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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격차 - 읽지 않는 아이는 어떻게 읽지 못하는 어른이 되는가
김지원.민정홍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김지원, 민정홍 두 PD는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과 《책맹인류》 등을 제작하며 이미 문해력 문제를 폭넓게 알린 바 있습니다. <문해력 격차>에서는 단지 책 좀 읽자는 차원을 넘어선 문제의식이 엿보입니다. 7년여간의 취재와 국내외 주요 연구, 현장 실험을 통해 문해력 격차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심화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읽기 능력은 단순한 학습 수단을 넘어 인간의 자존감과 사회적 생존을 결정짓는 기초 역량이라고 합니다. 문해력은 곧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표현하며, 사회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능력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한글만 알면 다 읽는 것 아니냐는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저자는 언어심리학자 마크 세이덴버그의 말처럼 "읽지 않는 현상, 읽지 못하는 현상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문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강조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만 3세 수준의 문해력을 가진 아이와 만 8세 수준의 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면? <문해력 격차>는 실제 현장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문제는 이 격차가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된다는 데 있습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제니 라일리 연구에 따르면 초등 입학 시 문해력이 뒤처진 아동이 1학년 말까지도 여전히 뒤처질 확률은 88%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3~4학년 이전 읽기에 실패하면 평생 책과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읽기가 어려운 아이는 점점 읽지 않게 되고, 결국 읽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란다는 순환은 결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연결됩니다. 읽을 수 없는 어른은 단순히 책을 안 읽는 게 아니라 복잡한 지시문을 해석하지 못하고, 공공문서나 계약서에 접근할 수 없으며 사회적 소외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문해력 하락의 또 다른 원인으로 속독 문화를 지목합니다. 2배속 영상 시청이 일상이 되고, 시험 시간 안에 지문을 빠르게 해석해야만 좋은 성적을 받는 제도, 많이 읽기를 능력이라 착각하는 풍조는 오히려 읽기의 본질을 해치고 있다고 말입니다.
속독은 뇌의 자연스러운 읽기 메커니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의 뇌는 빠르게 훑기보다는 의미를 곱씹는 느린 읽기에 더 적합하게 진화해왔기 때문입니다. 문해력은 단어를 인식하는, 즉 스캔하는 속도보다 문장을 해석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깊이와 관련되는 겁니다.
문해력의 격차는 일회성 문제가 아닙니다. 빈익빈 부익부, 즉 정보 격차는 읽기 격차로, 다시 자존감 격차로 이어집니다. 한글을 빨리 뗀다고 해서 곧바로 문해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의 문해력은 문해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교실에는 이미 직장인 수준의 문해력을 가진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단문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 시스템이 이 격차를 전제하지 않고 동일한 출발선을 요구한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책 한 권을 10분 만에 요약해 주는 유튜브 채널, 팟캐스트로 듣는 독서 요약본, 짧고 강한 영상 콘텐츠. 디지털은 읽기 능력 향상에 도움을 줄까요? 유튜브나 오디오북 같은 매체로 학습한 지식과 직접 읽기를 통해 얻은 지식 사이에 뇌 과학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우리의 뇌는 텍스트와 시각, 청각 정보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디지털 매체는 즉각적 이해에는 유리하지만, 장기적 기억과 비판적 사고에는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냅니다. 특히 디지털 기억상실은 책을 읽는 동안 뇌가 처리해야 할 바람직한 어려움조차 제거해버립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읽은 것을 쉽게 잊고, 더 깊이 읽는 법을 잃습니다.
<문해력 격차>에서는 실제 교육 현장과 수많은 실험을 통해 동기, 보상, 레벨, 상호작용, 디지털 문해력, 사회적 독서 6가지 키워드로 풀어보는 문해력 회복 전략을 소개합니다.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취약한 읽기 영역이 디지털 문해력이라고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그토록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디지털 시대의 문해력은 단순히 화면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의심하고 질문하고 연결하는 능력임을 강조합니다. 정보 과잉 시대에 필요한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인 체크리스트도 제공합니다.
사회적 독서의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문해력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가족, 친구, 교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하는 사회적 능력입니다. 게임에 빠진 학생들도 함께 읽는 활동을 통해 책과 친해질 수 있다는 결과는 희망적입니다.
"이해도를 높이고 싶다면 협동하며 읽어라"라는 메시지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문해력이 무너지면 더 이상 타인과 소통하기 어려워지고, 타인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문해력 격차를 해소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문해력은 단지 학습이나 성공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핵심 역량입니다. <문해력 격차>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읽기를 회복해야 할 이유를 설명합니다. 학부모, 교사, 교육 정책자 모두가 읽어야 할 필독서이자, 문해력 문제를 남 일로 여겼던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사회적 경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