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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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의 미끼 상품인 싸구려 패키지 여행에 모인 스무 명. 암 선고를 받고 살 날이 얼마 되지 않은 중년 여성, 어려운 형편에 간신히 신혼여행을 가는 젊은 부부...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싸구려 패키지 여행이지만 전혀 설렘 없는 표정으로 서늘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버스에 오른 아버지. 어떤 사연인지 궁금하게 합니다.


한국 대표 스릴러 작가로 자리매김한 정해연 작가의 신작 <패키지>. 전작 <악의-죽은 자의 일기>,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드라마화 예정)>, <지금 죽으러 갑니다>를 통해 제게도 낯설지 않은 작가의 새 작품이어서 이번에도 기대 가득 안고 읽게 되었어요.


휴게소에서 점심 식사 후 다시 모이기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와 아들. 행방이 묘연합니다. 여행사 담당자는 버스만 먼저 보내고 남아서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사건은 다음 목적지에서 정차한 버스에서 발생합니다.


짐칸에 있는 짐을 찾다 발견한 토막 시체. 피해자는 사라진 아들입니다. 언제 어디서 살해당해 이렇게 버려진 걸까요. 시신을 유기한 것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아버지일까요. 게다가 그토록 끔찍하고 잔인하게 훼손했음에도 은밀하게 처리하지 않고 발견되기 쉬운 짐칸에 뒀을까요. 무엇보다 애초에 사람들의 뇌리에 인상 남게끔 얼굴을 드러내었던 걸까요. 밝혀진 건 피해자가 아들이라는 것뿐 그 외의 모든 것이 의문입니다.


살해된 아이는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왔음이 밝혀집니다. 어떤 가족사이길래 잔인하게 살해할 만큼 이 상황에 이른 걸까요. 아이에겐 형도 있었는데 다행히 형은 멀쩡한 상태로 할머니 댁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무차별 학대를 받아온 건 살해된 둘째 아이만이었습니다.


아동 학대와 관련한 사건이다 보니 형사는 살해된 아이의 엄마에게 신경이 자꾸 쓰입니다. 아이의 엄마는 남편의 폭력에 집을 뛰어나가 외국에서 살고 있는 상태였다가 변고를 듣고 급히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폭력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을 버리듯 남겨두고 도망간 죄책감에 처절한 울부짖음이 눈에 선합니다.


담당 형사는 이 사건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떠올립니다. 아들이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된 영향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일 같지가 않은 거예요. 형사의 가족사에서 아이를 학대한 가해자는 아내였습니다.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아내는 그 분노를 아이에게로 쏟아냈고, 아이는 결국 망가졌습니다.


형사는 모정이란 뭘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결국 아이를 두고 떠났던 살해된 아이의 엄마와 육아에 적합하지 않았던 자신의 아내는 모정이 없었던 걸까요. 그럼에도 죄책감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죄책감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모정에서 기인하는 걸까요.


끊임없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아동학대. 가해자 중 약 80퍼센트가 가정의 부모입니다. 쇠사슬 학대 사건, 여행용 트렁크 감금 사건, 영아 학대 사건 등 인간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체적, 정서적 폭력 같은 학대는 원만하지 못한 부부 관계, 원치 않았던 자녀 출산 등 가정 폭력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그리고 주기적이고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기에 학대는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칩니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코로나19로 가정 학습이 길어진 만큼 학대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정해연 작가의 <패키지>는 아동 학대에 이르기까지의 비밀을 엿보게 해줍니다. 표면적인 가해자는 직접적인 행동을 한 당사자가 되겠지만, 그 상황은 한 사람의 잘못만으로만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사고가 발생하자 패키지 여행에 참가한 여행자들은 번거로운 일에 걸렸다는 듯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었고, 학대 아동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의 상태를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부부의 문제 역시 한 쪽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되기까지 차곡차곡 불안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패키지>는 쉬쉬하며 덮어두느라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는 아동학대에 대한 소재를 두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가슴 묵직해지는 소재이지만 속도감은 있는 편이라 무겁게 끌고 가는 분위기는 덜어지는 느낌입니다. 살인을 저지른 비정한 아버지에게는 숨겨진 반전도 있으니 경악스러운 감정은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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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이 쑥쑥 오르는 이직의 기술 - 몸값 제대로 받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프로 이직러의 커리어 수업
김영종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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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의 이직 경험을 가진 15년 차 인사 팀장 김팀장(김영종) 저자의 책 <연봉이 쑥쑥 오르는 이직의 기술>. 예전엔 이직이 잦으면 끈기 없거나 문제 있는 사람 취급하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기업 문화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평생 이직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직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몸값을 높이며, 인생 목표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합니다. 자신의 목표를 제대로 이루고, 본인에게 유리하게 이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연봉이 쑥쑥 오르는 이직의 기술>로 이직의 궁금증을 풀어보세요.


이직에 대한 관점, 서류 작성법, 면접 비법, 합격 후 플랜, 연봉 협상, 이직 후 적응 노하우 등 이직러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상세히 알려줍니다. 당장 이직할 생각이 없어도, 자신의 실력을 쌓아가거나 연봉을 올리고 싶다면 알아둬야 할 내용입니다. 남에게 물어보긴 껄끄럽고, 혼자서 끙끙대기만 했던 고민을 Q&A 방식으로 알려주고 있어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는 장점이 있네요.


왜 이직하려고 하는지, 어디로 어떻게 이직할 것인지, 언제 이직할 것인지 등 뚜렷한 목적과 목표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만의 경쟁력을 셀프 체크해봐야 한다고 합니다. 회사의 직무와 관련해 난 어떤 사람인지, 직무상 강점은 무엇인지 분석하는 게 중요합니다.


안 되면 말고 식이라든지 현실 부정으로 인한 이직은 결국 실패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 자신이 해온 일들을 스스로 증명하고 설명할 줄 알아야 합니다. 평소에 사소하지만 지속적인 준비와 실천이 있어야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습니다.


헤드헌터와 컨설팅을 활용하는 법, 이직에 도움 되는 소셜 네트워크 형성에 최적화된 SNS는 무엇이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등 프로 이직러 저자의 경험은 좋은 노하우가 됩니다.



신입 사원 지원할 때 서류 작성하던 것과 경력직은 또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이력서 제대로 쓰는 법, 뻔하지 않은 자기소개서 작성법, 경력기술서 작성 포인트 등 경력자 맞춤형 서류 작성법을 하나씩 알려줍니다.


이직 면접의 예상 질문 리스트까지 뽑아 참고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면접의 종류별 특징과 핵심 공략법을 익혀 조금이라도 막히면 술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회사는 당장 필요한 사람을 찾기 때문에 지원자가 해당 직무에서 요구되는 지식, 능력, 태도를 갖추었는지에 집중합니다.


합격했다면 그 이후의 확실한 마무리까지 매듭지어야 합니다. 바로 퇴사 통보해야 하는지, 이직할 회사에는 언제까지 기한을 잡는 게 보편적인지 궁금했던 사항들을 속시원히 알려줍니다.


돈 문제는 참 중요한데도 막상 말 꺼낼 때는 소심해지는, 연봉 협상! 연봉 협상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통해 성공 비결을 하나씩 짚어줍니다. 회사마다 급여 제도가 생각 외로 천차만별이라고 하니 현금성 급여와 보장성 프로그램을 분리해서 계산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전의 회사 때는 월급에 포함되어 현금화할 수 있었던 것도 새 직장에서는 쿠폰이나 복리 후생으로 받으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연봉이 쑥쑥 오르는 이직의 기술>에서 알려주는 것을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은 평소에 잘 채워나가야 합니다. 이직은 공개된 경험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 이렇게 현실 노하우가 잘 정리된 가이드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직 전 경쟁력 셀프 체크부터, 합격 후 회사에 빠르게 적응하고 성과를 내고 그 이후의 미래 계획까지 세울 수 있는 실전 이직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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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의 철학 여행 - 소설로 읽는 철학
잭 보언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 다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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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철학 <이언의 철학 여행>. 두근두근하게 하는 책이었어요.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주제인 만큼 소설이라는 형식이라고 해도 술술 이해된다기보다는 조금은 만만하게 철학이라는 것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입니다.


열네 살 소년과 신비한 노인의 지적 모험을 소설로 풀어낸 <이언의 철학 여행>은 교양 철학 입문서로 제격입니다. 꿈속에서 만난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 이언의 밤의 모험, 꿈속 대화 내용을 부모님과 토론하는 시간, 그리고 친구 제프와 그 지식을 일상에 적용해보는 것으로 진행합니다. 이 모든 것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이뤄져 읽는 내내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한국 철학사 발전에 기여한 고 박이문 교수의 감수의 글과 "영혼의 근력을 키우는 정신 운동"이라고 말하는 안광복 철학 교사의 추천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지식 / 자아, 이성, 정신 / 과학 / 참과 거짓 / 신 / 악 / 동양 사상 / 종교와 이성 / 자유의지 / 이기심, 과학 / 논리 / 사회, 정치, 돈 / 윤리와 도덕까지 13가지 주제에서 철학사의 오랜 논쟁들과 현대 쟁점을 다룹니다. 13가지 주제는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설적 재미도 풍부하지요.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또 다른 책 <소피의 세계>와 비교하면 이 책은 아이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힘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어 논리 감각과 토론 실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되기도 합니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세계 철학사를 장식한 153명의 스타 철학자들의 잠언과 문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동양인 최초 미국철학회 회장 역임한 김재권 철학자도 있어 반가웠어요. 철학자라고 해서 우리가 익히 생각하는 철학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생물학자, 작가 등 사상사에 발 걸친 인물들이 분야를 망라하고 등장해 다양하고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트루먼 쇼>, <매트릭스>,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명대사도 나오는데 철학 사상이 연결되어 있어 작품의 재발견 재미도 있었어요.


이언의 꿈속에 나타난 노인은 이언에게 철학의 효용을 일깨웁니다.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죠. 현상과 실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저는 이 단어만 들어도 경기날 듯 진저리 나지만 이언은 저보다 훨씬 낫네요. 이언은 처음엔 당황하고 억지를 부리지만 차츰 '왜'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나는 철학이 일종의 범죄 현장 수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수사관은 그 어떤 정보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왜?'라고 물으면서 현장을 검증해 나간다. (…) 당신의 세계는 우리의 범죄 현장이다. 우리와 함께 하는 여정이 당신에게 직접적인 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 여행의 장점이라고 믿는다. 철학은 결국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최첨단 기술이니까." - 책 속에서


소설 구성이라 쉽게 읽힐 뿐 그 속에 담긴 수준은 높습니다. 이언과 노인의 대화 내용을 다룬 논쟁의 주제가 각주에 빼곡히 등장하는데 이것만으로도 그 자체로 멋진 철학 책이 된다고 하지만 저 같은 철학 초보자는 까마득한 이야기로 보이기만 합니다. 그만큼 소설에 철학 논쟁이 멋들어지게 잘 버무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처음엔 "그런 건 학교에서든, 직업을 갖는 데 있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하며 강짜를 놓기도 하고, 노인의 질문에 대답하기 급급했던 이언은 서서히 질문을 하게 되는 입장으로 바뀝니다. 더 많은 호기심이 불러낸 질문들입니다. 노인과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동안 진리라고 믿고 있던 것들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정신분석가 엄마와 생물학자 아빠와 토론하는 시간도 재미있습니다. 노인과 꿈속에서 나눈 대화는 부모님과의 토론, 논쟁을 통해 한결 정리됩니다. 이때 부모님도 서로 관점이 다를 때가 있어 하나하나 따져보는 시간이 흥미진진해집니다.


친구 제프와 함께 있을 때 생기는 일들은 더 오묘한 느낌입니다. 원하는 것을 뭐든 볼 수 있는 망원경과 박테리아의 생각까지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가진 친구라니.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가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이언 혼자 또는 제프와의 산책 때는 노인과 만나서 얻은 지식과 부모님과의 토론에서 정리된 지식을 현실에 적용해보는 시간이 됩니다.


아기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은 사람일까?, 생각으로 고통을 지울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결정된 세계에서 나는 자유로울까?, 꼭 올바르게 살아야 할까? 등의 질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는 이언의 여정을 함께 해보세요. <이언의 철학 여행>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교감하며 인생의 더욱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길잡이입니다.


부록에 실린 '더 깊은 질문들'은 살아 있는 철학적 사유에 독자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언의 여정을 잘 따라왔다면 한층 달라진 사유의 맛을 조금은 알게 될 겁니다.


소설적 재미는 이언의 여정에 담긴 비밀이 밝혀지는 타이밍에서 더욱 큰 재미를 안겨줍니다. 이 책의 탄생 비화라고나 할까요. 순서대로 읽으면 좋지만 끌리는 주제부터 먼저 읽어도 무리는 없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여행 파트는 잊지 말고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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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 한국인의 비밀 무기
유니 홍 지음, 김지혜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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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nchi라는 영어 표기가 눈길을 사로잡는 책 <눈치>. 유니 홍 저자는 미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 덕분에 눈치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거주하며 다양한 문화 차이 한가운데서도 빠른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눈치 덕분이라고 하고요.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며 TV 뉴스 분야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유니 홍 저자는 한국인의 '눈치'를 널리 알리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눈치 Nunchi - 1. 눈짐작, 2.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비밀 무기. 3. 남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살피는 섬세한 기술, 4. 쿨한 나라를 만든 한국인이 보유한 초능력


한국인의 비밀 무기라는 부제를 달았을 만큼 눈치는 한국인의 '정' 문화처럼 한국인 고유의 정서, 행동인 걸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평소 "눈치가 참 빠른 사람이다", "눈치가 없다." 식으로 일상생활에서 숱하게 써 온 '눈치'라는 단어를 이번에 제대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눈치는 살면서 유연한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홍길동전>은 눈치로 역경을 극복한 성공 스토리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약자의 생전술인 만큼 눈치가 없으면 자신이 가진 특권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 최소한의 눈치만 있어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요. 한국은 '고맥락 문화권'이어서 말보다는 몸짓, 표정, 전통, 주변 사람, 침묵 등을 통해 전체적인 맥락을 유추하면서 의사소통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눈치라는 게 참 쓸모 있는 거라는 걸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은 곧잘 잊어버리지만 그때 느낀 감정을 잊어버리지 않기에 숙련된 눈치 달인은 분위기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삶의 필수 요소로서의 '눈치'를 갈고닦기 위한 기술을 알려주는 책 <눈치>. '무엇보다도 해를 끼치지 마라'가 핵심 원칙입니다. 눈치 없는 사람의 변명 레퍼토리 중 하나는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말했어야지!"인데,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기 일쑤입니다. 사회생활하면서 손해를 보고,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 타입이라고 해요. 눈치가 있으면 사는 게 좀 더 수월하고,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주변 분위기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눈치 빠른 사람입니다. 공감이랑 비슷한 느낌도 드는데 공감에선 속도가 중요시되진 않습니다. 진정한 눈치 달인은 그 사람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든 없든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 거죠.


일상의 다양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눈치를 쓰고 싶다면 눈치의 법칙 8가지를 잘 익혀야 합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관찰자 효과에 집중하고, 일단 지켜보고, 입을 다물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고, 예절은 언제나 옳고, 숨은 뜻을 잘 알아채고, 의도치 않게 해를 끼치는 것도 나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민첩하고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합니다. 연애, 직장 등에서 실제 적용한 사례를 자세히 알려주고 있어 이해하기 쉽습니다.


에둘러 말하기와 수동적이고 공격적인 소통이 난무하는 직장에서는 특히 눈치가 필수입니다. 항상 눈치의 스위치를 켜두는 것이 좋습니다. 괜히 싸우다 지치지 않으려면 눈치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알려줍니다. 눈치는 무작정 '열심히'가 아닌 '똑똑하게' 일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치가 가장 늘 때는 가장 불안할 때라고 합니다. 그만큼 눈치는 약자의 비밀 무기인 셈이죠. 편견, 자신감 결여 때문에 생기는 비합리적인 불안감과 눈치에 바탕을 둔 공포는 엄연히 다르다는 걸 짚어줍니다. 관찰하면서 적응하는 능력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게 눈치입니다.


위급할 때 더 강하게 해주는 강력한 내면의 힘, 눈치. 서양인 입장에선 이 눈치가 신비로운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공동체 사회에서 사회적 소통을 위해선 이제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저 인기를 얻기 위한 눈치? 눈치를 쓰면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선입견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만하고 즐거운 분위기 메이커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준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다움을 잃는 게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안전하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진정으로 남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능력이니까요.


재미있는 건 눈치 연습에 좋은 게임이 우리가 자주 하고 예능에서 자주 보던 바로 그겁니다. 숫자 세며 일어나는 눈치 게임과 묵찌빠. 해외에서도 핫해지는 게임이 될 것 같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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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살의 - JM북스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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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꽃>, <암흑소녀>, <성모> 등 화제의 미스터리 작가 아키요시 리카코의 반전 미스터리 소설 <유리의 살의>.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질 못해서 최근엔 살짝 거리를 뒀던 장르여서 오랜만에 읽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역시 이 맛에 읽는 거지! 싶을 정도로 <유리의 살의>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사람을 죽였다고 스스로 신고하는 첫 장면부터 영화를 보는 듯한 이미지가 자리 잡습니다. 누군가를 살해한듯한 여자의 혼미한 정신 상태에 어떤 사건인지 궁금해집니다.


잠시 후, 여자는 병원에서 깨어납니다. 그런데 고3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이후의 기억이 사라져 있습니다. 현재 마흔하나에 결혼까지 한 마유코. 갑자기 남편까지 있는 중년의 나이에, 사람을 죽인 용의자 신세가 되었다는 거에 충격을 먹습니다.


마유코는 20년 전에 벌어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수십 분 만에 기억을 잃습니다. 마유코의 부모는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로, 당시 마유코 역시 범인으로부터 도망치다 과속하던 차에 치여 뇌 손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유코를 친 자동차 운전자가 지금의 남편입니다. 사고 1년 후에 기억장애를 가진 상대와 결혼했다니. 벌써 의심 한 자락을 던지는 작가입니다.


기억장애가 있는 용의자라니. 자수는 했지만 범행은 기억 못 하는 마유코를 두고 형사는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증거는 모두 마유코가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흥미진진한 전개는 마유코가 살해한 피해자의 정체에 있습니다. 바로 부모를 살해했던 묻지마 살인범이었던 겁니다. 무기징역을 받고도 환각 상태 심신 미약 판정을 받아 감형을 받고 가석방된 그가 마유코에게 죽은 겁니다.


마유코는 부모님의 복수를 했던 걸까요. 그렇다면 기억장애가 있으면서 어떻게 복수를 실행했을까요. 용의자의 기억은 없지만 동기가 확실해지니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고구마 백만 개쯤 선사하는 마유코의 기억은 읽는 내내 답답증을 안길 뿐입니다. 수십 분 만에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시전하니 형사도 이젠 알아서 상황 요약을 줄줄 읊을 정도입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날카로운 물체의 감촉이라든지, 죽어가던 남자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르니 마유코는 어쨌든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체포된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면 분명 죽인 것도 완전히 잊어버렸을 거라며 말이죠.


<유리의 살의>에는 마유코의 수사를 담당하는 형사 유카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룹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간병을 맡게 된 유카는 오빠와 남동생에게 서운한 게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에게 더 부끄럽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며 간병에 대한 보상을 자꾸 찾는 자신의 모습에 자기혐오에 빠졌습니다.


어머니의 병세가 점점 감당이 되지 않자 시설에 입소했지만, 마음이 계속 불편합니다. 간병이란 보고 싶지 않은 부모의 모습까지 봐야만 하는 거고, 당사자가 되니 점점 꼬여가고 뒤틀립니다. 어머니는 대가 없는 사랑을 쏟아부어 주었는데, 자신은 손해 안 보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를 간병한다는 것에서 형사 유카와 마유코 남편의 상황이 겹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사건에서 남편의 행동이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역시 초반에 작가가 던진 의심대로 사건의 진실은 남편의 손아귀에 있는 걸까요.


"인간이 지닌 감정 가운데 가장 격렬한 감정일 터인 살의조차 내 마음에는 남지 않아.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게, 묵묵히 침묵을 지킬 뿐." - 책 속에서


수십 분마다 내 존재를 잊은 채 한 줌 남은 기억을 더듬어가는 삶이라니,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메멘토>처럼 기억상실과 살인이라는 소재는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인 것 같아요. 거기에 독자의 예상을 깨뜨리는 절묘한 반전은 당연한 수순일 겁니다. 우린 이제 밋밋한 플롯만으로는 자극을 덜 받으니까요.


<유리의 살의>에서도 메일과 일기로 자기 기억을 유지하면서 부모님의 복수를 원한 마유코의 표면적인 이야기 속에 숨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인 미스터리물을 읽으며 눈물이 앞을 가리는 상황도 맞닥뜨릴지 모르겠어요. 반전 이후의 여운이 꽤 있는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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