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키만소리 지음 / 첫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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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와 태국으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한 모녀가 있습니다. 효도여행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 걸어 다니는 뚜벅이 배낭여행을 말이죠. 처음엔 딸 혼자 나홀로 여행을 계획했다가 효심 찌르기 역공을 펼친 엄마 덕분에 결국 '우리의' 여행이 된 배낭여행.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잔소리와 짜증 지수는 상승하다가도 어느새 애틋해지고. 애증의 모녀 관계를 리얼하게 보여준 여행 웹툰 에세이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엄마의 여행 준비에서부터 느끼는 게 많아집니다. 배낭만 싸면 홀연히 떠나는 게 여행인 줄 알았는데 엄마에겐 남은 가족을 위해 준비할 게 너무 많더라는 겁니다. 떠나는 날까지 부엌을 신경 쓰던 엄마. 한 달간 집안일을 잊고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요.

 

 

 

낯선 땅에 떨어져 불안해하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잘 아는 척해 보는 딸. 해외여행은 처음인 엄마에겐 모든 것이 낯섭니다. 책 읽는 내내 서로가 서로의 보디가드가 되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진정한 배낭여행이니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삼은 건 기본. 엄마를 게스트하우스 직원인 줄 착각한 여행자들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여행하며 그동안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합니다. 유적보다 사람 냄새나는 시장을 궁금해했고, 부처님께 절하는 것보다 공양 준비하는 사람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하신 엄마.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실패해도 그것 역시 여행이라는 엄마의 말씀처럼 어느새 점점 어엿한 여행자로 변신하고 있었어요.

 

 

 

좋은 풍경 보며 즐기던 엄마도 엄마를 생각하며 울컥하기도 합니다. 살아 계실 때 좋은 구경시켜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후회된다는 엄마를 보며 나의 엄마도 딸이었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엄마 역시 엄마를 그리워하는 여린 딸이라는걸요.

 

 

 

말레이시아에서 태국까지 장장 24시간에 걸쳐 슬리핑 기차를 경험해보기도 합니다. 비행기로 반나절이면 도착하는 곳을 그 긴 시간 기차여행을 해서 로망은 풀었지만 두 번 할 건 못된다네요 ㅋㅋ.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지치지 마련.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평범하고 작은 항구 마을에서 3일을 쉬기도 합니다. 그동안 엄마는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아이들과 신나게 어울리며 여유로운 여행자 분위기를 맘껏 뽐내더라고요. 잘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만 했던 시간이 무색해질 정도로 엄마는 엄마 나름의 여행을 즐길줄 아는 여행자였습니다.

 

 

 

딸은 한국에서라면 시도해보지 못할 스쿠터 타기도 해보고, 엄마는 다이빙과 스노클링을 하면서 새로운 도전이 가득했던 여행. 서운할 때도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던 애증의 모녀 관계. 그래도 여행하길 잘했다는 뿌듯한 기운이 절로 느껴지더라고요.

 

여행 웹툰 에세이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쉰 넘은 엄마가 딸의 배낭여행에 따라나서 고생도 하셨지만, 서로의 몰랐던 점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어준 모녀 배낭여행기입니다. 코믹과 감동이 어우러져 읽는 맛이 좋았어요. 지금은 남편과 세계일주 중이라는 딸의 두 번째 여행기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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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 아버지로書
김효용 지음 / 컬처플러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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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과 여성층을 겨냥한 라이팅북은 많이 나왔지만 남성, 특히 가정을 가진 아버지를 위한 라이팅북은 없을까?

 

있더라고요. 연령 상관없이 젊은 아빠든 노년에 접어든 아버지에게든 선물하고 싶은 라이팅북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한 다이어리북 <뚜벅뚜벅>. 학생들에겐 어버이날 선물로도 딱이겠더라고요.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닮아가는 그 모습을 보며

최고의 배움은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 책 속에서

 

 

 

다이어리북 <뚜벅뚜벅>은 3명의 자아가 등장합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순서 상관없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진실된 마음으로 쓰면 됩니다.

 

김효용 저자는 어느 날, 자신의 아버지를 잘 모르고 있더라는 걸 깨닫습니다. 과묵한 미소 뒤에 숨겨진 아버지의 소소한 것들에 대해 말이죠. 아버지의 진정한 즐거움은 어디에 있었을까 궁금해하며 이 다이어리북이 탄생합니다.

 

 

 

나에게 하는 질문의 깊이는 얕은 곳에서부터 깊숙한 곳까지 들어갑니다.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기 위한 질문들입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인지, 무언가를 할 때 나만의 원칙이 있는지, 내 생각과 성향을 파악해나갑니다. 공상과 몽상과는 다른 '이상'. 실현하고 싶었던 이상적인 삶의 모습과 가치는 무엇인지 살펴보다 보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다짐으로 이어집니다.

 

 

 

기록은 나 자신에 대한 위로이자 타인을 위한 해명이라고 합니다. <뚜벅뚜벅>은 스스로를 더 잘 알기 위해 또는 자녀들에게 남기는 이야기입니다. 미래와 이어질 과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내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해보면서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특별한 마음이 들었던 때를 소회해봅니다. 가족을 위해 포기했거나,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 했던 것들도 생각해봅니다. 선택에 대한 후회도 있을 테고, 일일이 설명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못해준 이유를 정리하다 보면 비로소 나의 아버지에 대해 이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삶이란 연속된 하루하루의 합. 오늘 나의 생각이 곧 미래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노력과 행운, 부유함과 가난함, 행복과 불행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면 인생의 방향과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자연스레 떠오를 겁니다.

 

내 삶의 방향성을 생각하는 시간을 주는 다이어리북 <뚜벅뚜벅>. 나만의 나침반을 가지기 위한 질문들로 가득합니다.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보세요. 한숨짓는 하루하루 대신 살아있음에 감사와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자녀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지금 거울 속의 당신을 보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깊습니다.

 

<뚜벅뚜벅>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흔적을 남겨보세요.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뚜벅뚜벅 내딛는 걸음의 흔적을 남겨보세요. 과거를 돌아보며 나의 이상과 회상을, 일상과 단상을 통해 현재 모습을, 희망과 당부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뚜벅뚜벅>. 고단한 삶의 쉼표가 될 수 있는 다이어리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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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김봉현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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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음악평론가이자 힙합저널리스트 김봉현과 래퍼 12인의 인터뷰를 담은 책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으로 힙합 문화를 슬쩍 구경해 봅니다.

 

음악과 취향 없는 저로서는 힙합은 정말 낯선 세상입니다. 힙합 아티스트 12인 중 이름 들어본 사람이라곤 달랑 한 명뿐이니. <쇼미더머니>도 관심 없고, 랩배틀은 왜 하는지 모르겠고. 취향 차이를 넘어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을 읽어봤습니다. 힙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내고 힙합 고유의 멋과 매력을 알리겠다는 김봉현 음악평론가를 믿고 말이죠.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에 등장한 12인의 래퍼는 김봉현 음악평론가 나름의 기준에 들어맞는 인물들입니다. 베테랑일 것, 부지런히 이 길을 걸어왔을 것, 자기만의 입장과 철학이 있을 것, 훗날 한국 힙합 역사에 기록될 성취를 가지고 있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힙합을 '살아왔을' 것.

 

음악, 문화, 삶의 방식으로서의 힙합을 대표하는 12인은 도끼, 더콰이엇, 빈지노, 팔로알토, 제리케이, 스윙스, 허클베리피, 산이, 딥플로우, JJK, 타이거JK, MC메타 입니다.

 

 

 

한국 최초의 진정한 '랩스타' 도끼는 부자 래퍼로 알려져 있는데, 언뜻 자랑과 사치 같은 노랫말 속에 담긴 철학을 엿볼 수 있었어요. 셀프메이드를 실천하며 자기의 실제 삶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규칙. 이것은 힙합이 부정적인 음악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음악이라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희망을 심어주니까요. 현재를 희생하며 돈을 모아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투자해보는 것이 값진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실천하는 래퍼입니다.

 

늘 내면의 깊이를 따르며 2000년대 초반부터 활동해 지금까지도 멋지게 살아남은 래퍼 더콰이엇. 철학이 동반된 라이프 스타일로 한국 래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래퍼인 동시에 최전선의 젊은 예술가이자 청년 세대의 아이콘 팔로알토. <쇼미더머니>에 안 나가고 음원차트 1위를 한 유일한 래퍼라고 합니다.

 

 

 

정치적 메시지, 사회의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래퍼 제리케이. 세월호에 대한 노래와 시국선언을 랩으로 발표한 거의 유일한 래퍼로 자신만의 특별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논란을 안고 다니는 래퍼 스윙스는 힙합의 여러 정수를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이거나 제대로 선보인 래퍼입니다. 이 바닥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라고 평하는 김봉현 음악평론가의 말이 의미심장하네요.

 

프리스타일 래퍼인 동시에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스토리텔러 허클베리피. 힙합은 늘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도 돼'라고 말해준 유일한 음악이었다고 합니다.

 

 

 

 

극적인 데뷔와 극적인 배신을 (저자는 이해할 생각 없는 이들의 입장에서만 배반이었다고 말합니다) 오간 래퍼 산이. 힙합 신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가 발라드랩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라는군요.

 

커리어 동안 랩 스타일이 계속 변화하는 래퍼 딥플로우. 클래식을 보유한 래퍼입니다. 세대 간의 힙합 이해 차이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수호자이자 힙합의 길거리 문화와 프리스타일 랩을 알리는 데 앞장서 온 래퍼 JJK. 랩 레슨을 하는 대표적인 래퍼입니다.

 

 

 

김봉현 음악평론가의 청소년기를 지배했던 인물 중 한 명인 드렁큰타이거의 타이거JK. 선구적 시도로 후대에 끼친 영향력이 높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의 리스펙트를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힙합에서 가장 나이 많은 래퍼인데도 에너지 레벨은 하늘을 찌르는 MC메타. 랩을 언어 자체로서 이해하고 통찰하는 래퍼라고 평합니다.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의 래퍼 12인은 다들 평범하고 내세울 게 없던 이들이 힙합을 만나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랩 네임의 의미, 랩을 하게 된 계기, 어떻게 'Keep It Real'을 지키는지, 랩 작법 과정, 랩톤 그리고 힙합이 삶에 끼치는 힘을 이야기합니다.

 

고유한 멋과 매력이 있는 힙합 문화를 보여준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삶의 태도이자 방식으로서의 힙합과 영감의 원천을 이야기한 래퍼 12인의 이야기는 힙합이 지닌 긍정적인 태도와 역동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삶을 바꾼 힙합. 한국에서 힙합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힙합의 진면목을 보여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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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자살 - 개정판 변호사 고진 시리즈 3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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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고진 시리즈 세 번째 <정신자살>. 그냥 자살도 아니고 정신자살이라니. 신체는 그대로 놔두고 정신을 자살하면 식물인간처럼 되는 건가? 지능이 떨어지게 되는건가? 호기심 동하게 하는 제목이죠.

 

1년 전 찾지 말라는 메모 한 장만을 남기고 돌연 가출한 아내. 아내 한다미가 사라진 후 인생의 의미가 없어진 남편 길영인의 시선으로 소설은 시작합니다. 이제 겨우 서른 초반이지만 살 욕심도 없고 존재 자체가 괴로운데 차마 자살은 못 하는 어중간한 인생을 하루하루 살고 있죠.

 

삶의 본능이라는 단단한 울타리를 깨는 데에는 막대한 음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게는 그런 정도의 의욕도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살아 있다. - 책 속에서

 

 

 

그러던 차에 정신자살연구소를 발견합니다. 정신의 치유는 어렵고 더디나 파괴는 쉽고 한순간이라며 육체의 죽음이 두려운 사람에게 정신을 파괴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데. 육체의 죽음이 두려워 자살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솔깃한 유혹이 됩니다.

 

육체를 보존한 '정신'만의 '자살'이라니. 삶과 죽음의 끝없는 고뇌를 할 것인가, 정신을 파괴한 삶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날 것인가의 기로에 선 남편. 자살할 용기가 없는 남편 길영인은 결국 그 시술을 받으러 갑니다.

 

 

 

4년 전 판사직을 그만두고 오직 뒷길에서만 사건 의뢰를 받는 고진 변호사. 정공법보다는 법률의 맹점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합니다. 이번에는 펜션 살인 사건에 얽히는데요.

 

우연히 펜션에 하루 머문 고진 변호사는 그곳에 투숙했던 여자의 피살 사건으로 이유현 경감(드디어 승진!)과 뭉칩니다. 처음엔 단순히 부부 싸움 끝에 벌어진 우발적 살인으로 생각했다가 피살자의 남편이 사라진 한다미와 불륜관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부 두 쌍의 치정 문제로 얽힙니다. 연적인 남편들끼리 살인이 있던 밤 통화를 했다는 기록까지 나오면서 이들의 악연이 심상찮아 보입니다.

 

피살자의 남편마저도 살해되면서 결국 한다미의 남편 길영인이 강력한 용의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나 잘 도망 다니는지 이유현 경감과 고진은 매번 허탕만 칩니다.

 

 

 

용의자 길영인이 고객인 정신자살연구소도 훑어야겠죠. 그런데 정신자살연구소 소장 이탁오 박사는 고진과 이유현 경감과 이미 몇 년 전에 인연이 있던 사이였습니다.  당시 내담자에게 살인하도록 부추긴 의심을 받았던 이탁오 박사. 증거가 없어 사건은 흐지부지되었지만요. 이탁오 박사와 고진 변호사는 묘하게 닮았습니다. 인간 본성을 꿰뚫어보려는 왕성한 호기심 덕분에 범죄마저도 유희적인 놀이처럼 다루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양심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악을 선택해. 각자의 저울은 천차만별이라도 그 눈금은 하등 다르지 않은 게 인간이야. - 책 속에서

 

소설 <정신자살>에서는 고진 변호사와 이유현 경감의 콤비 비중은 덜해 그들의 쿵짝놀이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살짝 심심했지만, 인간의 바닥까지 꿰뚫어 들어가는 차가운 시선을 가진 이탁오 박사의 섬뜩함은 인상적이었어요.

 

 

 

이번엔 사회파 소설 분위기를 안고 가는군요.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거나 사회의 탓으로 돌리며 자살 원인을 분석해봤자 자살률은 조금도 줄지 않기에 사고의 전환을 해봤다는 이탁오 박사. 아픔의 근원인 마음을 고칠 수 없다면 마음을 파괴해 버리면 되지 않느냐는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마음을 죽임으로써 고통도 사멸한다는 정신자살. 그 이론만큼은 은근 끌리는걸요.

 

결말은 뜬금없이 호러로 진행되어 헉!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고진과 이유현의 콤비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나름 진지모드인데, <정신자살>의 결말은 일 푼어치도 생각 못 한 결말로 흘러가 나름 충격 먹었어요. 결말은 독자에 따라 취향 많이 탈 것 같아요. 와... 도진기 작가님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하다니. 점점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변호사 고진 시리즈 다섯 작품 중 <붉은 집 살인사건>,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정신자살>까지 세 편 읽었습니다. 이제 영화화 된다는 <유다의 별> 읽을 차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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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 의도된 선택인가, 어리석은 판단인가! 선택이 만들어낸 어리석음의 역사
제임스 F. 웰스 지음, 박수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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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핏!

너무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 헛된 목표에 대한 고집스러운 집착, 어리석음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음이라는 주제로 역사의 새로운 해석을 한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해봅니다.

 

역사 속 어리석음의 사례를 나열한 수준 정도로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정신이 번쩍. 탐욕, 부패, 권력을 지향하는 한 축으로서 인간의 어리석음은 우리가 흔히 악인이라 평가하는 자들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나폴레옹 등도 이 저자 앞에서는 무참히 깨집니다.

 

 

 

그리스인들의 어리석음은 도시국가와 철학적 사고의 상호작용이라고 합니다. 장점으로 알고 있던 것이 단점으로 작용한 겁니다. 최고의 영예인 동시에 치명적 한계를 가진 거죠. 도시국가는 사고의 정체성 발달을 막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고, 우리가 숭배하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기하학적 사고가 오히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2000년 동안 지속하게 할 정도로 사고를 정지시킨 원인 제공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근원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결국 도덕적 편향으로 이어져 아테네 철학자들이 서양의 어리석음에 기여한 공로는 무척 크다고 평가합니다.

 

이쯤 되니 오올~! 신선한 느낌이 마구 들더라고요. 서양의 피상적인 유치함과 동양의 무기력과 정체를 마구 지적질하질 않나, 어두운 이면을 거침없이 꺼내들며 아주 통쾌할 정도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줍니다.

 

물리적 성공이 지적인 실패에 잠식당한 로마의 어리석음. 특히 호기심을 악덕으로 생각했던 로마 교황청의 신학자들에 의해 분석적 사고는 현실로부터 완전히 유리됩니다. 로마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것은 로마인들의 정신과 지식에 무관심한 태도, 힘의 원천이 너무 다양성화되면 정체성을 와해시킨다는 것을 간과한데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어리석음이 로마와 닮았다고 합니다. 의식적인 계획과 비전 없이 세계를 지배하는 지위에 오른 상황이 유사합니다. 하지만 둘 다 도덕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중세는 기독교의 어리석음으로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통치행위로서 교회가 기능했습니다. 로마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는 낡은 고정관념으로 허상의 제국을 유지하는 것에만 치우쳤습니다. 중세 어리석음의 극치는 정의의 이름으로 약탈, 살육을 감행한 십자군전쟁이 있지요.

 

행동가의 시대 르네상스는 서양의 인식 세계가 중세적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결과물이지만, 역설적으로 탐험, 발명, 치국, 의술, 예술, 전쟁 등에서도 어리석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교회의 후원을 받는 인문주의자들에게서 종교개혁을 바라보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때문에 이제 모두가 잘못된 정보는 얻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구시대적 사상을 보전, 전파하는 힘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은 중세적 삶의 공식적 신앙으로부터 서양의 지성을 해방시킨 계기가 되었지만 자본주의, 민족주의 같은 세속적 종교를 낳습니다. 불관용, 미신, 편협성, 잔인성을 띠게 됩니다.

 

지식의 신학적 기반이 가라앉는 대신 자연현상의 과학적 설명이 떠오른 이성의 시대. 하지만 마녀사냥 등 비이성적으로 전락한 시기입니다. 모두가 거짓말을 선택하고 개선할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성의 시대라기보다는 속박의 시대였죠. 갈릴레오조차 교회 관계자들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계몽주의에도 어리석음이 담겨 있습니다. 세속적 합리주의를 인간사에 적용하며 시작한 계몽주의는 혁명으로 막을 내립니다. 세계를 개선했지만 방종과 탐욕 같은 해악이 등장합니다. 기술적 진보는 가난한 자들의 운명 개선 대신 착취에 활용됩니다. 상식이 정치 논리에 희생되는 부조리의 전형적인 사례로 영국 인지세법, 보스턴 차 사건 등 식민정책의 오류를 듭니다. 한편 나폴레옹의 활약은 권력과 어리석음 사이의 긍정적 상관관계를 보여준 사례이지만, 권력이 커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짐을 짚어줍니다.

 

산업화 시대엔 오히려 시계를 거꾸로 돌려 군주제가 복원되기도 합니다. 기술 발달은 행정, 상업과 관련한 어리석음의 범위를 확대합니다. 산업시대의 모순은 기술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장벽을 세운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효율적이되 윤리적이는 않았습니다.

 

20세기는 인적 자원, 자연환경에 대한 노골적인 착취와 침해 시대입니다. 기술=진보 등식으로 인간은 오만해집니다.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합니다. 당면한 상황과 문제에 부적절한 스키마를 고집하는 것을 뜻하는 어리석음. 학습에 의해 변질된 학습으로 인간 본성에 자기 기만적 측면이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언어적 프레임을 통해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희생양과 변명거리를 찾아내지요.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에서도 이뤄집니다. 전쟁으로 드러난 집단사고의 허점은 진주만의 재앙을 부릅니다. 미국의 외교적, 정치적 어리석음은 쿠바 침공 결정,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등을 거쳐 9.11 참사로 이어집니다.  만사가 잘 굴러간다는 착각은 기술적 오만을 불러 챌린저호, 체르노빌 사건을 야기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을 우주에까지 확대할 것이라는 점이다." - 책 속에서.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는 미신, 종교, 기술, 과학은 우리의 자기파괴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의도된 선택인가, 어리석은 판단인가를 묻는 저자. 우리의 타고난 믿음과 뿌리 깊은 편견이 우리만의 특별한 문화적 맹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에 아직 우리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에덴보다 아마겟돈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으니 서로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말라고 합니다. 선택이 만들어낸 어리석음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보편적 인권, 국제법, 자연환경에 대한 존경심이 구원의 토대가 될 거라며 마무리 짓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대중적 인문교양서이지만 초반은 전문가의 논문 도입부를 읽는 것처럼 낯선 용어가 난무하며 딱딱한 느낌이라 지레 어렵게 느낄 수 있습니다. 본문만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도 한몫하고요. 그래도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1장을 넘어서면 역사 속 사례로 흥미진진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어리석음에 집중했고 동양의 어리석음에 관해서는 초반에만 잠깐 언급되는데 동양의 어리석음의 역사도 무척 궁금합니다.

 

인간 보편의 어리석음을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 종교 개혁, 이성의 시대, 계몽주의 시대, 산업화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기기만이 심해지면 어리석고 부적응 행동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자기반성 없이는 자기기만의 희생양이 될 뿐이라는 것을 알려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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