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오랫동안 소설을 읽지 못했지만, 그래도 읽고 싶은 책들은 꾸준히 사 모았다. 책장 한쪽에 쌓여있는 아직 읽지 못한 소설들을 보면서 언제 이걸 읽나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연말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어느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고 공지를 했다. 그리고 작가님도 모시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날 바로 책을 구매해서 읽었다.

제 15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며, 세상에서 가장 ‘못된’ 소녀의 지독한 성장기라고 띠지앞면에 적혀있었다. 그리고 띠지 뒷면에는 “엄마의 구멍을 찢고 바깥으로 나왔던 그 순간, 나는 이미 끝을 경험했다.”라고 인용문을 적어놓았다. 이 한마디 강렬한 문장이 호기심을 불러왔다. 어떤 얘기인지 몰라도 문장이 꽤나 괜찮아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점은 그 사람의 문장력이다. 물론 번역서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지만, 국내 작가의 경우 이야기 자체보다는 문장력이 뛰어나서 좋아하는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내 기대는 정확했다. 글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밌었다. 몰입해서 책을 읽다가 문득 작가에 대해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독서모임에서 만난 최진영 작가는 의외로 엄청 귀여운 외모였다. 책 날개부분에 실린 사진을 미리 보고 나갔지만, 작가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 그날 모임에 참여했던 열댓 명의 참여자들 대부분이 작가를 못 알아봤다. 역시 사진이란 건 믿을 게 못되는 구나 생각하며 작가의 얼굴과 사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작가를 모셔두고 우리는 책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작가의 얘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나서 ‘소녀를 기억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사인도 받았다.

이 책은 소녀의 성장기라고 하는데, 나는 판타지를 읽는 느낌이었다. 한편의 잘 만들어진 판타지 소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밑바닥 인생들이다.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소녀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펼쳐지는 모험담이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번듯하게 잘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지지리 궁상도 그런 궁상들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따뜻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긋지긋한 가난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생판 모르는 소녀를 아끼고 돌봐주었다. 황금다방, 태백식당, 폐가, 각설이패의 트럭을 거치며 소녀는 살아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소녀의 이름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알 수 없다. 언나, 간나, 꼬마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또래 친구들이 자신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유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소녀의 부모가 지어주었을 진짜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소녀는 스스로 ‘드드득’이란 이름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으며, 소녀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태명은 ‘평화’ 라고 했다. 작가는 제목에서 소녀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조차도 없는 소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 같은데, 정말 이름이 뭔지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부모에게 이년 혹은 저년으로 불렸던 소녀는 이름이 없었을까? 왜 소녀의 부모는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을까.

처음 읽었을 때는 강렬한 문장에 사로잡혀 빠르게 읽었는데, 다시 한 번 더 주요부분들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이야기가 조금 더 정교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긴 했다. 이미 인생을 달관한 소녀의 내력에 대해 좀 더 친절한 소개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라고 아쉬움이 생기기도 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만나게 된다면 조금 더 완성도를 높여주길 바란다.

인생이라는 긴 모험에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언젠가 내 옆을 스쳐갔을 혹은 앞으로 스쳐가게 될 소녀를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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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1-0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참 좋아요.^^

감은빛 2011-01-06 14:2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제목이 맘에 들더라구요.

Arch 2011-01-0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안녕하세요~

작가가 '귀엽다'도 아니고, '엄청 귀엽다'란 부분이 참 예뻤어요. 어떤 소설일지 궁금한데 요샌 소설에 푹 빠지질 못해서 읽을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문장, 감은빛님이 괜찮다고하신 문장이 어떨지 궁금해요.

감은빛 2011-01-06 14: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 책 재밌고 매력적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아마 푹 빠지실겁니다! ^^

stella.K 2011-01-0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저도 이 책 좀 빌려줘요!ㅋ

감은빛 2011-01-06 14:21   좋아요 0 | URL
그럼 우리 서로 바꿔볼까요? ^^

아이리시스 2011-01-11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렇게 예쁜 책이 밑바닥 인생들이라니, 아이러니하네요.
소녀 좋다, 심지어 소녀가 주인공!
작가도 만나시고 사인도 받으셨으니 더 기억에 남는 소설이겠네요.
저도 기억해둘게요~^^

감은빛 2011-01-12 02:55   좋아요 0 | URL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조금씩 건드려주고 있어서,
나름 의미가 있는 소설입니다.
젊은 작가 답지 않게 필력이 좋습니다.
한번 손을 대면 쉽게 손을 떼지 못할 정도로 집중력이 있구요.
결론적으로 아주 좋은 책입니다.
읽어보세요! ^^
 
신 벗어던지기 - 교회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성경 공부
블루칼라 지음 / 미담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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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은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 다닌 적은 있다. 어릴 때 어머니는 절에 다니셨다. 일요일마다 나와 동생을 데리고 절에 가셨다. 절에서 우리는 참 심심했는데, 주위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기도하는 수많은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성당은 군대에 있을 때 잠시 다녔다. 군대에서는 거의 의무적으로 종교활동을 시켰다. 세 종교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성당을 선택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라서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절이나 교회는 부대 안에서 종교활동을 했지만, 성당을 선택하면 부대 밖으로 나가 볼 수도 있었다. 쵸코*이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부대 밖 공기를 느껴볼 수도 있으니 좋았다. 교회에는 좀 오래 다녔다. 고등학생때였다. 내가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교회에 다닌건 두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번째는 중학교때 혼자 배웠던 기타를 맘놓고 칠 수 있는 곳이 교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회에는 드럼도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누군가에게 드럼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막상 그러지는 못했다. 두번째는 여자 때문이었다. 맘에 드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마침 친구가 다니는 교회라서 나도 한번 다녀봐야겠다고 맘 먹었다. 

약 2년 가까이 교회를 다니면서 나는 신을 믿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했다. 목사님의 설교는 좀 재미없었지만, 그냥 딴생각을 하면서 견뎠고, 찬송가를 부를 때는 입만 벙긋벙긋 했다. 교회에 가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런 건 다 견딜 수 있었다. 교회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활동들을 했는데, 나는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런 활동들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 교회대항 축구대회에 나가서 준우승을 했고, 연극에서는 무려 주연(예수 그리스도 역)을 맡기도 했다. 이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녔지만 나는 아무리해도 신을 믿을 수는 없었다. 없다는 게 너무 뻔한데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나. 그런 나에게 침례(내가 다닌 교회는 세례가 아닌 침례를 했다.)를 받으라는 압력이 들어왔다. 결국 교회에 더이상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친하게 지낸 친구들 중에서 교회에 다니는 녀석들이 많았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기독교 신자가 많은지 참 궁금하다. 대개는 종교를 믿는 건 개인의 자유니까 믿든 말든 나랑은 별로 상관이 없는데, 가깝게 지내는 친구 중에서 몇 녀석은 나를 꼭 교회신자로 바꾸고 싶어했다. 나를 전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도 되는 양, 나를 교회에 데려가고 싶어서 안달하던 녀석들이 있었다. 그러면 끝없는 논쟁이 시작된다. 나는 역사적 사실들을 예로 들면서 기독교의 죄악을 끄집어 내고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친구들은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신을 믿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 끝이 없고 답이 안나오는 논쟁을 한번 하고 나면 그 친구들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때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훨씬 더 유리했을텐데, 앞으로 그런 논쟁이 벌어진다면 이 책을 잘 활용해야겠다. 

'교회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성경공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딴지일보에 연재했던 내용을 엮은 것이다. 연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책을 읽는 중에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는데, 굉장히 전투적인 댓글들이 많이 달려있어서 댓글 읽느라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도 했다.  

이 책은 여러가지 지점에서 재미있다. 우선 미담사라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출판사에서 냈다. 검색해봤더니 출간한 책도 이거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필자는 딴지일보에서처럼 '블루칼라'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저자소개조차도 대단히 평범해서 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전혀 노출시키지 않는다. 30년을 기독교인으로 살았다가 무신론자가 된 40대 초반의 남성이라는 사실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요즘은 블로그 필명으로 책을 내는 경우도 몇 번 본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설정은 좀 낯설다. 기독교인들의 공격을 대비한 의도가 읽히는데, 어쨌든 재밌다. 그다음은 저자의 말투가 특이하다. 딴지일보 특유의 말투로 적혀있는데, 맨처음엔 그게 굉장히 거슬렸다. 읽다보니 적응이 되어서 나중에는 괜찮아 졌다. 재밌다. 이런 말투로 적혀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술술 잘 읽히는 것 같다. 

성경에는 참 의외의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놀라웠다. 레위기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적었다는 부분인데, 그 중에는 참 놀라운 내용들이 있었다. 20장을 보면 간통을 하거나, 친족과 잠자리를 하면 죽이라는 내용이 있다. 짐승과 더러운짓을 하면 죽이라는 내용도 있고, 생리기간중의 여성과 관계를 하면 죽이라는 말씀도 있다. 그리고 동성연애를 하면 죽이라는 내용도 있다. 황당하지 않나. 왜 하나님은 인간의 침대생활까지 이렇게 간섭을 하는 걸까? 게다가 우간다에서는 성경말씀을 근거로 실제로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까지 정해져 있다고 한다. 이건 무슨 말도 안되는 법이란 말인가. 

인간이 종교를 만든 건 아마도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종교는 인간을 억압하고 복종시킨다. 나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제 신에게서 벗어나서 인간을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을 살피고, 가족을 살피고, 이웃을 살피는 삶이야말로 종교에서 말하는 제대로 된 삶이 아닌가. 종교에서 벗어나야 인간이 바로 보인다. 그래야 온전히 제대로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책의 소제목 중에서 '하나님, 이제 인간을 놓아주세요'라는 말이 있다.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찾아가 이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제발 이제 그만 인간을 좀 놓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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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0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무교이지만 종교에 대한 혐오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주위에도
종교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몇 분동안 길게 이야기를 해봤자
답은 보이지 않았던건 사실이었구요. 부제명이 주는 인상이 강렬해서 그런지
책의 내용이 무척 궁금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이조부 2011-01-05 07:03   좋아요 0 | URL


시리스님~ 보통 무교 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종교학자 최준식에 의하면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고 합니다.

무속신앙 을 무교 라고 한다고 하네요.

일상에서 무교 라고 표현할때는 종교 없다 라고 할때 쓰잖아요~

감은빛 2011-01-05 07:25   좋아요 0 | URL
기독교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갖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다른 종교들까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본질적으로 종교가 갖고 있는 순기능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다만 현실에서 종교가 갖고 있는 거대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싫습니다.

이 책 재밌습니다.
저자의 바람대로 기독교인들이 많이 읽으면 좋을텐데,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양철나무꾼 2011-01-05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소망교회 목사,부목사 폭행 사건 뉴스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어요.
이 정도면 '하나님, 이제 인간을 놓아주세요' 가 아니라,
'하나님, 제~에~발 저 인간들 좀 잡아가 주세요'가 아닐까요?^^

다이조부 2011-01-05 07:04   좋아요 0 | URL


모태신앙 인 입장에서 그런 기사를 보면

이제는 무덤덤해질때도 됬는데, 여전히 안타깝네요 휴우

감은빛 2011-01-05 07:28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는 교회가 너무 많아요!
다 잡아가려면 하나님도 엄청 피곤하실 거예요.

매버릭꾸랑님, 모태신앙인은 어떤건지 궁금하네요.

다이조부 2011-01-05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기독교 집안의 자녀들 중에는 시련(?)없이 신앙이 자연스러운 사람은

뿌리가 얕은 사람이 있다고 한탄(?)을 하는데 제가 그런 범주의 사람입니다.

모태신앙인건 불가항력이어서 어쩔수 없지만, 저는 아직 종교가 없어요 ^^

감은빛 2011-01-06 14:03   좋아요 0 | URL
모태신앙이 그런 뜻이었군요.
불가항력이네요! ^^

마녀고양이 2011-01-05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종교가 없다 가 아니고, 어떤 종교도 부정하지 않는다의 무교라 할까요.. ^^
신의 존재에 대해서 논하기에는 우리의 지식이 짧다는 칸트의 신념을 쫒아서.
그런데 말이죠,
교회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너무나 자기들만의 종교라는거죠.
성경 자체보다, 동네 들어서면 먼저 돈으로 땅사서 교회부터 짓고
유치원 운영에 단합해서 똑같이 33만원 회비받는 자체가 보기 싫다는거죠..

다이조부 2011-01-05 13:54   좋아요 0 | URL


철학과에 2년이나 적을 두었는데도 칸트에 관하여 몰라서 쑥스럽네요 ^^

전공공부를 하게 되면 마치 그 분야에 관하여 조금은 아는 것 처럼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랑 같이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던 대학친구는 취업후

회사에서 동료들이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한미관계나 북미관계 그런 거창한

문제에 관하여 물어보면 자기도 잘 모르면서 주워섬겼다고 하더군요 ㅎㅎ

유치원 운영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접하는 이야기 인데..... 음 예수를

따르는 예수따르미 의 삶을 살아야 기독교 신자들이 존중을 받을텐데 내막을

모르지만, 알게되면 속이 쓰린 이야기 일거 같아 겁이 나네요~

그래도 현실을 직시하고, 두 눈 뜨고 알아야겠지만 말이죠....

감은빛 2011-01-06 14:08   좋아요 0 | URL
어떤 종교도 부정하지 않는다는 관점이 맘에 들어요.
저는 근본적으로 신의 존재 자체는 믿지 않지만,
제가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종교는 존재하니까,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가 활동하면서 만나온 여러 존경하는 종교인들은
다른 종교도 인정하고, 함께 활동하기도 하던데,
그런 자세가 모든 종교인에게 필요할 것 같아요!

매버릭꾸랑님 철학전공하셨나봐요.
저도 철학에 관심이 많아요.
담에 입문자를 위한 좋은 철학책 좀 소개해주세요!

2011-01-0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1-06 14:17   좋아요 0 | URL
그 믿음과 믿지 않음의 대상이 누구냐가 중요할 듯 합니다.
요즘 어쩌다보니 종교에 대한 책을 여럿 읽게 되어서,
저도 최근에는 좀 근본적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됩니다.
현재 제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론은,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라는 것이구요.
하나의 종교라는 건 인간이 신을 만들어낼 당시에 권력을 쥐었던 자들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대표적으로 성경을 들여다보면, 고대 유대인들이 사회를 어떻게 통치했는가를 알 수 있죠.
이 책은 그런 지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신을 벗어 나야 인간을 볼 수있다고 한건,
본질적으로 현재 대부분의 종교들이 기득권 층의 지배구조 강화에 일조하기 때문입니다.
신을 위해 바치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추천해 주신책은 한번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이조부 2011-01-08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과에 잠깐 있었어요~

웃긴게 맨날 플라톤 비트겐슈타인 키에르케고르 파르메니데스 ㅎㅔ라클레이토스

이런 철학자들 이름을 자주 들먹이다 보니까 마치 친구처럼 착각이 들어요 ㅎㅎ

물론 고명한 철학자들을 깊이있게 공부 한건 아니고 이름만 익숙해졌죠~ ㅋㅋㅋㅋ

대학신입생 이면 이학사 에서 나온 메타피지카공주 라는 책을 권하고 싶네요.


감은빛 2011-01-10 11:28   좋아요 0 | URL
한두번쯤 들어본 이름들이군요.
친구처럼 생각이 된다니 재밌군요.
저는 사회학 공부하면서 밤낮 맑스, 막스베버, 에밀 뒤르껨, 위르겐 하버마스, 피에르 부르디외 등을 공부했지만, 친구로 여겨지지는 않던걸요.
철학과 사회학의 성격이 달라서일까요?
매버릭꾸랑님과 저의 성격이 달라서일까요?
재밌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1-1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보면 우리가 도저히 지키기 힘든 계율이 많이 나옵니다.

감은빛 2011-01-12 02:56   좋아요 0 | URL
그렇더라구요. 이 책 읽으면서 그런 내용들을 하나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자를 사형시킨다는 우간다 법률은 정말 충격적이더라구요!
 
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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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나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김도사’라고 부르는 녀석이 있다.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어딘가로 떠나곤 했던 날들 때문일 것이다. 내 여행은 늘 갑작스러웠다. 따분한 일상에 지치면 어김없이 떠나고 싶어진다. 나는 계획 없이 그냥 즉흥적으로 떠나는 것을 좋아했다. 술을 한 잔 마시다가 문득 기분이 동하면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서 새벽부터 훌쩍 나서서, 한 열흘쯤 여기저기 헤매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이유는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그 방랑의 시간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영화 <비포 썬라이즈>를 보면,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우연히 여행 중에 만나서 하루 종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아도 전혀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그들의 만남과 대화가 참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우연한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과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여행을 통해 사랑에 빠진 특별한 인연들. 어느 여행에선 매력적인 여성을 만났고, 또 어느 여행에서는 마애불을 만나기도 했다. 언젠가는 그림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어느 날엔가는 책을 만나기도 했다.

어느 날 밤 훌쩍 떠나고 싶은 맘을 억제할 수 없었다. 꼭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았다. 지도책을 펼쳐들었다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기도 하며, 어디를 갈지 고민했는데, 마침 온라인에 접속 중이던 문학동호회에서 지인이 순천으로 오라는 제의를 해왔다. 평소에 그의 글을 좋아했던 지라, 날이 밝는 대로 버스에 올랐다. 순천대 문창과를 다니는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그의 소개로 곽재구 시인과 잠시 말씀을 나누기도 했다. 순천대를 여기저기 돌아보며 일상의 이야기, 문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저녁에는 그의 집이 있는 여수로 옮겨갔다. 돌산공원에서 돌산대교를 내려다보며 뜨거운 문학에 대한 열정들을 토해냈다. 글만 읽었을 때에도 참 섬세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지만, 만나서 한나절을 함께 보내고 보니,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문학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고, 삶에 대한 확고한 자기 생각도 맘에 들었다. 밤이 되어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웠다. 그 역시도 아쉬움이 남은 듯 보였지만,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지는 못했다. 왠지 다음을 기약하는 순간, 지금 느꼈던 이 설레임이 다 사라져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와 헤어지고 후회로 밤을 보낸 다음날 여수 여기저기를 떠돌며 몇 번이나 다시 연락을 해볼까 망설였지만, 결국 발길을 돌려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끔 여수나 순천을 떠올릴 때면, 돌산대교를 내려다보며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을 떠올리곤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처럼, 그렇게 갑작스럽고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몽골의 사막에서 특별한 인연을 만났다. 한국과 일본의 환경단체에서 몽골로 ‘사막화 방지 운동’의 일환으로 생태투어를 갔다. 단순한 참가자가 아닌, 진행요원쯤 되는 역할로 갔기 때문에 이런저런 고생을 좀 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며칠 간의 일정을 마치고, 하루 종일 초원을 가로질러 사막을 향해 달렸다. 저녁이 되어 하라호름의 게르(몽골 천막)에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일본 학생들과 함께 사막을 걸으러 출발했다. 사막은 여름이라도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듯도 했는데, 나는 미처 긴 옷을 챙기지 못했다. 그냥 반바지에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따라 나섰다. 한참을 걸어서 마침내 풀 한포기 없는 사막에 들어서서 밤하늘의 별들과 저 멀리 지평선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간간히 일본 친구들과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로 추웠다.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포를 두르거나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추위를 견뎠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포근히 감싸 안았다. 며칠 동안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던 일본 여학생이었다. 너무 추워 보인다고, 괜찮다면 모포를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나는 입이 얼어서 말도 잘 안나오는 상태에서 겨우 좋다고 대답했다. 한참동안 그에게 안겨있었다. 그의 체온과 모포 덕분에 얼었던 몸이 비로소 풀렸다. 나는 덕분에 살았다고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수줍은 듯 웃었다. 우리는 일본과 한국의 밤하늘과 별자리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고, 또 환경오염과 사막화 현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밟아본 사막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여성과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런 상황들이 묘한 설레임이 되어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울란바토르나 바양고비에서도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서로 마음이 없었다면 이런 인연으로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동안 사막을 서성이다가 다함께 돌아가는 길. 우리는 여전히 모포를 나눠쓰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서로의 보폭을 신경 쓰며, 발을 맞춰 함께 걷고 있었다. 이 밤을 보내고 나면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가서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고 각자의 나라라 돌아가게 된다. 뭔가 말을 해야 한다면 지금 밖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게르에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사박사박 메마른 땅을 밟는 발소리만이 우리를 따라왔다. 잘 자라는 인사와 웃음을 마지막으로 각자의 게르로 돌아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두 명의 특별한 인연을 떠올렸다. 보는 순간 푹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의 사진들을 보면서,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시베리아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막에서는 생텍쥐페리를 읽었다는 저자의 글을 하나하나 꼼꼼히 곱씹으며, 내 지나온 여행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보게 되었다. 작가에게 한동안 잊고 살았던 방랑의 기억을 되돌아보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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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09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자의 독서를 찜해야 하는데,저는 님의 몽골사막이 황홀한걸요~
과연,전 시베리아에선 도스토예프시키를,사막에선 생택쥐베리를 떠올리기나 할까요?
님의 몽골사막에서의 담요는 오래 기억할 것 같네요~^^

감은빛 2010-12-09 11:16   좋아요 0 | URL
이 책 먼저 사진에 끌려서 읽게 되었는데, 글도 좋더라구요.
책을 읽는 동안 지나온 여행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12-09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행을 정말 좋아합니다.
여자라서 훌훌 터는 여행을 못 한다고 하면, 너무 치졸한 변명이겠지요.
여자라는 점 보다는, 항상 현실적인 이유가 먼저였던 듯 해여.
아마 장녀라는 책임감이 먼저였고, 부모님이나 남편의 눈치를 보는게 먼저였겠죠.

제가 제일 먼저 가보고픈 곳은 천연의 자연 뉴질랜드 계곡,
그다음에는 일곱 빛깔을 꿈꾼다는 터키의 바다,
그리고 숨막히는 별을 볼 수 있다는 인도의 사막 패키지,
신비의 문명을 가지고 있는 남미 잉카 유적과 티티카카 호수.

하아. 정말 먼 꿈을 꾸는 아침입니다.

감은빛 2010-12-09 11:2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여성이 겪는 여러가지 차별 중에 혼자, 맘껏 여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죠.
여러 이유로 좋아하는 여행을 많이 못해보셨다니 안타깝습니다.
저는 여행만큼은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여행을 같이하면 피곤하더라구요.
이제는 혼자 여행할 일이 없어졌는데, 가끔 그리울 것 같네요.

아, 마녀고양이님 말을 들으니,
저도 다 가보고 싶어집니다. ^^

마녀고양이 2010-12-09 13:32   좋아요 0 | URL
그래서여,,, 저는
영화관을 혼자 갑니다.... 크크크.

혼자 자유롭게 마음대로 느끼는 그때,
감은빛님은 알고 계시죠?

감은빛 2010-12-09 23:45   좋아요 0 | URL
잘 알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양보하기 어려운 게,
저에게는 바로 여행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영화이겠고, 또 어느 순간에는 독서일 수도 있지요.

저도 한때는 혼자 영화관에 가곤 했는데,
영화관에 안 가본지 좀 되었어요.
아직 아기도 어리고, 여러모로 여유도 없고 그러네요.

stella.K 2010-12-0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러고 보면 인연은 따로 있어요. 그렇게 모포를 같이 뒤집어 써도 아무 일도
없었던 걸 보믄.ㅋ
영화 비포선라이스와 연결을 시키다니!
그러니 누가 감은빛님이 반항남이라고 생각하겠어요?흐흐.
이 책을 놓친 게 아쉬워요. 저도 읽을 수 있었는뎅...잉잉~

감은빛 2010-12-09 23:48   좋아요 0 | URL
언어의 장벽이 작용 할 수 밖에 없었죠.
저는 일본어를 못하고, 그는 한국어를 못하고,
서로 짧은 영어로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공감을 얻었던 것 자체가 참 신기했구요.

이 책 재밌었습니다.
다음에 한번 읽어보세요! ^^

2010-12-09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9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9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9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2-1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 있는, 꼭 가보고 싶은 곳..
마음 속에 숨겨 놓았던 그 장면들을 꺼내게 하는 감은빛님의 페이퍼네요.

여행지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사람. 언젠가 저도 그런 사람을 만난적이 있는데 그 시간을 그 사람은 기억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오랜만에 다시 천천히 글을 읽어 보고 갑니다. 왠지 잠자리에 들면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갈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10-12-14 17:20   좋아요 0 | URL
네, 여행하다보면 소중한 인연들, 특별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더라구요.
그 분도 아마 바람결님과 지낸 시간을 기억하실걸요!
언제 바람결님의 여행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훨훨 간다 옛날옛적에 1
김용철 그림, 권정생 글 / 국민서관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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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생이 아직 어릴때 아버지는 우리를 재우기 위해 종종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는 목소리를 좌악 깔고 '옛날 하고도 아주 아주 머~언 옛날에'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야기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고 '또 아주 아주 아주 먼 옛날에' 그리고 '또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먼 옛날에'가 반복되었다. 내 기억속에 아버지가 해주신 옛날 이야기가 온전히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다. 그저 '아주 먼 옛날에'가 무한 반복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나와 동생은 그래도 무척 재밌어하고 많이 웃었다. 무한 반복 되는 '먼 옛날에'를 들으며 웃다 잠이 들곤 했다.

이제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옛날 아버지처럼 아이에게아이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입장이 되고 보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딱히 떠오르는 이야기 꺼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 흉내를 내었다. '옛날 하고도 아주 아주 머~언 옛날에'로 시작해서 '아주 먼 옛날에'가 무한 반복되었다. 우리 아이도 처음에는 무척 재밌어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똑같은 전개가 반복되면 일단 나부터나부터 지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무렵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일단 내가 재밌었다. 아이에게 읽어주니 아이도 무척 좋아했다. 아이도 나도 옛스런 멋을 잘 살리고 해학적인 느낌이 강한 이 그림이 무척 좋았다. 이 책은 이야기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억양과 운율을 잘 살려서 읽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아이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을텐데도 이 책을 무척 좋아하고 흥미를 가졌다.

계속 읽어주었더니 나중에는 내용을 다 외웠다. 혼자 그림을 보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읽어준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라 말하면서 읽었지만, 혼자 읽기도 여러번 하다보니 내용이 바뀌었다. 아이는 그림을 보면서 원래 이야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이제는 읽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원래 이야기를 잘 못 기억해서 그렇게 읽은 게 아니다. 아이는 매번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재밌었다. 아이의 상상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을 미처 몰랐다. 옛날 이야기 하나 제대로 못해준 못난 아빠에 비하면 얼마나 대단한가.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그 깨달음 이후로 나의 옛날 이야기도 진화했다. 나도 매번 상황을 조금씩 바꿔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녹슬었던 내 상상력에 조금씩 녹이 벗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아이와 내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며 어느 인물을 등장 시키면, 거기에 아이가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고 내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면 다시 아이가 다른 상황으로 몰고 가버린다.

어른의 스승은 아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새삼 그 말이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가를 깨닫는다. 나는 매일 아이를 보면서보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실들을 문득 깨우치게 된다. 소중한 깨달음을 일깨워준 이 책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면 이 이야기를 꼭 전해주고 싶다.


아, 그리고 김용철 작가님 그림이 참 멋지다! 이번에 <너희들의 유토피아>를 읽다가 김용철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이 그림책을 떠올렸다. 마침 예전에 써놓은 글을 알라딘에 등록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서 옮겨본다. 약 2년전에 적었던 글. 내년이나 내후년쯤 둘째아가가 자라면 또 이 책을 열심히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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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2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통해 우리의 성장도 계속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그럴 때면 아이에게 감사하고, 또 가족 모두 무탈해서 감사하고...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아이는 뭐가 달라도 많이 다를꺼야!
^^

감은빛 2010-11-25 19:38   좋아요 0 | URL
네, 아이들 덕분에 저도 늘 새롭게 뭔가를 배웁니다.
요즘 아빠들은 다들 책 많이 읽어주는 것 같던데요.
저는 오히려 많이 안 읽어준 편입니다.
책은 주로 아내가 많이 읽어줬죠.
 
이야기로 이해하는 5대 종교 이야기
지그리트 라우베 지음, 김준형 옮김 / 새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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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신론자다. 신이라는 절대자를 믿지 않는다. 혹자는 내가 '빨갱이' 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나는 빨갱이가 되기 훨씬 더 오래전부터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았다. 어째서 사람들은 신이라는 거짓 허상에 목을 매는 걸까? 참 궁금했다. 그래서 엄마를 따라서 절에도 다녀보고, 친구들을 따라서 교회에도 다녀봤다. 아무리 이해해보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군대에 있을 때에는 쵸코파이를 얻어먹으러 주말마다 성당에 다녔다. 말년 즈음에는 드럼을 배워보고 싶어서 다시 교회로 바꿨지만, 그때까지는 아무리 지겨워도 열심히 성당엘 가봤다. 역시 신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 4대 종단 중에서 원불교를 제외하고 다 다녀본 셈인데도,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내가 무신론자가 된 이유, 그리고 점점 더 강하게 종교를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극성맞은 한국 교회 때문이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교회에만 다닌다면 천당에 가고,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그런 억지가 어디있나? 그런 목사의 설교는 면죄부를 팔았던 중세시대 성직자들과 뭐가 다른가?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으면 천당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에 나오면 천당간다고 말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교회에 와서 돈을 내고 면죄부를 사라는 얘기 아닌가? 주일에 교회에 안나오면 무슨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설교하는 양반들 참 많이 봤다. 그리고 다들 참 열심히도 교회에 다닌다. 얼마나 생산성이 좋은지 자고 일어나면 교회 십자가가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동네를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교회 십자가들을 세어보다가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자꾸만 사업체를 확장하는 우리 목사님들. 참 대단한 것 같다. 뭐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사업체니까, 생산성을 높이려는 사장의 노력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기 마련이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장과 신자들을 쥐어짜는 목사. 닮지 않았는가?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결코 아닐것이다. 이 썩어빠진 한국 교회에도 제대로 된 목사님이 당연히 계실 것이다. 실제로 손에 꼽을 정도의 분들을 알고 있고, 그분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막상 단군상의 목을 자르거나, 이슬람 지역에 선교를 갔다가 납치를 당하거나, 붉은 악마의 유니폼 색깔로 트집을 잡거나 하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꾸만 모든 교회를 싸잡아 욕하게 된다. 특히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그 분. 내 허락도 없이 나를 하나님께 바쳐버린 그 분이 삽질을 강행하고, 황당한 짓을 반복할 때마다 교회 십자가만 봐도 욕이 나온다.

나는 이렇게 한국 기독교(혹은 개신교)에 대한 불만이 많다. 사실 로마 교황청에서 갈라져나온 여러종파들 중에서 한국적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파를 만들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은 이 종교를 이해하지 못해서 참 힘들었다. 이해해보려고 성경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무지 성경말씀을 따르지 않으면서, 무조건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원장선생님과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교회 신자다. 어린이집 행사를 교회에서 열기도 한다. 아이의 친구 중에는 교회에 다니는 아이가 많다. 어느날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 왜 우리는 교회에 안가요?' 나는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망설였다. 먼저 종교가 뭔지 알려줘야 할 것 같고, 그 다음에 여러 종교 중에 하나인 기독교에 대해 알려줘야 하겠고, 그런 다음에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종교인 한국 교회에 대해 알려줘야 할텐데, 이 긴 얘기를 어찌 들려줘야 할까 고민했다. 결국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만족할만한 답변을 주지 못했다. 

만약 그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훨씬 더 잘 설명해줬을 것이다. 유대교를 믿는 시몬, 기독교(가톨릭과 기독교 통합)를 믿는 카차, 이슬람교를 믿는 알리, 힌두교를 믿는 랄리타, 불교를 믿는 조남이 학교 숙제로 각자의 종교에 대해 발표 준비를 하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세계 5대 종교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종교를 이야기 하는 책이 있다니 참 놀랍다. 

 

 

  

 

 

 

 

 

 

 

 

 

 

 

글쓴이 지그리트 라우베라는 사람이 여섯개의 나라에서 자라서 다섯개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소개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많은 문화를 접하고 살았기에 다양한 종교에 대한 이해가 깊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종교에 대한 쉽고 친근한 설명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두번째 장점은 편안하면서도 정확한 묘사가 일품인 그림에 있다.  모니카 친트의 그림은 느낌이 참 좋다.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종교에 대한 그림으로 딱 맞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설명과 그림으로 알기 어려운 부분들은 사진으로 보충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명한 각 종교의 성지를 사진으로 찾아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아이들이 종교에 대해 편견없이 이해하고, 서로의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하려면 이 책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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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2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갱이가 되기 훨씬 더 오래전부터...'?
푸하하~~
인간이 살다보니 필요에 의해 생긴 게 종교인거지, 종교가 먼저는 아니니까...
ㅎㅎ저도 무신론자이고 또 언제까지가 될 진 모르겠지만...당분간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감은빛 2010-11-25 01:08   좋아요 0 | URL
어디가서 무신론자라고 하면,
빨갱이에 유물론자라서 그렇다는 말을 자주 듣거든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어요.
그 어린 나이에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참 어리석어 보였거든요.
한마디로 건방진 꼬맹이였죠. ^^

2010-11-24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0-11-25 01:09   좋아요 0 | URL
제가 책 소개를 조금 요상하게 했지만,
책은 참 좋은 책입니다.
특히 이슬람교와 힌두교에 대해서는 모르던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2010-11-24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5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0-11-24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예쁘네요.
저도 무신론자가 좋고, 또 편하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감은빛 2010-11-25 01:13   좋아요 0 | URL
그림 좋죠!
내용도 꽤 괜찮습니다.
여러모로 참 좋은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