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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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차분하고 감수성이 예민해 보이는 소녀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베르메르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소녀의 눈을 통해 본 집안 풍경, 가사일, 17세기의 네덜란드 시장 풍경 등을 보는 게,  복원해 놓은 그 시대로 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실감난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유를 따르고 저울질을 하고 레이스를 짠다.

담담한 문체도 그럭저럭 즐길 만했고, 베르메르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그럴법한 성격과 정황을 부여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소설 속 또 한사람의 주인공 베르메르가 소녀를 향한 마음이 어떤 건지 잘 드러나지도 않고(이 소설의 결정적 장면이기도 한 진주 귀걸이를 달아주던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주인공 소녀의 위상을 부각하기 위해 베르메르의 부인을 줄줄이 아이들을 낳으면서 남편의 마음을 유인하려 하는 인물로 설정한 것도 좀  마음에 안 든다. 거기다가 부인의 많은 자식들 중, 부인을 빼닮은 아이 코넬리아를 심술궂고 고집스럽게 그린 것도 그렇다. 그 아이의 심술궂고 음흉한 행동을 나중에 뺨을 갈기는 것으로 소녀(이 땐 소녀가 결혼하여 애엄마였는데..)는 복수하는데, 이 반동 인물인 코넬리아에게 작가는 너무 인심이 박한 것 같다.


이 소설을 즐겁게 읽으려면, 줄거리를 따라가느라 속도를 내는 우를 범하지는 말았어야 했나보다. -

 

                                                                       ----이 책을 재밌게 읽는데 실패한 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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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05-07-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 베르메르가 소녀를 향한 마음이 잘 드러나지도 않고
맞아요. 솔직히 직접적으로 드러낸건 없지요... 그나마 그림그릴때나 조금 그랬나.
아이들을 왜 그렇게 많이 나은건지 저도 그게 의문점이여요.. 전 잼있게 읽었는데..^^; 전 아마 첨 그림때부터 기대를 많이해서 그런가보아요^^

어룸 2005-07-2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저도 이 책 재밌게 읽는데 실패했어요!! ㅠ.ㅠ
특히 아내에대한 묘사, 정말 싫죠?!!! 흑흑...특히 저는 베르메르 그림을 볼때마다 아내에대한 사랑이 굉장히 많다고 느꼈기때문에 더욱더 작가의 해석이 불만이었어요!! 베르메르 캐릭터도 맘에 안들게 만들어놨고...아무리 작가 맘이라지만 정말 너무 싫었다구요!! 이 책에서 맘에 든거는 중간중간 껴 있던 그림들 뿐이었어요!!

날개 2005-07-2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도 유명하길래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책인데.... 웬지 제게도 별로일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ㅠ.ㅠ

panda78 2005-07-29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 전 암 생각없이 읽어서 그런가... 그림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는 게 좀 신선해서 그랬나(막 나왔을 당시엔 꽤 신선하지 않았나요.. ^^;;)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근데 여인과 일각수가 더 재밌긴 하더라구요. 흠..

2005-07-29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7-29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험험험.. 저는 재밌게 읽었어요..;;;

icaru 2005-07-29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 시간에 아니 주무시공 ^^

2005-07-29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5-07-29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영화를 재밌게 봤어요...
살포시 면사포 처럼 얇은 자락을 보였다 말았다 하는 그 느낌이 좋았죠.

인터라겐 2005-07-29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었요.. 그림도 마음에 들고 소녀 그리트도... 부인에 대해서도 연민을 느끼면서 봤는데....

비연 2005-07-2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전 괜챦게 보았는데. 그냥 선이 고운 책이구나 싶었어요..^^

비로그인 2005-07-2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네스팟이 자주 끊기는 바람에 접속이 잘 안 되는군요. 음..제가 베르메르의 아내였다면 제 자신을 학대했을 거 같아요. 여성해방의 역사가 채 백년도 되지 않았는데 십 칠 세기라면 페미니즘이라는 개념도 매우 보잘 것 없었을 거 아녜요. 양육이라는 굴레, 소녀에게 집중하는 남편, 자아를 잃어버린 나..희망이 없군요..

파란여우 2005-07-29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고 자랑할께요^^

icaru 2005-07-30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고맙습니다... 힘 좀 내야죠~ 좋은 소식 들여 드릴 수 있었으면...

아...님들은 다들... 진주 귀고리 소녀를 잘 읽으셨군요...
아...전...영화로나 한번 봤음 좋겠다~ 합니다 ^^ 투풀 님.. 우리 이 영화나 다시 볼까요?~
복돌이언니..네스팟이 자주 끊기누만요... 마자마자...십칠세기니...그랬겠죠오... 그랬을듯...흠...
파란여우님..! 재밌다고 아우성치는 모습 보고자픈데...보여 주십쇼~

2005-07-30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31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7-29일 07:28분 속삭 님.. 저는 정말 무딘 사람인가 봅니다~ 님의 리뷰를 다시 읽고, 그 둘의 감정선을 좀 아리아리하게 감잡습니다... 17세기 풍경들을 좀 볼 요량으로도라 영화를 봐야겠어요... 그런데요 우리동네 대여점엔 없더란 말이죠... 에긍...

sayonara 2005-10-22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제대로 된 제목을 달기조차 싫으실 정도로 실망하셨나요!? ^^;
전 그냥 이런 류의 분위기가 좋아서 재미있었는데... 뭐, 독자 각각의 감흥은 다른 거지요. ^_^
 
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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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딘가에서 본 서평에 이 책은 ‘하루키식 종합선물세트다.’ 라고 하는 표현에 무릎을 쳤다. 이 말은 다소 어깃장을 놓는 무엇이 되겠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없이 그간 써먹은 설정을 한 데 모아 이쁘게 포장까지 했다는 말이니까... ... "어디가 그래?" 라고 의문을 던지고, 또 굳이  따지자면, 뭐 이런 거다. 홀수장과 짝수장을 중복 교차하여 시점을 표현하고,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에서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그리고 고양이와 대화하는 나카타 상의 모습은 ‘태엽 감는 새’에서 본 듯도 한 것(고양이의 가출과 아내의 가출로 시작되는 모험, 그리고 나카타 상이 조니워커 상을 죽이는 몽환적인 살인 장면 묘사). 그밖에 꿰어다 대자면 많겠지...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지적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에서 <미래소년 코난> 중의 ‘나나’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의 얼굴 모습과 캐릭터가 유사하다고 퉁을 놓는 것과 매일반이 아닐까.


하루키의 소설 몇 편을 읽었지만, (그것도 최근 1~2년 사이에 읽은 게 그 전에 읽은 것보다 많지만) 줄거리를 대략 기억하고 있는 작품은 몇 편 되지 않는다.


줄거리보다 언제나 먼저 매료되고 마는 것은 그의 소설에서 줄줄 흐르는 ‘가벼움’, ‘무국적성’, ‘상실감’, 재즈 음악과 음식과 패션에 대한 세심한 표현같은 것.

이것이 하루키를 읽는 내 독서 스타일의 한계이고, 어쩜 하루키의 한계일지도....


하루키는 꽤 오래전부터 열다섯살 소년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단다. 아직 정신 상태가 고착되어 있지 않고,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열다섯 그러나 정신 안에서는 맹목적으로 자유를 모색하고, 신체는 격렬한 속도로 성숙을 해가는 그 나이의 인물과 상황을 픽션이라는 그릇에 넣어 그려보고 싶었다고...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열다섯 소년 카프카는 몸만 열다섯살일뿐 정신연령은 하루키 연배로 보여진다. 기왕 열다섯의 픽션에 넣으실 작정이었음 좀더 열다섯살다운 모습을 그려 주시지 않고, 하는 아쉬움도 든다. 물론 주인공 카프카 소년은 여느 열다섯과는 다르다. 어머니에게는 어린 시절 버림받았고, 아버지는 그에게 이상한 저주를 내렸다. 그래, 소년은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이 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카프카가 집을 가출하면서 시작된다. 따뜻한 고장으로 무작정 가보자고 해서 도쿄를 떠나온 곳이 바로 시코쿠. 그리고 저녁 때까지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도서관을 찾는다. 이 소년 떠나기 전에 도서관의 위치를 찾아두는 꼼꼼함까지...

이 곳 도서관에서 만나고, 일자리를 얻게 해 준 오시마(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카프카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는 스승이다. 오시마는 피신을 하려는 카프카를 깊은 숲 속 오두막으로 안내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며 카프카는 음식을 해 먹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다른 한 쪽에는 카프카의 반쪽 그림자이기도 한 초로의 노인 나카타 상이 있다. 선천적으로 우수하게 태어났고,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주위에서의 기대치가 높았던 어린 시절 나카타는 그만 전쟁이 있던 시절(1944) 산으로 버섯을 따러 갔다가 원인모를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은 채, 시청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을 한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던 것을 얻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플롯의 새로움이나 하루키 습작 스타일의 일보 진전을 굳이 찾으려 했던 사람에겐 오이디푸스 신화 차용이라던지하는 것을 볼 수 있겠지만 또 그것의 식상한 적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하루키만의 명대사를 보려 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구절들을 군데군데서 여지없이 발견하게 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우리의 운명이라는 게 끊임없이 진로를 바꾸는 모래 퐁푹 같다고 했다. 모래 폭풍은 아무리 '네'가 도망치려 해도 진로를 바꾸어도 계속 '너'를 쫒는다고 . 그 폭풍은 먼 곳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게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들어가야 하며, 하루키는 주인공 카프카가 걸어들어간 그 길을 장장 800여 페이지에 걸쳐 보여 주려 했다. 헥헥헥....


“오시마 상은 예언하는 능력이 있습니까?”

“없어” 하고 그는 말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어. 내가 만일 불길한 것만을 예언하는 것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내가 상식이 풍부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이야. 나는 일반론으로 연역적으로 말을 하지. 그러면 그것은 결국 불길한 예언으로 들리게 되거든.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주위에 있는 현실이란, 불길한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야. 어느 날짜 어느 신문이라도 상관없으니까 신문을 펼치고, 거기 있는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저울에 달아보면, 그런 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어.”

---오시마의 명 대사...

 

  "잘 들어, 싸움을 끝내기 위한 싸움이란 어디에도 없어." 하고 까마귀 소년은 말한다. "싸움은 싸움 자체 속에서 성장해 가거든. 그것은 폭력에 의해 흐른 피를 마시고, 폭력에 의해 상처 입은 살을 뜯어 먹으며 성장해 가지. 싸움이라는 것은 일종의 완전 생물이야. 너는 그것을 알아야 해."

---까마귀(라 불리는) 소년의 명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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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2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22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거 쓴 시각 보셨죠...? 네 그렇습니다... 도중에 졸았어요 ^^
바로잡았습니다... 항상 고마..고맙습니다...우웁...... ㅠ.ㅠ

비로그인 2005-07-2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까마귀 소년의 비유가 끝내주는 걸요. 싸움은 완전 생물이다..오~왠지 디스토피아적인 뉘앙스가 마구마구 풍겨요.

2005-07-23 0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23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23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네르바 2005-07-3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운명이라는 게 끊임없이 진로를 바꾸는 모래 폭풍 같다고 했다. 모래 폭풍은 아무리 '네'가 도망치려 해도 진로를 바꾸어도 계속 '너'를 쫒는다고 . 그 폭풍은 먼 곳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게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들어가야 하며...> 이것이 운명이라는 것이군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왜 나이를 먹으면서 운명론자가 되는지...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것이겠지요. 전 이상하게도 하루키에게 그리 감명을 받지 못했어요. 일본 소설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겨우 하루키 몇 작품 읽었는데...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읽지는 못했어요. 하루키식 종합세트라고요... 흠...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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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잠을 잘 못 잔다. 잠을 자도 깊이 청하지 못한다.

졸립다는 느낌이 어떤 것이었더라... 잊었다. 자야 하니까... 잠을 자두지 않으면 머리가 많이 무거워질테니까. 토닥토닥 힘들게 잠을 청하곤 한다.


10대 시절 나는 각종 귀신님들이 출몰하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었다. 그리고 20대엔 무서운 영화들도 곧잘 찾아 보고는 했는데, 30대의 나는 이젠 일부러 무서운 영화를 찾아 보는 수고를 행하지 않는다. 굳이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아도 세상사는 겁나는 게 많고, 더 이상 무서운 건 신선하지가 않다. 라고 하면 과장일까.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영화도 요즘엔 보기가 힘들다. 솜에다가 물을 붓는 격이어서 나는 그만 축 늘어지고 말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이즈음 난 볼 영화가, 나를 당기는 영화가 없는거다. 그래서 오늘 퇴근길에 대여점에서 빌려온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앞에 두고 나는 조금은 겁을 집어먹고 있다.


<인간 실격>을 읽었다.



“뭐가 갖고 싶지? 하고 누가 물으면 저는 그 순간 갖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져버리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나를 즐겁게 해줄 것 따위는 없어. 그런 생각이 꿈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이 준 것은 아무리 제 취향에 맞지 않아도 거절도 못했습니다. 싫은 것을 싫다고 하지도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도 쭈뼛쭈뼛 훔치듯이 전혀 즐기지 못하고, 그러고는 표현할 길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습니다. 즉 저에게는 양자택일하는 능력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뒷날 저의 소위 '부끄럼 많은 생애'의 큰 원인이 되기도 한 성격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호소한다. 저는 그런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걸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한테 호소해도, 어머니한테 호소해도, 순경한테 호소해도, 정부에 호소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의 논리에 져버리는 게 고작 아닐까.

틀림없이 편파적일 게 뻔해. 필경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헛일이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제가 봐도 흠칫할 정도로 음산한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슴 속에 꼭꼭 눌러서 감추고 감추었던 내 정체다. 겉으로는 명랑하게 웃으며 남들을 웃기고 있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음산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하고 혼자 인정했지만 그 그림은 다케이치 외에는 아무한테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제 익살 밑바닥에 있는 음산함을 간파당하여 하루아침에 경계당하게 되는 것도 싫었고, 또 어쩌면 이것이 내 정체인 줄 모르고 또 다른 취향의 익살로 간주된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자전적이라고 보여지는 주인공인지라, 소설의 마지막을 부분을 덮으면서 뒤적뒤적 디자이 오사무 라는 사람의 생애에 대한 글을 찾아보고 있는 나를 본다.

“자살...”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자살이라, 어떤 인생이었길래.... 하고...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 때마다 죽음을 기도하지는 않는다. 죽고 싶을 때마다 실천하려 들었다면, 목숨이 아홉 개라는 고양이보다 더 묘묘한 생물이 되었을거다.


죽음과 그렇게 번번히 조우하려 했던 디자이였다면, 그는 퍽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졌던 게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거부의 집안에 태어나 온갖 영화를 다 누렸을 법하다. 비관적인 세계관이란 가난에서 오는 비참함과 굴욕 같은 것에서 원인이 되는 경우보다는 반대 급부의 경우가 더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부잣집 도련님 온집안의 귀염둥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예민한 자아로 인하여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고 일어나는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


자신을 인간 세상에 적응할 줄 모르는 생활 무능력자라고 인식했던 그였던 만큼, 가족에게 의지를 했고, 가족의 기대와 집안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으려 했으나.... 주위 사람을 실망시킨 것에 대한 회피책으로서의 자살로 번역자 김춘미는 해석하고 있다.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좀 더 가시화된 가진 자로서의 부채 의식을 갖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그의 자살 시도들에 원인 제공을 했을 터이지만....


이 소설은 일본의 패망 뒤 일본 사회에 만연했던 허무주의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그 의의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불현듯 천성적으로 인간과 그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공포를 느끼곤 하는 우리들의 휑한 가슴에도 어렵지 않게 파고들어 후비는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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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7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17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17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17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5-07-1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살을 무려 일곱 번이나 시도했던 사람인데 아직 살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자살하고픈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은 마지막 일곱 번째 시도 이후 제게서 완전히 지워 버렸습니다. 스스로 죽고 싶은 만큼 내 속엔 삶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여러 이유로 자살을 하겠지만-어느 철학자는 생존의 욕구가 가장 강한 사람이 자살을 시도한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공감합니다.
정도는 달라도 삶에 무기력해지는 것도 일종의 자살이 아닐까요. 이카루님은 현명하신 겁니다. 몸과 영혼이 스스로 감당 못할 만큼 처질 땐, 슬픈 영화나 음악은 듣지 마세요. 물론 가끔은 저는 한번 정도는 일부러 아주 아주 슬픈 영화나 음악, 또는 책에 저를 내버려 두곤 하지요. 실컷 울기 위서 말예요. 단, 실컷 운 다음엔 씻은 듯이 잊을 것을 단서로 하고요. 그럴 자신 없으면 그냥 그냥 님처럼 슬프거나, 아프거나, 무섭거나, 괴로운 것은 살살 피해 다녀요.
이카루님이 숙면을 못 취하신다니 밤마다 편히 잠드시길 기도할 게요...

2005-07-17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1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들...말씀 고맙고요오...
진주 님... 언제나 님의 경험을 통해 해 주시는 말들은 깊이 새기게 되네요...예...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고 할까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숙면을 취하는 나날이 오겠지 하구 있어요 ^^

잉크냄새 2005-07-18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말에 이 소설 리뷰를 쓴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 요조에 대하여 엄청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님의 글을 찬찬히 읽으니 일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일년의 시간이 또 사고를 좀 변화시키는 모양입니다. 순진한 무구심이 결코 죄의 원천이 되는 일은 없어야할것 같네요.

icaru 2005-07-1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님의 비판적인 입장에 전 더...공감을 합니다... 요조의 약한 부분...음산한 마음...이 독자인 저도 감정이입 되는 부분이 적잖이 있긴 했지만... 앗...그리고 인간실격 뒤에 나오는 단편도 있었잖아요...
님은 그거 읽으셨어요~ 뭐였더라 제목이 두 글자였는데... 아무튼 저는 그것도 건너뛰었네요 ....

잉크냄새 2005-07-1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양>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유다의 심리에 관한 소설...좀 특이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네요.

2005-07-30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즈음에 읽는 정장본 프랑스 작가의 소설은 절반치만 신뢰하고 대한다. ‘차에 치인 개’가 그랬고 암퇘지가 그랬다. 책 뒷면, 날개에는 각종 유력 일간지들의 쏟아지는 찬사로 도배되어 있다. 이 책에도 여지없이 있다. 똑같다. 서른이 못되는 나이에 발표한(꼭 서른을 기점으로 나이를 운운한다. ) ‘콧수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200페이지 분량의 줄타기를 하는 천재라는 것이다.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아 그래도 이 책은 좀 다르다.’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 취향 같은 걸 알아버렸다. 나는 사건이 일어난 지점(인물의 관계망이 뒤섞인 지점)으로부터 주인공이 공간적으로 멀리 빠져 나와 저만치 멀리둔 최초의 사건에 대해 재해석을 하고 관조하는 패턴을 좋아한다.
일테면,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도망치듯 파리를 벗어나, 공항에 가고 좌석이 남아 있는 비행기라면 아무 행선지나 잡아타고 (홍콩), 그렇게 찾아간 홍콩의 어느 호텔에 장기 투숙하면서 보내는 부분. 하는 일이라고는 구룡 반도와 홍콩섬을 왕복 운행하는 페리를 수십 번씩 갈아타며,
 
“페리선은 그의 마음에 들었다,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왔다갔다 하는 그의 마음에 틀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동전만 넉넉히 있으면, 망설이다가 욱하면서 다른 생각이 들어도 행동으로까지 옮기지 못하고 지금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라고 말하는 부분이 좋다.

내 맘대로 분류에 의하면, 이 책은 적의 화장법 류의 작품인데, 줄거리라고 할 것도 없는 줄거리를 말하자면 대충 이렇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은 아내를 깜짝 놀래주려고 10년 넘게 기른 콧수염을 깎는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 그녀 앞에서 그는 초조해진다. 아내의 무관심을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아내는 정색을 하고 콧수염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한다. 친구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콧수염을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사실 나는 이 부분까지는, 정말 간신히 간신히 읽었다. 콧수염이 있었고, 없었고 하는 게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아내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가 ,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라는 정체성의 혼돈과 입증의 문제라고 들었는데, 정말 말이 거창하기도 하다고 생각되었다. (요로코롬한 사고 방식으로 소설책을 읽으면 재미가 반감된다... 이런 방식은 극구 피해야 한다. ^^)
그런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은... 어제까지도 전화 통화를 했던 아버지가 오늘 아내 말에 의하면 돌아가신지 1년이 되었다 하고.... 자바섬에 놀러 갔었다는 과거의 추억마저 엇갈려 버린 마당에서부터였다...... 아내 아니면, 내가 미친거다.
급기야 나는 아내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짜고 ‘나’를 정신병원 영원히 넣어버리려고 이런 음모를 펼쳤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가정은 사실 여하를 차치해 두고, 인간 불신 극도의 상황이랄 수 있다. 가장 사랑하고 존엄하게 생각하는 두 사람이... 나를...

콧수염을 가졌다고 생각하는(생각이 아니라 그게 사실인건지 어쩐건지는 나도 모른다...여튼...) 이 주인공 사내는 사실 정신병원이 가장 두려웠던 것이다...  (누군들....당연하지...)
그래서 그는 페리를 타면서 시계추를 떠올리는 것이다. 마치 페리선처럼 무감각해진 미치광이들의 뇌 속에서 절대 지치지 않고 평화롭게 왔다갔다 하는 모양새라고 그는 생각한다.
 
아무도 ‘나’를 내가 알고 있는 ‘나’로 받아주지 않는 상황.은 정말 끔찍할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뭐 대입해 놓고 보기에 그닥 적절한 사례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아무튼 이 작품은 정체성을 말하는 서스펜스류의 소설이 되려고 그랬는지, 주인공 ‘나’는 어느 순간 더 이상 나의 친구와 아내와 소통하여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회피하고 이들에게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고 홍콩으로 날아가버린다. 우리에게 일어난 실제 상황이었으면, 아마도 더 집요하게 따져 물었을 것이다. 콧수염을 깎았다는 것을 알아 줄 때까지 새초롬하게 기다릴 게 아니라, 콧수염이 있던 시절의 증거를 들이대고 좀더 집요하게 진실을 추궁했을 터인데.......!

주인공 ‘나’는 주변인들을 떠보고, 지레 짐작한다. 좀더 추궁하지 않고, 겉으로는 덮어두었다고 말하며, 마음 속으로는 큰 의혹을 잠재우지 못하기 때문에, 의혹은 눈덩어리처럼 불어간다. 이 소설이 결말이 어떻게 나려고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그런데 그 결말이란 게 참... 

마지막 장면의 좀 억지스러운 것만 빼면 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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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9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6-09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패턴을 좋아하신단 말이죠?ㅎㅎ

미네르바 2005-06-1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참 재미있겠는걸요? 아무도 '나'를 내가 알고 있는 '나'로 받아주지 않는다면... 아마 미치겠죠? 그런데 콧수염 자른 사내는 그냥 회피하고 마는군요.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네요.

2005-06-10 0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6-10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수정했어요...!! 헥헥헥... !
로드무비 님... 옙...프랑스 중위의 여자도 그랬고.... 마구스도 그랬고... 중간에 장소가 바뀌는 걸...좋아하는... 이거도 패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는 몰라도요...
미네르바 님.. .하하... 그렇다면 아마 미치고 펄쩍 뛰겠죠...ㅋㅋㅋ
속삭이신 님... 맴매예요!!!

비로그인 2005-06-10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가스등>을 보는 거 같아요. 아내를 미치광이로 몰아가는! 결국, 콧수염이 있었던 건가요, 없었던 건가요? 실제로 음모가 있었던 건가요, 백모증이었던 건가요? 이거 스포일러인가요, 아닌가요? 지금 비가 오나요, 그쳤나요? @,.@ 딸꾹~

2005-06-10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6-12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리뷰 하나 쓰면~ 낚시줄에 대어 낚듯,,,, 엮어서 건지게 되는 것들이 많다니깐요~ 오늘은 복돌언니 추천... 가스등야요!!

속삭이신 님... 흐흐... 작가 뺨 치는 댓글이세요...
사실 저도 콧수염에 달린 님들의 댓글에... 대한 댓글을 썼는지 안 썼는지 알쏭달쏭해 하다가 .... 이제사 씁니다...

sayonara 2005-06-1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염얘기는 뭐니뭐니해도 유럽의 잔혹동화 '푸른 수염'이 최고죠. 어린 시절 그 작품을 그림책으로 읽고 일주일동안 악몽에 떨었던 기억이...(지하실에 매달려있는 XX들...)
이카루스님의 리뷰가 (아마도) 원작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것 같습니다. ㅋㅋㅋ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조르바 왈, “새끼 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 버렸어요”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뭐 하나를 잘라야만 했다. 조르바의 말과 행동에 온전히 빠져 보려 하는데... ‘ 모든 여자는 화냥것들이다 ! 여자는 그저 보호해 주어야 할 약한 존재 지나지 않는다! ’는 조르바의 언사를 진지하게 듣고 있노라면 조르바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드는 ‘바’라서 말이다. 여성주의적인 잣대의 렌즈를 저만치 던져 두고 읽어야 속에서 덜 걸리적 거렸던 것.

여자에게 뿐일까, 조르바는 말한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 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르바는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려는 사람이다. 조르바가 애초부터 이렇게 조국을 불신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터키로부터의 독립 운동을 위해 비정규 전투 요원 활동을 하다가, 불가리아 비정규군 신부를 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몇일 후, 조르바는 거리에서 맨발에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만났는데, 이 아이들이 얼마 전 자신이 죽인 신부의 자식들이었던 것이다.

작중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 했던 것을, 조르바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고스란히 살아왔던 것.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것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웃기지 말란다. 펜대 운전수(작중 ‘나’) 뜨끔할 소리다. 그래서 작중 ‘나’는 조르바를 더 존경어린 눈으로 보는 것이다. 두 사람은 상반된 사람이다. ‘나’가 문자와 지식으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에 갖혀 있는 백면서생 의 위치에 점하고 착찹해하는 존재였다면, 조르바가 있는 지점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자각하는 상태였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물리적 변화,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화학적 변화를 넘어서, 포도주가 인체에 들어가서 사랑을 하게 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

 

먹고 있는 음식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는지가 더 중요한,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을 뛰어 넘으려는 존재로 그려진 조르바였기에, 펜대 운전수 ‘나’도 독자인 이 아줌씨도 조르바에 대해 경의를 느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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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5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5-25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마씨, 펜대 운전사 이런 단어들이 참 재밌었어요...

2005-05-25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5-25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징!! 쌩쓰투 뜨면 난 줄 아시오~~~~~!! 이까루 언니!

파란여우 2005-05-2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강렬하게 읽은 기억이 남는 책입니다.
지금 다시 읽으라고 한다면 어려울 것 같아요. 왜? 조르바의 말투는 이제 나이든 제게 그다지 매력직인 자극을 주지 않거든요..이렇게 건방을 떨면서 어떡하든 읽지 않으려고..^^, 포도는 제가 자주 사용하던 단어인데 반가웠습니다. 농익은 포도만큼 님의 서평도 찐한 맛을 낸다는 거 아시나요?^^

진주 2005-05-25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껜가? 마태우스님의 이벤트에 이 책으로 퀴즈를 낸 걸, 저는 읽지도 못했으면서 12문항 중 자그마치 6개나 맞췄다는 거 아님뉘까? 캬캬캬.....
정독은 못했지만 워낙 유명해서 줏은 들은 건 좀 있었죠...안소니 퀸인가? 영화도 찍었었고....(앗..여기서 이벤트후기를?) 암튼, 반갑네요^O^

hanicare 2005-05-2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르바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드는 ‘바’라서 말이다- 푸힛. 이카루님도 은근히 유머러스하시다니까요. 참 강렬하게 읽었던 건데 여성관은 정말 꽝이죠? 그래두 마루야마 겐지와는 다르게 조르바에겐 정이 가는 구석이 있었지요.

비로그인 2005-05-25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습니다. 이 유명한 책을 읽지 못했어요. 먹고 있는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게 되는가, 라는 문제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의미와 닿을 수도 있다고 추측합니다. 도서관에 가기로 되어 있는데 빌려 올거에요..근데 늘 반납을 못해 정지를 먹어요, 읽기나 하면 말을 안 해. 으이구, 제가 하는 일이란 게 다 글쵸, 뭐어~

icaru 2005-05-25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2:43에 속삭이신 님.. ㅍㅎㅎㅎ.. 앞으로 더 노골적으로 능청스러워지도록 허것슴돠!!! 아줌씨들 화링... !
떙스투 적립금이 생기면...."아! 바겐셀언니구나..." 헐께요... 땡겨서 고마움 전해유!!
파란여우님..ㅎㅎㅎ... 신포도 말이지요~ 역쉬 인간보다 여우가 낫단께요!!
진주 님... 그 영화 보셨어요...예에...안소니퀸이 조르바역으로 나왔다대요... 아고 보고파라...
하니케어 님..... 조르바에겐 정이 가요..... 여성관은 심히 마음에 안 들지마는...ㅋㅋ 이 리뷰 쓰면서... 조르바의 그 완숙한 넉살을 좀 따라해보려 했는데... 전 안돼나봐요...죽었다깨어나도요...ㅋㅋ 그래도 얼핏...님은 유머러스하게 보아 주신거네요...아이 좋아.. !

복돌언냐,.... 그죠...제말이 그말이어요...님이 제대로 말쌈해주시니... 제 횡설수설이...조금 덜 부끄럽사와요... 님이 하는 일이 그렇긴요...제가 하는 일이 다 그렇죠..헤헤..

2005-05-25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5-2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 읽어봐야하는데.. 언제나 시간핑계만...;;;

icaru 2005-05-2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혹 그 당시 쓰셨던 독서 노트 같은 게 있다면...느무느무 보고 싶다는생각입니다... 87년도에 고등학생이셨던거죠 ?? ㅋㅋ 중학교 때 읽었던 셰익스피어 작품은 어느 정도 기억난다 하셔서...ㅋㅋ 넘겨짚지 말라구요오? (깨갱..)
저는 고려원에서 나온 책 인간 카잔차키스 라는 책 상,하 권이 있거든요...(읽었냐고 묻지 말아주셈^^) 날개를 대충 보니, 그의 두번째 부인이 그에 대해 쓴 것인듯... 그건 언제 읽으까요...
비숍님...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없고... 헙니다... 전 그래서,,,, 평소 베스트셀러나 신간엔 눈길도 못 주죠...감히...어데...
이 책도 산지 만 1년만에 읽음...작년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린, 도서박람회 때 열린책들 부스에서 삼십프로 할인해서 산 책이었다죠...

잉크냄새 2005-05-2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산 남자....라는 말에 한동안 매료되었던 사람입니다.
아마 저책 표지가 앤소니 퀸이죠? 아, 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앤소니 퀸의 팬이라지요. ㅎ... 이참에 서재 이미지를 앤소니 퀸으로 바꿔볼까요? 안 그래도 한적한 서재.. 더 한적해지겠죠?^^ㅎㅎ

icaru 2005-05-2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말이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산 남자...
와...앤소니 퀸 팬이시로구나... ㅎㅎㅎ 더 한적해질거라구요오?..음 ...이 참에 바꾸심... 제가 이카루로 바꾼 거 보다 더한 혼돈이 예상되옵니다...
시험삼아... 바꿔 보시겠어요? (아아...농담요...ㅋㅋ)

sayonara 2005-05-3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소니 퀸의 작품으로 대충 본 적이 있는 작품인데... 역시 원작의 무게감은 대단한가 봅니다. 리뷰만으로 판단하자니..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라는 영화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전혀..?!)
저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혹시 thanks to 두 개 뜨면 두번째껀 접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