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이 오니
또 아이들이 불쌍해서 눈물이 찔끔나려고 한다.
그 나이에 입시공부만 하고 인생공부를 제대로 못한 후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나로서는 더 그렇다.
요즘 특목고니 사립고니 말들이 많다.
마치 넘쳐나는 사교육이 평준화 탓인양 하면서 말이다.
그건 이 사회가 학벌사회기 때문이요, 대학서열화 때문이지, 평준화의 탓이 아니다.
우리 고향은 고교 서열화가 극심한 지역이었다.
소위 명문고를 보내기 위해서 열네다섯 먹은 아이들이 밤 열시까지 공부를 한다.
내가 고교입시시험을 칠 당시 정확히 60명이 떨어졌고,
그들 다수는 가족과 떨어져 인근 지역으로 전학을 가거나, 아니면 재수를 했다.
들어나 봤나 고등학교 재수!
(고등학교 재수학원도 있었다)
처음 고교에 들어갈때 1~7등 정도까지 줄지어선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 차이는 내가 생각해도 별로 크지 않았다. 실재로 입학 시험때 나보다 한 단계 아래학교에 지원한 친구중 입시시험에서는 더 높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뭐 그런거다.
그런데 막상 3년을 보내고 나면 대학입시 결과에서 그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뭐 대학입시가 고교 3년의 학습성과를 총괄할 지표인가는 일단 제쳐두자.
우리의 교욱이 그 입시를 향해 총력질주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니까.
1~7등으로 나뉘어진 학교는 그 순서대로 선생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 학습분위기 모든 것이 달라진다. 16살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떻게든 변할 수 있는 아이들을 '시험'이라는 잣대로 나누고, 상당수를 벌써 실패자로 낙인을 찍는다. 한 예로 내 모교 안에서도 입학할 때 성적이랑 그 이후의 성적은 크게 상관관계가 없었다. 아이들은 변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사회는 다양한 계층을 가진 사람들이 뒤엉켜져 있다. 이 다양함이 아이들의 성장의 자극제가 된다. '위험한 학교'에서 지적했듯이 훌륭한 태도와 우수한 학습성적을 가진 아이들이 나머지 아이들의 자극제가 되고 성취를 끌어올린다. 공교육이 잘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잘 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또 사회에 나와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외의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어우러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때가 바로 이 '학교'다. 그런데 한학기 등록금만 천만원짜리 학교들을 지어 이 유일한 기회를 날려버릴 셈인가?
우리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서, 가만히 두어도 열심히 집에서 뒷바라지 해줄 친구들 말고,
더 많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자.
아니, 대학에 가려고 발버둥치지 않을 사회를 만들자.
몇 프로 되지도 않는 특목고 얘들, 일류대갈 얘들 얘기 그만하고,
요즘 우후죽순으로 만들었던 실업계학교 교육이 어찌 되고 있는지 뉴스도 좀 알려주라.
왠지 다음은 나는 시험에 반대한다를 써야할 듯 하지만... 게으르니 관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