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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자본주의
로버트 라이시 지음, 형선호 옮김 / 김영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술술 잘 읽히는 이 책을 꽤나 오래 질질 끌면서 읽은 것은 초장에 이미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책의 첫머리에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저자는 미국 경제가 세계의 재왕이던 1970년대 이전,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늘어놓았기 때문인데 그닥 신선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책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진 것은 저자가 제시하는 슈퍼자본주의 극복방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
20세기 중반 미국은 전쟁 후유증으로 다른 나라들이 어수선할 때 7대 자본주의 국가들의 총생산량의 60퍼센트 가량을 점했고, 그 미국의 500개 미만의 기업들이 미국 전체 생산량의 절반을 담당하는 거대 기업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 거대 기업들은 미국내에서 독과점 상태였고, 담합에 의해 사실상 생산량와 가격을 계획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거대기업들은 파업대신 산별 노조와 협상해서 비교적 높은 임금과 복지 수준을 제시했다. 이는 내수 시장을 빠르게 성장시켰고, 노조들은 강력한 정치적 세력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크고 안정된 사회의 중산층을 형성했다.
슈퍼자본주의의 시작
저자는 1970년대 중반 군사기술이 민간으로 흘러나오면서 시작된 기술혁신은 과점체제를 붕괴 시키며, 대기업의 가격 결정력을 감소시켜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화 시켰다고 봤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세계화 되었으며, 생산 방식의 변화를 가져왔고, 국내 규제에서 벗어나 극심한 경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시장의 힘이 기업에서 소비자와 투자자들로 옮겨오면서 기업들은 혹독한 상시적인 비용절감과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꽤하게 되었다. 이는 반대급부로 고용인들을 더욱더 열악한 상태로 내몰았고, 대규모 정리해고와 노조파괴를 가져왔다.
소비자이고 투자자이자 또한 노동자
저자는 슈퍼자본주의가 소비자로서 대형 마트에서 더 싼 물건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으며, 투자자로서 손쉽게 더 놓은 이윤을 따라 옮겨다닐 수 있게 되었으나, 고용인으로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급격하게 줄어든 것을 지적한다. 세계화에 따라 국적이 없어진 자본은 그들을 감시할 정치인 법조인들을 돈으로 사서 각종 규제장치를 없애고, 이윤 추구에만 집중하면서 점점 공공의 이익과 상관없는 방향(환경오염, 선정성과 폭력성의 극대화 등)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봤다.
기업은 인격체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저자의 해결 방법은 그것 하나가 궁금해서 달려온 나에게는 꽤나 허탈한 것이었다. 저자는 기업은 인격체가 아닌 관계로 사회적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대신 책임이 없는 대신 권리도 없게 해 정치력 행사를 최소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해결책은 법과 조세정책으로 슈퍼자본주의의 부작용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몇몇은 기발한데, 법인세 대신에 개별 투자자들에게 세금을 걷어들이자거나, (근로자가 원천징수하는 것처럼 소득에 따라 세율을 달리해 세금을 걷겠다는 것) 기업의 정치활동에 개별 주주들의 구체적 동의를 구하도록 하자는 것 등이다.
의문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투자자와 소비자로서 개인은 그 전시대에 비해 이익을 얻었고, 노동자로서는 고용조건의 악화를 경험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미국 중산층의 몰락이다. 대다수 임금생활자와 소규모 상업자들은 슈퍼자본주의 하에서 극심한 소득의 감소를 경험했으며, 불안정한 고용형태, 각종 복지혜택의 감소를 감당했다. 그런데 30년 전보다 무척 싸진 텔레비전 가격 하락이나 주식, 이자수익의 증가는 그들의 삶을 그닥 윤택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가 마치 등가인 것 처럼 말한 이 자본주의의 혜택은 코빼기도 보지 못하고, 그 문제점만 몽창 떠안고 있는 것이다. 책에도 나와있듯이 CEO의 급여는 전세대에서는 해당 기업 노동자 평균의 66배였으나, 지금 월마트의 경우는 수백배에 달한다. 기업의 이윤을 전세대는 근로자들에게도 상당부분(사실 그닥 크진 않았다) 돌아갔다면, 현재는 거대 투자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거기다 저자가 말했듯이 국적이 없이 떠돌아 다니는 자본을 과연 일국에 정책 변화로 막을 수 있을 지 의문이며, 저자가 또한 이미 지적했듯이 정계, 공무원 사회, 전문가 집단 역시 그들에게 모두 매수되어 있는 판에 그 정책의 변화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인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생각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라는 생각에 동의 한다. 그러나 그 바른 생각이 무엇인가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미국의 황금기 자본주의 체제가 끊없이 성장하는 시장을 요구했다면, 슈퍼자본주의는 끊없이 성장하는 이윤을 필요로 한다. 저자가 말하는 민주주의, 정치적인 의무를 다하는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럴 수 있게 먹고는 살만한 상태의 국민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이윤을 점점 늘리고 집중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두루 먹고 살 수도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슈퍼자본주의 방식하에서 저자가 말하는 민주적인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의문이다. 계속해서 이윤이 늘어나는건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 하다라도 자원의 유한성에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이미 이 체제는 그 끝 어디쯤에 와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