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 계보학 


-- 권혁웅


1. 마징가 Z
기운 센 천하장사가 우리 옆집에 살았다 밤만 되면 갈지자로 걸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이었지만 고철보다는 진로를 더 많이 모았다 아내가 밤마다 우리 집에 도망을 왔는데, 새벽이 되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돌아가곤 했다 그는 무쇠로 만든 사람, 지칠 줄 모르고 그릇과 프라이팬과 화장품을 창문으로 던졌다 계란 한 판이 금세 없어졌다


2. 그레이트 마징가
어느 날 천하장사가 흠씬 얻어맞았다 아내와 가재를 번갈아 두들겨 패는 소란을 참다못해 옆집 남자가 나섰던 것이다 오방떡을 만들어 파는 사내였는데, 오방떡 만드는 무쇠 틀로 천하장사의 얼굴에 타원형 무늬를 여럿 새겨 넣었다고 한다 오방떡 기계로 계란빵도 만든다 그가 옆집의 계란 사용법을 유감스러워 했음에 틀림이 없다


3. 짱가
위대한 그 이름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가 오후에 나가서 한밤에 돌아오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한밤에 나가서 오후에 돌아오더니 마침내 집을 나와 먼 산을 넘어 날아갔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겼다 그 일이 사내의 집에서가 아니라 먼 산 너머에서 생겼다는 게 문제였다 사내는 오방떡 장사를 때려치우고, 엄청난 기운으로, 여자를 찾아다녔다 계란으로 먼 산 치기였다


4. 그랜다이저
여자는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아는 4대 명산은 낙산, 성북산, 개운산 그리고 미아리 고개, 그 너머가 외계였다 수많은 버스가 UFO 군단처럼 고개를 넘어왔다가 고개를 넘어갔다 사내에게 驛馬가 있었다면 여자에게는 桃花가 있었다 말 타고 찾아간 계곡, 복숭아꽃 시냇물에 떠내려 오니… 그들이 거기서 세월과 계란을 잊은 채…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

 

마징가 계보학, 권혁웅, 창작과비평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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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학교에 왔다. 지금, 우리 반 교실에는 몇 명이 앉아서 공부를 한다. 나는 그 녀석들이 안쓰러워서 학교에 나왔다. 아내는 애기와 둘이서 집에 있다. 학교에 오면 아내가 또 안쓰럽다. 잠시만, 애기랑 놀아도 몹시 피곤한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애기를 데리고 학교에 와 볼까도 생각했으나 아내가 말렸다. 요즘 이 녀석이 설사를 계속 하는 바람에 사람 많은 곳은 피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교무실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이철호외 지음, 메이데이) 그러나,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연휴 기간에 꼭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기말고사 출제. 마감이 연휴가 끝난 다음날이다. 나는 지금까지 출제마감을 넘기는 걸 예사로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 마지막 시험인 이번만은 마감시한을 지키고 싶다. 하지만, 그 분(?)이 강림하시지 않느니... 이렇게 서재에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오히려 몸과 마음이 너무 편하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이 나눠져야할 집안 일도 아내에게 다 미루고, 고 3담임이라는 이유로 학교 일만 아주 규칙적으로 해 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몸이 계속 둔해진다.(생각해 보니, 다른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다. - 모두아 모임이 없어진 것과 얼마 전에 폐차를 부탁하며 아버지께 받은 고물차로의 출퇴근도 한 몫을 했을 거다.)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반성이 없는 사람이 원래 편하게 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올바른 방향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원래 맘 편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렇게 팔자 좋은 연휴를 보내는 사람도 흔치는 않을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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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9-22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하고 계시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계십니다~
아가가 설사가 어여 나아야 맛난 것도 먹을 텐데요.
추석 연휴 즐거이 보내셔용~(두고두고 해도 괜찮은 인사^^;;)

느티나무 2007-09-23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기는 아직 어려서 추석 음식은 못 먹어요. 고민이 면피용이 아니었으면 해요. 늘 생각만 있고 행동이 안 되는 한심한 인간은 되기 싫거든요. 내일부터 진짜 추석 연휴랍니다. 저는 애기 데리고 학교로 산책을 가려고 합니다. 본가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랑 더 가깝거든요.

hook-choi 2007-09-25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형샘! 오랫만에 불러봐요~ 모두아 모임이 없어지고는 한번도 못 봤네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아요.
저도 간만에 여유로운 연휴를 보내고 있어요. 덕분에 잠도 오지 않고... 여기저기 헤매고 있어요.^^ 진복이도 많이 크고, 다시 평온을 찾으신 것 같아 좋네요. 모두아 선생님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실까요? 좋은 사람들과 밤새 이야기하고 함께 하던 시간이 그립네요. 곧 기회가 있겠죠?^^

느티나무 2007-09-25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늦은 연락! 여유로운 연휴를 보내고 계시다니 저도 덩달아 좋네요. 모두아 선생님들, 정말 다들 어떻게 지내시나?ㅋ 말씀처럼 밤도 거뜬하게 새던 때, 그 때가 참 좋았는데...(또 시간이 지나면 오늘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 멋지게 살아야겠지요?) 저는, 씩씩하게 잘 지내요... 학교 일도 여전하고, 집도 참 좋아요. 정말 어이없게도 몸이 불어나는 걸 걱정하고 있어요.(하도 할 고민이 없어서^^::) 소식, 참 고마워요.
 
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
김상욱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 이 책의 내용이 좋아서 책을 바탕으로 제가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써 준 편지글입니다.

느티나무가 보내는 편지 4

  희망, 사막을 건너는 법


   먼저 시 한 편 같이 읽어요.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눈으로 찬찬히, 입으로는 나직히 읽어 봅시다. 

장수산1

  벌목정정 이랬거니 아름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

 

   음, 생각이 납니까? 방학 때 수업하면서 읽은 정지용의 詩군요. 시 속의 화자인 사내는 눈덮힌 한밤중의 산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직 산에는 고요만 가득할 뿐이구요. 그 고요함을 배경으로 화자는 달이 훤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화자는 이 길이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 이미 ‘웃절 중’이 걸은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요. 그 중이 번번이 희망을 가지나 그만큼 실망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웃으며 돌아간 길이 아닐까 생각이 아닐까요? 시적 화자는 자신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촐한 사내’가 아니기 때문에 웃을 수도 없는 것을 압니다. 오히려 그는 지금 깊은 시름에 잠겨 있습니다. 시름은 고요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인식되겠지요? 그리고, 끝내 화자는 “견디란다 차고 올연히”라고 스스로 기다림의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현재의 고통에 대한 탄식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오직 견뎌냄으로써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와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다짐하는 것이지요. 

   시를 읽고 밑에 곁들인 설명까지 읽어 보니 어떻습니까? 지금의 우리 모습과 한 번 견주어 봅시다. 우리는 힘든 고갯길의 마지막 된비얄을 오르고 있습니다. 함께 가는 친구들은 많지만 결국 그 고개는 혼자서 올라야 하는 길이겠지요? 가장 힘든 지금 이 순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들다는 탄식도 절망도 아닌, 오직 견디는 것, 그것이 아닐까요? 이 시 속의 화자처럼 말입니다.

   시와 밑에 매달린 잔소리가 맘에 들었나요? 그럼 다른 詩도 한 번 더 읽어 보도록 합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작품인데요. 우선, 시를 읽고 나서 다시 얘기할까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시가 시작되는 처음에 막혔던 마음이 뒷부분에서야 조금 후련해 지지 않나요? 시의 화자는 갑자기 아내도 집도 다른 가족들과 헤어져 쓸쓸한 거리를 헤매고있지요. 그러니까 화자는 삶의 의욕을 잃고 슬픔과 어리석음에 가득 차서 자신의 존재조차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마침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아프게 느낍니다. 그러나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것”임을 깨닫고는 “외로운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 전환에 힘입어 시는 앞의 누워서 뒹굴던 수평적인 이미지를 벗고, 무릎을 꿇는 수직적인 자세로 어둠 속에 “따로 외로이 서서”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면서 시를 맺고 있습니다. 

   이 시의 “눈을 맞고 서 있을 굳고 정한 갈매나무”와 앞의 시에 나온 “오오 견듸란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의 시적 화자는 서로 닮아있지 않습니까? 마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기어이 견디어 내고 말겠다는 굳은 다짐을 선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이라면 무릇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앞의 두 시인처럼 지금 이 시름 속에서도, 어떤 슬픔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놓아버리지 않는 존재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여러분들 모두가 힘든 상황을 견뎌내리라 믿습니다. 참고 견뎌내는 것, 바로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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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9-20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시를 읽어주지 못하고...
힘겨운 일을 이겨내라고 해야하는 선생 노릇도 못할 짓입니다.^^
이렇게 설명해 주면, 아이들이 훨씬 좋아하지요. 저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느티나무 2007-09-20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무래도 투사도 아니고, 투사를 동경하지도 못하는 소시민인가 봐요^^ 입시라는 괴물에 어쩌지 못하는 교사. 고 3담임을 할 때 그냥 올해는 무척 힘들 이 아이들과 함께 견뎌자,는 생각만 했거든요. 고민을 새롭게 해봐야겠습니다.
 

   벌써 연휴가 턱밑입니다. 늘 바쁘시지만, 요즘은 더욱 그러시지요? 그래도, 먼저 간 태풍도 오늘쯤에 올라온다는 태풍도 우리 지역에는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태풍도 가고, 이제는 정말 풍성한 잔치를 준비해야 할 때인가 봅니다.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드리는 다섯 번째 편지입니다. 늘 일에 치여서 살다 보니 이렇게 편지를 쓰는 시간도 빠듯하긴 합니다만 얼른 우리 반 녀석들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방학동안 긴 보충수업을 끝내고, 우리 반 모두가 아무 탈 없이 학교로 돌아와서 저는 아주 기뻤습니다. 더구나 우리 반에서 여섯 명은 이미 전문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이제 이 친구들은 2학기에 조금 더 여유로운 학교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대학에 진학할 준비를 해 나갈 것입니다. 이 학생들이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꼭 관리해 주셔야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개학을 하고 바로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수시 2학기 접수에는 3학년 1학기 성적까지만 반영됩니다.), 그래도 중요한 시험인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반 애들 모두 나름대로 애써서 시험을 잘 치뤘습니다.

  중간고사 다음 날에는 바로 평가원에서 주관한 모의 수능평가 시험도 있었습니다. 여느 때보다 긴장해서 시험을 보고, 끝나고 나서도 이어지는 언론매체의 보도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봐서 여간 신중한 게 아니었습니다.(결과는 9월 28일에 학교로 통보된다고 하니 부모님께서는 28일이나 29일에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꼭 학생의 성적통지표를 확인해 보십시오. 간혹 둘러대며 시간을 끌어서 관심을 돌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바로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9월 7일부터는 부산 경남지역을 비롯한 전국 대학의 수시 2학기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일부 대학은 수시 모집을 하고 있습니다.) 접수 전에 담임과 상담을 원하시는 학부모님께서는 전화를 주십사고 문자메시지로 말씀을 드렸는데, 열 대 여섯 분이 기간 내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기대하신 학부모님께는 제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제 컴퓨터에 들어있는 자료를 함께 보면서 조금 더 꼼꼼하게 설명해줬습니다.(올해 대학의 수시 2학기 모집 정원이 대폭 늘어나서 우리 반 학생 중에서 열 두서너 명만 빼고는 대부분 이번에 지원했습니다.)

  이제 수시 2학기 접수는 대부분 끝났고, 앞으로는 대학에 따라서 진행될 논술, 면접(실기)고사, 적성검사 등을 날짜별로 꼼꼼하게 챙기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접수가 끝났으니 수시 2학기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수능시험에만 집중해서 두 달 정도 남은 시간동안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중하위권의 일부 대학도 수능 최저등급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수시에 합격한다고 하더라도 수능시험의 최저등급에 미달하면 불합격 처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연휴 기간에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를 개방합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학교에 와서 공부할 수 있으니까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학교에 나오면 됩니다. 연휴 후에는 10월 5일부터 4일간은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고등학생으로서 치는 마지막 시험이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기말시험 후에는 10월 10일에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가 있습니다.

  연휴와 이어지는 빡빡한 시험일정이 모두 끝나면 수능시험이 겨우 삼십 여일 앞으로 다가옵니다. 이때부터는 학생의 학습 태도에 특별한 변화를 주기보다는 평소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시험이 코앞이라고 무리하게 공부하다 보면 리듬을 잃고,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밤에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는 거 좋은 게 아닙니다. 스트레스는 담임인 제가, 학생들에게 충분히 주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괜찮다고 계속 응원하고 격려해 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한가위, 보름달 보면서 비는 소원이 모두 이뤄지시기를 빕니다. 저는 10월 중순에 다시 한 번 연락드리겠습니다.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애정 어린 격려와 따뜻한 관심 때문에 지금까지 참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2007년 9월 20일, 3-O반 담임 느티나무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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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9-2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년 여정의 중요한 지점에 닿아 계시는군요. 느티나무님의 글을 보면서 제 마음이 다 따스해집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셔요~

느티나무 2007-09-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로 안 중요한데... 아이들이 중요하니까, 저도 덩달아 약간 조바심이 나는가 봅니다. 글에 잔뜩 묻어나지요? 마노아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고맙습니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자의 외간 남자 되어*

- 김사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려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꼽을 떼며
날만 새면 나 주막 골방 노름판으로 쫓아가겠네
남는 잔이나 기웃거리다
중늙은 주모에게 실없는 농도 붙여보다가
취하면 뒷전에 고꾸라져 또 하루를 보내고
"나 갈라네" 아무도 안 듣는 인사 허공에 던지며
허청허청 별빛 지고 돌아오겠네
그렇게 한두 십 년 놓아 보내고
맥없이 그 처자 몸에 아이나 서넛 슬어놓겠네
슬어놓고 나 무능하겠네
젊은 그 여자
혼자 잉잉거릴 뿐 갈 곳도 없지
아이들은 오소리 새끼처럼 천하게 자라고
굴속같이 어두운 토방에 팔 괴고 누워
나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네
쓴 담배나 뻑뻑 빨면서 또 한 세월 보내겠네
그 여자 허리 굵어지고 울음조차 잦아들고
눈에는 파랗게 불이 올 때쯤
나 덜컥 몹쓸 병 들어 시렁 밑에 자리 보겠네
말리는 술도 숨겨놓고 질기게 마시겠네
몇 해고 애를 먹어 여자 머리 반쯤 셀 때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 되겠는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 김명인 시인의 「너와집 한 채」가운데 한 구절. 이 시는 「너와집 한 채」로부터 운을 빌려왔다.

- 가만히 좋아하는, 김사인, 창작과비평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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