상한 이웃을 걱정하는 스텔라 거리 아이들의 풍요로운 정서를 우리 아이들이 배울 수 있다면...

일상의 분주함을 핑계대면서, 생활의 여유를 들먹이면서 길가의 꽃집에 눈길조차 줄 시간조차 없었던 나이지만 작고 노란 들국화 한다발로 작은 거실을 채워보리라 생각한다. 다나 아줌마의 평범한 꽃들로 가득한 그 화려한 꽃밭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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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거울
그레이엄 핸콕 지음, 김정환 옮김, 산타 파이아 사진 / 김영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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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전편격인 신의 지문을 너무나 감명(?)깊게 읽었기에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금액의 이 책을 구입하였다. 멋진 장정에다 화보의 컬러가 좋아지고 크기가 커져서 책이 두꺼워졌지만 속편은 어제나 전편보다 못하다는 속설이 여기서도 통하는 것일까? 도무지 책읽기가 진행되지 않았다. 문외한인 나의 탓이려니 하고 마음을 다잡아 읽어보려 하였지만 그림만 보게 될 뿐 진전이 없었다.

왜 그럴까? 내 무식의 소치에 더하여 원전의 난해함과 번역의 과도한 현학성이 문제라고 난 결론을 내렸다.

그것, 이것, 그, 이 등의 남발로 인해 도무지 문맥이 이어지지 않는 번역의 무성의 함. 조사없이 단어만을 연속적으로 나열하거나 주어나 주어부가 문장의 뒤에 오는 영문체를 그대로 옮긴 영어식 서술로 이해 끊어지는 호흡, 더하여 빈번한 ','의 등장에 난 손을 들고 말았다. 거기다가 어려운 한자단어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역자의 현학적인 면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아니라 이 한자 단어 뜻이 무어더라하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번역술. 이것도 일종의 지적사기일까?

쉽게 읽혀지는 책이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겠지만 책을 아무곳이나 펴고 2~3 페이지만 읽어도 알 수 있을터니 이 책을 구입하실 분은 필히 자기의 책읽는 적성에 맞는 책인지 확인하고 구입하시길 권한다. 물론 화보집으로 보실 분은 상관없겠지만 나같이 저자의 전작에 혹하여 덜컥 구입한 후 바라만 보는 녹슨 거울로 만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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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겨울 햇살이 쌉싸름한 교정을 산책하면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글을 쓰는 것의 어려움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를 하였다.

글을 쓰는 어려움이라고 말을 하니 무슨 거창한 창작활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요즘 시대의 화두인 블로그나 미니 홈피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개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글로 나타내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것도 포함해서)

자신의 글이 미치는 작은 반향 , 다수의 공감, 사회적 의미 등 인터넷 시대의 놀라운 문자 전파 속도의 긍정 혹은 부정적인 의미와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용기 있게 드러내 보이는 사람들의 패기, 그리고 그 놀라운 지식 및 창조력에 대한 부러움이 이어지다가 결론은 그냥 우리 같은 사람은 다른 이의 글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동감을 할 뿐이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이나 생각을 드러내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는 것에 대한 낯설음과 자신 없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나의 동료, 우리는 아무래도 구시대 인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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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하고 나서부터 그간 집안사정으로 작은 아버님 댁에서 모셨던 제사를 모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이 바로 시할머님 제사였지요. 그때부터 제사 지내는 것도 잘 보지 못하고 자라온 저의 봉제사 하드트레이닝이 시작되었습니다. 삼대조를 모시느라 한달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제삿날은 그야말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일하시느라 살림에 익숙하지 않으셨던 어머님이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전적으로 의지를 하셨기에 더욱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주 전부터 장을 보기 시작하여서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일가어른들의 접대까지 너무 낯설고 어려운 것 뿐 이었습니다. 제사 당일 퇴근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시작하여서 제사를 모신 후 식사에 술상에 12시가 넘겨서 겨우 설거지를 끝낼 수 있었고 주무시고 가시는 시골 친척 분들의 새벽 같은 아침거리까지 마쳐야 겨우 하루가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도 할 일은 남아서 며칠 동안 청소며 그릇정리며 산더미 같은 일거리에다가  어머니와 저, 이렇게 두 며느리가 동동걸음치고 장만한 제사 음식과 손님 접대 음식은 남기 일쑤여서 버리기도 그렇다고 먹기도 힘겨운 지경이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제 머릿속에는 한번도 뵙지 못한 증조 , 고조 선대 분들의 제사를 제가 지내야 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고 단지 결혼이라는 것으로 얽매이게 되는 굴레라는 생각만 가득하였습니다.

장손 외며느리를 맞이하여 의욕차게 시작된 삼대봉사는 어른들께서 3년 째 되는 해부터는 할아버님과 할머님외의 윗분들은 사당에 모시기로 결정을 하시어 그 후부터는 설날, 추석의 차례와 할아버지, 할머님 기일만 제사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제사를 십년쯤 모시게 되니까 저도 슬슬 꾀가 나서 장보기를 설렁설렁하기도 하였습니다. 수입산 고사리를 사기도 하고 쇠고기 값이 치솟은 어느 해인가는 어른들 몰래 수입쇠고기로 산적을 하기도 하였지요.(딱 한번 그렇게 하고 이후는 마음에 찔려서 하지 못하였습니다만).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웬 조기 값은 그렇게 비싸던지... 제철이 아니어서 과일이 금값인데도 무조건 제일 크고 좋은 것만 고르는 남편과 지갑사정을 감안한 저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면서 제사는 하나의 의례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지겨운 시집의 대소사로 치부되었습니다. 

저의 이런 반항은 13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저희가 어찌어찌하여 분가를 하였거든요. 제가 직장 다니고 살림하느라 바쁘다고 저를 많이 봐주신 어머님은 이제 손수 제사준비를 하십니다. 저는 명절동안 손님접대용이나 가족들용 먹거리만 준비하여서 설이나 추석 전날 가는 입장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사 준비는 제가 도착하면서 시작되긴 하지만 주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보조가 되다보니 남편이 이렇게 놀리기도 합니다. ‘결혼 13년 만에  ○○의 팔자가 폈구나.’ 제가 생각해도 팔자가 핀 것 같습니다. 이렇게 편할 수 가 없습니다. 저도 명절증후군이란 걸 톡톡히 겪었거든요.  설날, 추석 휴일의 빨간 글자가 길면 그건 휴식이 아니라 긴 노역의 의미로만 생각되었었는데 이제는 명절 다음날의 계획을 짤 수 있으니 즐겁기까지 합니다.

엊그제는 시할아버님 제사였습니다. 토요일이어서 점심 무렵에 시댁에 도착하여서 준비를 하였는데 막내고모님이 이것저것 준비를 해 오셔서 저는 전만 준비하여 부치면 되었습니다. 밤이 되고 제상의 촛불이 켜지고 시댁 어른들과 우리 막동이까지 재배를 하고 술잔을 번갈아 올리고 하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서있노라니 우리식구들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이 저 옛날 빛바랜 사진 속에서 굽어보고 계시는(이제는 제게도 친근해진) 선량한 얼굴의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몇 년 후면 점차 기력이 쇠하실 어머님을 대신하여 제가 다시 본격적으로 제사를 모셔야겠지요. 그리고 별 일이 없다면 아마도 제가 살아있는 날까지는 제사를 지내겠지요. 저의 아들은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아버님은 당신께서 끔찍하게 귀히 여기시는 손자가 당연히 제사를 지내주리라 생각하시겠지만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그건 그 때 가봐야 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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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자가운전으로 출근하는 날
눈이 오는구나.
앞 유리창에 마구 부딪는 성긴 눈발은
무방향성의 자유를 만끽하다
차의 체온에 지레 녹아내리는데

눈이 오는구나.
나는 눈이 온 다음을 걱정하는데
도시 큰길에 뿌려질 수 톤의 염화칼슘과
퇴근길의 정체와
빙판길의 추돌사고가 걱정스러워
하얀 도로 위 검은 바퀴자국만 부지런히 쫓는데

눈이 온단다.
정말?
베란다 창문 열고 구경하느라
전화기 너머로  대답 없던 딸아이는
조금 뒤 달뜬 목소리로 되돌아온다.
정말 예쁜 눈이 내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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