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가] 나무 뒤에 숨은 사람 - 정갑영의 풀어쓰는 경제 이야기
정갑영 지음 / 영진팝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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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노동자/엿새 동안 일하고/하루는 쉬는/우리와 꼭 같은 노동자/예수는 맨발의 청춘/빈손 들고 뛰는/ 찢어지게 가난한 노동자였다.

아버지를 잘 따르던 예수는/어려서부터/손바닥에 못이 박히도록/가난한 가업인 목수일을 했다./때로는 터무니없게/ 세금을 매기는 바리새인이나/로마의 깡패 가이사 것들을 향하여 /두 주먹을 부르르 떨기도 했지만/그들을 미워하는 것은/바윗돌에 계란 던지기/ 차라리 원수를 사랑하기로 했다.......

이 시는 정대구의 '인간 예수'라는 시로, 이 책에서 '공평세'라는 쳅터를 설명하기 위한 부분에서 도입시로 나온 것이다. 인간 예수도 터무니없는 세금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듯, 쥐꼬리(월급)로 살아가는 독자도 월급 명세서를 받을 때마다 흥분한다. 그러나 세금을 매기는 자를 미워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것이다.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를 빠사하게 알리란 어렵지만, 이렇게 대강대강이나마 훑어주는 책이 있어, 흥분을 가라앉힌다. 역으로 내가 적으나마 내것으로 가질 수 있었던 이유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공평히 돌아가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을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양자가 이익을 더하고 손해를 줄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경제적 감각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도가 아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학에 관련된 서적인데, 제목 '나무 뒤에 숨은 사람'에서는 '경제'의 '경' 분위기도 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이 책의 제목은 러셀 롱의 시 '당신에겐 세금을 물리지 말고/내게도 물리지 말고/ 저 나무 뒤에 숨은 사람에게만 물리시오.'에서 왔다.

저자는 나무 뒤에 숨은 사람이란 '경제라는 숲 속에서 나무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 그러나 숲 속의 나무들과 같은 존재로, 나와 당신 그리고 즉 꼬박꼬박 세금을 물고 살아가는 국민들을 말한다. 그리고 시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경제 속에서의 게임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무 뒤에 숨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더 풍요로와진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 글이 재미있었던 것은 그가 경제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사회 문화 영화 뉴스거리 등 제반의 것들을 끌어다가 적용하여 설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테면 맨 마지막 장의 '알래스카의 교훈'에서는 '국민적 여론의 아이러니한 실체'를 역사의 교훈과 우리 나라의 경제 정책 사례에서 찾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67년 미국의 국무장관이던 윌리엄 스워드는 8년의 걸친 끈질긴 노력과 확장 정책 끝에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제적 입장과 달리, 당시의 미국 분위기는 지구상에 필요없는 땅덩이를 매입했다는 비난의 여론이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평생 동안 실정의 부담에 시달려야 했다고.

이 일화를 저자는 삼성이 한때 기아 자동차를 인수하려 했을 당시에 끌어다 붙인다. 국민적 여론은 재벌(삼성)이 전문 경영 체제의 모범 국민 기업(기아자동차)을 어떻게 인수하느냐고 빗발치게 비난하였고, 삼성은 인수를 포기했다. 대신 삼성자동차를 설립했다. 그 후 기아는 불과 2년을 남기지 못하고 쓰러졌고, 우여곡절 끝에 현대에 넘어갔으나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엄청난 부채는 국민몫으로 돌아갔고, 삼성차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삼성이 기아를 인수하였다면 경제적 손실이 지금보다는 덜했을 것이고, 외환 위기에서도 자유로웠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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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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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의 어느 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서 버지니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버지니아는 펜을 잡고, 델러웨이 부인에 대한 글을 시작한다.

1949년의 남편 생일날 아침, 로라는 읽던 버지니아 울프의 '델러웨이 부인'의 책을 접어두면서 침대 맡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의 생일 준비나 하는 평범한 일상이 그녀를 기다린다.

1999년의 클라리사는 소설 속의 델러웨이 부인처럼, 직접 꽃을 사겠다고 말한 다음, 한아름의 꽃을 안고 거리를 나선다. 클라리사는 세 인물 중, 가장 현실적으로 강하고(생활력이 있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일견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이다.

이렇게 소설 속, 세 인물은 서로서로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23년의 49년의, 20세기말의 각각 어느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세월'이라는 기나긴 시간의 흐름을 이제 막 집약하여 보여 주려 한다.

1923년의 '버지니아'는 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지극한 간병을 받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이고, 누구보다도 그녀를 잘 이해한다는 편집자이다. 그런데, 어찌보면 그 간병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일견 버지니아의 자유롭고 활기찬 도시 생활에의 갈망을 저지하고 있는 무엇처럼 보인다. 그리고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들은 그녀를 까탈스럽게만 여기며, 그녀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많이 의지하고 자랐던 버지니아의 언니마저도 버지니아를 심정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껴한다. 고로, 위대한 예술 작품을 쓰는 버지니아는, 사실 현실 속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완벽히 구하지 못하는 외로운 인물이었다.

1949년의 '로라'는 놓쳐버린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탐험되지 못한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도, 미련을 접고, 아들에게, 남편에게, 자신의 가정과 의무들에 헌신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기가 너무 힘들다.(그래서 그녀의 시선은 시종일관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 역을 맡은 줄리안 무어는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하였다.)

1999년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출판 편집자인 클래리사. 그녀는 지금 옛 애인인 리차드의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한다. 그녀는 버지니아 쓴 소설 속의 델러웨이 부인처럼 '도시를 사랑하면서 자신의 삶의 평범한 즐거움을 계속 사랑하려 한다.

처음에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로 보고, 다시 마이클 커닝헴의 소설을 찾아 읽고, 다시 영화를 보았다. 그래서 머릿속에는 남아 있는 조각조각의 몽롱한 여운들이, 영화의 그것인지 책 속의 그것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이 감상의 근원지가 둘 중 어느 것인지 출처를 밝히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같은 작품을 두고 영화 쪽이 전달하려는 이미지가 좀더 강렬하고 선명했다면, 원작인 소설 쪽은 독자마다 다양한 해석과 느낌을 담을 자리를 넉넉히 마련해 두고 있었다는 차이일 것이다. 한 작품에 대해 한번 이상 읽을 줄을 모르는, 인내심이라고는 쥐똥만큼도 없는 내가......왜 보고 또 읽고 또 보기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것이 하루하루 반복되어 일상이 되고 세월이 된다. 그런데 아주 간혹 우리의 삶이 전혀 뜻밖에도 활짝 피어나면서 우리가 상상해 왔던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안겨 주는 그런 시간들이 있다. (물론 그 앞뒤에는 항상 더 암울하고 어려운 시간이 따르기도 하지만)

'세월'이라는 서사시를 통째로 읽는다는 건, 그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처럼'인생무상'한 행위가 아니라, '내일의 아침'을, '희망'을 품게 하는 것임을 이 소설은 보여 주려 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 속의 자살을 생각했던 로라는 결국엔 죽지 않고, 집을 나와 자기가 희망하던 도서관 사서로서의 삶을 살았고, 클라리사는 옛애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또다른 내일을 희망하며 잠자리에 든다.

 

빌리 엘리어트의 감독 스티브 달드리가 만든 동명의 영화. 삽입된 피아노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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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8-04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님 서재에서 추천하는 글 보고 찾아 읽었는데 정말 멋진 리뷰군요. 잘 익은 듯한 맛있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전 영화만 봤는데 정말 소설도 같이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마구 드는군요. ^^

icaru 2004-08-0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후...넘치는 칭찬에 몸둘바를 몰라하고 있어요.... 님의 코멘트는 하니 케어 님...서재서도...많이 뵈었었는뎅...조만간 인사 올리러 가야겠네요~~!!!
요즘에...통...삶이..팍팍해서리...짬을 좀 못내구있네요...여유 생기면 후딱 가야짐!!!!
 
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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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취향이라는 것은 한 개인이 처한 때때로의 현실을 십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당시 당시의 상황에 따라 열광하며 좋아라 하게 되는 것도 쉭쉭 바뀌어 가고 말이다. 나의 경우, 최근 1~2년 동안 소심함(직장 생활의 해를 거듭하면서 점점 그 두께가 늘어가더니....)의 극치라는 게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보여 주면서 살아서?? 해서인지...폴 오스터의 이런 소설, 그러니까 자뭇 대범해 보이는 주인공이 자기가 타고난 운명과 우연에 연루되어, 사람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는 이야기는 그 결말이 파멸로 끝날지언정 읽는 재미가 아주 많이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치 한 판의 통쾌한 인생역전 드라마에 대한 평을 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사실 이 소설의 정체는 안타깝고 위태로우며 또한 숙연해지는 무엇일 것이다. 주인공의 아내가 주인공과 둘도없는 우애를 나눈 후배와 바람이 나는 이야기가 그렇고, 주인공이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도 생겨나는데, 어찌 무조건 재밌다고만 말할 수 있나. 위대한 소설의 일관된 줄거리가 그러하듯 이 소설도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 여행길이 점점 나아갈수록 맨 처음 찾으려했던 본질과는 차차 멀어지고, 주인공은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야 하는 절망적인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영혼의 고뇌는 더욱 깊어진다.......... '

이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고 소설이기 땜시....이렇게 흘러가는 것....그러니까, 주인공의 운명이 주인공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너무 착찹함에 빠지진 말기로 한다. 우리 삶을 지속시키며 이끌게 하는 방향키가 확고한 자기 의지나 명확한 논리적인 법칙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 사소한 사건일지라도 우리의 주인공은 저렇게 고군분투하며, 고된 길을 가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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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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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노래를 잘 부르시지도 않고, 그다지 음악을 즐겨하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예전부터 [가요무대]라는 프로를 좋아하셨다. (지금도 그 프로가 월요일 밤 10, 11시 무렵이 시작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면, 아무리 무뚝뚝하고 완고한 지엄하신 어르신네라도 옛날 노래를 대하노라면 어린아이처럼 순한 얼굴이 되어 알싸한 추억에 잠겨드시는 것처럼 보인다.

참 의외인 것도 1930년에서 1950년도 당시를 살아본 일이 없는 내가,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유년 시절과 장년 시절의 이야기 골짜기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빠져 읽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도 흘러간 옛노래를 좋아하는 연배가 되어간다는 증거일까.

이 소설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작가 박완서의 입을 빌자면 순전히, 그렇다. 순전히 기억에 의한 소설이라고. 그래서 요즘에 마구 쏟아져 나오는 장르 혼합의 포스트 모던한 소설들이나, 황당무계하다 싶은 역사 소설, SF장르의 소설과 많이 다르다. 작가가 서문에서 했던 말이 자꾸 속에서 밀치고 들어오는 것 같다. '기껏 활자 공해나 가중시키기 위해 진을 빼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다.'라던. 그렇다. 그의 이 소설은 결코 일회용품일 수 없다.

'그 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위의 인용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작가)은 자신의 벌레의 시간(공산주의에 물든 오빠로 말미암아 집안은 풍비박산되고, 주인공과 모녀가 겪는 시간의 과정)을 증언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하는데, 자신의 숙명을 예감하는 이 부분이 나에게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소설은 '나'라는 영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했던 말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니.....

그 밖에도 인상적인 부분은 많다. 특히 유년기를 보낸 박적골에서의 할아버지와의 추억담이 그렇다. 주인공(작가)을 '요 입 속의 혀 같은 것'이라며 이뻐하는 모습말이다. 그리고 도깨비와 화장실에 얽힌 이야기 같은 것이 참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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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몸의 혁명 스트레칭 30분 넥서스 30분 1
밥 앤더슨 지음, 이미영 옮김, 진 앤더슨 그림 / 넥서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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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고는 담을 싼 동생이 유일하게 손수 돈을 주고 산 책으로, 그는 이 책을 자매들에게 남겨 놓고 군대에 갔다. 입대할 때 이 책의 부록으로 주는 스트레칭 카드 4매를 챙겨 가고자 애를 쓰는 것 같더니만, 결국엔 입고 있는 옷가지 외엔 암것도 지닐 수 없었던 지라 별책부록 카드 마저도 남겨 두고 갔다. 식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운동에 관심이 많고 또 많이 좋아하던 녀석이 산 책이라서, 운동하고 담쌓은 왕초보들이 보기엔 좀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 않다. 뭐랄까 평소에 토막토막 알고 있던 동작들을 이 곳에 관련 있는 항목끼리 묶어 보기 쉽게 정리해 주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잘못 알고 있는 사실 하나를 이 책을 읽고 교정했다. 그것은 '아플 때까지 하는 스트레칭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몸에도 관성의 법칙 같은 게 작용하는 모양인지, 주로 앉아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내내 앉아만 있다보면 계속 그러한 행동 반경을 유지하기 원하고, 운동을 하고 걷고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으로 굳어가게 된다. 내가 그랬다. 마침내 몸무게도 불어나고, 몸의 마디마디가 뻣뻣해짐에 따른 위험 신호를 뒤늦게 파악하여, 몸을 개조해 볼 요량으로 부랴사랴 재즈 댄스 학원에 같은 데를 수강한다.

그런 델 가면 본격적인 춤 동작이 들어가기 전에 강사의 지도 아래 15분 정도 스트레칭을 한다. 강사는 요래조래 자유자재로 몸을 놀리는데, 수강자들이 따라하기에는 이 동작들이 마치 벌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통증을 주는 것들이다. 아니 동작 자체가 힘들다는 것은 아니고, 그 동작을 유지하며 15초나 30초 단위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 어렵다는거다. 하지만 강사도, 속으로 나도, '이 통증을 참아야 하느니라, 고통없이 얻는 것은 없느니' 라고 했더랬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스트레칭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단다. 아플 정도 하는 스트레칭의 무용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활용도가 가장 높은 부분은 책상 앞에 앉아서도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이다. 하긴, 의자에 앉아서 발목을 돌리고 있거나,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최대한 입밖으로 쭉 빼는 안면 스트레칭을 하고 앉았다보면, 옆에 앉은 사람이 조금 무서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얼굴 근육이 풀리고 발목 근육이 풀려 내 얼굴에 미소가 돌 수 있다면......, 그렇다 난처함은 순간인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몸을 여기저기 움직이고, 얼굴 근육을 씰룩이고 있다. 한 때 잠깐 실행하는 것은 아예 아니함만 못하니, 계속 활용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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