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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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노래를 잘 부르시지도 않고, 그다지 음악을 즐겨하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예전부터 [가요무대]라는 프로를 좋아하셨다. (지금도 그 프로가 월요일 밤 10, 11시 무렵이 시작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면, 아무리 무뚝뚝하고 완고한 지엄하신 어르신네라도 옛날 노래를 대하노라면 어린아이처럼 순한 얼굴이 되어 알싸한 추억에 잠겨드시는 것처럼 보인다.

참 의외인 것도 1930년에서 1950년도 당시를 살아본 일이 없는 내가,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유년 시절과 장년 시절의 이야기 골짜기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빠져 읽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도 흘러간 옛노래를 좋아하는 연배가 되어간다는 증거일까.

이 소설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작가 박완서의 입을 빌자면 순전히, 그렇다. 순전히 기억에 의한 소설이라고. 그래서 요즘에 마구 쏟아져 나오는 장르 혼합의 포스트 모던한 소설들이나, 황당무계하다 싶은 역사 소설, SF장르의 소설과 많이 다르다. 작가가 서문에서 했던 말이 자꾸 속에서 밀치고 들어오는 것 같다. '기껏 활자 공해나 가중시키기 위해 진을 빼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다.'라던. 그렇다. 그의 이 소설은 결코 일회용품일 수 없다.

'그 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위의 인용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작가)은 자신의 벌레의 시간(공산주의에 물든 오빠로 말미암아 집안은 풍비박산되고, 주인공과 모녀가 겪는 시간의 과정)을 증언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하는데, 자신의 숙명을 예감하는 이 부분이 나에게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소설은 '나'라는 영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했던 말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니.....

그 밖에도 인상적인 부분은 많다. 특히 유년기를 보낸 박적골에서의 할아버지와의 추억담이 그렇다. 주인공(작가)을 '요 입 속의 혀 같은 것'이라며 이뻐하는 모습말이다. 그리고 도깨비와 화장실에 얽힌 이야기 같은 것이 참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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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자의 노래 1
마루야마 겐지 지음, 조양욱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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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루야마 겐지가 좋다. 소설가로서 사는 삶의 방식이 멋지다는 생각에서다. 자연으로 돌아갔고, 소설쓰는 일 하나만을 지향하며, 일체의 잡다한 관계들을 과감히 끊을 줄 아는 방식이 멋지고, 자연에 돌아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원의 삶에 일체를 이룬 양, 굴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이 책은 1, 2권으로 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책을 신청했는데, 받아보니 시리즈 도서를 1권만 주문한 것이 되었다. 1권을 읽다가 재미가 없으면 2권은 사보지 않겠노라 생각했다. 시작부분부터 내가 맘에 들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마루야마의 전신의 모습을 한 주인공이 나온다. 그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도시에서 궁핍하고, 황폐하며, 피로한 어느 폐가에서의 생활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접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것이 소설 초반의 설정이다.

주인공은 자아를 찾아 방황한다. 그는 그러니까 '육체를 갈아없앨 정도로 강렬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이기를 희망하고, 그것이 꼭 반영된 작품 <도망치는 자의 노래>를 완성하려 하지만, 젊은 나이임에도 그는 때때로 인생 따위는 어차피 심심풀이이거나 시간 죽이기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연한 일이 거듭 쌓인 것이 추억의 환영이 되고, 그것이 다시 쌓여 이 세상을 산 증거인 착각이 될 뿐이라고.... 그러다가 자신의 이상형이 투영된 듯 보이는 자형(누나의 남편)을 멀리서 보게 되고 그와 접촉을 시도하려 애쓴다.

마루야마는 이 작품에서도('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가 그랬듯이) '자유'를 소중히 다루려 했던 것 같다. 주인공은 '자유'를 구가하는 삶을 바라마지 않았지만 쉽지가 않아, 그의 역할 모델처럼 '자형'이 등장한다. 자형은 일본이라는 전체주의 국가 체제를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일으킬 줄 아는 '큰(?)' 인물됨이며, 수도승처럼 수행하는 것처럼이라도 해서라도 자유를 그토록 구가하고 싶어하는 주인공에게 자형은 사실 하나의 '심볼'이며, 역할 모델이고, 선의의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자형의 정체가 드러나려 할 즈음 책은 2권으로 이어진다. 자형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다시 2권을 주문.

툭 까놓고 말해서, 2권부터는 1권에서의 서슬퍼런 독백들의 재탕이라는 느낌을 준다. 나온 주인공의 날선 각오와 내면의 독백, 그후 앞의 결심이 무색할 정도의 지리멸렬한 생활의 모습, 그런 자신에 대한 자책, 혐오의 말, 작품 도망치는 자의 노래를 완성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번민 등이 반복되고, 간간히 가뭄에 콩나듯 번쩍 하고 자형의 기행(奇行)을 목격하며 가슴 한 켠에 시심을 키우곤 하지만 곧 좌절감을 느끼는 둥 말이다. 마루야마가 다음 책에서는 자유 말고 다른 주제를 다뤄 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한다. 굳이 또 '자유'를 노래하고 싶다면 직설적이고 방만한 독백투가 아닌 다른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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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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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의 책들은 입 소문도 세고, 각종 매체 광고도 세게 하는 편이다. 그리고 항상 고맙게도 재미를 보장한다. 원제는 Metaphysique des tubes로 해석을 하자면 '튜브의 철학(?)'쯤 될 것 같다. 이런 제목이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로 바뀐 것에 대해선 좀 의아함이 있다. 번역에 있어서 아니, 제목을 붙이는 데 있어 너무 세 살만 조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이 태어나서 처음 2년간 자폐적 성향이 있어 어떤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기 시절. 무(無)에서 충만을 느끼며 스스로를 신(神)으로 느끼던 그 시절의 이야기, 즉 도입부가 더 흥미진진했고 아기가 나이를 먹어 세 살이 되어 갈수록 뻔한 스토리가 되어 갔다고 생각한면, 내 취향이 조금 남다른가.......

출생 후 2년이 지나서야 할머니가 건네준 화이트 초콜릿의 몰카당몰카당한 맛에 반해, 아기는 비로소 '삶'을 깨닫는다. “나야! 내가 살아 있는 거야. 난 너의 제일 친한 친구야. 너에게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게 바로 나니까 말이야.”아기의 입을 통해 우리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리를 알게 된다. 사람을 살게 만드는 건 바로...인생에는 초콜렛의 달콤함 같은 여러 가지 형태의 '쾌락'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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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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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는 아직도 무엇에 대한 '각오' 따위가 영글지 못한 탓인지, 유난히 다른 사람의 각오를 듣는 걸 좋아한다. 사회 생활 초년기에 우연찮게 흘러 들게 된 지금의 이 직종에 몸담으면서 비교적 한눈 팔지 않고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셈이긴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길이 아닌가보다.'내지는 '이 길은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한다.

그리고 나는 마루야마 겐지에게 '소설가의 각오'라기보단 그냥 단순히 '각오'라는 것에 대해 듣고 싶었다. 이 책은 마루야마 겐지 십대 시절 이야기와 망해가는 통신사 회사원으로 생활하면서 업무 틈틈히 몰래몰래 써 내려간 소설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조금은 황당하면서도 화려한 등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업 작가로서의 애환 등을 이야기한다.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겠다는 사고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하는 이상은 무리가 되더라도 혼자 사는 방식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세상에 대해, 혹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대해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 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 가장 위태로운 입장에 서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그 반복이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는 강인한 삶을 자처하며, 다른 세계를 동경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의 등뼈인 북알프스 산맥 한 자락에 자리한 조그만 산 마을에서 시골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는 그. 작품을 한편 쓰고 나면 소설에서 확실하게 멀어지기 위한 방법으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인다. 개와 함께 산을 뛰어다니며 녹초가 될 만큼 지켜서 돌아와서는 씻고, 밥을 먹고, 잠을 청한단다. 이런 일과를 매일 반복한단다. 그러다보면 먼저 쓴 소설에 대해선 잊고 또 다른 새로운 소설을 쓸 여력이 생긴단다.

그가 쓴 각오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는 자연(산수)과 깊이 연결 관계를 갖는 작가이며, 넓이보다 깊이를 선호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똑같은 일을 매번 반복하는 것. 하나의 생활 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끝없이 다양한 생활 방식을 실험하기 보다 몇 가지 의식만으로 만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동경 같은 대도시 지역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여분의 오락이나 기회가 자신이 뿌리 내리고 있는 대자연에서의 영원하며 심오한 연결 관계를 대신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통성을 추구하는 작가일 것이다. 눈으로 보여지는 현란한 현실, 엄격한 규칙, 그리고 합리성 따위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두는 결합적인 연결성 안에서 영적인 문학의 뿌리를 내리려는 애씀의 결과이다.

물론 마루야마 겐지의 이 글 곳곳에 깊이 숨어 있는 편견은 무척이나 껄그럽게 느껴진다. 특히 그의 말 중에 '여자나 게이에게 인기가 있으면 끝장입니다. 그런 치들 덕분에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 나는 죽고 싶어집니다'라는 말과 '여자와 부모가 하는 소리에 일일이 상대를 해봐야 득 될 게 없다'는 발언은 정말 충격이었다. 밑도끝도 없이 싫은 건 죽어도 싫은 거고, 자신이 생각하는 엄격한 규칙 외에는 다 아닌거라는 식이니.....보통 독선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나의 생각조차 소설가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일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보통 사람이 열을 가지고 있는 거보다 하나나 둘(높은 도덕성이나 인류애 등등)을 더 가지고 있을 거라는 편견말이다. 소설가는 마루야마 겐지처럼 보통 사람보다 하나나 둘 결여되기 십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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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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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길 것이라는 걸, 책 표지를 보고 알았던 것 같다. 매우 요상스럽게 생긴 단발머리 여자아이의 그림. 그리고 나서 이 책을 읽었는데, 지금에와선 읽었던가, 말았던가, 싶다. 읽었어도 읽은 것 같지 않고......, 읽지 않았다고 말하기엔 어떤 표현하기 어려운 담담함이 남는다.

하드보일드, 하드럭----감상에 빠지지 않는, 억세게 힘겨운 운, 이 작가가 바나나라는 필명을 쓴 이유가 '외우기 쉬워서', '성별 불명, 국적 불명이라서' 등등이라고 했다. 필명과 다르게 소설은 국적 불명이 아니라, 국적 분명인거 같다. 차분하고 냉담하고, '죽음이라는 현실에 대한 서글픈 감상 앞에서 고통스러워지느니 하드보일드 해 지자'는 일본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인 것이다.

책이 작고 예쁘다. 책 표지도, 그리고 두 장의 삽화도 좋고, 요시모토의 글에 상업적인 출판전략이 콤비를 잘 이룬, 기획력 있는 책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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