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무라카미 류 지음 / 예문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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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 초등 학교 다닐 적에는 텔레비전에서 흰색 칼라에 검정색 교복 박박민 머리 혹은 양갈래 딴 머리나 단발머리로 고교생 언니 오빠들이 나오는 영화를 많이 해 주었다. 배우는 주로 꼬마 신랑 김정훈이나 이승현, 임예진 등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얄개 시대' 씨리즈라고 했다.

얼마전에 영화 '몽정기'를 아주 유쾌하게 보았던 것도 그 영화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도 한편으론 그런 의미에서 재밌게 읽혔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 고등학교 시절의 학생들 모습과 좀 많이 다르다.

주인공 겐은 절대 기죽는 법 없고, 여러모로 재기발랄하게 선생님들을 비롯 학교라는 제도권 체제에 도전적인 태도를 보인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교활하게, 때로는 오만방자한 방식으로 말이다. 이는 주인공이 여타 자신이 싫어하는 제도권에 대한 복수의 방법으로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걸 보여 주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라카미 류를 알고저 그의 데뷔작이라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읽고자 했던 게 어그제다. 하지만, 약물과 알코올과 성이 난무하는 듯한 이 소설의 도입부를 소화하지 못하고...잠시 덮어 두었다. 그러던 차에 아는 친구가 그의 작품 중에 69가 재밌더라라는 정보를 주어서, 그 친구로부터 69를 빌렸는데, 책을 받아보니, 곱게 책 겉표지를 싸 놓았다. 책주인은 69라는 책 제목이 끄는 사람들의 이목이 꽤나 걸치적거렸단다.

이 책에서 주인공 겐은 사이먼&가펑클의 곡 '파겐드'를 빌려 주겠다며, 사슴같은 눈망울의 소유자 마츠이 카즈코와 말문을 트는 계기를 만든다. 1969년에는 사이먼 가펑클이 풍미했던 시기였나본데...나 중학교 다닐 적에도 사이먼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되어'는 물론이요..'에이프럴 컴 쉬 윌'도 많이 듣곤 했던 노래인데....아.... 이 작가와 내가 같은 음악의 정서를 공유했다는 것이 반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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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 세계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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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날개로 소설가의 약력을 본다. 법대 교수다. 법학 전공자가 소설이라니, 이거이거 혹, 범죄 심리물이 아닐까 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도 해 보았다. 얼핏 유사한 제목의 프랑스 소설 <밑줄 긋는 남자> 때문이었을까. 가볍게 통통 튀는 내용이 전개되리라 여겼는데, 독일 소설인 이 <책 읽어 주는 남자>는 황달에 걸려버린 병약한 15세 소년과 그보다 스무살 정도의 연상의 여인과의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애정 행각부터 전개된다. 음 만만치 않은 이야기들이 쏟아질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인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 즈음이다.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와의 갈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치즘이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회상의 문제이기보다는 인간의 자존심과 약점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만남이란 무엇인가를 보여 주려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중심에 있다고 본다.

소년의 연상의 애인 한나는 자신이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라는 것을 소년에게 끝까지 숨기려 하였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에 대해 그녀는 대단한 수치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훗날 자신의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이 사실을 감추려 하다가 그녀는 종신형을 선고받기까지 한다.

제목이 책 읽어주는 남자인 것도 여인이 문맹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소년은 그녀에게 사랑 행위의 일종으로 책을 읽어 주었던 것이다.)이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고, 그 부분들은 각각의 큰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주인공 소년과 한나(그보다 훨씬 나이 많은 여인)의 사랑과 그녀의 사라짐, 2부는 한나가 소년을 만나기 전 과거와 관련된 기소 사건으로 몇 년 후 법정에 서게 된 것과, 그 법정을 참관하게 된 대학생의 소년, 3부는 교도소에 있는 그녀를 위해 책 내용을 녹음해 보내 주는 주인공.

소년일 당시의 여인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헌신이었다. 그러나 이제 외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상태의 성인이 된 소년 남자는 교도소에 있는 첫사랑의 여인에게 책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만을 보내 줄 뿐, 면회는 고사하고 편지 한 장 보내지 않는다. 왜? 소년은 그렇게 함으로써 여인을 과거 속에 묶어놓고, 그 이상화된 모습만을 사랑하려 하는 것이다. 결국 여인은 석방 예정일 새벽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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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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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중세 수도원이다. 주인공 수도사 '나'가 또다른 주인공(?)인 어느 연금술사 피에르 뒤페를 만나면서 사건(어쩜 사건이라고 붙일 수 있는 이 소설의 줄거리 자체보다 '나'의 의문들과 호기심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는 것이, 이 작품에서 더 건질만한 무엇인지도 모르겠다.)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나'는 먼저 연금술사의 강인하고 총명한 모습에 반한다. 그에게서 정신의 위대함을 통찰한다. 그러면서 연금술에 수행되는 이교 철학에 호기심을 느끼는데 이 과정에서는 속속 빨려들듯 읽힌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이 연금술사 피에르가 숲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 어느 동굴로 향하는 그의 뒤를 밟게 되는데.....

스티븐 킹의 원작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보면 일식 때에 생기는 잠깐의 어둠을 틈타 아내(클레이본의 엄마)는 시시종종 자식(클레이본)을 성희롱하던 주정뱅이 폭력 남편이 구덩이에 빠져 죽게 만든다. 일식 때에서야 심판 받아 마땅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죄의 대가를 치루게 되었다는 설정으로 보여 진다.
이 소설에서의 '일식', 태양과 지구 사이에 달이 들어가서 태양빛에 의해서 생기는 달의 그림자가 지구에 생겨 태양이 보이지 않고 깜깜해지는 이 때는 어떠했던지....
수도자이면서 동시에 이단자인 '나'. 상반된 두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는 '나'처럼, 남자인 동시에 여자인 안드로규스의 어마어마한 실체가 만천하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것은 영(靈)인 동시에 육(肉)이며, 태양과 달 그 둘의 결합이기도 했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 주제다. 상반된 것들의 결합과 관한 것이라니, 그래서 이 소설의 문체가 현학적인 포즈를 취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혹 이제 막,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을 접하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의 작품 <일식>을 읽은 다음에, 이후 작품인 <달>을 읽는 것이, 작가의 행보를 관찰하기 좋을 것이라고...... 바꾸어 말하면 <달>이 <일식>보다는 좀더 다듬어진 수작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일식>은 <달>에 비해 작품의 뒷부분이 주제의 무거움(영혼과 육체, 남자인 동시에 여자, 금단의 지식 등등)에 깔려서 엉성함을 면치 못했다는 혐의를 남긴다. 그럼에도 <일식>이 아쿠다카와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또 이 작가의 첫 작품이었기 그런지 뒷부분에 심사평과 작가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염불 보다 잿밥에 더 구미가 당겼던지, 본 작품보다도 이 글을 쓴 어린 작가가 어디서 튀어나왔으며, 어떤 생각을 갖고 무엇무엇을 준비한 끝에 이 소설을 썼으며, 종합하여 어떻게 생겨먹은 작가인지를 말하는 그 부분이 더 읽는 재미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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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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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 각종 리뷰를 훑어보았다. 어디에고 똑같이 쓰여 있던 말은 이 이야기에 대한 결말을 듣지 말라는 것(옮긴이 또한 후기에서 줄거리만큼은 절대로 소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해 그런 평도 있었다. 이 소설의 저자는 말재간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소설을 아주 지능적으로 썼다는 얘기였다. 일단 읽고 나니 작가가 보통 똑똑이가 아니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쌍수를 들고 공감하는 바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에 보았던 니콜 키드만 주연의 영화 디아더스가 생각난다. 이런 류의 영화는 그 결말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임에도 언급을 하자면 (벌써 개봉 한지 1년도 넘었으니, 볼 사람은 다 봤고, 그래 알 사람은 다 안다고 생각되어....)그 영화에서의 마지막 반전은 '네가 귀신이 아니라, 내가 귀신이란 말이더냐'였다. 귀신에게 그토록 시달림을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생지옥을 조성하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를 기만시켰다는 류의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늘상 팔에 솟은 소름을 쓸어내게 된다. 이 소설은 이런 이야기를 촘촘한 대화의 그물망으로 엮어 내었다. 재밌다. 그리고 읽으면서 생각한다. 나 자신은? 또 다른 나 자신 때문에 얼마나 엄청난 지옥불을 선사(?)받고 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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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줍는 아이들 1
로자문드 필처 지음, 구자명 옮김 / 김영사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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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으로부터 딱 10년전에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나보다. 대학 1학년 때 선물 받은 책이었지만, 그간 내 손을 한번도 타지 않고 책장에서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 10년간 이 책을 읽지 않은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이 책이 재밌다'는 이렇다할 입소문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당시 나는 '외국 번역 소설을 읽히지 않더'라는 편협한 취향을 갖고 살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재미를 아직 보장 받지 않은 두 권짜리 장편의 소설은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독서에 게으른 사람이었던 때문이다. 난 그냥 이 소설이,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어느 바닷가의 무명씨의 어린 딸들과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ㅡ.ㅡ;;

그러던 최근 어느날엔가 영풍 서점에 갔다가 스테디셀러 쪽에 여전히 떠억 하니 자리잡고 건재하고 있는 이 책을 발견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책들은 쏟아지고 그래서 가판대에 오르는 책들도 늘상 바뀌게 마련이며, 또 너무나도 쉬이 절판이 되는 요즘 같은 때에, 10년전에 나온 책이 표지 디자인도 바꾸지 않고 여전히 나오고 있다는 반가움 때문이었을까..... 그 길로 집에 돌아와 부랴부랴 이 책을 찾았는데, 1권은 어디로 갔나 보이지 않고, 2권만 있었다. 그래서 다시 1권을 구입하고는 밑져야 본전이니 읽어보기나 하자며 잡기 시작한 책이다.

정말 밑져야 본전인가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페넬로프 할머니.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의 딸로 태어났지만, 전쟁의 와중에 그리 유복하지만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간 인물로, 고집스럽지만 고루하지 않은, 사람내 물씬나는 주인공이다. 참 멋진 사람이다.

이 소설은 영국 특유의 시골 생활이 그려진다. (특히, 여기에서 그려진 2차 대전 당시 영국 시골은 궁핍하지만 마음 씀씀이들은 넉넉했다.) 그리고 주인공 페넬로프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세 남매와 페넬로프의 인생과 관련된 또다른 인물들 삶의 스타일을 그린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주인공 페넬로프가 화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림 '조개줍는 아이들'(훗날에 화가의 역량이 재조명되고, 큰 재산 가치를 갖게 되는)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를 두고 스토리를 펼쳐가는 구도이다.

이 책을 통해 느낀 것.

부모의 무엇보다도 큰 역할은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 알아서 살 수 있는 자립심을 어릴 적에 키워주는 것이 아닐까. 고기를 잡아다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 말이다.

페넬로프의 세 자식 중 두 자식은 어머니(페넬로프) 소유의 그림 '조개줍는 아이들'에 대한 처사에 전전긍긍한다. 어머니에게서 더 얻어낼 것이 무엇인지 집착하는 자식들이다. 페넬로프는 멋지고 훌륭한 어머니였지만 자식 농사의 산물은 부모의 심성과는 무관했던 듯 싶다. 어미의 생각과는 달라 늘 부딪치고마는 탐욕적인 낸시와 노엘이 안타까웠다.

이 책의 지은이 로자문트 피처는 영국의 박경리 쯤 되는 작가로 보인다. 장편을 풀어가는 역량이 대단하달까.

인상 깊은 구절....

....주사위는 던져졌다.
설명은 나중에 햇살도 나중에
모든 것은 나중에 답이 주어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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