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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딘가에서 본 서평에 이 책은 ‘하루키식 종합선물세트다.’ 라고 하는 표현에 무릎을 쳤다. 이 말은 다소 어깃장을 놓는 무엇이 되겠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없이 그간 써먹은 설정을 한 데 모아 이쁘게 포장까지 했다는 말이니까... ... "어디가 그래?" 라고 의문을 던지고, 또 굳이 따지자면, 뭐 이런 거다. 홀수장과 짝수장을 중복 교차하여 시점을 표현하고,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에서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그리고 고양이와 대화하는 나카타 상의 모습은 ‘태엽 감는 새’에서 본 듯도 한 것(고양이의 가출과 아내의 가출로 시작되는 모험, 그리고 나카타 상이 조니워커 상을 죽이는 몽환적인 살인 장면 묘사). 그밖에 꿰어다 대자면 많겠지...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지적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에서 <미래소년 코난> 중의 ‘나나’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의 얼굴 모습과 캐릭터가 유사하다고 퉁을 놓는 것과 매일반이 아닐까.
하루키의 소설 몇 편을 읽었지만, (그것도 최근 1~2년 사이에 읽은 게 그 전에 읽은 것보다 많지만) 줄거리를 대략 기억하고 있는 작품은 몇 편 되지 않는다.
줄거리보다 언제나 먼저 매료되고 마는 것은 그의 소설에서 줄줄 흐르는 ‘가벼움’, ‘무국적성’, ‘상실감’, 재즈 음악과 음식과 패션에 대한 세심한 표현같은 것.
이것이 하루키를 읽는 내 독서 스타일의 한계이고, 어쩜 하루키의 한계일지도....
하루키는 꽤 오래전부터 열다섯살 소년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단다. 아직 정신 상태가 고착되어 있지 않고,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열다섯 그러나 정신 안에서는 맹목적으로 자유를 모색하고, 신체는 격렬한 속도로 성숙을 해가는 그 나이의 인물과 상황을 픽션이라는 그릇에 넣어 그려보고 싶었다고...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열다섯 소년 카프카는 몸만 열다섯살일뿐 정신연령은 하루키 연배로 보여진다. 기왕 열다섯의 픽션에 넣으실 작정이었음 좀더 열다섯살다운 모습을 그려 주시지 않고, 하는 아쉬움도 든다. 물론 주인공 카프카 소년은 여느 열다섯과는 다르다. 어머니에게는 어린 시절 버림받았고, 아버지는 그에게 이상한 저주를 내렸다. 그래, 소년은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이 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카프카가 집을 가출하면서 시작된다. 따뜻한 고장으로 무작정 가보자고 해서 도쿄를 떠나온 곳이 바로 시코쿠. 그리고 저녁 때까지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도서관을 찾는다. 이 소년 떠나기 전에 도서관의 위치를 찾아두는 꼼꼼함까지...
이 곳 도서관에서 만나고, 일자리를 얻게 해 준 오시마(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카프카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는 스승이다. 오시마는 피신을 하려는 카프카를 깊은 숲 속 오두막으로 안내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며 카프카는 음식을 해 먹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다른 한 쪽에는 카프카의 반쪽 그림자이기도 한 초로의 노인 나카타 상이 있다. 선천적으로 우수하게 태어났고,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주위에서의 기대치가 높았던 어린 시절 나카타는 그만 전쟁이 있던 시절(1944) 산으로 버섯을 따러 갔다가 원인모를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은 채, 시청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을 한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던 것을 얻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플롯의 새로움이나 하루키 습작 스타일의 일보 진전을 굳이 찾으려 했던 사람에겐 오이디푸스 신화 차용이라던지하는 것을 볼 수 있겠지만 또 그것의 식상한 적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하루키만의 명대사를 보려 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구절들을 군데군데서 여지없이 발견하게 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우리의 운명이라는 게 끊임없이 진로를 바꾸는 모래 퐁푹 같다고 했다. 모래 폭풍은 아무리 '네'가 도망치려 해도 진로를 바꾸어도 계속 '너'를 쫒는다고 . 그 폭풍은 먼 곳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게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들어가야 하며, 하루키는 주인공 카프카가 걸어들어간 그 길을 장장 800여 페이지에 걸쳐 보여 주려 했다. 헥헥헥....
“오시마 상은 예언하는 능력이 있습니까?”
“없어” 하고 그는 말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어. 내가 만일 불길한 것만을 예언하는 것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내가 상식이 풍부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이야. 나는 일반론으로 연역적으로 말을 하지. 그러면 그것은 결국 불길한 예언으로 들리게 되거든.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주위에 있는 현실이란, 불길한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야. 어느 날짜 어느 신문이라도 상관없으니까 신문을 펼치고, 거기 있는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저울에 달아보면, 그런 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어.”
---오시마의 명 대사...
"잘 들어, 싸움을 끝내기 위한 싸움이란 어디에도 없어." 하고 까마귀 소년은 말한다. "싸움은 싸움 자체 속에서 성장해 가거든. 그것은 폭력에 의해 흐른 피를 마시고, 폭력에 의해 상처 입은 살을 뜯어 먹으며 성장해 가지. 싸움이라는 것은 일종의 완전 생물이야. 너는 그것을 알아야 해."
---까마귀(라 불리는) 소년의 명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