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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
김상욱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 이 책의 내용이 좋아서 책을 바탕으로 제가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써 준 편지글입니다.
느티나무가 보내는 편지 4
희망, 사막을 건너는 법
먼저 시 한 편 같이 읽어요.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눈으로 찬찬히, 입으로는 나직히 읽어 봅시다.
장수산1
벌목정정 이랬거니 아름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
음, 생각이 납니까? 방학 때 수업하면서 읽은 정지용의 詩군요. 시 속의 화자인 사내는 눈덮힌 한밤중의 산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직 산에는 고요만 가득할 뿐이구요. 그 고요함을 배경으로 화자는 달이 훤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화자는 이 길이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 이미 ‘웃절 중’이 걸은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요. 그 중이 번번이 희망을 가지나 그만큼 실망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웃으며 돌아간 길이 아닐까 생각이 아닐까요? 시적 화자는 자신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촐한 사내’가 아니기 때문에 웃을 수도 없는 것을 압니다. 오히려 그는 지금 깊은 시름에 잠겨 있습니다. 시름은 고요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인식되겠지요? 그리고, 끝내 화자는 “견디란다 차고 올연히”라고 스스로 기다림의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현재의 고통에 대한 탄식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오직 견뎌냄으로써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와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다짐하는 것이지요.
시를 읽고 밑에 곁들인 설명까지 읽어 보니 어떻습니까? 지금의 우리 모습과 한 번 견주어 봅시다. 우리는 힘든 고갯길의 마지막 된비얄을 오르고 있습니다. 함께 가는 친구들은 많지만 결국 그 고개는 혼자서 올라야 하는 길이겠지요? 가장 힘든 지금 이 순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들다는 탄식도 절망도 아닌, 오직 견디는 것, 그것이 아닐까요? 이 시 속의 화자처럼 말입니다.
시와 밑에 매달린 잔소리가 맘에 들었나요? 그럼 다른 詩도 한 번 더 읽어 보도록 합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작품인데요. 우선, 시를 읽고 나서 다시 얘기할까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시가 시작되는 처음에 막혔던 마음이 뒷부분에서야 조금 후련해 지지 않나요? 시의 화자는 갑자기 아내도 집도 다른 가족들과 헤어져 쓸쓸한 거리를 헤매고있지요. 그러니까 화자는 삶의 의욕을 잃고 슬픔과 어리석음에 가득 차서 자신의 존재조차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마침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아프게 느낍니다. 그러나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것”임을 깨닫고는 “외로운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 전환에 힘입어 시는 앞의 누워서 뒹굴던 수평적인 이미지를 벗고, 무릎을 꿇는 수직적인 자세로 어둠 속에 “따로 외로이 서서”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면서 시를 맺고 있습니다.
이 시의 “눈을 맞고 서 있을 굳고 정한 갈매나무”와 앞의 시에 나온 “오오 견듸란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의 시적 화자는 서로 닮아있지 않습니까? 마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기어이 견디어 내고 말겠다는 굳은 다짐을 선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이라면 무릇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앞의 두 시인처럼 지금 이 시름 속에서도, 어떤 슬픔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놓아버리지 않는 존재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여러분들 모두가 힘든 상황을 견뎌내리라 믿습니다. 참고 견뎌내는 것, 바로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