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추억, 기억


오늘도 또 새벽에 잠에서 깼다. 늘 악몽을 꾸다가 깨곤 했는데, 이번에는 악몽은 아니었다. 살짝 슬픈 이야기이긴 했는데, 악몽이라 부를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언젠가 소설 소재로 써먹으려고 폰을 들어 메모장을 열었다가 귀찮아서 다시 닫고 누웠다.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가고,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다가오는 어린이날에 생각이 멈췄다. 동네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하는데, 이제 6학년인 작은 아이를 데리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 때문에 잠시라도 들러야 하는데, 혼자 가서 일만 하기에는 좀 억울한 느낌이다. 아니 사실 꼭 가야하는 건 아닌데, 도의적으로 얼굴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아이에게 같이 가자고 꼬셨는데, 안 넘어온다. 어렸을 때는 이런저런 행사들, 회의와 토론회와 집회 따위에 아이들을 정말 많이 데리고 다녔다. 작은 아이의 책상에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사진과 간단한 설명으로 담은 연대표가 붙어 있었는데, 가장 마지막 사건이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집회였다. 작은 아이에게 저 사진 속 어딘가에 우리도 있었다고 말하자. 안그래도 학교 수업 시간에 친구에게 자신이 저 자리에 있었다고 말을 했단다. 사실 작은 아이는 이런저런 잡다한 행사에 많이 데려갔지만, 집회나 행진에는 별로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큰 아이를 키울 때는 내가 그런 집회나 행진의 주최를 맡은 담당자인 경우가 많아서 많이 데리고 다녔다. 암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던 온갖 집회 현장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이들도 고생시켜서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아이들이 나를 따라 다녔어도 잘 놀고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아빠는 자주 자기들을 어딘가에 데려다놓고 본인 일을 하느라 바빴고, 챙겨주지 않았다고 말을 허더라. 아이들이 이미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그 다음부터는 어지간하면 일을 해야 하는 장소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으려고 했다. 않으려고 했다고 표현한 것은 이후로도 가끔은 데리고 다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구글 포토 사진첩에 들어가 옛날 사진들을 찾아봤다. 사진과 친하지 않아서 찍은 사진이 많지 않은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은 꽤 많더라. 죄다 아이들 사진만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는데, 그 가운데 몇 개의 동영상들이 보였다. 눌러보니 당시 애들 엄마가 찍은 것들이 몇 있었다. 저 때 저런 걸 찍었었구나. 갑자기 새벽에 애들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한때 저런 목소리로, 저런 눈빛으로, 저렇게 잘 지냈던 시절이 있었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기 때문에 더 슬프게 느껴졌다.


사진들을 쭉 넘겨보면서 사진으로 남은 장면과 남지 않았으나 머리 속에 사진처럼 찍혀있는 추억과 그리고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들 사진을 제외하고 간혹 발견할 수 있는 애들 엄마나 가족들의 사진은 낯설었다. 저 시절에 저런 모습이었구나.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가끔 발견할 수 있는 내 모습은 더욱 낯설었다. 살면서 유일하게 딱 한 번 파마를 했는데,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가 되어버려서 엄청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줄 알았는데, 유일하게 찍힌 내 사진이 있더라. 시간이 조금 흘러 파마가 많이 풀렸고, 끝 부분을 좀 잘라서 그래도 제법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였다. 그제서야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못난 얼굴이라도 그래도 시기 별로 내 모습을 좀 남겨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었다.


사람에게 상처 받고, 사람에게 위안을 얻고


주말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 좋아하는 사람들. 나를 인정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많이 떠들고 많이 웃었다. 아주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대부분 사람들 때문이다. 그만큼 대인관계라는 것,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해소한다. 그들이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묵묵히 들어주는 것으로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가끔 나란 인간 왜 인생을 이렇게 밖에 못 살았나 절망하는 날이 많지만, 그래도 가끔은 운이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이렇게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어서다.



어떤 감정


작년 가을에 어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사고 후유증으로 통증이 심해져 나는 아주 기본적인 것만 알려주고 실무를 일터 후배 활동가가 다 맡았었다. 그때 그의 여자친구가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 그 분은 준비만 도운 것이 아니라 행사 당일에도 현장에서 진행을 도왔다. 나로서는 말로만 듣던 분을 그날 현장에서 처음 마주쳤는데, 후배 활동가가 미리 말을 해주지 않아서(아마 정신이 없어서 말할 여유가 없었겠지만) 처음엔 그의 여자친구일 거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두 사람이 대화하는 걸 보면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도와줘서 고맙다고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두 사람 모두 회를 좋아한다고 회를 사달라고 했다. 그런데 서로 바쁜 삶을 살다 보니 계속 시간이 안 맞았고, 차일피일 미뤄오다 최근에서야 두 사람과 회를 먹으러 갔다. 젊디 젊은 청춘 남녀가 티격태격 하기도 하고, 꽁냥꽁냥 거리기도 하면서 회를 먹는 모습을 앞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생각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애들 엄마와 연애할 때, 당시 40대 중반의 농민회 형님이 우리 둘을 불러 밥을 사줬던 날이 있었다. 그때 형님도 거의 드시지 않고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셨던 기억이 났다. 그때 형님은 우리를 보며 어떤 기분이셨을까? 며칠 전에 내가 후배 활동가 커플을 보며 느꼈던 것과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그건 분명 젊음에 대한 부러움과는 달랐다. 회한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어떤 사건과 감정에 대한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방점이 찍히는 부분이 평생 다시는 겪지 못할 거라는 것에 있었다.
















토요일에 철가면을 읽다가 끊고 일요일부터는 이 책을 시작했다. 이 책도 구매하자마자 조금 훑어보고 책장에 꽂혔던 걸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철가면을 아주 재밌게 잘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sf가 읽고 싶어졌다. 그때 바로 눈에 들어온 책이 이 책이었다. 읽으려고 책상 위에 올려두긴 했는데, 두꺼운 철가면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진득하게 오래 읽을 여유가 별로 없어서 먼저 다 읽고 시작하기에는 너무 오래 걸릴 것이 뻔했다. 뭐 늘 그랬듯이 조금씩 나눠서 읽어야 할 상황이었다. 찔끔 찔끔 번갈아가며 읽어야겠다.


아! 북플에 확인해보니 오늘(5월 3일)은 과거의 오늘 쓴 글이 없더라. 즉, 지금 쓰는 이 글이 2004년 서재를 시작한 이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5월 3일에 쓰는 글이라는 뜻이다. 뭐든 처음은 이유 없이 기분이 좋기 마련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끄적인 이 글 덕분에 오후부터는 기분 좋게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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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5-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해 5월 3일엔 이 글을 썼다고 알려주겠네요 잊고 있다가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어떨지, 한해 동안 큰일 없이 지내시기 바랍니다 바란다고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희선

감은빛 2022-05-04 19:52   좋아요 1 | URL
아마도 잊고 있다가 북플이 알려줘서 발견하겠죠.
그날 따라 바빠서 북플에 접속할 여유가 없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네요.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과연 큰 일이 없을 수 있을까 싶어요.
대통령이 바뀌면 거리에서 시간을 보낼 일이 많아질 것 같아요.
이래저래 큰 일이 없을 수 없는 조건인 것 같습니다.
 

동안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앱에서 알림이 떴다. 스무살의 터키 여성이 영어로 말을 걸었다. 한국인들은 왜 다 이렇게 어려보이는 것이냐? 이게 유전자의 영향인가? 아니면 라이프 스타일의 영향인가? 처음 말을 걸면서 인사도 한 마디도 이렇게 다짜고짜로. 좀 황당했다. 이 앱은 생년월일을 필수적으로 입력하게 되어있고, 대화 상대방의 나이와 네이티브 언어와 공부 중인 언어를 공개한다. 나는 40대 중반에(앱에서는 만 나이로 정확한 숫자가 나온다.)한국어 네이티브이고 영어를 조금 할 줄 알고, 터키어와 힌디어와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나온다. 그리고 사진도 필수적으로 공개하게 되어 있다. 내가 프로필에 등록한 사진은 아마 3년쯤 전에 여행지에서 찍은 셀카였다. 그 사진을 보고 한국인은 왜 다 어려보이냐고 내게 따지듯이 말을 걸었던 것이다. 물론 따지듯이 라는 느낌은 그냥 내 기분 탓이고, 그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조금 고민하다가 한국인이 다 어려보인다고 생각하는 건 아시아 인들의 얼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편견이라고 먼저 답했다. 이어서 내 나이 또래 중에 나와 비슷한 얼굴이 많으며, 나는 딱히 어려보이는 편은 아니라고도 답했다. 사실 그 사진을 찍었을 무렵이면 오히려 내 나이에 비해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평을 늘 듣고 다닐 때였다.


그래 나도 한때는 동안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아니 30대 후반이 되기 전까지는 늘 그런 소리를 듣고 살았다. 심지어 30대 중반에도 술이나 담배를 사러 가면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험을 겪기도 했고, 택시 기사님이 학생이라 여기고 반말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30대 중반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급격하게 늙어버렸다. 그리고 최근 2년 사이 나는 다시 또 한번 급격하게 늙었다. 이젠 더이상 그 누구도 어려보인다는 말을 할 수 없으리라.


암튼 그가 마치 따지듯이 묻는 그 말들 때문에 새삼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급격하게 늙기 전의 나에게 꼭 주의하라고 말을 해주고 싶다.


그는 그제서야 인사도 없이 이렇게 질문을 던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몇 가지 인사말과 서로의 신상을 묻는 대화를 이어갔다. 출근 시간이라 길게 이야기는 못 했고, 대화는 짧게 끊겼다.


출근길에 그 앱으로 대화를 나눴던 여러 외국인 여성들을 찾아봤다. 대부분 길게 대화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이건 내 성향이나 외국어 실력 때문인지, 이 앱의 불편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제일 오래 대화를 나눴던 몇몇 여성들은 한 2년 이상 대화를 이어간 경우도 있는데, 대체로 내가 흥미를 잃으면서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복귀해서 한참 대화를 하다가 또 둘 중 하나가 흥미를 잃어서 긴 시간 대화가 끊기기를 반복했는데, 그럼에도 다시 말을 걸면 또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들이었다.


그냥 재미로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건 나쁘지 않은데, 딱 거기까지가 한계다. 더 깊은 얘기를 나누기엔 내 영어가 짧고, 영어 네이티브가 아닌 경우 상대방도 대체로 영어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더라. 무엇보다 흥미를 떨어뜨린 원인은 시도때도 없이 엄청나게 많은 중국 젊은 여성들이 말을 걸어왔던 것 때문이었다. 그들 대다수는 대화를 나눈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위챗으로 대화하기를 요구했다. 한국에서는 위챗을 사용할 수 없다고 답하면 그렇지 않다고 우기며 계속 위챗만을 고집했다. 간혹 라인이나 왓츠앱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 두 앱도 다 깔아뒀는데, 그 경우에는 제법 오래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암튼 너무도 똑같은 패턴이 너무나도 자주 또 많이 생겨서 질려버렸고, 그래서 그 앱을 지워버렸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 문득 오래 대화했던 다른 사람들이 생각나서 다시 앱을 깔면 또 중국 여성들의 대시가 시작되었고, 또 앱을 지웠다. 그렇게 지우고 깔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래도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체크한 항목을 지워버려야겠다. 아, 그 터키 여성이 왜 터키어를 배우고 싶냐고 물었을 때,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배워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발음이 너무 어려워서 사실 손을 뗀지 오래되었다. 터키어 항목도 그냥 지워버려야겠다. 


주말은 독서와 함께


토요일이다. 아침부터 4시 즈음까지 행사 하나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이 만족하는 반응을 보여서 준비하고 진행한 입장에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걸 준비하느라 나름 고생했던 나에게 스스로 칭찬해줬다. 


이제 친한 선후배들과 어울리러 갈건데, 맛난 걸 먹고 나서는 책을 좀 읽어야겠다.
















어렸을 때 학급문고로 읽었던 책은 축약판이었다. 너무 재밌어서 어러번 읽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떠올려보니 후반부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샀는데, 구매한 직후에 조금 읽다가 흐름이 끊겼다.


며칠전부타 다시 읽어보니 너무너무 재밌었다. 이번 주말 다시 책의 세계로 빠져야겠다.


아, 4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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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5-01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앱도 있군요. 저는 나중에 스페인어 다시 공부해보게 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ㅎ

감은빛 2022-05-03 16:13   좋아요 1 | URL
원래는 서로 배울 수 있도록 학습을 도와주는 앱이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기능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유료 결제를 해보지 않아서 어떤 기능이 더 있을지 저도 궁금하네요.
암튼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건 장점입니다.
다만 대화를 주로 나누기 위한 메신저 앱으로서는 또 불편함이 있어요.

얄라알라 2022-05-0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가면, 복수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초딩 때 읽었으니 가물거립니다..

감은빛 2022-05-03 16:15   좋아요 0 | URL
알라님도 초딩때 읽으셨군요. 저도 기억이 잘 안나서 다시 읽어요. ^^

꼬마요정 2022-05-0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마의 철가면이 아니네요. 우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감은빛 2022-05-03 16:16   좋아요 1 | URL
뒤마의 철가면도 축약판 밖에 읽어보지 않아서 장담할 순 없지만,
소년소녀문학전집 축약판 기준으로는 뒤마의 철가면보다는 훨씬 재밌었습니다.
순전히 제 기준이기는 하네요. ^^
 

또 악몽

요즘은 거의 매일 악몽을 꾸는 것 같다. 장소는 어린시절에 오래 살았고 대학시절에도 잠깐 살았던 작은 아파트였다. 꿈 속의 시기는 아마 제대한 후에 대학에 복학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난 당시에 학교 앞에 작은 방을 얻어 살고 있었고, 그 집엔 부모님과 동생만 살고 있었는데, 주말이나 가끔 본가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난 안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잘 수 밖에 없었다. 그 좁은 집에는 방이 둘 밖에 없었고, 작은 방은 여동생이 썼다. 군대 가기 전에는 주방을 뒷베란다로 옮기고 원래 주방이었다가 이젠 주방으로 가는 통로가 되어버린, 다른 집이었다면 거실이라고 불렀을 수도 있는 좁은 공간에 자바라 칸막이를 치고 임시로 내 방으로 썼다. 평생 침대를 써 본 적이 두 번 있는데, 그때와 고시원 생활할 때였다. 그 통로 공간은 원래 싱크대가 있던 자리 밖에 내가 잘 곳이 없었는데,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 바닥에서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침대 생활을 몇 달간 했고, 내가 군대 간 후에 그 침대는 여동생이 썼다.

암튼 가끔이지만 그 집에서 자고 돌아와야하는 날엔 부모님과 한 방에서 지내야 하는 일이 무척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꿈 속에서 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사건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모로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괴로워하다가 문득 잠에서 깼다.

정신이 든 후에 그 공간과 그 시절이었다면 충분히 괴롭고 힘든 시기였으니 악몽일 수 밖에 없겠다고 납득했다.

집 이야기

그 아파트는 임대 아파트였다. 그 임대 아파트에 당첨되기 전에 우리집은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이었다. 내 기억속에 가장 오랜된 우리집은 넓은 2층 주택 중 구석진 곳에 있는 방 한칸에 부뚜막이 달린 곳이었다. 사람 얼굴 높이에 작은 간유리 창문이 있는 낡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뚜막이 나오고 그 옆에 아주 높은 계단 두 단을 밟고 미닫이 문(나무창살에 창호지를 붙인)을 열면 작은 방이 나왔다. 그 방에 제대로 된 가구도 없이 네 식구가 살았다. 욕실이 따로 없어서 그 부뚜막에서 아침 저녁으로 씻었고, 화장실은 밖에(그러니까 마당 구석에) 여러 가구가 함께 쓰는 공동 화장실이 세 칸(혹은 두 칸이었으지도)있었다. 그 2층 주택은 주인집이 2층 전체를 쓰고 1층은 우리 집 같은 집들이 대여섯 개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집에 살았던 또래 친구가 적어도 너댓명은 있었다. 여름이면 마당에 커다란 (뻘건) 고무 다라이에 물을 받아놓고 아이들이 빨개벗고 놀았다. 남녀 구분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게. 그때 우리집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방에 살았던 동갑내기 여자 아이랑은 같이 다 벗고 노는 일이 자연스러웠는데, 동네 목욕탕 여탕에 엄마 따라갔다가 같은 반 여자아이와 마주쳤을 때에는 너무 부끄러워서 견딜수 없었던 것. 뜨거운 탕안에 쏙 들어가서 버티고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시절 그 열악한 주거현실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이시백 선생의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덕분이었다. 이시백 선생의 실감나는 묘사 덕분에 그때 그 집이 생각났다.

대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동기가 그 동네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알고보니 국민학교 한 해 선배였던 그는 대학시절까지도 그 동네에 계속 살고 있었다. 그 친구 집에 놀러갔던 어느날 어린시절 살았던 그 집을 찾아보고 싶었다. 자주 놀았던 골목길과 공터 등이 여전히 기억 속에서는 선명하게 떠올랐는데, 찾을 수 없었다. 아직 남아있는 학교를 비롯해 길을 유추해보면 여기쯤이 맞을 것 같은데, 그 집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 단칸방에 제법 오래 살다가 국민학교 2학년때 앞서 언급한 임대아파트로 이사갔다. 그 아파트는 내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 좁은 집이 당시엔 엄청 넓어보였다. 나와 동생에겐 방이 새로 생겼다. 집엔 각종 가구들도 새로 생겼다. 동생은 잠버릇이 험해서 같이 자기에는 좋은 룸메이트는 아니었지만, 좁은 방에 네 식구가 자던 시절에 비하면 뭐 말이 필요없었다. 그리고 그 시절부터 내 독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었고, 학급문고를 읽었고 이웃이나 친구들 책을 빌려 읽었다.

이 아파트에 오래 살았던만큼 기억나는 일화가 많은데, 겨울이 오면 뒷베란다 연탄광에 연탄을 쌓아두었던 일과 그 연탄광 옆에 쓰레기 투척구가 있어서 쓰레기를 던지면 아파트 뒤쪽 쓰레기장에 쓰레기가 모였던 것 등이 기억난다. 우리 집은 4층이었는데 연탄이 들어오는 날엔 난리가 났다. 1층부터 4층까지 부직포 같은 걸로 계단에 연탄 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깔개를 깔아두고 여러 명의 아저씨들이 양손에 연탄 2개씩 총 4개를 쥐고 4층까지 계단을 올랐다. 그 깔개는 집안에도 깔아둬야 하는데, 아저씨들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가 다시 뒷베란다에서 신발을 신고 할 수 없으니 신발을 그냥 신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연탄광에 연탄 200장을 채우고 나면 집안 청소가 큰 일이다. 아무리 깔개를 깔아뒀어도 집안엔 신발자국이 남게 마련이고, 연탄 가루가 날리기 마련이다.

4층까지 올라야하는 계단은 좁아서 오르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들은 도중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몇 살때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연탄을 같이 날랐는데, 양손에 연탄 집게를 쥐고 연탄을 4개를 들어올리면 손아귀 힘만으로 버티며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나중에는 손에 힘이 빠져서 연탄을 놓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실수로 연탄을 떨어뜨리면 비싼 연탄을 못쓰게 되고 바닥이나 벽에도 시꺼먼 얼룩이 묻는다.

그 아파트에 제법 오래 살다가 청소년기에 그 근처 주차장 옆 반지하 집에 또 몇 년을 살았다. 그 아파트가 방이 두 개 밖에 없고 좁았는데 반해, 주차장 옆 반지하 집은 엄청 넓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시절 사춘기였던 나와 동생은 넓은 방에 자바라 라고 부르는 접었다 펼쳤다 하는 간이 벽을 치고 한 방에 지냈다. 내가 입구 쪽에 지내서 동생은 화장실만 가려고 해도 자석으로 닫힌 자바라를 열고 내 자리를 지나가야 했다. 사춘기의 예민했던 남녀가 그 방에서 참 많이 싸웠으리라.

그 집엔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 단칸방 시절에도 화장실이 밖에 있었지만, 그건 재래식이었고 여러 집 가족들이 같이 써야해서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 집 화장실은 밖에 있었어도 수세식이었고, 우리 가족만 쓰는 것이라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한겨울에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추위가 제일 힘들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 반지하 집에 살았었다. 그 집 바로 뒤엔 독서실이 있었고, 동네 친구들 중 그 독서실에 다니는 애들이 좀 있었다. 그 독서실 베란다에서 아이들이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떨며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그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 집이 바로 보였다.

그해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고, 난 반팔 셔츠에 사각팬티만 입고 밖에 나와 있었다. 집안은 열기로 가득차 있었고, 선풍기도 여동생한테 뺏겼고, 밖은 그래도 해가 떨어지면 좀 견딜만 했으니. 독서실 쪽에서 여자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불렀다. 어쩌다 알게된 이웃 여고 아이들이었다. 난 그렇게 속옷바람으로 여자아이들을 만나 한참을 놀다가 돌아왔다. 속으로 제발 그 아이들이 이게 속옷이란 걸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랐는데, 그럴 리는 없었다. 그 아이들 집에도 다들 그런 사각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아빠들이 있었을테니까. 다음날부터 어울리던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동네에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누군가가 있다고.

쓰려다보니 학교 앞 자취방에 대해서도 쓸 말이 많은데,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아래 내용은 벌써 며칠 전에 쓰다 만 것인데, 그냥 버리기 아까우니 일단 뒤에 붙여둔다.

화가 난다

아침에 페이스북을 보다가 너무 화가 나서, 출근을 위해 움직이던 걸 멈췄다. 상식 혹은 기본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 당사자는 일반인이 아닌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공인이었다. 4년전 지난 지방선거에서 바로 내 눈앞에 앉아서 내가 요구했던 재생에너지 정책을 당연히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던 그는 당선된 후에 전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몇 번이나 약속을 이행하라고 찾아갔던 우리를 그는 매몰차게 문전박대했다. 만날수 없었다. 선거 운동 기간에 뭐든 수용하겠다고 직접 본인이 도장을 찍은 그 협약서를 지금도 내가 갖고 있는데. 그래놓고 다시 선거에 나오겠단다. 지난 4년 동안 만날 수도 없었는데, 이제 다시 시민의 발이니 머슴이니 하면서 떠들겠지.

하필이면 그 인간의 책을 낸 출판사가 내 친구가 운영하는 출판사였다. 그걸 알게 된 건 뉴스 기사를 통해서였다. 코로나 국면에서 공무원들을 비롯해 시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요하는 국면에서 공무원들을 동원해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는 기사였다. 화가 났지만, 참았다. 그래 본인은 다시 선거를 준비해야 하니 출판기념회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양심을 팔고 본인 잘난 척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눈이 돌아갔다.

하필 한때 엄청 친했던 친구가 그 인간의 책을 냈더라. 그리고 출판기념회 기사가 났고, 그 친구가 그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페이스북에 공유한 걸 봤다. 처음엔 그냥 무시했는데, 그렇게 자랑하는 듯한 게시물이 반복적으로 보여서 더 화가 났다.

그냥 넘어가려다가 결국 나도 모르게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사실 댓글로 그런 이야기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뭔가를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내 감정과 의도를 다 담기는 어려웠다. 결국 감정을 주로 담은 댓글을 쓰고 말았다. 만약 그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그때 의도를 설명할 기회가 생기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각자의 입장은 다르니까 라는 투의 답글만 남기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래.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던 간에 내가 표현하려던 불쾌감은 전달이 됐으니 그걸로 충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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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4-2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세대는 저놈의 집 얘기만 해도 한보따리의 얘기가 나올듯해요. 진짜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집들에서 참 잘도 살았다는.... ㅎㅎ 감은빛님의 악몽이라는 말이 공감가요. 그 시절 살았던 기억 자체가 악몽인것은 아니지만 다시 살라고 하면 진짜 악몽이 될것같으니 말이죠. ㅎㅎ
다음 이야기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은빛 2022-04-30 16:49   좋아요 0 | URL
그죠? 바람돌이님.
정말 집을 주제로 쓸 이야기가 엄청 많아요.
언젠가 제대로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에
늘 공감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페크pek0501 2022-04-3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의 글 - 불쾌한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풀어 냈으니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고요, 되셨으리라 믿어요. 그래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감은빛 님이 글을 쓰시는 분이고,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공간이 있어 글을 읽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에요. 생각 없이 사는 듯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있지요. 그런 사람에겐 무엇이 잘못인지 말해도 아마 못 알아 듣고 화부터 낼 겁니다.

저도 어릴 적 연탄을 몇 백 장 쌓아 놓아야만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집에서 산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뜨거운 물도 안 나오고 세탁기도 없는 그런 집에서 어떻게 웃으며 살 수 있었을까 싶어요.

감은빛 2022-04-30 16:52   좋아요 0 | URL
네, 페크님. 말씀처럼 확실히 도움이 되었어요.
제 글이야 뭐 그냥 생각나는 걸 끄적이는 것 뿐인데,
이렇게 공감해주시니 너무 감사한 일이죠. 고맙습니다!

예전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정말 화장실도 욕실도 없는 집에서 어떻게 살았었나 싶더라구요. 확실히 우리는 점점 더 편리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것 때문에 지구가 위기에 처한다는 생각을 못 한다는 점이 안타깝긴 합니다.

꼬마요정 2022-04-30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 때 연탄을 사용해야 하는 집에 살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사시던 집도 그렇구요(친가, 외가 다요) 그 당시 저는 몰랐지만 일산화탄소 중독이 많았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잘 살아남은 것 같아요. 근데 또 연탄 보일러(?) 뚜껑 위에 쥐포 구워먹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니 더럽네요 ㅎㅎㅎ

저도 구의원 경선한다고 후보들 문자 오는데 보니까 한 분…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하고 딸이랑 싸우고 짜증 내던 분이더라구요. 몇 년전에 일 때문에 봤는데, 구의원 선거 나올 거라는 거 보고 화가 나더라구요. 진짜 아무나 정치 하는구나, 소명의식 같은 건 없는 사람 많겠구나 싶었어요. 감은빛 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감은빛 2022-04-30 16:58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안녕하세요.
정말 예전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꽤 많았어요.
제 먼 친척되시는 어르신은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숙직실에서 주무시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돌아가셨어요.
연탄 난로를 켜놓고 환기를 제대로 못 하셨나봐요.

사실 거대 양당 체제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전과자들도 많고 인간이 되지 못한 뭐 같은 xx들도 많죠.
전과 중에서도 음주운전 이런 건 정말 많구요.
제일 화가나는 건 성범죄자들도 제법 많더라구요.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사소한 실수 


등기소에 등기변경신청을 하러 갔다. 등기변경신청서류를 다 작성해 왔기 때문에 서류를 제출만 하면 되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서류만 바로 제출하는 방법이 없어졌다. 무조건 상담 창구에서 상담을 받아야 서류 접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상담창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접수창구보다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 게다가 창구 수도 적다. 상담 창구는 8번부터 10번까지 단 세 개밖에 없다. 게다가 10번은 상담직원이 없이 비어있고, 8번과 9번에는 아까부터 오랫동안 상담이 진행 중이다. 나는 상담창구 번호표를 뽑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예전 같으면 그냥 접수 창구에 서류 접수만 하면 끝이었지만, 이젠 언제 끝날지도 모를 상담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며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바뀐 방식에 대해 누군가에게 항의하고 싶어도 누구에게 해야 할 지 모르니. 그냥 참고 기다릴 수밖에.


뒤에 일정이 두 개나 더 있었고, 그날따라 모든 일정이 예상보다 조금씩 늦어지고 있어서 조금 조급한 마음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7개의 일반 창구에서는 계속 딩동 소리가 들리며 새로운 번호들을 호명하고 있었지만, 상담 창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내 번호가 불렸는데, 상담 창구가 아닌 일반 창구였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오래 기다린 사람을 위해 일반창구에서 상담창구 번호를 불러 준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용건을 들은 직원은 내가 기다리고 있던 상담 창구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게 뭔 소리? 나 방금까지 상담창구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번호를 불러서 여기로 온 건데? 황당해하는 나에게 그 직원은 본인이 번호를 잘 못 누른 것 같다고 말하며, 다시 가서 번호표를 뽑으라고 했다. 나는 어이없다는 뜻으로 헛웃음 지으며 방금까지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 온 거라고 말했다.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고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을 마치자마자 화가 치밀어올랐다. 뭔가 더 따지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번호표를 뽑으러 갔다. 이 여성은 미안하다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상담 창구 번호표를 뽑으니 내 앞에 대기자가 3명이나 있었다. 방금까지 나는 바로 다음 번호였는데, 다시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수도 없는 상태로 더 기다려야 한다니.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까 창구로 다가가 언성을 높였다. 방금까지 다음 번호였는데 선생님 때문에 지금 내 앞에 대기자가 3명이 늘었다. 이거 어떻게 하실 거냐고 따졌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리 오시라고 하면서 비어있는 6번 창구로 나를 불러 서류를 달라고 했다. (그는 3번 창구 직원이었음) 그러더니 다른 사람 서류를 접수 중인 7번 창구 직원에게 이 건 접수 좀 받아 달라고 말했다. 아마 자신이 나이가 더 많거나 직급이 더 높은 듯 아무렇지 않게 명령하는 말투로 들렸다. 그런데 내게는 그 태도가 너무나도 거슬렸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나와 7번 창구 직원에게 피해를 준 것인데, 마치 나와 7번 창구 직원이 자신에게 뭔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걸 지적하는 사람 같은 태도였다. 이 여자 뭔가 정상이 아닌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더니 나한테는 여기서 접수하세요. 라고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로 얘기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끝까지 사과는 없었다. 


아마 조금 더 어렸을 때의 나였다면, 참지 않고 다시 그 직원에게 가서 끝까지 따지고 사과를 받아냈을 것이다. 예전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아마 내가 따지는 것을 오히려 황당해 했을 것이고, 오히려 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했을 것이다. 끝까지 사과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더 따지지 않고 그냥 잠자코 7번 창구 앞에서 서류를 접수 중인 사람이 볼일을 마치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7번 창구 담당자인 남성은 앞 사람 용무가 끝나자 나를 불러 서류를 살폈고 금방 접수를 완료했다. 등기소를 나서며 다시 한 번 일어난 일을 곱씹었다. 혹시 내 언행에 잘못은 없었는지 기억을 되짚어봤다. 내가 한 일이라곤 헛웃음을 지으며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내 처지를 설명한 말과 화가 나서 약간 언성을 높이며 따지듯 한 말이 전부였고, 이후로는 그가 명령하듯 한 말들을 얌전히 따랐을 뿐이다. 그는 대체 뭐가 그렇게 당당했을까? 


어찌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 일일 수 있는데, 이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기분을 완전히 망쳤다. 이후 일정 때문에 지하철 역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면서 화를 누르려 애썼다. 다음 일정 장소에서도, 그 다음 일정에서도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타 단체의 활동가와 업무 상담을 하면서도 내 생각은 계속 등기소의 그 여성 직원에게 가 있었다. 당연히 내 앞에 앉아서 얘기 중인 활동가에게 집중할 수 없었고, 그가 물어보는 질문들에 제대로 답을 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일이 자꾸 꼬인다는 느낌이었다. 그날은 이후로 뭐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이런 게 머피의 법칙인 걸까?


일상에서 가끔 어이없는 일들을 겪곤 하는데, 유독 이 일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 며칠 안에 또 등기소를 방문할 일이 있는데, 이게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다시는 그곳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미안하지만, 그 일은 후배 활동가에게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의 오늘 역시


어제 북플이 알려준 과거의 오늘 쓴 글에 대한 글을 휴대폰 자판으로 열심히 두드렸었다. 그 글을 올리고 나서 살펴보니 과거의 어제 쓴 글이 네 개였다. 그 글들을 하나씩 읽었다. 그중 하나에 알라딘 중고 서점에 책을 팔고 중고 책을 산 내용이 있었는데, 그때 중고 매장의 직원 실수로 내가 사려던 책을 못 사게 된 일에 대해 적어 놓았더라. 그 일 때문에 나는 며칠 동안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데, 그 직원을 찾아서 그 실수에 대해 따지고 싶었지만, 누구였는지 기억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직원의 사소한 실수가 내게는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혔는데, 그 직원 입장에서는 정말 별것 아닌 실수였을 것이다. 이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오늘도 북플은 과거 오늘 쓴 글이 있음을 알려줬다. 오늘은 하나였다. 그런데 그 글에도 알라딘 중고 서점에 책을 팔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같은 해는 아니었다. 나는 어느해 4월 20일에 알라딘 중고 서점을 방문해 책을 팔았고, 또 다른 어느해에는 4월 21일에 같은 매장에서 책을 팔았다. 같은 날이 아니라서 대단한 우연은 아니지만, 연속된 날이라서 신기한 우연이란 생각은 든다. 


일하기 싫은 날


오늘은 유난히 일하기 싫은 날이다. 그래서 틈틈히 알라딘에 들어와 이웃들 글을 많이 읽었다. 알라딘에 머문 시간이 길었다. 일하기 싫으니 일찍 퇴근하고 싶은데, 일하기 싫어서 딴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아직 일이 남았다. 일하기 싫다는 기분의 결과로 오랜만에 재밌는 글들을 많이 읽어서 좋았지만, 덕분에 이렇고 오늘도 글을 하나 남겼다. 이젠 빨리 일을 마치지 않으면 저녁 약속에 늦을지도 모른다. 일하기 싫다는 말을 이렇게 여러 번 쓰고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 일이 하기 싫은 모양이다. 자판 그만 두들기고 빨리 일하라고 나에게 명령을 내려보지만, 내 손가락은 여전히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일하기 싫기 때문이다. 하! 이제 진짜 그만하고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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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4-21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되돌아 보니 일하기 좋았던
시간은 1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다 하기 싫었더라는.
일이 끝도 없이 밀려 드는군요.
심지어 프린터까지 고장이 나서
말썽을 부리네요.
오늘 고치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아닌 타인
의 실수로 살 책을 사지 못했다는
점에서 분노폭팔~ 공감합니다.

감은빛 2022-04-22 21:40   좋아요 1 | URL
일하기 좋은 시간은 정말 별로 없죠.
아주 가끔 재밌는 일도 있으니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요.

프린터 고장.
어우! 생각만해도 끔찍하네요.
레삭매냐님 많이 힘든 날이셨겠어요.

공감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미미 2022-04-2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등기소에서 일 때문에 하루가
온통 먹구름 속처럼 답답하셨을듯해요.
그분이 사과만 하셨어도 상황은 달랐을것 같은데...

살면서 이런 일들은 마치 예상못한 지뢰를 밟듯이
감정을 뒤흔들어 놓더라구요. 생각나는 일들도 있고
공감 만땅입니다.

마지막 문단은 그 와중에 재밌어서 웃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날은 감은빛님에게 맑고 화창한
날이길 바랍니다~*

감은빛 2022-04-22 21:4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미미님.
오늘은 화창한 날은 아니었지만,
미미님의 이 댓글을 읽으니 화창한 날이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

미미님께서도 뭔가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으셨죠?

세상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저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석이 높은 가설을 배경에 깔아두는 걸 잊지 말아야하겠지요.

금요일 야근을 마치고 이제 집에 갑니다.
주말 내내 뻗어서 잠만 잤으면 좋겠지만, 또 일정이 있네요.

희선 2022-04-2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기다리셨는데, 다른 쪽에서 번호를 불러서 갔더니 거기에서는 안 된다고 하다니... 그럴 때는 미안하다고 해야지 그런 말도 안 해서 더 기분이 안 좋으셨겠습니다 그 일 때문에 그날 기분이 안 좋으셨군요

책을 못 산 것도 기분 안 좋으셨겠습니다 그건 지나간 일이라 해도, 그때는 정말 기분이 안 좋았을 듯합니다 저도 별거 아닌 일로 기분이 안 좋으면 그것만 생각하기도 해요 그런 건 시간이 가야 덜 생각해요 지금은 괜찮으시죠 그랬으면 좋겠네요


희선

감은빛 2022-04-30 16:44   좋아요 0 | URL
희선님.
두 일 모두 당시에는 엄청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빴어요.
글로 쓰면서 화를 좀 풀었던 것 같아요.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얄라알라 2022-04-2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저의 경우는 대기를 몇 시간 내내 했는데, 서류 미비였어요^^;;
다음에 기회가 있었는데 감은빛님께서 적으셨듯, 그 상황에 스스로 화가 났던 걸 소화 못시키고 담아놨는지 기회를 그냥 지나가게 했네요.


대기 오래 하시면서 많이 답답하셨겠어요

감은빛 2022-04-30 16:46   좋아요 1 | URL
아, 몇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서류 미비였다니! 너무 안타깝네요.
그날 따라 일정이 많아서 마음이 급해서 더 답답했어요.
그래도 당일 해야할 일정을 모두 잘 마쳐서 다행이긴 했죠.
고맙습니다! 알라님.

페크pek0501 2022-04-27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경우 저 같으면, ˝저 잠깐만요, 이런 경우 저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럼 기분 상한 저에게 위로가 될 것 같은데...˝라고 정중하고 친절한 말투로 그러나 속으로는 이를 갈며 말했을 것 같아요. 속으로는 부글부글 하는데 참아야 하는 상황. 참 싫지요. 또 하나의 문제는 참고 돌아서는 사람의 너그러움을 그런 종류의 사람은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속상한 일이죠...

감은빛 2022-04-30 16:47   좋아요 2 | URL
네, 페크님.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말하는 편이었어요.
당시에는 그 사람의 태도를 보는 순간 그렇게 말을 해도 소용이 없겠구나
하고 판단했죠. 예전에 그런 경우를 많이 겪어서 판단이 빨랐나봐요.
정말 속상한 일입니다.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구글 포토

매일 아침 이맘때쯤 구글 포토는 과거의 오늘 찍은 사진이 있음을 알려준다. 앱을 열어 들어가보면 과거 오늘 뿐 아니라 이번주에 찍은 사진들까지 보여준다. 작년이었을 수도 있고, 재작년이었을 수도 있고, 15년이나 16년 전이었을 수도 있다. 왜 15년이나 16년일까 생각해보니 그 무렵부터 스마트폰을 그러니까 구글이 만든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안드로이드 폰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번도 아이폰을 쓴 적이 없으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모두 구글 포토에 모아져있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아니 과거에는 폰을 바꿀 때 마다 대리점에서 사진을 옮겨주거나 직접 옮기곤 했는데, 그렇게 축적된 사진들을 어느 순간부터 구글이 보관해줬던 것 같다. 처음부터 구글 포토 서비스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암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가며 과거의 오늘들을 돌아보는 일은 재밌다. 여기가 어디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점점 더 과거로 돌아갈수록 어려지는 아이들이 보인다. 내게 휴대폰의 카메라 기능은 아이들을 찍는 용도 외에는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주 가끔 음식 사진을 남겨놓기도 했고, 가끔 여행지에선 하늘이나 자연의 풍경을 남겨놓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아이들 사진이다. 내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찍은 사진일테니 당연하겠지. 셀카를 즐겨 찍는 편도 아니니까.

사진을 넘기다보면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아이들 사진이 몇 컷 아니 대체로 한두 컷 나오고 말기 때문이다. 왜 더 많이 찍어두지 않았을까. 저렇게 예뻤는데 저 모습을 왜 겨우 한두 컷만 찍고 말았을까.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그렇지만 많지도 않은 사진들 속에 꾸준히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게 선물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는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으니, 이렇게 사진으로 밖에 돌아볼 수 없는 모습들. 어느 날엔 어떤 특정한 기억이 떠올라 그 기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멍하니 아침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너무 너무 귀여운 아이들 사진을 보다가 가끔 잘 나온 사진들을 발견하면 다운 받아서 아이들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아침에 그렇게 사진을 보내 놓으면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오후 늦게나 반응을 보이는데, 대체로는 심드렁한 태도로 느껴진다. 아이들은 저 어렸을 때 자신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만한데,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없다. 그냥 아빠가 뭔가를 보냈으니 읽었다는 표시만 한다는 느낌이다.

페이스북

트위터는 비교적 일찍 접하고 초기에는 열심히 했는데, 금방 시들해졌다. 나는 짧은 글로 뭔가는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 그리고 접한 페이스북을 오래동안 사용하고 있다. 이것도 한때는 열심히 썼는데, 어느날부터 피로감을 느끼고 뭔가를 쓰지는 않고 다른 이들의 소식만 읽기 시작한 지 몇 해가 지났다. 이런 걸 눈팅이라고 부르더라. 쓰지 않고 눈으로 보기만 한다는 의미인 듯한데 팅이란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설마 미팅, 소개팅의 그 팅일까?

암튼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랫동안 페이스북을 쓰지는 않고 읽고 보기만 하고 있는데, 페이스북 역시 매일 과거의 오늘 내가 쓴 글과 공유한 사진을 보여준다. 과거 오늘 이런 일들이 있었고,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이런 걸 공유했었구나.

페이스북에서 과거의 오늘을 보다보면 한가지 재밌는 것을 깨닫는데, 내가 참 정치적이고 가식적이란 것. 간단히 말하자면 솔직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일부러 어떤 반응을 유도하거나 어떤 대상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걸 바로 깨닫는다. 그리고 댓글을 보면 내가 의도한 반응이 나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건 내가 페이스북을 철저히 어떤 목적으로 이용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 과거 어느 시점의 내가 페이스북에 뭔가를 쓰기를 멈춘 이유이기도 하다.

북플

언젠가부터 북플에도 과거 오늘 내가 쓴 글을 보여주는 기능이 생겼다는 걸 발견했다. 신기했다. 구글 포토와 페이스북과는 달리 알라딘 서재에 쓴 글들은 긴 글들이라 그 당시의 나를 훨씬 더 깊게 보여준다.

사진으로 남은 어떤 한 장면보다. 페이스북에 간단히 남긴 어떤 문장보다 서재에 남긴 긴 글을 통해 그날의 나를 아주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아쉬운 것은 글을 자주 쓰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 오늘 쓴 글을 자주 만나지는 못 한다는 것이다. 좀 신기한 것은 매년 특정한 날 글을 써야지 하고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글은 쓴 적이 있는 날엔 과거의 글이 여러개인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그게 특정한 기념일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도 아닌데, 그냥 일년 365일 중 하루일 뿐인 어느 날인데 거의 매년 그 날엔 글을 쓴 경우도 있더라.

구글 포토를 들여다보며 사진을 자주 찍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페이스북을 보곤 그보다 훨씬 더 뭔가를 공유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북플은 말할 것도 없이 더 뭔가가 없다.

내게 알라딘 서재는 두가지 측면이 있는데, 과거의 나는 여기에 거의 대체로 책에 대한 이야기만 남겼다. 그때는 내 일상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한 블로그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엔 출판계에 몸을 담고 있었기에 책에 대한 정보도 많았고 책과 관련해 뭔가 쓸 거리도 많았다.

어느날 이용하던 블로그가 문을 닫으며 몇 년간 써온 많은 글들이 사라져버렸다. 꾸준히 일상의 이야기를 써온 입장에서 블로그가 사라지니 허전했다. 그래서 한동안 방치했던 알라딘 서재를 다시 찾았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책 이야기를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출판계를 떠나면서 책과 관련한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되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오래전 그러니까 대학시절 만났던 여자친구가 여기 서평을 쓰면 책을 살 수 있는 포인트 같은 걸 준다고, 나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책 이야기를 쓰면서 그 포인트로 책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권했기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글을 쓰지는 않았다. 그깟 포인트 때문에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일종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알라딘에 실제로 그런 제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그러니까 그때 그 아이가 들려준 말 때문에 알라딘이란 온라인 서점에 서재라는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고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가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부터 서재를 이용하기 시작했었다.

그 서재를 이렇게 긴 시간 이용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비록 자주 들어와보지도 못하고 자주 글을 쓰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잊지 않고 꾸준히 들여다보는 건 알라딘 서재가 유일한 것 같다.

글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책도 그렇지만, 많은 것들이 온라인 환경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온라인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글들도 역시 그렇다. 영어의 touching 단어가 그렇듯이 누군가의 글이 내 마음을 건드려 마음이 움직인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내 글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써놓은 내 글을 읽으며 아, 내가 이랬구나 하고 깨닫는다.

현대인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살고 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뭐든 빨리 해야하는 사람들은 그 빠른 속도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도 많다. 글을 쓰고 읽는 것은 그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한번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서재라는 공간은 그래서 내게 소중하다. 알라딘이 망하지 않기를 이 서재라는 공간이 오래 지속하기를 바란다.



*****
아침에 구글 포토의 알림을 보고 클릭 한번 했다가 내친김에 북플을 열어 쉬지도 않고, 작아서 불편하기만 한 폰 자판으로 이 글을 써서 완성한 나라는 인간, 참 신기한 인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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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4-2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도록 계셔 준 감은빛님! 앞으로도 쭉 계셔 주세요^^ 새삼 알라딘 서재가 보다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감은빛 2022-04-21 13:41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고맙습니다!
저도 꼬마요정님 덕분에 서재를 한층 더 정겹게 느낍니다.

바람돌이 2022-04-2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온라인에서 뭔가를 한다는 거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요. 온라인에서 꾸준히 글을 쓰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유일한 곳이 여기네요. 말씀하신 것들 다 한번씩 해봤지만 다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아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그만둬버렸다죠.
제게는 유일한 알리딘, 제게는 유일한 온라인의 친구들,
그런 의미에서 감은빛님도 자주 자주 글 올려주세요. 글이 올라올 때마다 열심히 읽는 바람돌이랍니다. ^^

감은빛 2022-04-21 13:45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자주 들러서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역시 온라인 활동을 즐기는 편은 아니더라구요.
페이스북을 가끔 들어가는 건 엮여 있는 인간관계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구요.
젊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다는 인스타그램은 계정은 만들어 뒀지만,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이 아니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본인 허락없이 사진을 올리지 못하게 막는 바람에 올릴 사진이 없어서 이용하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어요.

저도 자주 글을 올리고 싶은데, 피곤한 일상을 살아내다보면 접속을 못하는 날이 많더라구요. 이제는 좀 더 자주 들어오고, 자주 뭔가를 끄적여 보겠습니다.

드팀전 2022-04-21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은 자주 들어오는데 서재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서재를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요. 고향방문한 <우리들의 블루스>의 차승원처럼_물론 제가 실제보다는 기럭지가 짧고 드라마보다는 상황이 낫습니다만_오랜만에 안부인사 드립니다.부산에 계시지만 한번도 뵌 적은 없는 바람돌이 샘님도요. ㅎㅎㅎ

감은빛 2022-04-22 21: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드팀전님.
드팀전님 책을 읽어야지 생각만하고 지나쳤었네요.
이번에 생각난 김에 읽을게요.

바람돌이님도 드팀전님도 제 고향 부산 분들이시니 더욱 반갑네요. ^^

희선 2022-04-23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건 지나고 나서 그때 더 할걸 하기도 하네요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감은빛 님 따님 만나면 자주 사진으로 담으세요 그것도 시간이 흐른 뒤 보고 이때 이랬구나 할 거예요

알라딘 괜찮아야 할 텐데, 앞일은 모르는 거여서...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괜찮겠지요 그런 사람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희선

감은빛 2022-04-30 16:14   좋아요 0 | URL
희선님. 안녕하세요.
우리 딸들은 한 명은 사춘기를 벗어나는 중이고,
또 한 명은 이제 사춘기에 진입하는 중이라,
둘 다 사진을 찍는 것에 엄청 예민해서 찍을 수가 없어요.
사진을 못 찍게 한답니다. ㅎㅎ

앞일은 모르는 거지요.
적어도 알라딘이 문을 닫기 전에 서재를 먼저 닫는 일은 없기를 바랄 수밖에 없죠.

페크pek0501 2022-04-2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그의 글들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군요. 무서워라 흠흠... 저는 노트북 폴더에 글을 모아 두는 습관이 있어요. 가장 안전한 건 이메일함에 저장해 놓는 방법일 듯싶어요.
둘째아이의 어릴 적 사진이 많지 않아 아이가 불만을 말하더군요. 어릴 땐 소중한지 몰랐는데 성인이 되고 보니 그때 그 시절의 자기 모습을 보고 싶은 모양이에요. 아마 감은빛 님의 아이들도 크고 나면 그럴걸요. ^^

감은빛 2022-04-30 16:17   좋아요 1 | URL
페크님.
제가 쓰던 블로그가 서비스를 종료하고 문을 닫아버렸어요.
중요한 글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따로 보관해두는데,
블로그에 끄적거린 잡다한 글들까지 보관해두지는 않았거든요.
지금도 여기 서재에 쓴 글들은 따로 보관하지는 않아요.

저도 둘째 아이는 유난히 사진을 안 찍었더라구요.
큰 아이 때는 정말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특히 둘째는 돌잔치를 따로 하지 않았는데,
그거 때문에 엄청 서운해하더라구요.
많이 미안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