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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두 번째 읽은 신갈나무 투쟁기! 나는 책을 정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어떤 책을 한 번 읽고 난 후 책장에 꽂아두고 돌아서면 책의 내용이 캄캄해질 때가 잦다. 거기다가 읽은 지 좀 오래되기라도 했다면 정말 아! 저 책, 읽었지, 하는 것만 남아있지 구체적인 내용은 다 날아가 버리고 없다. (그러면서도 대충 읽은 걸 가지고 아는 티를 팍팍 내고 다닌다.)
“이 책은 철저하게 나무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라는 말이 그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아니 눈으로는 읽었으되, 내 마음에까지 가닿지는 않았나 보다. 이번에 새로 읽으면서 나무의 관점으로 씌어졌다는 걸 충분히 이해했다. (마음으로 느꼈다, 고 쓰고 싶었지만 왠지 너무 나간 거 같아서 이해했다,로 고쳤다.)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려는 과학책에 이처럼 독특한 형식의 글을 쓰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또 글 잘 쓰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더구나 신갈나무의 일생을 소개하는 동안 그때그때, 숲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있어서 식물의 생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본 신갈나무는 일생동안 투쟁을 하며 살아간다. 어미로부터 떨어져 나온 열매가 낙엽더미 속에서 겨우내 잠을 자다가 새봄을 맞아 싹을 틔우고 뿌리를 뻗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서 발버둥 친다. 열매 속에다 떡잎을 만들고 나면 생존을 위해 다시 새잎을 만들고 햇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미 잘 자라서 햇빛을 가리고 있는 주변의 나무보다 높이 줄기를 뽑아 올린다. 이후에도 신갈나무는 쉼 없이 제 몸집을 키우고, 추위와 맞서 싸우며 열매를 만들어 퍼트린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넘어서야 신갈나무는 서서히 우리 숲의 주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은 온 생명체와의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숲에는 처음부터 좋은 이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죽 했으면 신갈나무의 동지(同志)는 여분의 공간이라고까지 했을까? 이것은 신갈나무뿐만이 아니다. 뭇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숙명이다. 자연의 생명체가 투쟁의 삶을 불평해도 소용없다. 자연의 삶은 그 불평마저도 안고 도도한 강물처럼 정해진 운명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 가득한 자연과학도도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영역의 교양을 쌓기 위해 이 책을 골라든 평범한 국어 교사일 뿐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신갈나무의 성장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견주어 보고 배울 게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철저하게 나무의 관점으로 씌어졌다는 이 책이 내 생활을 되짚을 수 있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통해 배운 신갈나무의 치열한 삶은 물론 읽는 사람의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편안하고 평탄하게만 보였던 나무의 일생에도 처음부터 어린 열매에게 주어진 것이란 없고, 나무로 일생을 살면서 공짜로 얻은 것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지금껏 나무처럼 치열하게 내 삶을 붙들고 살아 왔나, 하는 반성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나무의 삶과는 또 다른 삶이다. 나무의 치열한 생존 경쟁과 인간의 삶은 그 근본에서부터 다르다. 나무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야만 결국 ‘더불어숲’을 이룰 수 있다. 신갈나무는 뭇 생명들과 치열하게 투쟁하며 성장하지만, 이는 더 많은 생명체와의 연대와 번영을 위한 길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는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이기적인 마음과 절제되지 않은 경쟁은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갈 뿐이다. 인간의 삶은 치열한 경쟁만으로는 ‘더불어숲’을 이룰 수 없다. 오히려 독립된 개체들이 서로 다른 존재의 차이를 인정하고 연대할 때라야 자연이 투쟁을 통해 이룩한 ‘더불어숲'이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신갈나무의 후덕함과 의연함은 본받되, 그 치열한 생존경쟁의 의미는 가려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신갈나무 투쟁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해 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