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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
이철호 외 지음 / 메이데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조금은 엉뚱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먼저 책에서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측면을 떠올리면, 현재 내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담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내가 너무 내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하는 책에 인색한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나와 다른 주장을 펴는 그런 책은 읽으면서도 심리적으로 불편하니까 더욱 멀리 하게 된다. 그 밑바탕에는 내 생각이 옳다는 ‘독선적’인 사고방식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틀린(혹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계속 읽는 것은 취미활동도 아니고, 아예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다음으로 책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측면을 떠올리면, 굳이 내 생각과 다른 책들을 읽어가면서 마음이 불편해 지고, 답답해 할 필요가 있나 싶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마음에 맞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듯이 책도 그러면 되는 게 아닐까? 읽으면서 즐겁고, 책을 통해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른 어떤 취미 활동보다도 건전하고 의미 있는 놀이다. 그래서 대부분 내 생각의 결론과 비슷한 주장을 담은 책으로 마음의 즐거움을 즐기고, 이를 통해 내 생각이 사회적 다수의 생각과 비슷함(비록 현실에서는 소수일지라도!)을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나 교육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과 대안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현직교수와 교사, 교육운동가 등이 글쓴이로 참여하고 있어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면서 막막한 현실이 답답할 때, 우리 교육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큰 방향과 함께 교육 현안에 대한 쟁점을 주로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담론을 정리한 글을 읽으면 기운도 나고, 새로운 의욕도 생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너무 개괄적으로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 짧은 분량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고 이해하면서도 열 쪽 이내로 정리된 각각의 주제들은 어쩌면 책 한권 정도로도 정리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민감하고, 갈등의 연원이 깊고, 다수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고,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교육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나 우리 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안이 궁금한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의외로 이 정도로 정리된 글도 읽어보지 않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파괴하려는 사이비 언론의 새장에 갇혀 사는 앵무새가 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밑에 덧붙이는 글은, 이 책을 읽던 중에 나와 신문 읽고 논평하는 글쓰기를 하는 학생이 마침 신문에 난 교원평가제에 대한 내 생각을 물어왔기에 적었던 글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 이 책의 ‘리뷰’로 옮겨두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고 본다.
교원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네 물음에 답하며
네가 쓴 공책을 받고나서도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거기에다가 네 생각을 차곡차곡 써내려간 하늘색 공책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좀 묵직했다. 앞으로 교사가 되고 싶다는 네 삶과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내 삶에 직접 맞닿아 있는 주제인 교원평가제를 문제를 앞두고 내 마음속의 결정은 이미 내려졌는데, 이 마음을 어떻게 진실 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진실 되게’, 라는 표현을 썼다. 항상 타당한 논지를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논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내가 ‘논리적으로’, 라고 말하지 않고, ‘진실 되게’, 라는 말을 쓴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사안만큼은 내 생각을 오롯이 잘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주면 좋겠다.
네가 스크랩한 기사를 보니, 전 국민의 80%가 교원평가제에 찬성한다고 되어 있더구나. 이 결과를 보면서 처음에 바로 들었던 생각. ‘교원평가제’를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 국민이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 교원평가제에 대한 여러 경로의 정보를 받아들여서 이해하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모든 제도나 일은 완전히 옳거나 전부 그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과연 저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들은 교원평가제의 단점을 하나라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언론에서 무수히 말하는 좋은 점 말고 단점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교원평가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우리 국민들에게 제공되는지 의심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정보에 접근하는 구조가 편향되어 있는데, 찬성 비율이 99%가 안 나오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 싶다.
교육인적자원부나 언론은 교원평가제의 장점으로 교원평가를 통해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과 무능력하거나 부적격 교원을 걸러낼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아울러, 교원평가제를 시행함으로써 교직 사회에 긴장감을 불러와서 교단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도 꼽는다. (물론 교육부는 공식적으로 교원평가제를 통해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고 자기 계발을 도모한다는 공자님 말씀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나,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나, 비공개적인 생각은 아마도 앞에서 내가 말한 대로 교원평가제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그 두 가지를 정리해 보면 교원평가를 통해서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 것 같다. 교사의 1년간의 수업활동에 대한 관리자, 동료교사, 학부모와 학생들의 평가를 통해서 교사에게 보다 질 높은 수업을 기대하는 것은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아주 소박한 바람일지 모른다. 그러나 교원평가를 위해 참관 수업을 1년 동안 매일 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고, 특정한 날이나 기간에 공개 수업의 형태로 하게 될 텐데, 이게 실제 학교현장에서는 정말 문제가 많다.
지금도 교과별로 1년에 한두 번 정도 있는 연구수업을 한 번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연구수업은 말 그대로 교사의 자율적인 (교과) 연구에 의한 수업이다. 그런데도 어떤 교사는 일주일 전부터 아이들에게 똑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연습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연구수업은 특별히 승진이나 인사고과와도 관련이 없다.) 이런 수업을 참관하고 있으면 마치 잘 짜놓은 연극을 보는 것과 같아서 ‘수업이 맞아?’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어쨌든 교사가 짜놓은 수업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수업의 내용구조와 형식을 대체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잘 했다는 격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런 수업을 한 교사가 일 년에 서너 차례 해서 교원평가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정상 수업은 온 데 간 데 없고 보이기 위한 평가수업을 연습만 반복될 것이다. 거기다가 학부모까지 와서 참관한다는 것은 더욱 부작용이 심할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을까?) 만약 1년 동안 수업평가자가 내 수업을 전부 참관하면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 형성 정도, 학생의 학습 능력과 수업 태도, 교사의 수업 준비, 수업 상황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때는 교원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 교원평가제로 수업의 질 개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현재 교단의 분위기로 봐서는 어렵다고 본다.(만약 평가시스템이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면 연극 형태의 수업이 극에 달할 것이고 수업이 파행으로 치달을 것이며, 구조조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교사들은 잡무가 늘었다고 불평하면서 어떻게든 문서만 그럴듯하게 꾸밀 가능성이 아주 높다.)
두 번째로 교원평가를 통해서 부적격 교원을 걸러낼 수 있지 않다는 점이 교원평가제의 장점으로 거론된다. 학부모나 일반 국민들은 교원평가제를 통해서 성적을 조작하는 교사,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 금품을 수수하는 교사, 성범죄를 일으키는 교사를 교단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교원평가제 도입을 바라는 세력이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어 내기 위해 이치에 맞지 않는 정보를 흘리는 나쁜 방법이다.
앞에서 말한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교사는 명백히 범죄행위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원평가제와는 상관없이 일반 범죄 행위로 형사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교원평가제가 시행되지 않는 지금도 저런 범죄를 일삼는 교사들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 징계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원평가는 현재로서는 수업 평가에 한정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이나 학부모들이 바라는 소박한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교원평가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현상이다.
물론, 이런 기대감을 이해할 수는 있다. 내 아이를 맡아서 가르치는 교사가 실력이 형편없거나 심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에 교원평가를 통해서 교단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사실, 그 기대감으로 교원평가제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본다. 부모님들의 애타는 심정을 온전하게야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를 통해 그런 교사가 걸러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일 년에 두어 번 수업에 참관하는 것으로, 교사의 무능력을 판단할 수 있을까? 학부모들은 평소 아이의 말만 듣고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는 전문적인 교육활동을 비전문가인 학생과 학부모가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고 옳은 일일까? 설령 무능력한 교사로 지목되어도 실질적으로 교사의 인사권을 휘두르는 관리자에게 미운털이 박힌 교사가 아닌 이상 신분에 변동이 있기는 어렵다. (학부모의 판단과 관리자의 판단은 완전히 다를 수 있고, 아무래도 학부모가 평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관리자나 동료교사의 영향력보다는 적을 것이다.) 따라서 교원평가제를 도입할 때 기대하는 학부모나 학생의 바람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교원평가제를 도입하려고 애쓰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교육이 부실하다는 신화(근거 없는 믿음이거나 거짓된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의 책임을 교사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교원의 구조조정(학령인구 감소로 앞으로 교원의 구조조정을 필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따라서 교원평가제도의 도입이 선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교육계가 지금과 같은 인사구조 하에서 구조조정을 시도한다면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교원평가제를 통한 구조조정에는 모든 책임이 ‘무능력한’ 교사 개인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훨씬 쉽게 교원 축소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교원평가제는 ‘단위 학교의 자율성 신장’이라는 명분으로 교육관료, 혹은 학교장의 교사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교원평가제로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시달리게 될 교사가(그것도 학교장의 입장이 가장 많이 반영될 교원평가제가 시행되고 있다면) 학교장으로부터 최소한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활동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아울러 아직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도 없는 관리자들이 수두룩한 2007년 대한민국의 학교는 교원평가제를 무기로 관리자의 전횡이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이를 적절히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학교 내 조직의 부재로 학교는 더욱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장소로 퇴행할 가능성이 크다.(학교는 지난 20년간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도달한 민주주의적 성과를 전혀 못 따라가고 있다. 아직도 5/18 광주항쟁에 대한 수업을 하려면 ‘수업자료’를 뺏는 곳이 학교다.)
이제 내용을 정리할 겸 해서 내 생각을 짧게 말하면, 학부모와 학생의 간절한 바람은 이해하나 교원평가제를 통해 그 바람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교원평가제를 시행해도 좋아지는 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교원평가제가 시행되었을 때, 교사들의 사기 저하와 교원 통제에 따른 자율성의 퇴보 등으로 학부모나 일반 국민이 기대하는 학교 발전은 더욱 더 퇴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교원평가제, 꼭 해야 할까?
소박하게 쓰려던 게 약간 딱딱해졌다. 네 글 덕분에 내 생각이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내 생각을 다시 한 번 성찰하려고 애썼다. 그런 점에서 고맙고, 또한 기쁘다. 낼부터 시작하는 기말시험,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날이 차다. 감기 걸리지 않도록 늘 신경을 쓰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