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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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우울이 덮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것을 떨쳐버리려 할 것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서는 그것에 대한 두 가지 방식이 나온다. 유럽적인 방식과 그린란드식 방법.

유럽적 방식에는 구세주 교회에서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듣는 것, 마약 가루라는 형태로 된 즐거운 기분 한 가닥을 면도날 달린 손거울에 담아 빨대로 마시는 것, 전화를 걸어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라면. 그린란드식 방법은 어두운 분위기에 침잠하는 방식이다. 내 패배를 현미경 아래에 올려놓고 그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침잠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상을 꾸려야 하는 이들에겐 어쩜 치명적인 것이다. 자잘한 우울들이 팔에 돋는 소름처럼 일어설 때마다 살살 달래 주어야 할 때, 그린란드식 방식을 취하게 되면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존재가 되버릴 것이다. 이토록 공수가 많이 들어가는 그린란드식 방식이 스밀라에게는 치명적이지 않다. 그녀는 우울에 침잠할 수 있을 만큼 감성적인 반면에 합리적인 표현력을 지닌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나는 구조적으로 세상에서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을 연습해왔다. 단념하는 법을. 어떤 것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자기 비하의 경험이 올림픽 경기 종목이 된다면, 나는 국가대표도 될 수 있다.


썰매 여행에서 딱 하나 금지된 것이 있다면 징징대는 것이다. 징징대는 것은 바이러스로,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높아 쉽게 감염되는 질병이다.

 

"눈에서부터 배울 수 있는 한 가지는 거대한 힘과 재앙은 언제나 일상 생활의 소규모 형태에서부터 발견된다는 것이다." 라고 했다. 여기서 눈이 자연을 가리킨다면 일상 생활은 도시로 대표되는 문명이다. 그 눈은 덴마크의 도시에서 내려 아이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게 하고 눈과 얼음으로 덮힌 야생의 대륙 그린란드까지 가서 응징을 받게 한다.

세상은 과학적 지식과 냉철함 혹은 돈에 대한 욕망으로 똘똘 무장한 강자로 대표되는 퇴어크나 로옌 등과 같은 사람이 그린란드 운석 한 덩어리 마저도 모두 장악하고 차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미치는 자장 또한 미미한 것임을 알게 한다.


스밀라가 눈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 했던 것은 절대성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이 절대성을 증명하는 인간의 시도는 바로 수학이었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 그렇지만 나는 삶에서 일정한 무언가를 닻처럼 내리고 있다. 그걸 방향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자의 직관이라고 해도 된다. 뭐라고 불러도 좋다. 나는 기초 위에 서 있고, 더 이상 나아가 떨어지지 않는다. )


책껍데기의 김연수의 말처럼, 나는 시종일관 스밀라가 보여주는 세계를 마음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작가가 가진 다채로운 이력만큼이나 참으로 다양한 것들을 불어넣어 스밀라라는 캐릭터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런 스밀라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일은 비록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꽤 해볼만한 도전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비록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엔 여러 가지 것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닐 뿐, 내 손안에 꽉 쥐어지는 것은 하나 없다. 뭔가 남겨지는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냉철함의 밑면에 무엇보다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는 스밀라를 앞으로 한두번은 다시 만나야 한다(재독을 해야 함...)고 생각하고 그 때는 분명 지금보다는 온전히 그녀에게 빠져 들 수 있을 만큼 집중력이 우수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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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11-0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밀라를 다 읽고 난 지금, 가끔씩 작가의 생활방식이 떠올라요. 자동차와 전화가 없다는...^^ 스밀라의 강을 건너셨군요. 축하드려요. 짝짝~
이카루님은 이성과 감성을 똑같이 나눠서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어디하나 치우치지 않는...혹시 별자리가 저울(천칭) 자리에요? 헤헤~ ^^

물만두 2005-11-0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으실 날을 기대합니다^^

야클 2005-11-0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다시 봐야되는데 아직 못 보고 있어요. ^^

반딧불,, 2005-11-0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스밀라에 동화하지 않고는 도저히 읽히질 않더군요.
간략하면서도 참 좋군요.
야클님 영화는 또 어딨는지??

야클 2005-11-0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몇년전에 비됴로 나온게 있지요. <센스 오브 스노우>라구요.



비로그인 2005-11-0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엉~ 어렵삼!!

sayonara 2005-11-0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ㅅ! 영화도 있었군요. 부디 진한 감흥의 소설 속 이야기를 섬세하게 표현했기를...

인터라겐 2005-11-0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저도 앞부분 보다가 덮었어요.. 일단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가시면 다시 들춰보려구요..

2005-11-08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1-08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정말 말그대로 지난한 스밀라의 강을 건넜어요...야호!!!  이젠 강이 두려워요~
천칭자리요? 캬... 하루 차이로 처녀좌랍니다!!!

물만두 님 옙... 무쟈 한가해지면 말이죠...스밀라부터!!

야클 님... 저도 영화로 보려고 동네 대여점을 찾았었는데요.... 센스 오브 스노우가 있길래... 껍덕을 자세히 읽어보니......다른 영화 같던데요?  그게 스밀라 맞아요?
 
반딧불,, 님... 좀 많이 힘들더라고요..일단 잡기 시작했기 때문에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 이 많이 앞섰습니다!

이런 비됴 꽉대기도 있었어요..



 복돌언냐... 어렵게 읽은 책은 리뷰도 도통 뭔소린지 모를 것을 쓰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래도 읽을 가치는 있당게요~

사요나라 님 영화 보시면 리뷰 좀 올려 주시죠!!

인터라겐 님 정말정말 현명하신 생각이십니다!!!

속삭 님도요 읽을 것이 많은 세상...이 책은 조금 미뤘다 나중에 천천히 씹어 드시면!!!  섭생에 좋을 듯 합니다...

속삭 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 되려 .... 이 사람의 다른 책... 여자와 원숭이는 함 읽었봤음 좋겠다 했거든요... 존재에 관한 세 가지 거짓말도.... 좀 엄청난 강(?)을 건너야 한다고 들었던 거 같네요..


 


2005-11-08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실은 쓰지 않고 넘어가려다가... 읽느라고 들인 공이 아까워서...ㅠ,.ㅜ
빅슬립 봐야겠어요... 빅슬립 번역한 사람이...꽤 잘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거 같아요... !

icaru 2005-11-08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싸 그러고 보니... 이 책과 빅 슬립과 번역한 사람이 같네요...!

하루살이 2005-11-0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밀라에 반해 여자와 원숭이도 읽어봤는데...
글쎄요, 여자와 원숭이는 문명비판에 너무 촛점을 마추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
캐릭터들에 동화되기도 힘들고,
그래서 리뷰도 못쓰고, 절절...
스밀라의 기저에 깔린 우울모드가 정말 저에게는 딱이어서,
생각보단 쉽고 재미있게 읽던 기억이 납니다.

히피드림~ 2005-11-0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들이 많아서 전 지각한 느낌이 드네요.^^;; 인용하신 책 속의 구절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요즘 알라딘마을에서 이 책이 많이 회자되는 것 같아요. ^^

humpty 2005-11-0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역시 나한테는 어려운 책이었음...^^;;

비연 2005-11-0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으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었지요. 우울에 가까운.
이 책은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난해하게 왔다갔다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괜히 나의 바닥을 보게 하는 것 같은...그런 느낌.
근데...비됴 표지는 별로 맘에 안드네요...영화는 괜챦았을려나.

icaru 2005-11-1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은 댓글을 달게 되었네요....
여자와 원숭이는 문명비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 반면에 또...기존 문명비판서와는 다르게... 결국엔 문명이 패배한다...류는 아니다 라는 말도 들은 거 같은데...
더 잘알려면 읽어봐야겠군요...! 하루살이 님의 리뷰 기억해요.... ! 기상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여셨잖아요!!

펑크 님...정말 알라딘마을에서는 유난히 회자되는 책임이 분명합니다 ^^ 말들이 조금 가라앉았을 때 읽는 것도 좋을 것 같고... ^^
험프티 !! 나도 그랬어요... 그럼에도 리뷰를 쓰다니...나 용하죠?
비연 님...비됴 표지..ㅋ 저 두꺼운 책을 영화로는 어떻게 소화했을까...너무 궁금해요!
 
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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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진지해 보이기만 하는 세상에서 쬐금 더 가벼운 걸 추구하여 무거움을 덜어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해 봄직한 소설이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이 소설 얼마나 사뿐사뿐 하길래 하며 경박한 것을 상상하시면 또 아니된다...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극심할 뿐 아니라 학력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본 사회(비단 일본 사회 뿐이겠냐만...)에서 삼류 학생들이 우리의 주인공이기 때문. 왜 삼류인가? 단순히 공부를 못해서? 재일 한국인이고 혼혈이기에.

그렇지만 무엇에 굴하지 않고, 쿨하게 살아간다는 것. 까짓것....

늘 다수측이 이기게 돼 있는 세상... 앞으로 살면서 무수한 날 쓴 패배를 맛보겠지... 하지만 그게 싫다면! 계속 달리는 거다. 간단하다. 그들의 시스템에서 빠져 나와 이렇게 초등 학교 1학년생들처럼 계속 달리는 것!

패배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류의 변명조 소설이 아니다. 그들은 나를 두고 패배자라고 할지도 모르고, 앞으로 고된 인생을 살게 될지도,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 보겠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배운 표현 한 가지.

화려한 말발로 당신을 제압하려는 사람 앞에서 반론을 찾지 못해 어쩔바를 모를 때, 옳고 그름은 구별할 줄 알아, 상대가 틀린 말을 하고 있다는 판단은 드는데, 언어가 모자라서 그럴싸하게 말을 늘어놓는 상대에게 휘말리려 할 때, 딱 이렇게 말하고 튀어 버리자....

“당신이 하는 말은 텔레비전에 잘 나오는 뇌경색에 걸린 정치가나 평론가 급이로군!”

 

이들이 더 좀비스...인 이유는...빌린 장켈레비치의 <죽음> 속... "죽지 않는 것은 살아 있지도 않다"의 글귀에서 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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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1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소설이 그의 데뷔작이더라고요...~ 님은 그럼 데뷔작 빼고 다 읽으신 거네요..
저도 이 소설에서 노골적으로 삼류!삼류! 그러고.. 자신들이 뇌사 상태에 빠진 것 같다며 스스로를 더 좀비스라고 하고... 그래서 좀 당황한 감도 없잖거든요~ 흐흐..님의 반신반의 충분히 이해한다니까요...! ㅋ
패배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는... 결혼은 했지만 유부남은 아닙니다 에서 왔어요~ ^^
그나저나 그만 속삭이시고 모습을 보여 주셈!! ㅋ

히피드림~ 2005-11-0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재일교포군여. 이 책 보관함에 넣어두었어요. 요즘 보기드물게 책값이 싸서 깜짝 놀랐다는,,,,^^;;

비로그인 2005-11-0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거 읽으셨어요? 흐흐..아, 전 반론을 해야 하는데 콱 막혀버리면 기냥 토껴버릴랍니다! 알았어요, 꿋꿋하게 달릴게요! 근데 오..마지막 문장, 그럴 듯 하네요..

icaru 2005-11-0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흣...펑크 님 가격 부담도 그렇지만~ 내용 부담도 덜한 편이죠~!!!
복돌언냐... 더 좀비스의 수칙을 에저녁에 고수하고 계셨던~ 님이네요!!

2005-11-02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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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엇이든 분석하고 정의내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학자?)은 사랑이란 감정 또한 두뇌의 ‘화학적 작용의 결과’라고 인식한다. 요는 그거다. 사람이 사랑하면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나와서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지만 길어야 30개월 정도만 지나면 대뇌에 이런 종류의 물질에 대해 내성이 생긴다고.
동물은 일정 기간 동안 사랑을 나눈다. 그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서로에게 그야말로 의미와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사람은 유일하게 평생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존재이다.


리뷰를 쓰자, 말자, 여러번 생각을 거듭한다. 사랑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과 책임에 대해서 말을 꺼내면 두서가 없어지고 말을 바꾸게 된다. 이런 책은 나의 애정 전선이 잘 풀려 가고 있을 때는 시아버지와 그가 사랑했던 멀리 있는 여자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내 사랑이 삐걱거릴 때는 시어머니와 주인공인 며느리에게 마음이 가 있게 한다.
참 잘 읽히게 쓴 글이다. 뭔가 일상 생활 속에서의 평범하지만 신뢰가 가고 편안함을 주는 글쓰기를 하고 있달까,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제2의 연인 위해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 모두의 입장에서 아우르는 자칫 공정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좀 미진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서 이혼하자는 남편을 가타부타 말 한마디 보태지 않고 떠나보내 일. 그리고 자기 가치를 찾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일이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차라리, 이 책 속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처럼 사는 것이 쿨하지는 않지만... 더 그럴법 하다.
 시어머니는 남편이라는 사람을 둘러싼 환경(자녀들, 주택, 이웃)에 만족하고 행복해했으나, 시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랑 때문에 일 중독자가 되었고, 자녀들에게는 한없이 근엄하고 벽이 있는 존재였다. 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울타리 같은 느낌이 한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갈 수 없는 족쇄 같은 것이 될 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당연히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 삶의 방향을 우리가 좌우할 수 있다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믿는 것 그게 바로 덫이다. 
 

이 책의 시어머니를 보면서 모 생명보험의 광고 하나가 생각났다.
 
아내의 인생은 깁니다.  아내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아내가 생리대를 사서 아무스럽지 않게 카트에 휙 던져 넣는다. 그러자 남편 내레이션... “처녀 때는 조금만 부끄러워도 얼굴이 빨개졌는데....왠지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라고.
참... 이상한 광고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생리대를 부끄러워 숨기듯 구매하지 않는 여자가 되어버린 것에 왜 남편은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걸까. 남편은 아내의 본성이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천상 소녀의 그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아내를 생활고에 내몰아 본성을 깨뜨리게 했다고 여기고 있는가보다. 아니면, 남편은 아내가 그저 천상 소녀에만 머물러 있기를 바랬던 것일까.

그런데 내가 보기엔 생리대를 부끄러움 없이 구매하는 당참도 그녀의 숨겨진 본성이었다고 본다. 아내가 천상 소녀의 이미지를 깨고 타락(?)한 것이 아니다.

 시아버지 로맨스(바람)을 알고 속앓이를 하다가 이혼만은 안 하기로 혼자 결심했다는 그녀에게 이다지도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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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1-0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러게요. 저번에 어떤 기고문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가족의 이상적인 모델,이랄까요. 그런 환상을 부셔야 한답니다. 저두 -답게, 라는 말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생각해보니 왜 -다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시어머니다운, 시아버지다운, 며느리다운, 사위다운..숨막혀요.

비로그인 2005-11-0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자의 외도! 혹시나 그 배우자가 가정에 성실한 사람이고, 그(그녀)의 인격을 신뢰했다면 더욱 배신감이 클 거 같아요. 전 어쩌면..

icaru 2005-11-0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어머니는 남편의 외도 사실은 알았지만... 이혼을 하자고 먼저 말하지는 않거든요. 남편에겐 배신감이 들지만... 그것 때문에 가정을 버릴 수가 없었던 뭐 그런....
가족의 이상적인 모델,이랄까요. 그런 환상을 부셔야 한다는 복돌언냐의 옮긴 말에 저도 동감여요...!!!

panda78 2005-11-01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저 광고 볼 때마다 은근히 기분 상했더랬어요. 이제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아내에게서 매력을 전혀 못 느끼겠다. 그렇게 만든 게 나라고 생각하니 미안해 죽겠다? 뭐 이런 뉘앙스도...
외도와 이혼이라... 으으음...

2005-11-01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 님...핫...고런 해석도 가능하군요... 아줌마 같은 아내에게 매력을 못 느끼고...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나니깐 미안해 죽겠다!! 썩을...남푠..
으으음...그죠...외도와 이혼... 어려워요...

속삭님.. 그러고보니..제가 뭘 안다고..."덫"이라고 단정을 내려버렸던지...
작가가 이혼 한번 잘했다 하는 생각을 ㅋㅋ 사랑과 전쟁이라는 금요일밤 드라마가 생각나네요.. 거기서 시청자들이... 전 주 방영내용에 대해 이혼 몇 프로, 찬성 몇 프로 할 때, 이혼이 늘상 과반수잖아요~ 드라마는 그렇다치고... 이 작가나 해리포터 아줌마나 그녀들의 인생에 있어...이혼은 기폭제였던듯.. ^^

kleinsusun 2005-11-22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 오랜만이예요. 저도 오늘 아침에 이 책 다 읽었어요.
참.....잘 읽혀지네요.재미있고.
"아내의 인생은 깁니다" 이 광고는 저도 불쾌하고 엽기적으로 생각하는 광고예요.
아주 가부장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글쿠...생리대를 떳떳하고 당당하게 사는건 아주 당연한 거쟎아요.그죠? ㅎㅎ

전 감정이입이 마틸드한테 되던데요.
그 사랑을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humpty 2005-12-0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잼나게 읽었다길래 뭔 책인가 싶어 다시 찾아 봤어요.^^
근데 책 얘기보다 광고 얘기에 공감. ㅎㅎㅎ
'젊고 예쁜 여자'만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돌아볼 생각은 않고, 고작 자기 기준에서 아내가 아줌마가 되었다는 것-여성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것에 실망감을...(미안하다고 했지만 가증스런 죄책감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실망으로 비춰지는 거 보면, 내가 너무 심사가 꼬였나?) 하여간, 뭔 광고인지 기억은 못 하지만, 생리대를 자연스럽게 카트에 넣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에 그렇게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니 가공할 상상력이며 동시에 무서운 표현법이었어요.
 
고목탄
나카가미 겐지 지음, 허호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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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작 부분에는 아키유키의 가계도가 나온다. 무어의 마지막 한숨 이후 이런 가계도 얼마만인지. 일본의 순수문학은 얼마나 순수한가(?) 라고 덮어놓고 무심하게 달겨든 독자가 주춤 부담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카가미는 한국과 퍽 인연이 깊은 작가였다. 한국에 관심을 갖고 판소리에 심취하여 전라북도 전주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고, 일본 좌익으로부터 비난와 오해를 무릅쓰고도 여의도에서 육개월간 머물면서 김지하, 윤흥길 등과도 가까이 지냈다고.

그는 산뜻한 문장에 도회적인 테마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소설의 정서와는 대척점에 위치하여 자신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토대로 하는 소설을 쓴 순수문학 계열의 작가이다.

<고목탄>의 주인공 아키유키처럼 작가도 다섯 남매 중 삼남으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 어머니가 재혼하자, 어머니 측에서 보면 셋째 아들이니만 의붓아버지 측에서 보면 장남이고, 자신을 키워준 집에서는 차남이라는 복잡한 가족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괴로워하는 아키유키를 통해 청춘 시절 특유의 고뇌를 엿볼 수 있으며, 전통적인 가족 관계의 붕괴 속에서도 피로 맺어진 일족의 끈끈한 정을 볼 수 있고, 아키유키의 친아버지인 류조를 핏줄찾기 과정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특수한(복잡한) 환경에서 비범한 생활 방식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다. 복잡한 가족사의 운명에 사로잡힌 한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숙명을 그리고 있다고 할까.

특히 근친상간과 가까운 혈족 끼리 서로 할퀴고 피를 보며 싸우는 것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점이 일본 신화의 세계와 유사하다고 후기에 번역자는 말한다. 일본 신화는 단군 신화(환웅의 아들인 단군이 천부인 세 개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와 웅녀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로 우리는 신화의 세계에서조차 배우자를 먼 곳에서 구하는 전통을 보여 준 반면)와 달리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두 신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이들은 남매간으로 근친혼을 통하여 일본 열도와 산천초목을 낳은 것으로 시작된다. <고목탄>도 그렇다. 자살한 형 이쿠오는 자신의 여동생 미에와 묘한 관계에 있고, 주인공 아키유키는 이복동생 사토코와 관계를 갖는다.

이 소설을 두고 번역자는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나는 소설이라고 하는데 과연, 거칠고 억세며 고집스러운 이 작품에도 폭넓은 독자층의 확보가 가능할 것인지 조심스러운 저울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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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1-0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팬층이 형성되겠어요?

icaru 2005-11-0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루 낙관적이진 않어요... !
아...리뷰 쓰는 거 쉽덜 않네요... ^^;;

히피드림~ 2005-11-0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잘 써놓으시고 무슨 말씀을,,,^^ 리뷰 재밌게 잘 읽었어요.

2005-11-01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인적 체험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7년 2월
평점 :
절판


<개인적 체험>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중 난해한 작품에 해당한다. ‘외치는 소리’, ‘일상 생활의 모험’과 같은 작품군은 이 책에 비하면 확실히 잘 읽히는 쪽에 속하리라.

주인공은 '버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사내이다.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그는 자유로운 땅 아프리카에로의 비상(내지는 도피)를 꿈꾸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 복잡한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도 불편하기 그지없을 수 있다. 작가는 아름답기는커녕 추잡하고 꽁하며 더러워 보이는 것에 집착을 보여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자신의 간난아기가 기형아이기 때문에 심각한 괴로움에 빠졌고,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이야기하려면 버드를 사로잡고 있는 ‘공포심’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주인공 버드의 공포는 전쟁이라든가 커다란 사건처럼 정체가 알려진 위기를 직면했을 때 느끼는 공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존재 양식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존재론적 공포이다. 머리에 머리만한 큰 혹을 달고 태어난 기형아인 자식을 눈앞의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하는 막다른 선택에 대한 공포이다. 버드가 이 공포로부터 도망치려는 몸부림은 아프리카라든가 알콜이라든가 다원적 우주 등의 환상 세계로 나타난다. 결국 인간적인 관계에서의 도망침은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버드는 또한 공포로부터의 탈출구로서 대학다닐 적에 동급생이었던 기미코를 찾아가 그녀의 집에 기거하며 성적 오르가즘에 도달하고 이러한 방식을 예술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으로 파악, 몹시도 탐닉하지만, 그 집을 벗어나면 직면하는 세계인 간난아이로 대표되는 현실 세계는 아이가 죽게 하거나 그 아이 자체의 생을 받아들여 할 것이며... 확실히 '기형 아기'로 대표되는 현실은 예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버드는 그 공포(아기)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자기의 노선을 급격히 수정한다.(이 부분에서 소설이 억지 해피엔드로 흐른다는 비난도 있다.)


버드는 애독서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는다. 어느 아프리카 탐험가가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다 곤드레만드레 취해 있는 마을을 본 적이 있다면서 그 원인은 <절망적 자포자기의 근원적 불만>일 거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것을 읽는 버드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결락되어 있는 것과 근원적인 불만에 관해 철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을 자신이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제각기 자기 내부에 절망의 구덩이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들여다볼수 없고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지도 않는 구덩이.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삶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희망하는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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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10-10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잘 쓴다, 이카루님...
스스로, 혼자, 홀로 살아가는 삶이죠. 지극히 개인적인 삶... 마지막 단락에 밑줄 치고 싶어요.
(밑에 2005는 뭐에요? 내 서잰줄 알고 수정 버튼 찾았구만 ㅎㅎ)

icaru 2005-10-10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2005는 뭐래요~ 큭.. 지워야지..
플레져 님 고맙습니다.. 제가 쓴 리뷰지만, 저도 머리를 벅벅 긁게 되는...그런 되게 안 읽힐 법한 글입네다만... (뭔소린지..#$%^*()*& 싶게 써서 말이죠..)
역시 친절한 플레져 님!

비로그인 2005-10-1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드는 현실로 돌아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소시민으로써 늙어가게 되나요..
글고 모든 사람들이 그, 그렇겠죠..개인적인 삶.. 글탐, 글탐, 우, 우린 외로워지는 건가요?

Phantomlady 2005-10-1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글탐, 글탐, 글을 탐하면 우린 외로워진다는 말인가요? @_@

2005-10-11 0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11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0-1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시스터! 글쵸..기형아이를 키우기(그는 이 아이를 죽이려 했었어요...)로 결심하고.. 아내와도 잘 해보기로~
소시민...퍽!!
스노우드롭 님 ... 글을 적당히 탐해야겠습니다... 너무 외로워지는건 싫어라우~
04:12에 속삭님... 공포는 우리를 이끌기도 하지만 때때로 더 많이 죽이기도 하는거 같아요... 어떻게 처치할 수 없는 것인지...
07:37에 속삭님... 님이 홧팅해주시면...제가 힘을 안 낼수가 없다니까요...
근데 이 작가 .. 정말 무겁디디해요... 생김새도? 흐흐..

비로그인 2005-10-11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우리, 글탐하지 맙시다. 다른 걸 탐합시다..나 요즘 외롭수..

icaru 2005-10-11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모두다 외로운 싸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