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인간 -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지음, 김찬호 옮김 / 민음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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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을 이제 조금씩 조금씩 접해 가고 있는 나는 비문학 특히 문화 인류학 방면에 대한 흥미를 좀 갖게 되면 좋겠다 하고, 그 방면의 책을 고르려 했던 시점에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책이 그야말로 대중성과 전문성이라는 두 가지를 제대로 소화시켜 주는 문화 인류학 책이라하니....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이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글자를 감상했다고 말하는 쪽이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아쉽게도 이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 중에, 내가 흥미와 이해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절반 정도이다. '우리는 왜 과식을 하는가', '우리는 왜 잔치를 벌이는가', '우리는 왜 뚱뚱해지는가', '왜 여자들의 가슴은 늘 풍만한가', '근친혼을 금지하는 유전자가 있는가', '남자는 여자보다 공격적인가' 등등은 재미를 갖고 읽었지만, 다른 주제들은 소화하기 어려웠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는 두가지가 있을 것 같다. 하나는 102가지의 주제 각각이 주는 느낌은 흥미로왔음에도 독자인 본인의 배경 지식의 저급함 때문이었던 것 같고, 두 번째 이유는 글쓴이의 글쓴 방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떤 현상에 대한 해석이나 이론을 두고 해리스는 그 논리적 타당성을 치밀하고 집요하게 점검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암묵적인 전제, 너무나 당연시되어 제기되지 않았던 문제, 거의 무의식적으로 지속되는 고정관념 등을 새삼 꺼내 검토한다. 이리하여 같은 사물에 대해 전혀 다른 접근의 방식이 있음을 보여 준다. 한마디로 결론이 없으니, 뭘 최종으로 수렴해야 할지 이분법에 익숙한(인류의 문화는 크게 미개와 문명이 있다고만 사려하는) 독자는 당황을 하는 것이다.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오지 탐험과 같은 프로에서 나오는 기이한 장면들을 유람하듯 즐겨 보며, 호기심을 갖는 수준의 이 독자가 인간의 다양한 생존 경험을 생각해한다며 인류학 책을 뒤적이기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은 느낌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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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여자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1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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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서 보면 무척 탐은 나는데 끝끝내 내 돈으로는 사들게 되지 않는 책이 있다. 이 책을 펼쳐드니, 정말 좋은 그림들 옆에, 읽기 좋은 편집으로 마련된 글줄들이 있었는데, 왠지 보기 좋고, 듣기 좋고, 향기 좋은 꽃과 같은 이야기들만 풀어놓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 거라면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디에도 너절하게 많으니까. 그런데 어쩜, 이 책 안의 정말 잘 골라 놓은 그림들에 내 감성이 승복하고 주머니가 열리게 되는 상황이 결국 벌어졌다.

어떤 평론가가 이 책에 대해 평을 해 놓은 것을 보니, 남들과 다른 세상에 대한 관찰력과 애정으로 삶 속의 테마들을 그림을 빌어 얘기한다고 했지만, 글쎄 퍽이나 남다른 관찰력과 생활의 통찰력을 반영한 것인가, '에이~! 그건 아니다.' 라는 말부터 나온다. 뭐랄까. 그녀의 글들은 확 트인 너른 벌판을 앞에 두고 나즈막한 산자락을 뒤에 둔 아름다운 경관을 갖춘 전원 주택에서의 그림 같은 삶에나 어울릴 법하다.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가도록 애틋하기 그지없는 사람과 함께, 흔들리는 촛불 하나를 테이블 위에 켜고, 예쁘장한 머그컵 안에 향이 좋은 커피를 담아, 한 모음을 입 안으로 밀어 넣고 나서 곁들일성 싶은 글귀들이었다. 이러하니, 그녀가 국내 최초의 전문 미술 엠씨라 했던가,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송'은 잘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의도는 아마도 그림과 관련된 개인 일화나, 개인적인 생각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조명해 보고, 그렇게 엮여진 이 책이 독자들에게 예술의 또다른 이름인 '그림'이 친숙하게 다다갈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담긴 것으로 사려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은 글들대로 겉도는 듯, 그럼에도 그림은 그림대로 퍽 잘 다가온다. 글과 그림의 매치가 나에게 유독 잘 안 되었던 건 아마도 그녀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진심으로 빠져들지 못하기 때문인가 보다. 책의 뒷부분에 부록처럼 '젬마가 가져온 이국의 향기'라는 챕터가 있다. 그림 감상 하다가 뜬금없이 왠 이국타령이냐 싶었지만, 이 부분도 어찌됐든 눈은 즐겁다. 저자가 3주간 신혼 여행을 겸한 유럽과 미국 미술관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이라고 했다. 흠... 부럽군...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점은 '미술 작품 감상' 하면, 흔히 보아왔던 외국의 명화뿐만 아니라, 국내의 군소 작가들의 좋은 작품이 많이 소개되었다는 점이었다. 김성호의 '가을의 복병', 박항률의 '유혹', 강운의 '밤으로부터', 김재홍의 '거인의 잠', 김원숙의 '균형잡기' 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들이 이 책에서 만난 멋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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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 맞은 영혼 -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장현숙 옮김 / 궁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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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엠의 'everybody hurts'라는 노래를 들으면,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고 나직이 읊조린다. 굳이 이 노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잘 안다. 사람이란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인가를.서평에 대놓고 돌이켜 보기엔 좀 뭣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나온 상황들과 이론들을, 골백번도 더 나의 지난 경우들에 대입해 보게 되었다. 내가 대인 관계에서 가장 '맘 상하기'를 곧잘 했던 시절은 대학 다닐 적이었다. 이상하게도 매사에 자신이 없던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는 말은 아예 입 밖으로 내지를 않았고, 그래서 말수는 당연히 적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해 주었을 법한 친구의 충고에도 쉽게 맘이 상했다. '이런 나의 모남과 여림을 가장 잘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던 너조차 나에게 비판을 하다니......'라고 생각하면서.

그 당시 나의 '친구'에 대한 정의는 '나에 대해 무조건 동조해 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자신감 없음과 열등감으로 뭉쳐 있던 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존심 마저 버린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보기에 자존심이 무척 세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갖고 있어서, 마음을 다치는 일도 상대적으로 적은 '진정한 자존심'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동정하고 마음 다칠까봐 두려워 맘을 꽁꽁 애워싸기 일수인 '자기애적 자존감(이 책에서 말하는)'이었다.
나 또한 이 세상에 흔하게 있는 환자 중에 하나였다. (지금은 극복하려 노력 중이고,) 이렇게 마음 상함을 상습적으로 겪곤 하는지라, 이 책의 저자가 내 이웃의 잘 아는 언니 같았다면, 아마 문지방 닳도록 이 댁을 방문해 조언을 얻었을 법하다.

저자는 상처를 잘 받는 체질(?)의 성인으로 굳어지는 것의 최초 원인을 어린 시절의 경험에 둔다. 아이는 엄마와의 유대감을 경험하면서 자신에 대한 좋은 인상, 자존감,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생길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선하며 그들이 자신을 도와 줄 거라는 믿음이 뿌리내리게 된다고 한다. 인성은 바로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반대로 아이 적부터 착취당하거나 경멸받고 냉대받거나 무심하게 홀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면, 이 어린 영혼은 앞의 예와 반대 현상을 나타내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부모 노릇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사실 이 점 때문에 또 한가지 의혹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지나치게 모든 인성 장애의 요인을 그 사람의 어린 시절에 두고 있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그녀의 임상 사례의 유형은 대체로 이렇다. 한 여자가 있다. 이 여자의 애인이 갑자기 그녀를 떠나버린 것이다.(물론 이 여자의 입장에서의 해석이 그렇다.) 이 여자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조금만 무심해도 화를 낸다. 그런데 상담자(저자)가 진단한 그 내상의 원인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그녀의 부모는 끊임없이 그녀를 통제하면서 그녀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게 했다. 이런 어린 시절 겪었던 실망감 때문에 정도 이상의 상처를 받고 심하게 화를 내는 인격 장애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설혹 유년 시절을 잘못 보내, 인성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지나온 유년 시절이 아닌가. 비디오테이프처럼 되감기를 해서 당시로 돌아가, '엄마 아빠에게 저를 이렇게 홀대하거나 엄하게 윽박지르지 말아 주세요...제 인성에 이러이러하게 좋질 않네요...' 라고 조언을 해 주고 다시 새로운 유년기를 보낼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상처받은 영혼을 어떻게 치유해 주나, 저자는 말한다. 상대에게 '마음 상했음'을 말로 고백하는 것, 관계를 끊는 대신 거리를 두기, 자존감을 확립하기, 공감과 화해를 이루기, 그리고 희망...느긋함....

 

'우리는 서로에게 과도한 기대로서 존재한다. 과도해지지 않으려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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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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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부터 한비야의 책을 읽었다. 이번 편은 중동과 아프리카 편이다. 보통 여행기 에세이는 장소만 달리하고 그 밥에 그 나물 타령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한비야 님이 쓴 여행기의 경우는 '오지로 갈수록 사람들의 인정은 더 훈훈하고 소박한 것에 기뻐한다.' 라는 명제가 항상 깔린다. 그럼에도, 읽고 또 읽고,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주기적으로 한비야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왜 일까.... 그의 여행기에는 항상 자신감이 뭍어나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정말 별의 별일이 다 벌어지게 마련일터이다. 그렇게 수많은 어려움과 특이한 상황을 겪어내면서, 비야님은 이제는 어떤 일이 닥쳐도 어렵긴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단단히 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여행기도 여행기지만...사실...저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항상 주먹을 그러쥐게 된다. (물론 일면의 한비야는 너무너무 비위가 좋고, 지나치게 낙천적이며, 겁날 만큼 화끈해 보여서 약간의 거부감도 생기게 하지만 말이다.)

한비야라는 사람의 프리즘을 통과해 그려진 중동과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대체로 소박하고 따뜻하게 보였다. 워낙에 한비야는 인간의 정을 포착해 내는데 기민한 사람 같기도 하다. 뭐, 모스크바에서는 그 곳 사람들의 무표정과 무관심 무반응에 당황하기도하고, 각 나라를 거칠 때마다 시시종종 불친절한 세관들과 무섭게 싸우고 서로 을러대며 국경을 간신히 넘어다니곤 했지만 대체로 이 지역 구비구비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비야에게 제2의 엄마, 아빠, 동생들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좀 유명하다 싶은 관광지엘 가면 한비야가 항상 듣는 인사말이 곤니찌와란다. 지금이야 덜하지 싶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 배낭 여행객들이 흔치 않아 있었던 일일 것으로, 앞으로는 경험을 자산으로 여기는 피끓는 우리 나라의 젊은이들이 많이많이 세계에 여러 곳을 두루 보고 견문을 넓힐 기회를 가졌으면,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경제 사정에 차별을 두지 않고, 여행을 떠나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7박8일 모스크바에서 시작해서 동으로 동으로 블라디보스톡까지 만여 킬로미터를 가는 여정에 관한 것이었다. 아, 그런데 한비야는 이 기차 여행의 마지막날, 기차 멀미와 여러 가지 여독 증세가 겹쳐져 앓아 눕게 되고, 한국 땅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기운을 차리려 애를 쓴다. 역시 사람이란 여행을 떠남과 동시에 가족의 소중함과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에 대해 안도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비야는 서른 일곱에 이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가로질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 이 것이 그렇게 먼 이야기도 아닌 것이, 북한을 관통해서 연해주까지 올라가면 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톡이 코 앞이다. 게다가 북한과 손잡은 철도 산업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요즘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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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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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중세 수도원이다. 주인공 수도사 '나'가 또다른 주인공(?)인 어느 연금술사 피에르 뒤페를 만나면서 사건(어쩜 사건이라고 붙일 수 있는 이 소설의 줄거리 자체보다 '나'의 의문들과 호기심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는 것이, 이 작품에서 더 건질만한 무엇인지도 모르겠다.)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나'는 먼저 연금술사의 강인하고 총명한 모습에 반한다. 그에게서 정신의 위대함을 통찰한다. 그러면서 연금술에 수행되는 이교 철학에 호기심을 느끼는데 이 과정에서는 속속 빨려들듯 읽힌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이 연금술사 피에르가 숲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 어느 동굴로 향하는 그의 뒤를 밟게 되는데.....

스티븐 킹의 원작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보면 일식 때에 생기는 잠깐의 어둠을 틈타 아내(클레이본의 엄마)는 시시종종 자식(클레이본)을 성희롱하던 주정뱅이 폭력 남편이 구덩이에 빠져 죽게 만든다. 일식 때에서야 심판 받아 마땅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죄의 대가를 치루게 되었다는 설정으로 보여 진다.
이 소설에서의 '일식', 태양과 지구 사이에 달이 들어가서 태양빛에 의해서 생기는 달의 그림자가 지구에 생겨 태양이 보이지 않고 깜깜해지는 이 때는 어떠했던지....
수도자이면서 동시에 이단자인 '나'. 상반된 두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는 '나'처럼, 남자인 동시에 여자인 안드로규스의 어마어마한 실체가 만천하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것은 영(靈)인 동시에 육(肉)이며, 태양과 달 그 둘의 결합이기도 했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 주제다. 상반된 것들의 결합과 관한 것이라니, 그래서 이 소설의 문체가 현학적인 포즈를 취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혹 이제 막,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을 접하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의 작품 <일식>을 읽은 다음에, 이후 작품인 <달>을 읽는 것이, 작가의 행보를 관찰하기 좋을 것이라고...... 바꾸어 말하면 <달>이 <일식>보다는 좀더 다듬어진 수작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일식>은 <달>에 비해 작품의 뒷부분이 주제의 무거움(영혼과 육체, 남자인 동시에 여자, 금단의 지식 등등)에 깔려서 엉성함을 면치 못했다는 혐의를 남긴다. 그럼에도 <일식>이 아쿠다카와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또 이 작가의 첫 작품이었기 그런지 뒷부분에 심사평과 작가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염불 보다 잿밥에 더 구미가 당겼던지, 본 작품보다도 이 글을 쓴 어린 작가가 어디서 튀어나왔으며, 어떤 생각을 갖고 무엇무엇을 준비한 끝에 이 소설을 썼으며, 종합하여 어떻게 생겨먹은 작가인지를 말하는 그 부분이 더 읽는 재미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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