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와 국사를 영어로 수업하는 게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껏 보아온 이모 후보의 메시지의 특징은 한마디로 즉흥적이라는 것이지. 이번 사건도 상황에서 즉석으로 나온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는 유독 ‘실언’이 잦다.) 적어도 영어공용화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이상, 현실화되기는 어려운 공약(?)이기에 오히려 걱정이 덜하다. [그러니 흥분한 일은 아니고, 그냥 웃고 넘기고 말 일이지.]

   아,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렇게 할 것이면 일제 시대 때 우리말 찾기 운동은 왜 했을까, 싶다. 아니 독립해도 지금껏 일본어를 썼다면 세계에 나름대로 통용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되는 것인데, 우리 조상들은 돈도 안 되는 우리말을 왜 쓰자고 했을까?[이모 후보에게 주시경 선생이 천하의 역적이 아닌가?] 먼 후일을 내다보고 그 때부터 창씨개명하고, 일본어 써서 세계화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해 나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앞에서 말한 내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모 후보가 내세운 교육 공약은 심각한 위협이 된다. ‘자율형’ 사립고 100개를 만들고, 공립 기숙형 고등학교를 만든다는 계획과 대학입시 자율화 3단계는 지극히 위험한 정책이다. 더구나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가 사교육비 감면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기본적으로, 목적이 있으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건 전혀 엉터리 대책을 세워놓고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니 헛웃음만 나온다.]

   단언하건대, 이 정책으로 사교육비는 절대로 줄일 수 없다. 앞으로 사교육비 증가율이 중학교 단위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도 자율형 사립고나 특수목적고 입시 열풍이 심각해 질 것이다. 학교간의 서열화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고, 어느 고등학교에 진학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사회적 신분이 고착화 될 가능성이 크다. 학부모들은 이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교육비를 조기에 투입하려고 할 것이다.[이런 제도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 지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알고도 지지할까?]

   여기에 맞물려서 대학입시를 완전 자율로 풀겠다는 것은 공교육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대학은 틀림없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수준을 문제를 출제할 것이고,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 학생들은 학교 수업보다는 본고사형 문제 풀이에 집중할 것이다. 아울러 내신반영비율을 자율로 풀어버리면 특목고나 과학고 학생들이 입시에 유리할 수 있도록 그나마 내신반영비율이 최소화시킬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입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할 때(아이들이 판단할 때), 과연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어떻게 대응할까? 나로서는 상상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에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갑자기 교사가 되겠다는 희원이가 불쌍해지는 건, 그 이모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일까? 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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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7-10-2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 읽고 글쓰는 학생에게 나눠준 글쓰기^^ 한글로 썼는데, 따로 갈 데가 없어서 나의 블로그에 옮겨 적어둔다.(이러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테니까)

BRINY 2007-10-2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어느 신문에서 국제 대안학교를 표방하는 어느 중등학교의 교사 모집 공고를 봤는데, 전과목 영어강의 가능자를 원하더라구요. 호주 시드니 캠퍼스에서 연간 3개월 수업을 하는데 거기서 근무가능자여야 하구요. 님의 글을 보고, 그 채용공고가 떠올랐어요.

느티나무 2007-10-22 23:44   좋아요 0 | URL
전 아주 우습지만 진지한 질문이 하나 떠올라요..국어를 영어로 수업한다면 그 수업은 기존의 국어선생님이 영어를 배워서 해야 할까요? 아니면 영어선생님이 국어를 배워서 해야 할까요?ㅋㅋ'국사'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
이철호 외 지음 / 메이데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조금은 엉뚱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먼저 책에서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측면을 떠올리면, 현재 내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담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내가 너무 내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하는 책에 인색한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나와 다른 주장을 펴는 그런 책은 읽으면서도 심리적으로 불편하니까 더욱 멀리 하게 된다. 그 밑바탕에는 내 생각이 옳다는 ‘독선적’인 사고방식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틀린(혹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계속 읽는 것은 취미활동도 아니고, 아예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다음으로 책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측면을 떠올리면, 굳이 내 생각과 다른 책들을 읽어가면서 마음이 불편해 지고, 답답해 할 필요가 있나 싶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마음에 맞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듯이 책도 그러면 되는 게 아닐까? 읽으면서 즐겁고, 책을 통해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른 어떤 취미 활동보다도 건전하고 의미 있는 놀이다. 그래서 대부분 내 생각의 결론과 비슷한 주장을 담은 책으로 마음의 즐거움을 즐기고, 이를 통해 내 생각이 사회적 다수의 생각과 비슷함(비록 현실에서는 소수일지라도!)을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나 교육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과 대안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현직교수와 교사, 교육운동가 등이 글쓴이로 참여하고 있어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면서 막막한 현실이 답답할 때, 우리 교육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큰 방향과 함께 교육 현안에 대한 쟁점을 주로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담론을 정리한 글을 읽으면 기운도 나고, 새로운 의욕도 생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너무 개괄적으로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 짧은 분량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고 이해하면서도 열 쪽 이내로 정리된 각각의 주제들은 어쩌면 책 한권 정도로도 정리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민감하고, 갈등의 연원이 깊고, 다수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고,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교육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나 우리 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안이 궁금한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의외로 이 정도로 정리된 글도 읽어보지 않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파괴하려는 사이비 언론의 새장에 갇혀 사는 앵무새가 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밑에 덧붙이는 글은, 이 책을 읽던 중에 나와 신문 읽고 논평하는 글쓰기를 하는 학생이 마침 신문에 난 교원평가제에 대한 내 생각을 물어왔기에 적었던 글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 이 책의 ‘리뷰’로 옮겨두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고 본다.  

교원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네 물음에 답하며

   네가 쓴 공책을 받고나서도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거기에다가 네 생각을 차곡차곡 써내려간 하늘색 공책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좀 묵직했다. 앞으로 교사가 되고 싶다는 네 삶과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내 삶에 직접 맞닿아 있는 주제인 교원평가제를 문제를 앞두고 내 마음속의 결정은 이미 내려졌는데, 이 마음을 어떻게 진실 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진실 되게’, 라는 표현을 썼다. 항상 타당한 논지를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논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내가 ‘논리적으로’, 라고 말하지 않고, ‘진실 되게’, 라는 말을 쓴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사안만큼은 내 생각을 오롯이 잘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주면 좋겠다.

   네가 스크랩한 기사를 보니, 전 국민의 80%가 교원평가제에 찬성한다고 되어 있더구나. 이 결과를 보면서 처음에 바로 들었던 생각. ‘교원평가제’를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 국민이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 교원평가제에 대한 여러 경로의 정보를 받아들여서 이해하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모든 제도나 일은 완전히 옳거나 전부 그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과연 저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들은 교원평가제의 단점을 하나라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언론에서 무수히 말하는 좋은 점 말고 단점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교원평가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우리 국민들에게 제공되는지 의심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정보에 접근하는 구조가 편향되어 있는데, 찬성 비율이 99%가 안 나오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 싶다.

   교육인적자원부나 언론은 교원평가제의 장점으로 교원평가를 통해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과 무능력하거나 부적격 교원을 걸러낼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아울러, 교원평가제를 시행함으로써 교직 사회에 긴장감을 불러와서 교단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도 꼽는다. (물론 교육부는 공식적으로 교원평가제를 통해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고 자기 계발을 도모한다는 공자님 말씀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나,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나, 비공개적인 생각은 아마도 앞에서 내가 말한 대로 교원평가제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그 두 가지를 정리해 보면 교원평가를 통해서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 것 같다. 교사의 1년간의 수업활동에 대한 관리자, 동료교사, 학부모와 학생들의 평가를 통해서 교사에게 보다 질 높은 수업을 기대하는 것은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아주 소박한 바람일지 모른다. 그러나 교원평가를 위해 참관 수업을 1년 동안 매일 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고, 특정한 날이나 기간에 공개 수업의 형태로 하게 될 텐데, 이게 실제 학교현장에서는 정말 문제가 많다.

   지금도 교과별로 1년에 한두 번 정도 있는 연구수업을 한 번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연구수업은 말 그대로 교사의 자율적인 (교과) 연구에 의한 수업이다. 그런데도 어떤 교사는 일주일 전부터 아이들에게 똑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연습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연구수업은 특별히 승진이나 인사고과와도 관련이 없다.) 이런 수업을 참관하고 있으면 마치 잘 짜놓은 연극을 보는 것과 같아서 ‘수업이 맞아?’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어쨌든 교사가 짜놓은 수업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수업의 내용구조와 형식을 대체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잘 했다는 격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런 수업을 한 교사가 일 년에 서너 차례 해서 교원평가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정상 수업은 온 데 간 데 없고 보이기 위한 평가수업을 연습만 반복될 것이다. 거기다가 학부모까지 와서 참관한다는 것은 더욱 부작용이 심할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을까?) 만약 1년 동안 수업평가자가 내 수업을 전부 참관하면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 형성 정도, 학생의 학습 능력과 수업 태도, 교사의 수업 준비, 수업 상황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때는 교원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 교원평가제로 수업의 질 개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현재 교단의 분위기로 봐서는 어렵다고 본다.(만약 평가시스템이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면 연극 형태의 수업이 극에 달할 것이고 수업이 파행으로 치달을 것이며, 구조조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교사들은 잡무가 늘었다고 불평하면서 어떻게든 문서만 그럴듯하게 꾸밀 가능성이 아주 높다.)

   두 번째로 교원평가를 통해서 부적격 교원을 걸러낼 수 있지 않다는 점이 교원평가제의 장점으로 거론된다. 학부모나 일반 국민들은 교원평가제를 통해서 성적을 조작하는 교사,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 금품을 수수하는 교사, 성범죄를 일으키는 교사를 교단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교원평가제 도입을 바라는 세력이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어 내기 위해 이치에 맞지 않는 정보를 흘리는 나쁜 방법이다.

   앞에서 말한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교사는 명백히 범죄행위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원평가제와는 상관없이 일반 범죄 행위로 형사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교원평가제가 시행되지 않는 지금도 저런 범죄를 일삼는 교사들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 징계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원평가는 현재로서는 수업 평가에 한정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이나 학부모들이 바라는 소박한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교원평가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현상이다.

   물론, 이런 기대감을 이해할 수는 있다. 내 아이를 맡아서 가르치는 교사가 실력이 형편없거나 심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에 교원평가를 통해서 교단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사실, 그 기대감으로 교원평가제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본다. 부모님들의 애타는 심정을 온전하게야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를 통해 그런 교사가 걸러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일 년에 두어 번 수업에 참관하는 것으로, 교사의 무능력을 판단할 수 있을까? 학부모들은 평소 아이의 말만 듣고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는 전문적인 교육활동을 비전문가인 학생과 학부모가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고 옳은 일일까? 설령 무능력한 교사로 지목되어도 실질적으로 교사의 인사권을 휘두르는 관리자에게 미운털이 박힌 교사가 아닌 이상 신분에 변동이 있기는 어렵다. (학부모의 판단과 관리자의 판단은 완전히 다를 수 있고, 아무래도 학부모가 평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관리자나 동료교사의 영향력보다는 적을 것이다.) 따라서 교원평가제를 도입할 때 기대하는 학부모나 학생의 바람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교원평가제를 도입하려고 애쓰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교육이 부실하다는 신화(근거 없는 믿음이거나 거짓된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의 책임을 교사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교원의 구조조정(학령인구 감소로 앞으로 교원의 구조조정을 필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따라서 교원평가제도의 도입이 선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교육계가 지금과 같은 인사구조 하에서 구조조정을 시도한다면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를 통한 구조조정에는 모든 책임이 ‘무능력한’ 교사 개인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훨씬 쉽게 교원 축소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교원평가제는 ‘단위 학교의 자율성 신장’이라는 명분으로 교육관료, 혹은 학교장의 교사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교원평가제로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시달리게 될 교사가(그것도 학교장의 입장이 가장 많이 반영될 교원평가제가 시행되고 있다면) 학교장으로부터 최소한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활동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아울러 아직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도 없는 관리자들이 수두룩한 2007년 대한민국의 학교는 교원평가제를 무기로 관리자의 전횡이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이를 적절히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학교 내 조직의 부재로 학교는 더욱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장소로 퇴행할 가능성이 크다.(학교는 지난 20년간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도달한 민주주의적 성과를 전혀 못 따라가고 있다. 아직도 5/18 광주항쟁에 대한 수업을 하려면 ‘수업자료’를 뺏는 곳이 학교다.)

   이제 내용을 정리할 겸 해서 내 생각을 짧게 말하면, 학부모와 학생의 간절한 바람은 이해하나 교원평가제를 통해 그 바람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교원평가제를 시행해도 좋아지는 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교원평가제가 시행되었을 때, 교사들의 사기 저하와 교원 통제에 따른 자율성의 퇴보 등으로 학부모나 일반 국민이 기대하는 학교 발전은 더욱 더 퇴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교원평가제, 꼭 해야 할까?

   소박하게 쓰려던 게 약간 딱딱해졌다. 네 글 덕분에 내 생각이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내 생각을 다시 한 번 성찰하려고 애썼다. 그런 점에서 고맙고, 또한 기쁘다. 낼부터 시작하는 기말시험,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날이 차다. 감기 걸리지 않도록 늘 신경을 쓰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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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꼬 2007-10-1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들이 이러한 교원평가제의 폐해를 다 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교원평가제가 이러이러한 폐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더라도, 동의하는 비율이 80%에서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모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율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이후보에 대해서 도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그래도 이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세상일은 이렇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교원평가제의 경우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안다고 해도, 교사가 현재의 공교육 붕괴에 나름 책임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고, 이 제도나 어떤 계기를 통해서라도 현재의 시스템이 변화된다면 그것도 한번 수용해볼 만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학부모가 얼마나 교사의 사기 저하, 교원통제에 따른 자율성 퇴보 등을 생각할까요? 단지 자신의 아이를 교사라고 부르기도 싫은 이상한 교사들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설령 그런 솎아내기가 교원평가제의 본질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라도 일부 문제 교원의 퇴출이 있다면 찬성에 손을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범법자와 같이 법적으로 처벌이 되지 않지만 여러 이유로 절대로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은 교사들이 주 타겟이 된다고 봅니다. 저도 그 맘 충분히 이해가 되고요..

참 쉽지 않네요. 제가 그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교사와 학부모의 견해 차이가 이 때문이 아닐까 싶어서 못쓰는 글 끄적여봤습니다.

느티나무 2007-10-12 20:10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학부모의 소박한 바람대로-그 바람은 저도 대체로 동의합니다- 교원평가제가 굴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때문이지요. 결국 국민들의 바람은 바람대로 배신당할 것이고, 교원들은 구조조정의 불안과 국가와 관리자의 통제의 그늘에서 신음하게 되겠지요. 더 좋은 제도일까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다수가 찬성해도 제도 자체가 옳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않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너무 순진한 걸까요? 모 후보의 교육분야 공약 보셨습니까? 저는 그 공약 보면서 공포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우리 애기가 불쌍해서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나 어떤 공약이면 어떻습니까? 국민들은 그 공약에 관심도 없고 이미 눈멀어 있는데...

글샘 2007-10-1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기 때문에... 교원 평가를 거부하는 싸움이 어렵기만 한 거죠.
그렇다고 확 받아들이자... 하는 이들은 지는 싸움조차 하기 힘들어 하는 것이고...
교원을 퇴출시키는 목적을 달성하긴 힘들기만 하고, 교육 현장을 더 재미없고 팍팍하게만 만들 것 같은 이넘의 제도는... 본질을 비끼면서 학교를 박살내던 교육 개혁의 일종인 듯 싶네요.
그런데 또... 국민의 80%가 찬성한다는 것에는 분명한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과정의 잘못이긴 하지만, 제도적 미비도 뒤따르긴 하지만, 실제 부모가 생각하는 <교육>과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따로놀고 있긴 하거든요. 초등학생들도 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적어도 사회적으로 초,중,고등학생들은 학원을 못 다니게 하고, 실컷 놀고 봉사활동도 하고, 특별 활동도 하게 해야한다는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요.
그러려면, 반드시 교육과정의 대폭 감소가 전제되어야 하겠지요.
진복이 길러 보세요. ^^ 학원 안 보내고 학교 공부 따라가게 만들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중학교 수학 교과서가 얼마나 지랄나게 어려운지...
교육과정 '대폭 감소' 없는 논의는 어불성설인 거죠.
학부모들은 피부로 느끼고, 전교조는 머리로 대응하는 셈이랄까요. 정부는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거죠. 전교조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에요. 시작부터.
정말 애기들 불쌍해요. 그런데... 교육 과정을 줄이자고 하면, 밥그릇문제때문에 해결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수학 10학년 수준을 7학년 수준으로 낮추자고 하면 수학선생들 가만 있겠나요? 음미체를 내신에서 제외하려 해도 보통 난리가 아닌데요.
학부모의 바람은 결코 소박한 게 아니라 생각해요. 학부모들은 정확하게 본질을 간파합니다. 교원 평가도 하고, 그러려면 교장들의 실질적인 능력이 필요하죠. 지금으론 안되는 건데, 거기서(교장 선출 등이 전제조건이거든요) 지고 나니 전교조가 뻗대기만 한다는 욕을 먹는겁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교감은 뭐 하는 일 있나요? 교장 나가기 전에 대기발령 상태인거죠.
서림님 말씀에서도 나왔듯, 교원평가제는 사기 저하를 불러올 거란 것도 그냥 생각인거죠. 문제를 해결할 지도 모른다는 것도 막연한 추측이듯.
갈수록 연구 점수 마일리지 등으로 교원을 '점수화하기'는 어떻게든 교사의 고용을 불안하게 할 것입니다.

... 그런데, 사실 학교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려면, 더 많은 교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교원의 고용 유연성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슬프지만...
 

눈부처

- 정호승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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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비잠 - 「명」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

        - ¶팔을 어깨 위로 쳐들고 나비잠을 자던 갓난아기가 얼굴을 심하게 구기며 울기 시작했다.≪박완서, 미망≫

  • 눈부처 - 「명」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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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0-09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예쁜 단어예요^^

글샘 2007-10-0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물
「명」 옆으로 쫙 퍼지게 끼얹는 물.
요거도 예쁘죠^^
오늘은 우리의 밥줄, 한글날입니다.^^
 

  요즘은 소위 말하는 자가용차라는 걸 몰고 출퇴근을 한다. 음, 9년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최근 두 달처럼 자가용차를 몰고 다닌 적은 없다. 퇴근이 늦어서 편리하기도 하고, 출근엔 아내와 함께 하니까 또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도 마음은 늘 빨리 처분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버지께서 폐차를 부탁한 차이기도 하다.)달리 운동도 안 하니까 더 자꾸 몸이 불어다는 느낌이다.

   며칠 전에 차를 대고, 몇 걸음 걷다가 화단으로 눈길이 스윽 같다. 나와 눈이 딱 마주친 꽃-구절초. 순간 움찔했다가 내처 몇 걸음 더 걸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려서 구절초 앞으로 다가갔다. 보라색꽃이 참 예쁘장하게 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살풋, 소리 없는 웃음도 나왔다. 거기다가 코를 킁킁거리기까지. 손을 내밀어 꽃을 살짝 꺾었다. (이런 적은 거의 없다.) 내 책상에 있는 책 위에다 올려두고 하루를 보냈다.

   9년전이었으니까 첫발령을 받고 공고에서 근무할 때였다. 마음만 가득했지 모든 게 서툴고 미숙했다. 내가 지낸 학창시절과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었으니까 더 그랬을 거다. 아이들에게 매로 말하면서도, 그게 부끄러워서 책상에 꽃병을 올려두고 장미꽃을 사다고 꽂아두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장미는 드문드문 꽂히고, 그 대신 자주 들꽃이 꽂혀있곤 했다. 그 때 꽃병에 가장 많이 꽂혔던 꽃이 바로 구절초(아니, 쑥부쟁이)였다.

   누가 이렇게 예쁜 꽃을 꽂아두지?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친한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도 이렇게 맘이 예쁜 학생이 있다'고 칭찬을 하셨다. 그 샘이 일찍 와서 몰래 들꽃을 내 꽃병에 꽂아두고 가는 학생을 본 적이 있는데, 다른 선생님께는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비밀로 해 달라는 그 얘기도 마음이 너무 착하다며 나에게 다 해주셨다.

   '졸업하고 그 애를 한 번인가?' 본 적이 있다. 여러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서 같이 저녁을 먹은 것 같다. 이후에 메일이 한 두 번 오고 갔었지만,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지 오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참 마음이 순수했던 그 녀석, 그 때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어제 구절초(아니, 쑥부쟁이였나)를 보면서 그 녀석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책상에 꽃병을 올려두지 않는 나를 생각하고, 나에게 꽃 한송이를 꺾어다 놓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고, 지금, 그들과 나의 먼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란 참 무서운 것인가 보다. 영원할 것 같은 그 무엇도 시간 앞에서는 서서히 무너져내린다. 조금씩,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그것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달라진 때가 아닐까? 그래서 더욱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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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7-10-08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글을 심한 자랑질로 오독하시는 분이 없었으면 싶다. 현재, 우울한 상태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 쓴 글이니까...

2007-11-13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