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 언어철학
이규호 지음 / 제일출판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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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좋은 말은 인생의 무거운 짐도 가볍게 하고, 어두운 괴로움과 슬픔을 꿰뚫고 밝은 희망을 가져 올 수 있다. 그야 말로 말이 갖는 힘의 위대함을 실감하게 하는 속담이다.

우리 생활의 주변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같은 말을 해도 정말 밉고 짜증나게 하는 사람 말이다. 그 사람의 목소리와 그 사람이 전달하는 말들을 항상 접하며 생활해야 하는 우리는 그나마의 불쾌함과 껄끄러운 감정을 조금이라도 덜며 생활하고저, 두 가지 중에 하나의 길을 택해야만 할 것이다. 그 사람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거나, 간도 쓸개도 빼 놓고 허허실실 좋게좋게 들어 넘기거나.

그런데 전자의 방법은 조금 위험 부담이 따랐다. 그는 대개 사회 생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일 때 나는 '말의 힘'이라는 절대 노골적이지 않으며, 조금은 고급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은 초월한 위치에서 짜증나게 하는 상대방의 말을 낯색을 구기지 않고도 잘 받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큰 범위로 분류하자면 '언어 철학' 관련 책이다. 그러나 생각처럼 그렇게 딱딱하지않고, 말과 기호, 심리 현상, 생각, 얼, 논리, 삶, 사람됨, 교육, 철학 등등과의 관계를 주제로 쉽고 자세하며 적절한 예로 설명을 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단숨에 넘겨 읽는 책이 아니라 오래 두고, 다시 찾아가며 읽을 성질의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그야말로 사람됨을 이룩한다고. 인간은 미리 선천적으로 완성된 고정적인 본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언어를 발전시키면서 자신의 본질을 형성해 간다. 말이 가벼운 사람은 그의 사람됨이 가벼운 것이며, 말이 무거운 사람은 그의 사람됨이 무거운 것이다. 말에 조리가 있고, 분명한 사람은 그의 사람됨도 조리 있고, 분명한 것이며 말에 두서가 없고 애매한 사람은 그의 사람됨도 두서가 없고 애매하다.

이것은 말을 위한 말을 의식적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수식하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꾸민 말은 알맹이 없는 빈말이며, 빈말은 빈 사람을 만든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들어맞는 알찬 말이 중요하다. 언어를 위한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실을 지향한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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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자의 노래 1
마루야마 겐지 지음, 조양욱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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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루야마 겐지가 좋다. 소설가로서 사는 삶의 방식이 멋지다는 생각에서다. 자연으로 돌아갔고, 소설쓰는 일 하나만을 지향하며, 일체의 잡다한 관계들을 과감히 끊을 줄 아는 방식이 멋지고, 자연에 돌아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원의 삶에 일체를 이룬 양, 굴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이 책은 1, 2권으로 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책을 신청했는데, 받아보니 시리즈 도서를 1권만 주문한 것이 되었다. 1권을 읽다가 재미가 없으면 2권은 사보지 않겠노라 생각했다. 시작부분부터 내가 맘에 들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마루야마의 전신의 모습을 한 주인공이 나온다. 그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도시에서 궁핍하고, 황폐하며, 피로한 어느 폐가에서의 생활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접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것이 소설 초반의 설정이다.

주인공은 자아를 찾아 방황한다. 그는 그러니까 '육체를 갈아없앨 정도로 강렬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이기를 희망하고, 그것이 꼭 반영된 작품 <도망치는 자의 노래>를 완성하려 하지만, 젊은 나이임에도 그는 때때로 인생 따위는 어차피 심심풀이이거나 시간 죽이기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연한 일이 거듭 쌓인 것이 추억의 환영이 되고, 그것이 다시 쌓여 이 세상을 산 증거인 착각이 될 뿐이라고.... 그러다가 자신의 이상형이 투영된 듯 보이는 자형(누나의 남편)을 멀리서 보게 되고 그와 접촉을 시도하려 애쓴다.

마루야마는 이 작품에서도('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가 그랬듯이) '자유'를 소중히 다루려 했던 것 같다. 주인공은 '자유'를 구가하는 삶을 바라마지 않았지만 쉽지가 않아, 그의 역할 모델처럼 '자형'이 등장한다. 자형은 일본이라는 전체주의 국가 체제를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일으킬 줄 아는 '큰(?)' 인물됨이며, 수도승처럼 수행하는 것처럼이라도 해서라도 자유를 그토록 구가하고 싶어하는 주인공에게 자형은 사실 하나의 '심볼'이며, 역할 모델이고, 선의의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자형의 정체가 드러나려 할 즈음 책은 2권으로 이어진다. 자형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다시 2권을 주문.

툭 까놓고 말해서, 2권부터는 1권에서의 서슬퍼런 독백들의 재탕이라는 느낌을 준다. 나온 주인공의 날선 각오와 내면의 독백, 그후 앞의 결심이 무색할 정도의 지리멸렬한 생활의 모습, 그런 자신에 대한 자책, 혐오의 말, 작품 도망치는 자의 노래를 완성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번민 등이 반복되고, 간간히 가뭄에 콩나듯 번쩍 하고 자형의 기행(奇行)을 목격하며 가슴 한 켠에 시심을 키우곤 하지만 곧 좌절감을 느끼는 둥 말이다. 마루야마가 다음 책에서는 자유 말고 다른 주제를 다뤄 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한다. 굳이 또 '자유'를 노래하고 싶다면 직설적이고 방만한 독백투가 아닌 다른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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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사랑하라 - 20세기 유럽, 야만의 기록
피터 마쓰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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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하고 명쾌한 비유로 쓴 현장감을 담은 이 글.... 피터 마쓰라는 기자의 글은 정말 침이 꼴딱꼴딱 넘어갈 만큼 박진감 있게 읽혔다. 그리고 목구멍 저 밑에서 멍멍한 울림이 왔다. 뒷골은 딴딴하게 당겨 왔다. 피터 마스는 아침에 일어나 눈뜨고 눈감을 때까지 전개되는 살육과 야만의 현장에서 2년 동안을 종군 기자로 지냈다. 과연 얼마나 온전한 정신으로 기록을 할 수 있었을지, 사라예보의 호텔방에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내전의 살육 장면을 '생각하는 조각'처럼 턱을 괴고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기자 동료들의 모습에서 '전쟁포르노'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피터 마쓰에게(이 책에서 그도 밝힌 바 있지만), 보스니아 종군 기자 체험은 그의 생애와 정신에 많은 영향을 남겼고, 앞으로도 남기리라.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경제적 풍요를 누리던 유고 연방.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인은 종교는 달라도 같은 슬라브 계통이며,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이웃집에서 오순도순 살았었다. 오랜 옛날부터 민족간의 분쟁이 종종 있었다지만 근대에 접어들어서는 그것도 옛말이었다. 그렇게 민족간에 통혼도 하면 정 좋게 지내던 어제의 이웃이 오늘은 야수가 되어 문명과 야만은 한 끗 차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인공 청소와 강간 살인으로 흉폭한 광기를 부리다니, 이런 왕경우의 인과 관계가 퍼뜩 와 닿지 않는 듯도 하다.

그러나 '전쟁 전의 평화'와 '전쟁 후의 동물보다 못한 야만의 참상' 의 그 중간에는 이것이 있었다. 사회주의권 붕괴 뒤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정치인들의 '민족주의' 악용이 있었다. 그리고 불난집에 부채질 하는 격으로 부시와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국제 연합의 수수방관이 겹쳐졌다. 미국인 기자인 필자 피터 마쓰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사이의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자국의 정치 대표에 대해 절망했다. 세르비아인들의 대다수가 야수가 되어 설쳐댄 것은 아니다. 극소수의 몇몇은 보스니아인들을 도왔고, 몇몇은 그러한 사태에 무력한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세르비아인들은 문명인이다. 우리도 문명인이다.'→ '그런데 세르비아인들은 보스니아인들에게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듯한 야만적인 일들을 저질렀다.'→'따라서 '문명인들은 곧 야만인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우리의 실체가 야수였다는 것도 간담이 서늘할 일이지만, 진정으로 무서운 존재는 정치적 지도자이고, 그 하수인들이다.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큰 도덕은 전쟁을 거부하는 것이라지만, 평범한 개개인의 차원에서는 지켜내기가 너무나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전장터라는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내가 먼저 총부리를 겨누지 않으면 상대가 언제 나를 쏠지 모르니, 자기 목숨을 방관하고 있기는 쉽지 않을터다. 지금 여기서 세르비아인들을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는 건 아니다. 그들을 잔인하고 흉폭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일을 몰아간 원흉을 찾자면 세르비아의 대통령 밀로세비치나, 외면하는 국제 연합 측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정치적 야심에 따라 국민들이 희생양이 되어, 우습고도 어처구니없게 농락을 당했을 뿐일다.
어느 지도자의 야심과 그 분탕질치고는 희생과 여파가 너무나도 크다는 데에 크나큰 슬픔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민족주의적 갈망들이 최고조에 이른 사건. 처음 불꽃을 일으킨 것은 합스부르크 제국에 대항한 세르비아의 민족주의. 서로 대립한 독일 민족과 슬라브 민족주의적 충성심에 불을 지핌(이 전쟁들은 프랑스 혁명이 남긴 이데올로기의 잔재로 봐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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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스미스 W. Eugene Smith 열화당 사진문고 12
샘 스티븐슨 지음, 김우룡 옮김, 유진 스미스 사진 / 열화당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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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맨 앞장에서 펼치면 작가 유진 스미스의 생전 모습이 전면으로 나온다. 학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털보아저씨다. 그리고 간략하나마 그의 생애에 대한 글줄이 나온다.

'만약 어떤 예술가가 고통받는 사람의 일그러진 표정을 부드럽게 고치고, 늙어 하찮게 된 사람을 곱게 그려내며, 도착된 현실의 끔찍함을 완화된 모습으로 표현한다면, 또한 대중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현실을 덮어 가장하고 부드럽게 그려낸다면, 그 예술가는 추악함을 창조해내는 사람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가 그리하는 것은 진실에 맞서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는 유진 스미스.

그래서일까....그를 형용하는 그 글에는 그가 얼마나 독립적인 입장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는지를. 그리고 사진에 대한 강박적인 몰두로 인해 약물에 의존하는 그의 황폐한 일상을 말하기도 한다.

모과이의 음악을 들으면서 유진 스미스의 사진집을 들여다본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찮은 사진을 보려면 음악부터 찾게 된다. 시각과 청각은 노선을 같이 하는 모양인지, 이 사진집엔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선 모과이다.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점.
1951년 스미스는 사우스케롤라이나 주의 시골로 가 몇 주를 보낸다. 거기서 그는 궁핍한 이웃들을 찾아다니던 흑인 조산사 모든 캘런을 따라다닌다. 무제(꽃을 들고 집 입구에 서 있는 조산사 모드의 근접 사진)는 캘런의 사진이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 나오던 카페 여주인이 생각난다. 그녀의 얼굴과 시선은 정면에서 많이 비껴나 있다. 왕진 가방처럼 생긴 것을 안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일상의 고됨이 묻어 있다.

유진 스미스의 사진엔 유독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오를 것을 배경으로 하는 사진이 많았다. 공업의 발전과 그만큼 영향의 입게 되는 주변 환경과의 상반 관계가 우울을 품은 공장 굴뚝 연기에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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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1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인간에게 아주 소중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다는 말로 학생들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음...! 잊고 있었던 것을 상기시켜 주고 가시네요~
 
마님되는 법
진산 지음 / 부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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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은 무협 작가라던데.....작품을 읽은 게 없으니 마님의 필체를 알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가 상당히 재밌어서 믿고 고른 책이다. 또, 마님이 되는 비법도 좀 얻어 듣고자 했던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삼돌이는 아무나 될 수 없으며, 진산 마님께서 말하는 좋은 삼돌이의 조건은 따로 있었다. 각지고, 거짓말 안하고,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 진산이 주로 말하는 것은 이런 삼돌이의 조건을 갖춘 자와 결혼이라는 종신 계약을 통해 어떻게 서로를 마주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삼돌이 입장이야 어떨지 모르겠으나 필자인 마님의 관점에서 읽어서 그런지, 둘의 관계에서, 마님 쪽이 조금 더 지혜로워 보인다. 삼돌이가 결혼의 이상을 잊지 않게끔 시종일관 구슬리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뭐, '마님과 삼돌이'라고 해서 한쪽을 휘두르고, 이 책에서 말하는 부부 관계가 한쪽은 복종만 하는 그런 관계는 결코 아니다.

진산은 어린 자식과 성질 좀 있는 남편을 둔, 그리고 부부 작가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마님이 애를 낳을 때 이야기, 그리고 여러 치과를 전전했던 이야기가 특히 재밌었다.)들을 입담이 좋게 풀 줄 아는 재미있는 작가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산 마님이 내가 아는 친구이거나, 선배이거나 였다면 참 경제적이었겠단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이런 이야기들은 지면을 빌어 듣는 거 보담, 직접 듣는 게 훨씬 생생하고 재미있으니까 말이다. 또, 굳이 팔천원이라는 거금을 들이며 읽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즉, 본전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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