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하지 못하면 기록하라. 기억력은 사소한 습관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2. 고마움은 표현하라. 작은 고마움도 반드시 표현하라.  당신에게 베풀면 늘 기분좋은 땡큐가 돌아온다는 것. 깊은 인상으로 남겨라

3. 친절이 최고의 무기이다. 상냥해서 손해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사는 먼저 소리내어 하고 어떤 일이든 성심성의껏 대하라.

4. 점심은 매일 다른 사람과 먹어라. 모임을 많이 만들어라. 아는 사람의 폭을 자꾸 넓혀라.

5. 내 편으로 만들지 말고 상대방의 편이 되어라. 상대방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말라. 무조건 베풀기만 하다간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고, 너무 굽히고 들어오면 얕잡아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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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TV 인간극장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영자씨가 있습니다. 아버님과 둘이 살던 영자씨는 TV로 인해 유명 인사가 된 후 서울에 올라와 공부를 하게 되었고 영자씨 아버님은 혼자 지내시다가 뜻하지 않은 일로 세상을 떠나게 되셨지요. 그 후 영자씨는 어느 절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제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기봉씨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기봉씨가 갑자기 없어졌다는 것으로 시작한 기사는 시간을 거듭하면서 진실이 밝혀지고 있는데요, 철원에 사는 기봉씨의 여동생이 어머니와 기봉씨를 모시기로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차피 어머님이 돌아가시고나면 기봉씨를 형제들이 돌봐주어야 하니 미리 모시고 갔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말이 많습니다.

기봉씨의 통장을 관리해주고 후원회를 맡고 있던 이장님께 인사도 안 하고 고향을 떠났다니 소문이 더 무성한 모양입니다.

오늘 오마이 뉴스 기자가 쓴 글을 보니 이장님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할 까봐 정확한 사실을 보도해달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네요.

다음은 오마이 뉴스의 기자가 쓰신 글입니다.

***************
엄기양 이장에 따르면 기봉씨에게는 한 명의 누나와 두 명의 여동생이 있다. 누나는 충남 서산 시내에 살고 있고 한 명의 여동생은 강원도 철원, 나머지 동생의 거주지는 엄 이장도 모른다고 한다.

지난 11월 27일 월요일 세 자매가 엄 이장을 찾아왔다. 엄 이장이 기봉씨의 후원회 통장 관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통장이 보관 돼 있는 서산시 고북면사무소 치안센터(파출소)에가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을 확인했다. 기봉씨 누이들이 금액을 확인한 것이다.


엄 이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11월 27일자로 후원회 통장에는 1500여만원이 찍혀 있었고 어머니 명의로 된 통장에는 900만원 정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중 1천만원은 영화 <맨발의 기봉이> 촬영할 때 계약금으로 받은 것이고 나머지 500만원은 후원회에서 조금씩 들어온 돈이다. 그리고 어머니 명의의 900만원은 기초수급생활대상자로서 그동안 받은 생활 보조금이다.


이와 함께 현재 기봉씨가 거주 예정이던 새 집은 기봉씨 명의가 아닌 마을청년회 명의나 다른 사람의 명의로 추진중이었다. 재산을 갖고 있으면 생활보조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집터(토지) 또한 독지가 이용성씨가 무상 영구 임대해준 것으로 기봉씨 재산은 아니다. 결국 기봉씨 재산은 2400만원과 낡은 집의 가재도구뿐이다.


이와 관련해 엄기양 이장은 "맨날 방송이나 신문 등 언론에서 찾아오면 돈이 엄청 들어올 거라고 부락 사람들도 대부분 오해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 후 누이들은 모여서 가족회의를 열었고 좀더 조용하고 편안히 생활할 수 있는 강원도 철원 여동생 집으로 기봉씨와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이사하고 전출신고까지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엄 이장은 "그래도 그동안 기봉이와 동고동락하며(주로 신문, 방송 등 언론 상대) 지냈는데 이사갈 때 인사라도 나눴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과 서운함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그래도 그 가족들이 악하거나 돈 때문에 기봉씨 모자를 데리고 간 게 아니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당연히 가족들이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이사를 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엄 이장은 그러면서 기자에게 거듭 당부했다.


"윤 기자도 잘 알다시피 기봉이가 가진 재산이 뭐가 있어? 그 누이들이 이미 통장까지 다 봤는데, 무슨 돈 때문에 강원도 갔네 뭐네, 그런 얘기가 나오는겨. 정말 답답하구먼, 누이 등 가족들이 많다는 것도 좀 써 주고 윤 기자가 다시 한 번 기사 써서 사실 좀 제대로 알려줘."


엄 이장은 끝으로 '기봉이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아니라 '동생이 잘 보살피려고 이사했다'로 기사 제목을 바꿔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


많은 사람들은 현재 기봉씨가 가지고 있는 돈, 앞으로도 기봉씨 앞으로 들어올 후원금, 어머니 앞으로 나올 기초수급대상자 생활보조금까지 기봉씨가 수입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까지 합니다. 기봉씨 가족이 기봉씨와 어머니를 진심으로 위해서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기봉씨나 영자씨에 대해 좋은 소식만 들리기를 기원하며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답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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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자식 사랑을 이야기할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눈은 감각이 굉장히 예민한 기관이라 작은 먼지, 눈썹 하나만 빠져도 불편함을 느끼는 예민한 기관이라 이런 표현이 더 마음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을 위해 눈길을 헤치고 구조대를 찾아나선 제임스 김. 그러나 결국 실종 12일만에 발견된 그는 저체온증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어린 두 딸과 아내를 위해 청바지와 운동화만 신은 채로 그 먼 눈길을 걸어간 제임스 김의 부정 뒤에는 그의 아버지의 부정도 있습니다.

미국 오리건주 산악지대에서 실종된 아들 가족을 찾기 위해 구조 요청에 나선 제임스 김의 아버지 스펜서 김씨는 미국 구조 대원들까지 감동시킨 구조 활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오리건 주 산악구조대의 윈터스 보안관은 “스펜서 김이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아들은) 여러분들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을 때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우주항공 관련 회사 CEO인 스펜서 김씨는 아들 가족의 실종 소식을 전해 듣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답니다. 스펜서 김씨는 위성회사와 접촉해 그 회사의 인공위성을 조난지역 상공으로 이동시키도록 하기도 했답니다. 수색지역의 위성 사진을 더 잘 찍기 위해서였다네요. 그의 노력으로 움직인 위성은 군사지도 제작용 위성으로 680㎞ 상공에서 1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펜서 김씨는 또 아들 가족의 수색작업을 위해 민간 헬리콥터 3대를 고용했답니다. 따뜻한 옷가지와 음식, 조명탄 등이 든 인명구조용 행낭 18개를 조난 추정지역에 떨어뜨리기도 했구요. 스펜서 김씨는 혹한과 폭설로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대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매달렸답니다. 하지만 제임스 김씨의 두 딸과 아내는 개인적으로 구조 활동에 나선 그 지역 사람에게 발견이 되었다고 하네요. 제임스 김의 아내가 우산을 높이 쳐들고 계속 흔들며 도와달라고 하는 것을 그 주민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제임스 김은 눈 덮인 산 속을 헤매면서도 구조대를 보내달라 (Please send help)는 메모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대학 교육까지 받은 제임스 김이 왜 이렇게 간단한 메모를 했을까 생각해보니 글을 잘 모르는 사람이나 외국인이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 놓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임스 김의 아버지 또한 아들의 성격을 알고 한시라도 빨리 아들 가족을 구해내려고 모든 노력을 동원했겠지요.

제임스 김의 아버지 김 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웬만한 사람이면 알 만한 부자라고 합니다. 그가 경영하는 ‘CBOL 코퍼레이션’은 세계 40개국에 항공기 부품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연 매출액이 1억 달러가 넘는다고 하네요.

로스앤젤레스 근교 우드랜드힐스 지역에 약 1만2240평에 이르는 저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는 낡은 1997년형 올즈모빌 자동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검소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도 아들에게는 유난히 엄격해서 제임스 김 씨가 대학에 갔을 때도 용돈을 보내준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제임스 김 씨도 아버지를 닮아 알뜰했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결혼식도 샌디에이고의 한 공원에서 조촐하게 치웠을 정도라고 합니다.

아들의 시신 앞에서 아버지는 이 모든 기억을 더듬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고 하네요. 제임스 씨의 시신발견 발표를 하는 기자회견장에서 구조 대원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애타는 부정으로 아들을 찾았다고 합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 제임스 김이 가족을 위해 구조대를 찾아나선 그 사랑,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말하지 않아도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는 부자간의 정... 이승에서 못 다한 부자간의 사랑에 아버지가 깊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저는 제임스 김씨의 부정도 고맙고 대단하다고 생각되지만 아들을 찾기 위한 스펜서 김씨의 노력에 아낌없는 감사와 위로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제 남편이 저와 사귄다고 집안 식구들께 말씀드렸을 때 시댁이 난리가 났었답니다. 저와 신랑을 만나는데 다리를 놓아준 셋째 시누이는 집에서 얼마나 혼이 났는지 한동안 저하고 말을 안하고 저를 소 닭 보듯 했으니까요. 어디 여자가 없어서 에미 애비 없는 년이냐고 시어머님이 난리가 나셨답니다. 얼떨결에 저희 신랑은 저보고 헤어지자고 했구요. 한동안 난리가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 때, 모든 사람들이 No 할 때, Yes라고 해주신 시아버님이 계셨습니다. 어머님과 금슬도 좋으시고 순한 양같은 아버님께서 어머님께 반항(?)을 하신 거지요.
제가 아버님께 여쭈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랑 다들 저를 싫어하시는데 왜 아버님은 저를 좋아하세요?" 하고요, 그랬더니 저희 아버님 말씀은 " 아들은 내 분신이다. 나는 아들이 좋다고 하면 나도 좋다."였습니다.
제가 좋아서라기보다 아들이 좋다니까 나도 좋다는 맹목적인 말씀이었지만 아버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 믿음이 느껴지는 말이여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변변한 학벌도 직장도 미래도 보장없는 군인 상병이었던 남편, 친정에서도 다 반대를 했지만 제가 남편을 선택한 이유는 아버님의 보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들이 술도 안 먹고, 노름도 안 하고, 여자때문에 속 썩이지도 않고, 배운 것도 없지만 니 속은 안 썩일 거다. 그런데 내가 장담 못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담배는 장담 못한다. 나 몰래 화장실에서 피우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라고 하셨던 아버님 말씀! 그 말씀 하나 믿고 남편을 선택했는데 아버님 말씀이 딱 맞습니다. 다른 것은 다 아버님이 장담하신 그대로인데 담배는 피우니까요. ^^

제가 남편보다 더 믿었던 시아버님, 아버님의 사랑을 제임스 김의 아버지를 통해 또 한 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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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 없겠니?

- 안 봐도 뻔하다. 그럴 줄 알았어.

-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었지

- 그럼 그렇지, 일낼 줄 알았어!

- 그게 다야?

- 겨우 생각이 거기까지 밖에 안 되니?

- 나이가 몇 살인데 그 정도니?

- 동생만도 못하구나

-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 네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거다

- 그런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 끝내지 못할 일은 시작도 하지 말아라

- 명심해, 네가 책임져라

- 그럴 줄 알았다. 제대로 하는 게 없구나

- 그런 바보같은 질문은 하지 말아라

- 넌 기어코 망치고 말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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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한 유명 제과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선물을 줍니다. 루돌프 사슴뿔 머리띠, 눈사람 귀마개, 천사 날개, 루돌프 빨간 코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해는 1미터가 넘는 모자를 준다고 하더군요.
며칠 전 그 제과점 본사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만 칠천원이 넘는 케이크에 한해서 증정을 하고 조기품절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을 하더군요.

그 회사에서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 올해는 미리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저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조카들, 아이가 있는 친구집에는 케이크을 선물로 사줍니다. 안를양에 사는 조카들에게는 케이크 값을 돈으로 부쳐 주던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서 보내기도 하구요, 대전에 사는 조카들에게는 제가 케이크를 사서 갖다 줍니다. 한 해에 4개의 케이크를 사야 하기에 비싸고 멋지고 제 맘에 드는 케이크를 사는 것은 경제적으로 무리가 되어 좀 작은 케이크를 일괄적으로 구매를 합니다.
제작년에는 천사 날개를 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다른 조카들은 천사 날개 필요한 조카들이 없었지만 셋째 늦둥이를 낳은 친구네 집에는 두살짜리 딸아이가 있어서 일부러 그 제과점에 가서 케이크를 구매했습니다.

케이크 3개를 똑같은 것으로 사고, 케이크 개당 금액은 선물을 주는 금액에 못 미치지만 3개나 샀으니 천사 날개를 하나만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일헌지하에 거절을 하더군요.
이미 계산이 끝난 저는 거들떠 볼 생각도 안 하고 눈도 안 마주치며 안된다고 하는데 어찌나 서운하던지 그럼 천사 날개를 하나만 팔라고 했습니다.
"우리 딸은 커서 필요도 없고 친구 딸 주려고 하는 거니까 하나 팔으라"고 해도 끄떡없었습니다.
케이크 숫자랑 천사 날개 숫자가 같게 나와서 한 개도 팔지도 주지도 못한다고 하더군요. 사정 사정을 하다가 결국은 천사 날개를 구하지 못하고 케이크만 친구집이랑 언니네 집에 전해주고 오는데 화가 어찌나 나던지 추운 날에도 스팀이 오르더군요.

점원들 말도 맞습니다. 케이크 숫자랑 천사 날개 숫자가 맞게 와서 못 준다. 그럼 케이크 하나를 선물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사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모 마음은 조카들에게 똑같은 케이크를 선물하고 싶지 어느 집은 더 좋은 거 주고, 어느 집은 좀 작은 거 주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사는 세상에 여분이라는 것도 있고, 그 제과점 지점 사장님도 조카도 있고 딸도 있을텐데 직원들에게 몇 개 더 준 것도 없을까 싶어서 엄청 서운했습니다.

케이크 배달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 제과점 본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서 나눠 먹는 것은 정을 나누는 것인데 케이크 값에 선물 값을 포함시켜서 모든 케이크 구매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케이크 선물을 하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있고, 식구 수가 적은 집은 굳이 큰 케이크를 먹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올해는 각 지점에서 개별적으로 만들어 파는 작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만 칠원대를 넘어서기 때문에 기간 안에만 구입하면 다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남편은 시계를 팔아 머리핀을 사주고,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사주었다는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한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기념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 고마워 하는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그 날에 케이크의 크고 작음에 따라 선물을 주네 안 주네 싸우는 사람들이 올해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미리 전화를 해보았으니 다른 제과점 케이크와 비교해보고 살랍니다.
그 친구 딸내미, 이제는 커서 그 모자 쓰고 걸어다니다가 사고날까봐 안 사줘도 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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