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에는 지금도 소를 많이 먹인다. 우리 외가에는 소를 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없어진 부리는소(일소)가 한마리 있었고, 모두들 병원에서 태어나던 시절 나는 두터운 흙벽을 가진 초가에서 한여름 소 아침 꼴줄때쯤 태어났다 한다. 외가에 가면 오빠들이 나를 소 등위에 태워주면 어찌나 높아 무섭던지 벌벌 떨면서 커다란 빗으로 털을 빗어주곤 했었다. 그러다 귀한 소등에 나를 태웠다고 혼나기도 하고 ^^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내고향에서 쬐끔 떨어진 봉화가 경북에서도 얼마나 골짜기이냐 하면 선생님들이 이곳에 부임해가 결혼을 많이했다한다. 왜나면 이런 골짜기론 보통 초임부임하는 선생님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처녀총각이 모이는데, 교통이 좋지않아 나가기 어렵다보니 자연 정분이 싾이기 마련이란다. (사실 내게 이말을 해준 6학년때 담임 선생님이자 내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하신 그분도 봉화에서 만나 결혼하신 선생님 부부셨다)
그 깊디 깊은 골짜기에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할아버지가 있고, 할아버지 만큼 늙은 마흔된 소가 있다. 둘은 삼십년간 농사를 함께 지어왔다. 할머니 말대로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는 소가 업이다. 유기농을 하시려고 약을 안치시는게 아니라,소가 먹을 풀이라 약을 안치시는 것이고, 사료를 먹이자고 할머니가 아무리 우기셔도 소는 살찌믄 새끼를 쉬이 안배는 법이라며 손수 이른 새벽 쇠죽 쓰기를 계속하신다. (발뼈가 부러지셔도 할아버지의 걱정은 소 꼴베러 갈 수 있겠나에 집중되어 있다.)
지극한 사랑. 우시장에 가죽값만 받고도 사갈 사람이 없다는 엎어지기 직전의 소는 할아버지에겐 5백만원을 받아도 아까운 귀한 소다. 아니 가치가 셀 수 없다. 소 역시 한발 내딛기도 어려운 몸으로 할아버지를 태우고 한발한발 앞으로 나간다. 죽는 그순간까지.. 그 어두운귀로 아픈 몸으로 방에 누워서도 워낭소리(소의 방울소리)에 눈을 번쩍하고 뜨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야 말로 지극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얼마나 잘난 척을 하며 살아가는지. 나는 평생 젊을 것처럼 얼마나 으시대고 살아가는지 말이다. 괜스레 영화 시작부터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웅얼웅얼 투정에 내 외할머니 어머니의 삶이 그래로 있고, 해뜨기 전부터 질때까지의 저렇게 고단한 노동의 삶에 내 아버지들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었다. 이젠 거의 한국땅에서 보기 어려운 두 주체 일소와 농군의 마지막 일상들이 이 다큐에 오롯이 박혀있다.
50대 아주머니 세분이 옆에 앉으셨다. 어찌나 열심히 추임새를 넣으시면 깔깔거리시며 재미있게 보시던지. 이 다큐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꼭 봤으면 하고, 장사가 잘됐으면 한다. 그리고 봐도 또 봐도 좋을 듯 하다. DVD가 나오면 꼭 구매해서 어머니랑 조카 손을 잡고 같이 보고 싶다. 나는 정말 이 다큐가 너무너무 좋다. 너무 좋아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횡설수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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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畵(묵화)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