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부는 날, 느티나무!!


   OO선생님이 건네 준 날적이를 OO샘께 먼저 드렸다. 근데 두 시간쯤 지났을까?

   내 자리에 올려져 있었다. 나까지 같은 날(03.28)에 쓰면 여러 사람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이틀을 묵혔다. 그리고 지금. 토요일!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난 티눈 같은 것을 병원에서 없애고 나니 상처가 오래간다. 이것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쉽지 않다. 손가락에 힘은 꽉 주고도 글씨가 맘에 안 들어서 많이 쓰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든다.

   올해는 좀 빡빡한 학교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3학년 교실에 좀 더 시간을 많이 쓸 생각이니까. 그리고 동아리 담당교사, 그리고 다른 일과 공부모임. 거의 개인적인 시간이 없는 셈이다. 아, 분회원으로서 무엇을 할지도 고민이다.

   시간이 관계를 깊이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임을 새삼 느낀다. 상담을 해 보면 새로 내가 담임을 맡은 학생과 2년, 3년 동안 담임을 했던 학생과는 이야기의 깊이가 조금 다른 것 같다. 마음속에, 말하기 어려웠던 얘기들을 들을 때 해줄 게 없어도 그냥 마음이 찡하다. 고맙고, 대견한 느낌!

   아이들이 3학년이라는 부담을 잘 감당하고 있어서 안타까우면서도 좋다. 그러니까 더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 크다. [이렇게 쓰면 아주 이상적인 학급을 떠올리기 쉬우나 교실은 사실 ‘엉망’으로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학교를 오갈 때도 벚꽃 때문에 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는 날은 꽃잎에 떨어질까 조심스럽다.

   이제 길고 길었던 3월이 끝난다. 앞으로는 시간이 좀 더 빨리 흐를 것이다. 늘 흐르는 시간을 의식하면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하겠다.

   애기는 요즘 잠든 모습만 본다. 평화가 가득해서 마음이 경건해진다. 휴직한 아내는 진짜 고생이다. 그 덕에 내가 학교에 좀 오래 남는 것이고… 내년에는 담임을 안 할 계획인데…잘 될지 모르겠다.ㅋ 우여곡절 끝에(?) 날적이를 다시 쓰게 되어서 기쁘다. 지나간 일기를 읽으며 흐뭇한 생각! ‘무능한 진보’얘기는 고민을 던져준다.

   (그러면서 나는 ‘진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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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진복이가 어제 수술을 받았다. 지난 20일에 수술 날짜가 잡혔었는데, 한 나흘 전부터 감기가 왔는지 열이 올라서 정해 둔 수술 날짜를 미뤘다. 그래서 다시 잡은 날이, 1월 30일, 바로 어제였다.

   며칠 전부터 아내가 차곡차곡 준비해 온 덕분에 29일 오전에 서울로 편하게 올라왔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진복이가 계속 잤기 때문에 좀 편했다. 입원 시간이 오후 3시 이후라 서울역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을 했다. 녀석은 모든 게 신기한 지 환자복을 입고도 복도를 내내 신나게 걸어다녔다.(지나다시는 분들이 귀엽다고 다들 칭찬해 주셨다.)

   아내와 나는 한 열흘 정도의 입원 생활을 각오하고 왔는데, 전날 밤에 의사 선생님을 면담해 보니 그 정도까지는 걸리지 않겠다고 하셨다.(요도하열이 심하지 않아서 5-7일 정도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야 할 시간. 진짜 힘든 건 이때부터였다. 4인실에 배정을 받았는데, 밤새 진짜 힘들었다. 같은 병실의 다른 분들은 입원 생활이 익숙하신 지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부스럭거리고, 코를 골고, 전화벨이 울리고(옆에 계시던 할머님의 전화기가 압권이었다. - 한 시간 간격으로 "O시 입니다."라는 알람이 계속 울렸다.) 새벽엔 애기가 빽빽 울었다. 

   우리 가족은 좀 어리숙하게 구석에서 쥐죽은 듯이 지냈다. 저녁에 그렇게 걸어다니던 진복이도 밤에는 아무 소리도 안 내고 그럭저럭 잘 자는데, 예민한 아내는 거의 잠을 못 자고, 잠귀가 아주 먼 나도 잠을 한숨도 못 잤다.(또 새벽 6시부터 금식이라 5시 반에 일어나 분유를 먹여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예상 수술 시간은 오전 12시. 아침부터 하나하나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당연, 금식은 새벽부터 시작되었고, 오전에는 수액을 손에 꽂았다. 꽂는 내내 많이 아팠는지 꽤 울었다. 11시 30분에 수술실에서 연락이 왔다. 녀석은 수술실로 가는 내내 불안한지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자꾸 보챘다. 나는 마취실 앞에서 아내와 진복이만 남겨두고 왔다.

   오후 3시 30분. 수술이 끝나고 회복시간을 거쳐 입원실로 이동한다는 방송이 나와서 반사적으로 달려가 보니 진복이가 약간 멍한 상태로 우리를 쳐다 봤다. 생각보다 훨씬 씩씩했다. 거의 병실에 와서야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전날 밤의 고통 때문에 1인실로 옮기면 좋겠다고 했는데, 오전에는 없다고 하더니 진복이가 수술실에서 나오니까 바로 1인실이 생겨서 그리로 옮겼다.(수술하고 난 밤에 진복이가 힘들어 할 걸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폐가 많을 것 같았다.)

   전신 마취 수술하고 나서부터는 폐가 마취 상태에서 깨어나도록 하기 위해 계속 가슴과 등을 두드려줘야 열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팔이 아프도록 두드렸다. 진복이도 바짝 입술이 타고 볼이 벌겋게 상기되어서 힘들어했다. 유모차에 태워 복도를 거닐기도 하고 침대에 앉아서 등을 토닥토닥해도 기분이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진복이가 저녁부터 계속 끙끙거리고 힘들어했다. 또 저녁 때까지 소변을 보지 못해서 결국 담당 의사가 왔다. 수술한 부위를 붕대로 감아뒀는데, 붕대가 너무 꽉 조여서 피가 안 통했는지 수술 부위가 새까맣게 변했다. 의사가 붕대를 칼로 잘라내고 한참이 지나서야 조금씩 색깔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결국 소변이 안 나와서 소변줄을 꽂으려다 오줌 구멍이 작고 애기가 힘들어해서 그만 뒀다.

   새벽 1시에 다시 소변을 보는 지 점검해 보고 안 되면 다시 소변줄을 꽂기로 했다. 의사는 1시 반에야 왔고, 여전히 소변은 안 나왔다. 진복이는 배에 오줌이 가득 차서 빵빵했다. 의사가 아랫배를 살짝 눌러주자 오줌이 비치기 시작했다. 다시 더 지켜보기로 했다. 새벽 2시 반에 진복이가 울면서 조금 소변을 봤다. 조금 시원해졌는지 울음도 그치고 잠이 들었다.

   한밤 중에 여러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선 진복이가 소변을 못 봐서 다시 수술실로 가는 내용도 있었다. 악몽이었다. 아침 8시. 일어나니, 같이 일어났던 아내가 진복이의 기저귀를 살피더니 오줌을 어찌나 많이 봤는지 기저귀가 흥건하다고 반색했다. 이제, 다행이다.

   녀석의 얼굴색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입술도 조금 촉촉하다. 이후로는 계속 오줌을 본다. 아침을 먹이고 오전부터는 계속 병원 복도를 산책했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으려고 하지 않는 평소 모습 그대로다. 음, 오늘은 그게 좀 고맙기도 했다. 수액과 무통 주사를 달고도 씩씩하게 잘 다닌다. 덕분에 아내와 나도 한시름을 덜었다. 진복이에게 음악도 틀어주고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오후에는 부산에서 오신 장모님이 진복이를 많이 봐 주셨고, 진복이가 자는 동안에, 아내와 나는 이틀 동안 못 잔 잠을 잤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에 교수님의 회진 시간. 진복이 상태가 좋다시며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내일 그냥 퇴원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2월 3,4일에나 퇴원할 줄 알고 미리 기차표를 샀는데...) 그 말을 들으니 그냥 기분이 멍 했다. 이제 끝났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저녁에도 진복이는 방안에 있는 걸 싫어하고 유모차를 타고 복도를 다니는 걸 좋아했다. 며칠 있다 보니까  가까운 곳은 싫증을 내고 해서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녀석이 수술했던 곳 근처에도 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10시 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직 퇴원이 행정적으로 시작된 건 아니지만 담당 교수님이 퇴원하라고 하셨으면 아침에 준비를 해서 12시 전후로 퇴원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조금 전에는 지금껏 돌봐 준 간호사들에게 과일을 깎아서 돌렸다. (아내는 별로 친절하지 않다고 조금 불만이 있었다.) 낮에 잠을 잤더니 아내와 나는 잠을 못 자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껏 진짜 힘든 과정을 잘 버텨주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는 진복이가 대견하고 고맙다. 태어났을 때는 직장에 있느라 자주 못 가봐서 우리 애가 얼마나 씩씩한 지 잘 몰랐는데, 이번에는 계속 같이 있으니까 얼마나 대견스러운 지... 마음이 뭉클하다.(태어나서 죽을 고비를 맞았을 때 '백절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이번에 보니 그렇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쉽게 잠 못 드는 밤이지만, 이젠 자야겠다. 내일은 조금 더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조금 불편한 건 오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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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2-01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어린 진복이가 수술이라니 정말 큰일이 있었네요. 진복이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싶어 마음이 짠합니다. 두분도 몸과 마음 모두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그래도 수술이 잘 됐고 생각보다 빨리 퇴원한다니 수술경과도 아주 좋은 것이겠죠? 그래도 다행이예요. 이제 아프지 마라 진복아!

느티나무 2008-02-02 13:34   좋아요 0 | URL
네, 보통은 열흘 정도 입원하고 심한 경우는 보름 정도? 좀 상태가 가벼운 상태는 5-7일 정도 입원한다는데, 진복이는 뭐 어찌된 셈인지 그냥 나흘만에 나왔습니다. 이제 아프지 않을 겁니다.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드팀전 2008-02-0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큰 일이 있었군요.어린 진복이가 잘 해내서 정말 다행입니다.내용을 보니까 한 동안 쉬를 못했나봐요...
예찬이도 지난 주에 수술을 했답니다.사실 수술까지는 아니구요...기저귀 안간다고 도망가다가 의자에 꿍해서...눈 꼬리 옆을 5바늘 꿰맸어요...아이가 움직이면 안된다고 해서 아내와 둘이 아이의 팔다리를 꼭 잡고 있는데...울면서 '엄마..아빠' 하는데 가슴이 아프데요.하얀 살결 사이로 실이 서걱 서걱 오고 가는 모습도 마음아팠어요........어제 실밥을 뽑았는데 생각보다 흉이 커보이지 않아서 한숨 놓았습니다.(사실 잘 모르니까 약 잘발라줘야지요)

느티나무 2008-02-02 13:36   좋아요 0 | URL
예찬이도 다쳤네요. 맞아요, 아기가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해서 팔다리를 잡고 있으면 아파서 버둥대는 녀석의 마음이 전해져서 부모 마음도 내려앉지요. 조금 시간이 지나면 흉터가 없어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노아 2008-02-02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복이가 큰일 치렀군요. 수술이 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씩씩한 진복이에게 상이라도 줘야겠어요. 느티나무님도 고생 많으셨어요ㅠ.ㅠ

느티나무 2008-02-02 13:37   좋아요 0 | URL
씩씩하다는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퇴원할 때는 이 녀석이 간호사들에게 '살인 미소'를 날리니까, 간호사들이 진복이가 귀엽다며 안아줬거든요. 녀석은 또 입이 헤벌레 해가지고...ㅎ 아무튼 부산에 잘 와서 푹 자고 오늘은 집에서 잘 놀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마노아님도!
 

글밭 나래, 우주인

 

OO고등학교

1. 글밭 나래, 우주인 소개 


  2005년 12월에 자생적으로 시작한 글밭 나래, 우주인 활동은 2006년 3월 교육청 지정 학습동아리가 되었고, 1년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2007년 2월, 1년 동안의 활동을 정리한 활동보고서를 인쇄물로 발간하는 형태로 연간 활동을 마무리 지었다. 새학기가 되어 2007년 3월 중순, 글밭 나래, 우주인의 신입회원(2학년) 열여덟 명을 선발하여 체계적인 독서와 다양한 독후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글밭 나래, 우주인이라는 모임의 이름은‘책(글밭)을 읽고 자기의 생각을 고르게(토론:나래)하는 모임은 우리가 주인’이라는 뜻인데, 모임의 이름처럼 우리는 책을 통해 자기 생각의 폭을 넓히고 여러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여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지향한다.

 

 

2. 글밭 나래, 우주인의 목표 


  글밭 나래, 우주인 활동을 통해 우리가 이루려는 목표는 첫째, 학업 성적과 상관없이 책 읽는 습관을 기르고,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고, 독서를 좋아하고 생활화하는 것이다. 둘째,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의 내용을 자신의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서 읽은 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으로 책읽기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책 읽기를 생활화할 수 있다. 셋째,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생각하는 능력의 깊이와 폭을 확대하고, 넷째, 다양한 독후 활동을 통해 말하기와 듣기, 토론 및 논술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 활동 중심의 학습동아리 활동을 통해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고, 지금의 학교 교육과정에서 쉽게 다룰 수 없는 범교과적인 독서/토론/논술 활동을 바탕으로 통합적인 사고력을 키우고자 한다.


3. 주요 활동내용

 

 '글밭 나래, 우주인'의 주요 활동은 자체적으로 선정한 다양한 분야의 필독도서를 읽고 구성원들이 주어진 과제를 해 와서 감상 발표, 주제 토론하는 형태이다. 담당교사는 필독서 선정과 과제 준비에 적극 참여하지만, 모임의 진행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주요 활동은 시를 이야기로 바꾸어 쓰기도 하고, 좋은 시를 낭송하기, 자신이 상처받은 경험을 나누기, 일기 쓰기, 외국인 노동자의 초청 특강을 통해 그들이 사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했다. 또한 예술에 대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 그림책을 보면서 좋아하는 작품을 고르면서 이유를 말하기도 하며, 직접 사진을 찍어서 돌려보기도 했다.

  또 1년 동안 모임을 시작할 때 요즘의 자기 생활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생활나누기’를 통해 말하기 연습은 물론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해서 인성 교육에도 도움이 되고자 했다. 


4.  글밭 나래, 우주인의 활동 일지


 

5. 글밭 나래, 우주인 활동 소감 

  이렇게 다양한 활동과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 똑같은 책을 읽고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구나. 난 왜 저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저 친구는 정말 말을 잘하는구나.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때론 눈물 흘린 적도 있고 왁자지껄 웃은 적도 많았고. 우주인으로 지낸 한해는 눈물도 있고 웃음도 있어서 더 뜻 깊고 더 소중하게 기억 되었습니다. 공부하느라 빠듯한 시간 속에서 책을 읽기란 쉽지 않은 거였지만, 잠자기 전에 조금, 아침 밥 먹으면서 조금, 쉬는 시간에 조금, 그리고, 때론 화장실에서도 조금^^. 조금씩 책을 읽어갔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욕심내지 않고 읽으면 충분히 부담스럽지 않게 다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나 책 읽는 것에 부담을 느끼실 학생들이 있을까봐!) <2학년, 김미연>

 

  토요휴업일 강연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너무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고, 나도 강연하시는 교수님들, 선생님들과 같이 멋진 삶을 살아야겠다는 자극도 받았다. 그래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강연이 끝나고 이어지는 학생들의 질문 시간. 어찌도 그리 다들 똑똑한지…….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한 질문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왔고 그 순간 정치인들의 회담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하는 성과 발표회에서 발표하는 애들을 볼 때는 같은 나이인데도 어쩜 저렇게 나와는 다를까하고 경각심이 마구마구 솟아났다. <2학년, 김수연>


  독서 동아리를 통해 얻은 건 참 많은 것 같다. 멋진 동아리 친구들과 15권의 책!!! 그리고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보다 더 깊고, 넓은 생각을 가진 동아리 친구들에게 많이 배웠고, 감탄했다. 또 선생님의 예리한 지적에 어떤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더 깊이 생각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2학년, 문수정>

  모임 시간이 항상 즐겁게 다가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읽었던 책이 너무 어려웠을 때와 시험기간이 겹쳐 책을 다 읽지 못했을 때에는 찝찝한 마음에 착잡하게 보냈던 모임도 있었다. 그렇게 모두 15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은 정말로 값진 시간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 시간 속에서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는 것 자체를 특권처럼 느끼고 종종 친구들에게 우쭐대곤 했다.<2학년, 고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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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8-01-2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1년간 3학년 수업하면서 2학년 학습동아리를 함께 했었다. 그래서 아주 친해지지는 못한 녀석들이었는데, 그래도 1년이 후다닥 갔다. 동아리 보고서를 두 쪽 분량으로 내라고 해서 대충 정리해 봤다. ^^;;[아, 이젠 나도 먹고 살려면 영어동아리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해콩 2008-01-2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셨군요. 망설이고 있었는데 저도 함 소개해볼까요? ^^ 지난 1년이 대충 끝나가는 느낌이예요. 29~30 모꼬지만 다녀오면... 수고많으셨어요~

느티나무 2008-01-26 13:25   좋아요 0 | URL
모꼬지 잘 다녀오세요. 전 그날 서울로 출발~! 씩씩하게 잘 다녀올게요. 노트북 가져가니까(요새 이 녀석이 꾸러기의 동요나라에 빠졌거든요) 소식은 더 자주 전할 수 있을 것 같네요..ㅎ
 

  오늘은 영어몰입 교육에 대한 기사가 각 찌라시('선전지'로 순화해야 할 일본어지만, 그냥 하는 꼴들을 보니 별로 순화해 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들에 큼지막하게 실렸다. 어제는 수능과목 축소와 영어시험상시화가 실렸었나? 하고 있는 걸 보니, 좀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여기에 끄적인다.

1. 대학입시 자율화

가. 수능점수제 부활

  또다시 1점에 목숨 거는 입시제도가 부활되는 것이다. 애초 등급제의 취지는 수능 부담을 줄이고 내신 비중을 높여서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의도였다. 근데 결과적으로 이 목표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데는 이른바, 주요 사립대의 기득권 수호가 가장 크다. (이들이 내신 성적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건 작년 여름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그것도 기억 못 할 붕어들이나, 등급제 실패를 현 정부의 실정으로 돌리고 있지.) 하여튼 수능 1점에 다시 목숨 거는 시대가 왔다. 더욱 긴장하라, 수험생들이여!

나. 3불 폐지

   이건 자율형 사립고 설립, 대입 업무 대학 자율화에 따라서 고교 등급제와 본고사를 금지한 정책이 자연스럽게 무력화될 것이다. 이젠 고등학교를 선택하서 가니까 고교 간의 교육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고, 대학들은 고교의 수준을 입시에 반영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본고사는 도입이 확정적이다. 내신과 등급제 못 믿어서, 변별력을 최고로 끌어올리려는 일부 상위권 대학은 본고사를 봐야 학생의 능력을 확실하게 판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당연히 본고사는 도입된다. 그럼 기여입학제는? 현재 시행하고 있다. 물론, 편입학에서 음성적인 경우겠지만! 자, 그럼 좋은 고등학교 가기 위해서 초,중학교부터 과외 열심히 받아야 하고, 고등학교에서는 고교 수준을 벗어난 교육과정도 과외로 공부해야 하며, 만일을 위해 돈이 엄청 많은 부모를 만나도록!

다. 대교협에 업무 이관

   교육부가 내신 비중을 높이라고 강요해도 어떤 대학은 무시했던 게 작년이다. 그런데 대교협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오호~! 워낙 성숙한 민주시민이다 보니 강제로는 안 통하고 자율로 해야 말이 통하시겠다? 아, 이럴 수는 있겠다. 대교협 자체가 대학간 조정을 포기하는 경우는 자율로 잘 굴러갈지도 모르겠다. 그럼 100개의 대학의 입시 전형은 100개다.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것도 과외 받으면 된다. 입시 전형 설명 과외 선생님, 곧 등장한다. 신종 직종이다.(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려나?) 

라. 수능과목 축소

   수능 부담 줄어든다고 도입한단다. 소가 웃는다. 수능 점수제로 가고, 대학이 수능을 중시하는 이상 1과목으로 줄여도 수능 부담 안 줄어든다. 1과목만 본다면 1년 동안 1과목만 죽어라고 공부할테니까. 사회나 과목 과목을 1-2개 선택해서 본다는데, 그럼 나머지 시간엔 다 자습이다. 하루 수업 중 반 이상이 그냥 교실에서 자습하게 될거다. (내신 비중이라도 높으면 내신  성적에 들어가니까 듣기라도 할테지만, 아시다시피 새 정부와 대학은 학교 내신을 불신하니까 대학이 내신 비중을 반영 안 해도 상관 없다.) 이렇게 되면 어려운 과목 선택이  팍 줄어들 것이다. 예를 들면, 과학의 '물리' 과목은 선택 학생이 거의 없을 것이고, 이런 상태에서 '공대'에 진학하는 학생은? 역시 과외 받으면 된다.

2. 교육부 권한 축소, 시도교육청 권한 강화

가. 특목고 설립 자율화

   특목고 설립 전에 교육부와 협의하게 되어 있는 단계를 폐지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방자치단체는 경쟁적으로 특목고 설립에 나설 것이고, 특목고 천국이 될 것이다. 특수한 재능이나 능력이 있어서 특목고 가는 거야 누가 말리냐만, 외국어 특기자로 들어가서 '의대'나 '공대'가면 그게 무슨 재능을 살리는 것이냐? 재능이 있다고 온갖 특혜 지원(학생수, 시설, 교육과정)을 다 받아놓고 결국 새치기로 좋은 대학을 골라가다니! 게다가 이젠 등급제 되면 특목고로 가도 내신의 불리함이 없는데, 다 특목고로 가려고 할 것이고, 특목고 아닌 고등학교는 3류다. 그럼, 학생들은? 허허, 중학교 때 준비하면 이미 늦다. 적어도 부모 등골 파서 초등 3,4 학년 때부터 학원에서 준비해야 한다.

나. 0교시, 사설모의고사 부활

   고등학교에 0교시도 부활해서 7시나 7시 반부터 등교시켜서 보충수업한단다. 선생이 제일 할 짓이 못 되는게 저 0교시 수업이다. 밥도 못 먹고 오는 애들 앉혀서 국/영/수 해봐야 효과? 전혀 없다. 0교시하면 1교시 수업도 엉망이다. 애들은? 지금 6시간 자는 걸, 5시간으로 줄이도록 이번 방학부터 연습해라. 사설모의고사도 다시 친단다. 학원시험지다. 이미 국가에서 4-6회 전국단위시험을 치는데, 왜 사설모의고사를 치는지 모르겠다. 평가원의 수준이 사설 학원보다 못 해서 불안해서 치겠다는건가? 그럼, 아예 수능시험을 사설학원이 내면 되겠네. 선생들? 그 날 하루 수업 안 하는 날이라 은근히 좋아한다. 야자도 없으니 그날은 담임들 회식한다. 사설모의고사비는 9,000원이다.(비싸다는 참고서 한 권 값이다.)

3. 고교교육 다양화

가. 자율형사립고 100개

   새정부 교육정책의 핵심이란다. 지금 전국에 6개 있는 자립형 사립고,에서 재단 전입금 비율을 더 낮춰서 사립학교의 전환을 유도한단다. 다양한 재능과 특기를 살리고, 건학 이념을 실현할 수 있으며 교육과정을 다양화 할 수 있단다. 게다가 사교육비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나? 이걸 말이라고 믿어야 할지... 자율형 사립고 학비 엄청 비싸서 왠만히 돈 있는 집 자식 아니면 가서도 못 버틴다. 아니, 그 전에 과외비 엄청 쏟아붙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그런데도 장학금으로 해결하겠단다. 돈 없어서 못 들어가는데 어떻게 장학금을 주냐고!) 우리 나라 고등학교는 재능과 특기 살려서 들어가는 학교 한 개도 없다. 오로지 성적 순이다. 모르지. 수학 문제를 창의력 문제라고 이름바꿔서 풀면 창의력 있는 인재로 둔갑할지는 모르겠다만! 교육과정의 다양화? 입시 과정의 심화가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 사교육비가 반이라 오히려 초중학교에서 사교육비가 5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지금은 상위 10% 정도의 학생들이 특목고를 기웃거리는데, 이 학교가 많아지면 상위 50%까지 특목고 대비 과외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 중학교는 이미 늦어요..돈을 몸에 바르고 초등 3,4학년부터 준비하라니까요.

나. 공립형 기숙학교 150개

   사립고의 자율에 대해 공립학교도 학교에서 먹고 자면서 공부하는 학교를 전국에 150개 정도를 세우려는 계획이다.(물론 새로 설립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학교를 전환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먹고 자면서 입시 공부를 해야 그나마 대학을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겠다. 기숙학교를 뺀 나머지 인문계 학교들은 3류나 4류 학교로 전락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립형 기숙학교로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환상은 가지지 말도록! 기숙사에서 나오는 주말에 고액 과외를 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니까.(지금의 특목고 애들의 사교육 참가 비율이 일반고에 비해 더 높은 건 주지의 사실!) 이렇게 되면 30년 고교평준화 정책 물건너 갔다. 평준화가 애들을 바보 만들었다는데, 좋은 거 아니냐고? 놀랍게도 (연구자들에 따라 관점이 조금씩 다르지만, 교육개발원 등의 공신력이 큰 기관의 연구나, 장기적이며 대규모 연구자료에 의하면) 평준화로 전체 고교생들의 성적이 상향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니, 하향 평준화 이야기하면 무식하단 소리 들으니, 딴 소리하기 없기! 학생들? 학교에서의 행복을 포기하고 조금 더 나은 대학을 가고 싶다면 죽도록 과외해야지 뭐. 어차피 돈이야 부모 등골 파면 되는 것이니까. 돈 안 대주면... 핑계, 좋잖아!  

4. 영어교육 강화

가. 영어로 영어 수업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영어로 수업할 수 있다는 영어교사가 50%정도 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단다.(말 그대로 설문 조사다.) 이걸 토대로 영어교사의 반만 연수시키면 될 거라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학교 영어샘들은 다들 무능력한가, 겸손하신가? 수업 할 수 있다는 분이 거의 없던데... 우리말로 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 앉혀놓고 선생이나 학생이나 죽을 맛인데, 이젠 영어로 수업을 하신다? 좋다, 되는지 한 번 끝까지 해 보자. 단, 이게 죽어라고 해도 안 된다는 게 판명나면, 새정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고 약속하면. 대학교의 영어 수업도 겉돈다는 얘기가 많던데...그것도 일부 우수한 대학의 얘기겠지? 근데, 훨씬 더 이질적인 집단이 모여있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바람직할까? 이명박 찍은 우리 학교 샘들은 어떤 표정이실까 몹시 궁금하네. 학생들? 이것 때문에 영어 과외할 필요는 없겠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니까 너무 쫄지 말도록!

나. 영어 몰입 교육 시범 실시

   헛발질의 결정판.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게 목표라면서 시범적으로 실시하겠다고 한다. 글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학교에 한 번이라도 와 봤을까? 그게 궁금하네. 인수위에 교육학자가 한 명도 없다더니 그 말이 맞는가 보네. 논란의 가치가 없다고 본다. 명색이 인수위의 정책 방향인데, 정책이 이렇게 '개' 취급을 받아도 되는지 참, 우습다. 그러나, 더 말해 무엇하랴? 입이 아픈데... 난 국어를 가르치는데 나도 영어로 수업하라고 하려나? 그러면 어쩌지? 학생들? 신경 안 써도 된다. 그냥 하던 과외나 계속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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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8-01-2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써놓고 보니, 새정부는 사교육이 보낸 트로이의 목마,가 틀림 없다. 어쩌면 저렇게 학부모로부터 돈 뽑아낼 일만 골라서 벌이는지...

글샘 2008-01-2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보면 '다양화'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노땅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죠. 몰상식하면서 무식한지도 모르는 것들.
영어를 졸나 해라! 1점이라도 더 따라! 서열 높은 학교로 가라!
이런 것들이 '다양화'를 없애는 주범인데 말이죠. ㅎㅎㅎ
우리도 이제 영어로 쉅 합시다. 렛츠 오픈 더 북! 뤼드! 엔드!!!

느티나무 2008-01-25 09: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헛발질이란 게 다양화 교육이 왜 안 되는지도 모르면서, 다양화를 외친다는 게 핵심이죠^^(역시!) 진보든 보수든 자아를 성찰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거죠~! 영어로 수업이라... 진짜 식민지군요.

해콩 2008-01-25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통쾌하지가 않아요. ㅋㅋㅎㅎ 웃음도 안 나와요.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내지도 못했다니깐요. 요즘 정말 미쳐버릴 것 같거든요. 진작 보험이라도 들어둘걸 하는 생각이... 신경정신과도 보험처리 되나 몰라. 저도 영어 과외나 받으러 갈까봐요. 과외공화국 대한민국, 자본의 식민지 대한민국...

느티나무 2008-01-25 09:30   좋아요 0 | URL
티비나 신문을 당분간 안 보는 게 상책이죠^^ 자기가 얼마나 황당한 선택을 한 것인지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지요.(이러면서 저도 속을 끓여요. 오죽 했으면 저런 글을 썼겠습니까?^^;;) 과외에 '공화국'이라는 말은 '공화주의'에 대한 모독이라고 홍세화 씨가 뭐라고 하지 않으실까요?ㅎ 전 이제 동아리 사례집 제작 원고 써서 보냈습니다.

2008-01-25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6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벌써 새해가 되었는데, 새해의 벅찬 기억이 가물거리는 1월의 중순입니다. 쓴다 쓴다 하면서도 손을 못 대고 있다가 두 달 만에 쓰는, 우리 반 학부모님께 드리는 여덟 번째 편지입니다. 지금까지의 편지는 늘 우리 반 학생들의 손에 들려서 부모님께 전해지곤 했는데[늘 문자 메시지로 안내해 드렸지요?], 이 편지는 아마도 졸업하는 날 녀석들이 받아들 교지에 실려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번 편지가 작년 11월 초였으니까 그동안 꽤 소식이 뜸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긴 시간도 아닌데, 실제 시간보다는 훨씬 많은 변화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아무래도 수능시험 때문이겠지요? 오늘은 아른거리는 제 기억을 더듬어 간단하게 우리 반 소식을 전해드리고, 부모님께 몇 가지 당부 말씀도 드리고자 합니다.


1. 수능이후 우리 반은…

  11월 16일에는 학생들이 지금껏 준비해 온 수능시험을 봤습니다. 학부모님에 비하면 턱없겠지만, 이 수능시험의 사회적 비중을 잘 아는지라 담임인 저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공부’라는 걸 하면서부터 준비해 온 시험이고, 마치 한 번의 수능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 같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 탓에 심지가 굳지 못한 저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여간 조바심이 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수능시험에 우리 반 학생들은 인문계 남학생들이 모여서 시험을 보는 부산OO고로 갔었습니다. 혹시나 지각하는 녀석이 있을까 싶어서 시험장 앞에서 기다리는 내내 저도 걱정했는데, 그날은 다행스럽게도 지각생이 없었습니다.(부모님들은 멀어서 더 마음 졸이셨지요?) 시험 결과야 모두 다르기 때문에 굳이 이 자리에서 따로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사흘 동안은 학교에 나왔습니다. 가채점도 해 보고, 대학에 보낼 생활기록부도 확인하려고 했는데, 해방감인지, 허탈함인지…… 긴장이 풀려서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부터 삼주 동안은 지역대학 탐방과 입시설명회, 체험활동 기간이었습니다. 지역대학 탐방은 학생들이 다니게 될 대학들을 직접 둘러보고 대학관계자로부터 대학의 발전 방향과 전망을 들어보는 자리였습니다. 입시설명회는 학생들이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데 많은 정보를 주려는 취지로 마련되었습니다. 체험활동은 입시 공부에만 매달린 아이들에게 우리 지역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는 걸 알리고, 여러 곳을 둘러보면서 지역의 지리를 익히고, 새로운 경험을 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했습니다. 체험활동을 통해서 녀석들 생각의 폭도 한 뼘 더 커졌으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녀서 돈도 많이 든다는 부모님의 하소연도 살짝 들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등교하면 정상적으로 수업이 이뤄지지 않아서, 1․2학년들이 공부를 하는데 방해도 되고 해서 일반적으로 수능이 끝나면 대부분 대학 탐방과 체험활동 위주로 계획을 짜게 됩니다.

  부모님께서는 수능이 끝난 후 갑작스럽게 너무 일찍 들어오는 아들과 보낸 두 달이 어떠셨는지요? 공부할 때는 늘 안쓰럽게 여기시다가, 막상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 녀석들이 부모님 속을 썩이는 일이 더 많아진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수능이 끝나고 우리 반 아이들과 산에 두어 번 다녀왔습니다. 비용도 제법 들고, 거리도 먼 곳이라 희망하는 학생들만 모았더니 열 명 정도가 나서더군요. 두 번 다 산에서 하룻밤을 자는 산행이었는데요. 고생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하면서 아무튼 우리들끼리는 시끌벅적한 산행이었습니다.

   처음에 갔을 땐 지리산을 훤히 비추고도 남을 만큼 큼직한 보름달이 떴었구요, 두 번째 갔을 땐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가득했답니다. 아이들의 감탄이 쏟아져서 데리고 간 게 보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끓인 맹맹한 김치찌개를 맛나다고 어찌나 잘 먹어주던지 고마웠고, 찬바람 속에서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역시 학교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서 놀랬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꽤 잘 알고 있다는 제 확신이 오해를 불러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에 새겼다가 다음에 담임을 맡게 되면 ‘오만’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12월 초순에 수능 점수가 나왔고 정시 지원 학생 상담을 했습니다.[상담한다는 문자 받으셨지요?] 수시 합격자 열여섯 명과 재수를 선택한 두세 명을 빼고 모든 학생들과 두 차례 정도 지원 상담을 했습니다. 학부모님이 직접 오신 경우도 서너 분 정도 되시고, 전화로 저랑 의논하신 경우도 있고, 혼자 온 녀석들도 대부분 부모님들과 의논을 해 왔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보고, 혹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일러주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 녀석들과 의논했는데, 그 때문에 혹시나 부모님의 심려를 끼쳤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때가 가장 행복하고 또 간절히 원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부모님께서 이 글을 읽으실 때쯤이면 녀석들이 어디로든 자기가 서 있게 될 자리가 정해져 있겠지요?


2. 졸업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실 때…

   제가 봐도 아직 어린애 같기만 한 녀석들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학교를 다닌 지 12년 만에 인생의 큰 고개를 넘습니다. 가팔랐던 고개에 올라선 지금, 앞으로 가야할 길은 모두 다르겠지만, 특별히 다시 험한 길을 택한 녀석들에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삶을 길게 보면 그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고, 오히려 지금의 실패를 한 번 더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여겨도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녀석들은 지금은 다 제가 잘 나서 이 자리에 서게 되는 것 같겠지만,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게 되는 데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날이 곧 오겠지요? 이 철없는 녀석들을 대신해서 담임인 제가 녀석들의 졸업장과 함께 부모님의 공로패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무 살. 부모님 눈으로도 한없이 어리게만 보이시겠지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으실 겁니다. 저는 그래도 이 녀석이 졸업을 하니까, 입학할 때 공부만 열심히 해 준다면, 하고 바라던 간결한 부모님의 걱정이 이제 끝나나 싶은데, 부모님께서는 다시 좋은 직장을 위해서 경험을 쌓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서 아직 걱정이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걱정은 이해하면서도, 이제는 이 녀석들이 제 앞가림을 스스로 해내는 연습이 필요한 나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서 겪어야 할 많은 시행착오는 아마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소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젊으니까 실패도 삶의 소중한 자산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요즘 취업하는 이십대들의 95%가 비정규직으로, 월급이 88만 원 정도에 그친다고 해서 이십대를 일러 ‘88만원 세대’라고 합니다. 이제 스무 살의 삶도 예전보다 훨씬 팍팍한 게 사실입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도 마냥 즐길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취업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다그칩니다. 녀석들도 이런 환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이 녀석들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부모님들께서도 이 녀석들을 마냥 응석받이로 키우시지 않으신 것 같고, 우리 학교도 녀석들을 꽉 붙들어 매어 놓고 억눌러서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학생들보다는 훨씬 더 자율성이 높다는 것이 제 믿음의  근거입니다.

   부모님의 걱정보다는 훨씬 잘 자라준 녀석들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믿고, 어느 샌가 훌쩍 커버린 자식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녀석이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를 보내주시는 부모님이 되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3. 우리 학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우리 반 학부모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OO고’에서 우리 학교로 전근을 와서 이 녀석들이 1학년 때부터 3년 동안 담임을 맡았습니다. 저는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왔다는 설렘과 기쁨도 잠시, 우리 학교를 바라보는 그 때의 입학생(지금의 졸업생)과 학부모님들의 시선이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느꼈습니다.

   당연히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학생들에게 여러 번 물었는데, 그 때마다 ‘소문’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우리 학생들에게 들었던 우리 학교를 둘러싸고 아주 황당한 소문이 많았습니다. 소문이 소문을 낳고, 이것이 어느 사이엔가 사실인 것처럼 우리 학교 밖에서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부모님들도 마찬가지로 걱정을 많이 하셨겠지요? 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전학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씀도 공공연히 하시더군요.

   그 얘기를 처음 듣던 때로부터 이제 3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우리 학교를 1년 이상 다닌 2,3학년 학생들에게 소문과 실제의 관계를 물어보면 ‘소문대로’ 라고 말할 학생은 거의 없으리라고 봅니다. 속내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금 이 녀석들이 우리 학교를 보는 시선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일부 학부모님들께서 ‘우리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면…’ 이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반대로 ‘우리 학교에 보내서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실 분도 많으시다고 확신합니다.

   최종적인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우리 3학년 학생들의 입시 결과도 인근의 다른 학교에 견주어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학교의 교사(校舍)가 좀 낡아서 생활하기에 약간 불편할 뿐이지 다른 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학교 시설 문제도 학부모님들의 노력 덕분에 많이 나아졌습니다. 

   부디 녀석들이 졸업을 하고 나서도 우리 부모님께서 우리 학교를 비방하는 근거 없는 소문에는 단호히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부모님께서 우리 학교와 교직원들과 학생들에게 굳건한 믿음을 보내주셔야, 학교는 학생과 교사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아 고치려고 노력하고, 교직원들은 책임감을 더 느끼고 정성껏 가르치며, 학생들은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우리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변함 없는 후의를 베풀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4. 마무리

  지금껏 ‘이제 마지막’이라며 슬쩍 주제넘은 소리를 여럿 늘어놓은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만 녀석들과 3년 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제 진심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녀석들과 복작거리며 지낸 3년도 좋았지만, 늘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시는 우리 반 학부모님께 학급 소식을 전하며 넋두리를 늘어놓는 이 편지쓰기 시간도 참 좋았습니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우리 학교에서 녀석들과 지내는 게 더욱 행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녀석들이 졸업하는 날, 감사의 인사를 다시 드리겠습니다. 뵐 때까지 몸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8년 1월 22일,  3-4반 담임인 느티나무 드립니다.

 

[뱀발]


  이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편지’가 우리 반 학부모님들이 아닌 분들에게도 공개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마음의 부담이 많았습니다. 제 못난 글 솜씨는 그만두고서라도, 혹시나 이 편지를 읽으시는 다른 분들에게 주제넘은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사실, 이 편지는 지난 1년 동안 우리 반 학부모님들께 드린 편지들과 이어지는 내용이라 우리 학급에서 일어났던 여러 상황과 지금까지 학부모님께 보여드린 저의 말과 행동, 그에 따른 학생들의 일상적인 반응이 덧붙여져야 그 의미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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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8-01-24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나오게 될 교지에 아무 글이나 한 편 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 석달이나 되었는데, 얼마 전까지 주제도 못 잡다가 학부모님께 마지막 편지를 쓰는 것으로 정하고 허겁지겁 썼다. 쓰고보니 부끄럽고...참, 염치 없다는 생각만 든다. 허~ 참!!

마노아 2008-01-24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여정에 방점 하나를 더 찍으셨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고단함과 수고로움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열정과 신뢰를 담아 지켜보시는 느티나무님, 느티나무님과 3년을 같이 보낸 그 학생들이 어쩐지 부러워집니다. 멋진 선생님,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느티나무 2008-01-24 23:19   좋아요 0 | URL
언제나 제 페이퍼의 댓글 첫번째는 마노아님이시군요. 고마워요. 멋진 선생님은 아니구요. 애들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요. 저만 혼자 애달아서 이러고 있지요, 뭐!

BRINY 2008-01-2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 많으셨습니다.

느티나무 2008-01-24 23:1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글샘 2008-01-2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해 한해 마침표(.)를 찍을 때면, 과연 느낌표(!)보다는 물음표(?)가 많이 들죠. 이넘들이 뭐가 될까... 걱정도 되구요. ^^
그래도 마침표를 하나하나 찍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느티나무님같은 듬직한 모습이 미래의 느낌표를 기대하게 하지 않을까요?^^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마치 남 이야기 하듯 ㅎㅎㅎ 저는 올해 담임이 없었다는...)

느티나무 2008-01-25 09:31   좋아요 0 | URL
잘난 게 하나 없는 녀석들..(그래서 더 좋았어요!) 정말 어떻게 살지 걱정이지만. 어떻게든 살아지겠지요, 뭐!하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