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잘 보내셨나? 나는 비가 온 걸 핑계 삼아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푹 쉬었지. 푹 쉬고 낫더니 개운한 게 아니라 더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그런 걸까? 밑으로 밑으로 계속 가라앉고만 싶다. 에구구, 아침부터 이런 우울한 얘기는 그만!

 

   너희들에겐 지난 모임이 어땠어? 음, 난 한 마디로 멍했지. 뭔가 스텝이 엉킨 느낌? 애초에 설계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 실타래가 잔뜩 엉켜 있는 모습을 봤는데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막막한 느낌이 들더군. 내가 생각한 결론은 우리 모두 초심에서 좀 멀어졌다는 거야. 나 같은 경우만 해도 독서동아리 계속 하고 싶다,는 열망이 일상에 치이면서 가라앉은 걸 인정할 수밖에 없고, 너희들도 아, 모임에 들어서 열심히 해야지, 하는 간절함이 모임을 하면서 무뎌진 거 아닐까 싶어. “건네진 책은 다 읽는가?, 책을 읽고 네 의견을 보태는가?, 네 생각을 정리하면서 글로 써 보는가?, 숙제를 하면서 ‘왜’라는 생각을 해 보는가?, 모임에서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고 있는가?, 모임에서는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려는가?, 상대방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려는가?”

 

   네 마음속의 대답은 어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전부 “아니다”라고 해도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남아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거 아냐? 앞으로 남은 모임에서는 위에 던져진 질문에 모두 “그렇다”라는 답을 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에너지를 쏟아내자. (나 역시 마찬가지고!) 지금껏 우리 모임이 자기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면 그건 풍성한 식탁을 준비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너희들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자극하지 못한 내 잘못이 제일 크기는 하다만…… (이건 내가 반성해야 할 문제고!)

 

   자, 이제 지나간 일은 마음에 담아두자. 그리고 달라질 수 있도록 애써보자. 이번에 읽을 책 얘기를 해 봐야겠지? 박성우의 ‘거미’. 주말부터 읽고 있으려나?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도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니까(하루가 뭐야?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거 같아!) 벌써 다 읽었어? 읽었으면 어떤 느낌이 들었어? 이 책으로 무슨 활동을 해 보면 좋을까? 먼저 책을 읽은 느낌을 써 오고, 마음에 들었던 시를 한 번 낭송해 보도록 하자. 시에 맞는 반주가 있으며 더욱 좋겠지? 그리고 그 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낭송한 시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도 함께 발표해 보도록 하자.(그리고 자신이 평소에 좋아해서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시가 있다면 함께 낭송해도 좋다.)

 

   아, 생활나누기도 해야지? 생활나누기는 사연이 있는 노래 부르기. 자기가 부를 노래를 고르고 그 노래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설명한 다음에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거지. 여기서 사연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겠지? 수많은 노래 중에 굳이 이 노래를 고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너는 어떤 답을 할까? 그 이유를 말하고 그 노래를 네가 부르면 된단다.[생각난다. 작년에 동아리 학생들과 처음 이런 주제로 생활나누기를 했는데, 실실 웃으면서 그냥 부를 노래가 없어서 애국가를 부르는 녀석이 있어서 나한테 혼났지.] 예전에는 꼭 노래방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요즘은 마이크가 없으면, 또 가사가 자막으로 나오지 않으면 노래를 못 부르는 것처럼 생각하더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닐 텐데 말이야.

 

   아무튼 이번 모임은 더욱 기대가 된다. 한 마디로 문학의 밤인 거잖아? 시와 노래가 함께하는 밤이니까. 남들 다 자습할 때, 우리만의 공간에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나?(나만 그런가?) 시간은 다음주 목요일인 20일이네. 장소는 아직 협의는 안 됐지만, 일단 음악실에서 보는 걸로 하자구.(합창대회 언제 하는지 알아봐야지.) 그럼 멋진 밤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해 주길 바래. 늦었지만, 숙제글을 넘기고 나는 3학년 ‘자기소개서’의 글더미로 풍덩 빠져야겠다.

 

   아까 점심때부터 숙제글 받으려고 여러 번 나를 찾아 온 친구들에겐 미안!

 

- 오늘은 어째 쫌 기운이 없는,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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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방학 잘 보냈어? 벌써 개학한 지 일주일도 더 지났는데, 그동안 3학년은 중간고사 기간이라서 난 오후엔 주로 자리를 비웠지. 그래서 이렇게 늦게야 숙제를 낸다. 우리 방학 동안에 뭘 좀 해 보려고 했는데, 나의 게으름 때문에 겨우 영화 한 편 본 게 다였네. 아쉽다. 이런 아쉬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겨울에 다 풀겠어.(쫄지 마!) 그 땐 내가 너희들을 괴롭힐 거야.

 

   이번 모임은 다음 주 목요일에 할게. 아, 그리고 2학기에 달라진 점 한 가지. 이제부터는 목요일 9교시부터 모임을 할 거야. 9교시엔 생활나누기라는 활동을 해 보겠어. 생활나누기는 일상적인 자기 생활을 되돌아보고 친구들에게 자기 생활을 얘기하는 거야. 이러면, 맨날 똑같은 일상인데 무슨 할 얘기가 있나, 미리 걱정하는 친구도 있겠지? 사실은, 너희들만 그랬던 게 아니라 지금껏 나랑 동아리를 했던 모든 학생들이 다 그런 말을 했지. 그런데 참 이상하지, 처음에 뚝뚝 끊기던 얘기소리가 모임이 거듭될수록 끊임없이 이어지는 걸 봤거든. 아마 너희들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면 자기의 일상을 사랑해야 하고, 자기의 일상을 사랑하려면, 그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겠지? 그러니 이번 모임을 위해 개학하고부터 나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나를 찬찬히 떠올려 봐 줘. 꼭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좋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되, 그때그때 생각난 게 아니라 조금은 네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주기만 하면 돼. 처음엔 내용을 적어 와서 발표하는 게 좋아. 쓰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정리될 테니까 말이야.

 

   생활나누기를 시작한 기념으로 특별한 주제가 있는 생활나누기 숙제도 낸다. 음 주제는 말이야. 친구들을 (심층)인터뷰 해 보는 건데, 제목은 당신의 밤이 알고 싶다, 이다. 한 마디로 친구들의 사생활을 캐는(?) 건데 평소 학교 다니고 있을 때 집에 가서 주로 하는 일, 자는 시간, 다음날과의 관계…… 등 집에 간 이후 잠들기 전까지의 모든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와서 얘기해 보는 거지.(물론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발표할 때는 이니셜만 말해야겠지?) 난 항상 학교에서 시체처럼 자는 아이들의 밤 생활(?)이 궁금했거든. 주로 낮에는 잠들어 있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정리해 오면 좋겠다. 꼭, 평소의 밤이 아니어도, 주말 저녁도 괜찮고, 야자를 안 하는 학생의 생활도 괜찮다. 대신, 좀 깊이 있는 얘기를 끌어내주면 좋겠다. 그냥 학원 갔다 와서 몇 시에 잔다, 끝! 이런 거 말고, 왜, 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서 그 친구의 속마음이 우리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네가 다리 역할을 잘 해주면 고맙겠어. 아무튼 기대해 볼게.

 

   이제 이번에 읽을 책 얘기 좀 해 볼게. ‘철/예/거’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서 고르라니까 ‘예’를 가장 먼저 선택하더군. ‘예술’ 관련 책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예수전’이라고 하니까 너희들의 표정이 떨떠름하더라. 우리 동아리 친구들 중에는 기독교(개신교, 천주교, 성공회, 그리스정교회 등)를 믿는 사람도 몇 있는 걸로 아는데, 설마 이 책으로 싸움이 나지는 않겠지? 아무튼 표정이 내가 마치 전도(傳道)를 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분위기더라. 난 전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어. 다만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서 골랐어. 아마 인류 전체의 역사를 다 훑어본대도 예수만큼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너희들의 첫 번째 반응이 바로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지. 보(믿)는 사람에 따라 예수를 신으로 믿기도 하고, 역사적 실존인물로 이해하기도 한단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김규항이라는 사람이 본 예수는 또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잘 생각해 오렴. 그래서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예수와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된 예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글을 써 오시라.(꼭 써 오렴) 아, 그리고 이왕에 인터뷰하기로 했던 거 이런 것도 함께 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예수는 어떤 존재(사람, 신)인가요?><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런 질문을 기본으로 해서 인터뷰해 오기. 음, 그렇게 하려면 빨리 이 책을 읽고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조금 늦었지만 알차게 준비해서 모임할 때 풍성한 말(言)식탁을 차려 보자. 새로운 시작이다. 준비 많이 해 오시라.

 

태풍이 몰려오는 여름밤에,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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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30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립다. 이 사람... 생각나서 들을 때마다 늘 목소리는 여전해서 더욱 그립다. 내 인생 첫번째 콘서트 관람이 김광석의 '다시부르기' 였다.(벌써 20년쯤 된 이야기!) 부산 대청동에 있는 가톨릭센터 소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그 날 비가 왔던가, 안 왔던가, 아무튼 그리 넓지 않은 객석은 다 차지 않았던 거 같다. 나는 낡은 소극장 가운데쯤에 앉아서 기타를 안고서 노래하는 김광석을 봤다. 비가 와서 더 그랬던가?(그러고 보면 비가 왔었나?) 그의 노래에 푹 잠기고, 중간중간에 순박하지만 썰렁한 얘기에 희미하게 웃을 때만 해도 그렇게 빨리 갈 줄 알았나?

   아무튼 잠 안 오는 오늘 밤, 그리 생각해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다시 듣는 그의 목소리에 쓸쓸함이 짙다. 특히, 이 노래! 자기 이야기여서 그랬을까? 그립다. 이 사람, 정말로!

 

 

 

 불행아

 

 - 작사/작곡  김의철, 노래  김광석

 

 저 하늘에 구름 따라  흐르는 강물을 따라 

 정처없이 걷고만 싶구나  바람을 벗삼아 가며  

 눈앞에 떠오는 옛 추억  아 그리워라

 소나기 퍼붓는 거리를  나홀로 외로이 걸으면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그러나 갈수 없는 신세  홀로 가슴 태우다 

 흙 속으로 묻혀갈  나의 인생아

 깊고 맑고 파란 무언가를 찾아  떠돌이 품팔이마냥 

 친구 하나 찾아와주지 않는 이 곳에  별을 보며 울먹이네

 이 거리 저 거리  헤매이다  잠자리는 어느 곳일까
 지팡이 짚고 절룩거려도 어디엔들 이끌리리까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그러나 갈수 없는 신세  홀로 가슴 태우다
 흙 속으로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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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8-24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공연장에 직접 계셨었다니 부러워요. 전 고작 CD를 가지고 있을 뿐인데요. 불행아는... 저의 18번이랍니다. 하늘을 보고 있자면 늘 흥얼거리게 되요. 참 그리워지는 노래지요.

느티나무 2012-08-24 10:03   좋아요 0 | URL
네, 이 글 쓰고 제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으니 옆에 앉은 선생님과 김광석에 대해 얘기하게 됐네요. 동년배인데 자기도 김광석 공연에 간다, 간다, 하다가 결국 못 갔는데, 이렇게 영원히 못 볼 줄은 몰랐다네요. 그 이후로는 보고 싶은 건 지금 당장 봐야한다,는 주의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여긴 오늘도 비가 많이 와요. 촐촐히 내리는 비와 함께 듣는 노래가 참 좋습니다.

열매 2012-08-2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 노래 알아요. 가사는 조금 슬픈데요, 멜로디는 어깨가 들썩해지는...

느티나무 2012-08-26 00:45   좋아요 0 | URL
대학생도 이런 노래 알아요? 신기하네요... (어떻게 이 노래를 알지요? 김광석도 대부분 모르지 않나요?) 이 노래는 3040세대의 노래인데...(흠, 30대들도 잘 모를 것 같군요.) 제목부터 슬프지요, 불행아니까요. 근데 김광석은 노래가 다 쫌 그래요.
 

   여름 방학은 7월 20일, 금요일이었다. 오후엔 지금껏 무탈하게 한 학기를 보낸 나 자신을 위해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봤었다. 진짜, 모처럼 영화관에 갔다.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재밌게 봐서 그 며칠 후에는 다크 나이트, 배트맨 비긴즈를 디브이디로 차례차례 봤다. 날 밝으면 인당수에 몸을 던져야 하는 심청이의 마음이 이랬을까?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보충수업을 불안스레 기다리며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오전 8시부터 1시까지 보충수업을 했다. 매 시간 수업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오전에 3시간씩 수업을 했다. 비는 시간은 내일 수업 준비를 위한 교재 연구. 1시부터 2시까지는 점심시간. 날이 더워서 학교 식당 가는 길도 힘겨웠으니 어디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또 점심시간이 짧아 믹스 냉커피 한 잔 하기에도 빠듯했다. 2시부터 5시까지는 자율학습. 교실은 그나마 에어컨이라도 나오는데 감독을 위해서 복도를 돌아다니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이런 하루가, 월화수목금토, 월화수목금토, 월화수목금토, 월화까지 이어졌다. 그 마지막 화요일이 8월 14일!

 

   퇴근해서는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로 피곤이 몰려들었다. 집에선 거의 소파와 일심동체가 되어 잠이 들었다. 피곤하니까 그 폭염에도 잠은 온다. 자고 나면 땀을 한 바가지 쏟아 옷이 축축해 져도 자는 동안은 그것도 모르고 죽은 듯이 잤다. 저녁에 한숨을 자고 나면 그나마 기운이 나서 겨우 저녁을 먹었다.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내일 수업 준비를 위해 이것저것 뒤적거리기도 하고, 올림픽 기간에는 열없이 중계 방송을 보기도 했다.

 

   밤이 이슥하면 가끔 강변에 있는 구민운동장에 나가기도 했다. 밤 10시가 넘었어도 날은 후텁지근하고 강바람도 없어서 운동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돌아와서 씻으면 자정이 가까운 시간, 그제야 정신이 좀 맑다. 그 때부터 자기 전까지가 책 읽는 시간. 방학 독서 계획으로 세운 책은, <로마제국 쇠망사>였다. 책은 무척 재미있고 잘 읽혔는데, 결국 1권도 다 읽지 못했다. 책 읽는 시간이 무척 짧아서 제국의 역사,를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할 부분과 자꾸 어긋나는 바람에 집중력이 떨어진 탓이다. 

 

   그래서 아예 책을 꺼내지도 않은 날도 많았다. 와, 이렇게 책 한 번 펼치지 않고도 며칠이 가네? 이런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방학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방학 끝무렵에 읽은 책이, 철학, 삶을 만나다, 라는 책이다. 사 둔 지는 무척 오래된 책이었으나 다른 책에 밀려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이 우연히 눈에 들어와서 보게 됐다. 퍼뜩, 내 삶에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각 장이 독립된 내용이라 하루에 한 장씩 읽어 볼 수 있다. 이번 방학엔 이렇게 딱 1권의 책을 읽었다. 다 읽고 내린 결론은, 그... 나에겐 철학이 필요해! 였다.

 

   일요일에는 오전엔 늦잠, 오후엔 수영장을 다녀왔다. 지난 겨울에 배운 수영 실력을 어느 정도 유지해서 이번 겨울에 다시 배울 예정이기 떄문에 가끔 수영장을 다녔다. 그 때도 못해서 제일 꼴찌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더욱 엉망이다. 그렇지만 배우는 것을 즐기는 마음으로 한다면, 조급해 하지 않는다면, 포기하지 않는다면, 수영 쯤이야 결국엔 남들이 가 있는 곳에 나도 도착하리라고 믿는다.

 

   보충수업이 모두 끝난 8월 15일, 16일, 17일, 18일, 19일 중에서 16일과 18일은 학교에 출근을 했다. 보충은 끝났지만, 마침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몇 대학의 수시 모집이 시작되었고, 이 시기에 모집하는 대학들은 대부분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교정 보느라 방학 이틀을 꼬박 썼다. 17일 하루는 대전에서 내려온 여동생과 조카들과 함께 보냈다. 그래서, 8월 15일과 19일 딱 이틀만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뒹굴거리면서 보냈다.(이 때도 책은 거의 보지 않았던 거 같다.) 

 

   보충을 시작할 때는 손학규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이 나에게도 펼쳐지겠구나, 하는 기대가 컸다. 학기 중에는 거의 10시 반에나 집에 오는데, 방학 땐 그래도 5시 반에 오니까 뭔가 근사한 저녁이 있는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것도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환경'과 '시스템'이 우선이다. 그러나 환경과 시스템이 갖추어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 경우를 생각해 볼 떄 자기 삶을 가꾸기 위한 주체적인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 

 

   그렇게 길고도 짧은 30일의 방학이 끝나고 어제 개학을 했다.

 

   뱀발 : 단언하건데, 나는 지금 방학이 짧아서, 못 놀아서, 억울하다거나 기분이 나쁘다고 누군가에게 징징거리는 게 아니다. 누구는-아니, 대부분의 노동자는 이런 방학마저 없다. 그런 사람들에 견주면 저녁에 잠이라도 잘 수 있는 생활을 두고 불평할 까딹이 무엇이겠는가? 그냥 내 인생의 어느 한 때, 방학생활의 풍경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도 세월은 가고, 어느새 흰머리가 드물지 않은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개학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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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님, 더운 여름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직 막바지 무더위지만, 밤이면 더운 열기, 그 맹렬한 기세의 틈으로 조금씩 가을바람이 묻어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네, 지난 여름, 녀석들도, 저도, 정말 유례가 없는 뜨거운 날들을 보내고, 오늘 개학한 첫날부터 이렇게 교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습니다. 이제 이 태평스러웠던 녀석들에게도 조바심을 내며 긴장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느껴집니다.

 

   여름 방학은 보충수업이 늦게 끝나서 방학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무색했지만, 녀석들의 인생에는 이제부터 방학다운 방학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내년에도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 저로서는 내심 부럽기도 합니다. 이번 보충수업 때는 지각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오늘 확인해 보니 반복되는 지각 때문에 쌓인 벌점이 꽤 많았습니다.(이거 다 청소로 지워야 하는데……)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5시까지 자습이 이어졌습니다. 자습 시간에 축 늘어져 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희들 인생에서 이런 일은 딱 한 번이다, 인생에서 이런 맛도 봐야 하는 거다, 는 마음 사이를 오가며 외줄을 타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또 녀석들과 실랑이도 하고 토닥거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의 생활이, 마음이 얽히니,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 며칠에 녀석들은 어찌 사나 또 궁금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며칠 전에 문자메시지로 말씀 드린 것처럼 학교는 이제 수시 지원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특수대학은 벌써 접수를 시작했고, 부산 지역의 주요 대학들도 9월 초(주로 9월 3일부터) 부터 수시 접수 기간입니다. 올해 수시 지원은 6회로 횟수의 제한이 있어서 지원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합니다. 제가 부탁드린 것처럼 자녀와 충분히 상의하시고, 수시 지원 여부, 지원 대학/학과 등을 결정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 예년의 경우를 보면 수시에 지원을 해도 합격률이 극히 낮은데 그 때부터 마음이 들떠서 정작 중요한 수능시험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시 합격도 최저등급 커트라인을 설정한 대학이 많으니 수능시험까지 잘 쳐야 합격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방심하지 않도록 가정에서 다독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수시 지원에 대해서 상담을 원하시면 다음 주 8월 30일(목) ~ 9월 1일(토) 사이에 학교에 오시면 됩니다. 미리 전화나 문자메시지 주셔서 상담시간을 정하고 방문해 주시길 바랍니다. 평일은 7시 30분 이후부터 10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저와 약속한 시간에 오시면 됩니다.(의무 참여가 아니라 원하시는 학부모님께서만 연락주시면 됩니다.)

 

   이제 수능이 딱 80일 남았습니다. 그런데 내일부터는 3학년 2학기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학생들은 아무래도 2학기라 시험 준비에 소홀한 상황입니다.(수시 모집에 지원하는 경우, 내신 성적은 3학년 1학기 성적까지 반영합니다. 수능 이후 정시 모집에 지원하는 경우는 3학년 2학기 성적까지 반영됩니다.) 일찍 귀가하는 학생들이 중간고사 기간만큼이라도 시험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9월 4일에는 수능 출제 기관인 평가원에서 주관하는 모의 수능 시험이 있습니다. 이 시험은 그 해에 수능 시험에 응시할 대부분의 학생들(재수생 포함입니다.)이 참여하기 때문에 해마다 실제 수능과 비슷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학생들에는 본인의 진짜 실력을 가늠할 가장 중요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약 두 달 후, 11월 8일에 수능 시험을 봅니다. 그렇게 따져 보니 이제 막바지입니다. 지금은 다른 잡념은 버리고,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기만을, 자기가 가진 능력만큼이라도 실전에서 제대로 발휘해 주기만을 부모님이나 저나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각자가 닦은 집념과 열망, 부모님의 간절한 염원이 합쳐져서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손에 쥘 수 있기를 빕니다.

 

   다음 달에 다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까지 학부모님의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012년 8월 20일, 개학 첫날, OO고등학교 3-O반 담임 느티나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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