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지난 번 모임의 행복한 기억이 오래 간다. 이런 경험이 앞으로 동아리 활동을 해 나가는데 힘을 주지. 마치는 종이 울리고 상황극이 끝났을 때 가방을 챙기고 책상을 정리하는 너희들의 표정이 어땠는지 아니? 진짜 화--ㄴ 했다구. 얼굴이 발그스레 달아올라 있는데, 다들 신났던 게 느껴졌거든. 나의 첫 문자 메시지처럼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어. (쓰고 보니, 혼자만의 착각인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지만, 뭐, 이왕 쓴 거 그대로 밀고 가야지 어쩌겠어.)


   지난번 모임 자료 정리하는 거 잊지 말아라. 생활나누기 대신에 방학 계획 생각해 보기를 했었던데, 다시 한 번 글로 써 두는 거 잊지 말자. 공책이나 파일에 정리해 놓고, 방학이 끝나고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구. 내가 얼마나 내가 세운 계획을 실천하는지 말이야.ㅋ(무섭지?^^;;) 두 번째로는 십시일반, 사이시옷에 대한 한 줄 평가. 저번처럼 이 책을 친한 사람에게 소개한다고 생각하거나, 이 책에 대한 내 느낌을 쓴다고 생각하고 50자 정도로 정리해서 보는 거야. 이렇게 꾸준히 읽은 책에 대해서 평가를 써 두는 습관이 생겨야 책에 대한 내용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다음에 꺼낼 때-이 책에 대해 얘기할 때- 헝클어지지 않게 뽑아낼 수 있거든. 체계적인 사고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많이 될 거야. 다음에 정리할 내용은 숙제로 내줬던 내가 차별 받은 이야기를 사례로 쓰는 거야. 이거는 여러 가지 사례를 쭉 나열하기 보다는 자기가 생각할 때 이건 진짜 ‘차별이다(또는 인권 침해다)’ 라고 생각하는 사례를 한 두 개 정도를 아주 자세하게 쓰는 게 좋아. 그러면서 이런 차별은 왜 생겨날까, 어떻게 하면 이런 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뻗어나가면 더욱 좋겠지. 음, 한 편을 글을 써보는 연습이라고 해야겠다. 고등학생 정도라면, 한 페이지 정도를 채울 정도의 생각의 넓이와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연습하지 않으면 이런 능력은 절대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다음으로 세 모둠이 연극을 했는데, 각자 연극했던 내용의 대략의 줄거리 정도는 정리해 두는 게 필요하고, 모둠의 대표 학생은 줄거리와 함께 연극의 의도까지도 함께 정리해 두면 좋겠다. 특히나 모둠별 토의나 상황극은 말로 했던 것이니 지금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고 말테니까 정리하는 게 꼭 필요하다. 똑같은 잔소리지만, 지금, 당장, 정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정리하는 게 더욱 힘들어진다. 우리가 동아리를 하는 목적을 깊이 헤아리고 자기 생각이나 말을 글로 옮기는 실천을 꾸준히 해야 성과가 있을 것이다.
 

   이번 모임은 기말고사의 앞두고 있어서 날짜를 좀 당기려고 한다. 계획대로라면 24일인데, 다들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20일로 옮겼으면 한다. 20일로 옮겨도 영어 동아리랑 겹치는 문제, 금요일엔 우리가 동아리실을 쓸 수 없는 문제가 있지만, 그건 내가 풀도록 노력해 볼 게. 별다르게 반대 의견이 없으면 20일에 모이도록 하자.

   우리가 읽을 책은, 아버지의 바다, 라는 포토에세이이다. 사진에다가 작가의 정서를 표현한 짧은 글이 덧붙여진 형태의 책이지. 아마 준비 시간이 짧아서 두꺼운 책을 읽기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 골랐어. 그렇지만 그 감동은 오래 가리라고 믿어. 대신 숙제가 만만치 않아^^ 숙제는 ‘쉘 위 인터뷰’ 라는 주제로 가족 중의 한 인물과 인터뷰한 글을 정리해 오는 거야. 사진기가 있으면 인터뷰이(인터뷰의 대상자)의 모습도 꼭 담아 오고. 이 숙제가 어려운 사람은 참 어려울 건데, 이해하기 어려운(이해하지 못 했던) 가족의 모습을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해 보자는 게 이 숙제의 의도야. 이 숙제로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고, 가족으로서 그들의 삶에 따뜻한 공감의 눈길을 보낼 수 있게 되면 좋겠어. 뒷장에 붙어 있는 참고자료를 잘 읽어 보는 게 좋은 인터뷰 글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아버지의 바다,를 통해 생각이 한 뼘쯤 자랐으면 좋겠다.

눈앞에 성큼 다가온 여름 속에서 느티나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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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초로 최고 권력에 오른, 아나키스트가 아닐까, 한다.

- 미국 쇠고기가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된다 하고,

- 검역 주권은 내팽개치고,

- 공교육을 부정하는 학교 자율화(?)-아니, 학교 말살 정책 추진하고.

- 공공의료, 수도 시장에 다 팔아치우겠다고 하고,

- 대운하도 추진하다 비판만 거세지니 민간이 알아서 하는 거라 하고,

하여튼 자기가, 정부가, 국가가 해야할 일을 모른다고, 책임 없다고 발뺌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국가의 존재와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이 어떻게 최고권력자는 되었을까?ㅎ

우리 국민의 비극이다.

 

<오늘 한겨레신문에 난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에 난 글의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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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춥스 2008-08-16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대학교 등록금이 비싸면... 장학금 타면 되죠^^
 

땅의 사람들 9

- 사랑

 

월정사 부처님처럼

마음을 비우고 잠드는 밤에

마음 저켠 벌판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여리게 혹은 강하게 비가 내렸습니다.

눈물보다 투명한 그 빗방울들은

삽시간에 하늘의 절반을 적시고

우수수 우수수수수

부처님 발목 밑에 내려와

잠들지 못하는 새벽 풀잎 옆에

오랑캐꽃으로 피었습니다

은방울꽃으로 피었습니다

초롱꽃으로 피었습니다

바늘꽃, 두루미꽃으로 피었습니다

사랑꽃, 이슬꽃으로 피었습니다

아......

신록으로 꽉찬 오월 언덕에서

햇빛 묻은 미루나무 몇 그루

아름다운 이별처럼 손 흔들고 있었습니다

고정희, 지리산의 봄, 창작과비평사, 1994(재판)

   촛불문화제에 다녀온 밤에 시집을 펼쳤다.

   어제 저녁엔 무시로 비가 쏟아진 거리에 우산 하나 달랑 들고 문화제 앞자리에 서서 버티다가 비옷을 사 입을 생각으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가 눈에 띈 큰 서점 안으로 들어가 어슬렁거렸다. 비가 퍼붓는 거리는 한기 때문에 소름을 돋게 하더니, 서점 안은 온기가 있어 밖으로 나가기가 더욱 싫었다. 시집이 꽂힌 서가대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내리는 빗줄기가 그치는가 싶어서 밖으로 나오니 참가자들은 거리 행진을 시작했다. 나도 얼른 합류해서 경찰청까지 걸었다. 그곳에서 만났던 일행들은 보이지 않고, 역시 혼자 오신 김OO 선생님을 만나 말동무도 되고 끊임없이 구호도 외쳤다. 경찰청이 있는 연산동까지는 왜 그렇게 멀었던지... 남들 다 하는 구호도 나만 안 할 수 없고. 지금도 목이 살짝 아프다.

   경찰청 앞에서 이어진 정리 집회. 자유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말도 조리 있게 잘 하고, 재치가 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동맹 휴업을 결의한 부산지역 대학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많이 참가했었다. 생기발랄한 청년들을 보니 든든했다. 하지만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1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집에 들어오니 11시가 다 되었다. 그 때부터 이것저것 많이도 먹었다. 밤이 깊어 가는 시간, 습관처럼 책을 펼쳤다. 서점에서 기웃거린 시집 때문인지 시집을 펼친다. 고정희의 '지리산의 봄'.

   밤이 깊도록 시집을 읽는다. 문화제에 다녀온 날이다. 밤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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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 서면, 2008.05.31

   5월 24일 서울 교사대회에 갔다온 이후로 일주일이 흘렀다.  매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면서도 아직 한 번도 못 나갔었다. 지난 토요일은 오전에 학교 일과가 있었고, 오후에는 공부방 아이들과 책읽기를 하는 날이다. 수업이 끝나면 보통 6시 반 정도, 거기서 아이들과 저녁을 챙겨먹고 얘기 좀 하면 8시를 훌쩍 넘긴다. 또 친한 선생님이라도 계시면 얘기는 더 길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토요일은 수녀님들도 미사보러 가신다고 일찍 나섰고, 저녁은 비빔국수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던지라 금방 먹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름값도 기름값이지만, 오늘은 서면에 꼭 가 보리라 생각하고 학교에서 나올 때 차도 타고 오지 않았다. 지금껏 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기분으로 서면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좀 많이 온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지하상가에도 문화제와 상관 없는 사람들로 그득하다.

   조급한 마음에 얼른 쥬디스 태화 옆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우와, 앉아 있는 사람들의 끝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공목길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놓고 앉은 사람들이 신기하였다. 맨 뒷자리까지 찾아서 앉았다. 뒤로 가는 동안 아는 사람이 있을까 기웃거리다가 우리 과 96학번 후배를 만나 같이 앉았다.

   줄이 얼마나 길었던지 문화제 행사를 하고 있는 맨앞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맨 뒤에 앉은 내 뒤로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니까 사람들로 꽉 찼다. 그래서 서면로터리 앞의 8차선 도로 입구에서부터 서면중학교 앞에 있는 도로까지 시민들이 모두 길바닥에 앉았다. (사실, 문화제를 하고 있는 맨앞이 보이기는 커녕,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아서 구호 한 번 외쳐보지도 못했다.)

   대충 집회가 정리되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일어나 자기 주변을 정리하더니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 도로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졸지에 선봉대에 서게 되었다.) 서면 CGV입구까지 2차선 도로를 점거하며 갔다가 차가 안 다니는 옆 골목으로 따라온 시위대와 합류하면서 중심도로(8차선)로 나왔을 땐 4차선을 점거하면서 행진했다.

   부/산/시/민/함/께/해/요/와 이/명/박/은/물/러/나/라/, 고/시/철/회/협/상/무/효가 핵심 구호였는데, 구경하는 시민들의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정말 가족들이 다 나온 경우도 많고, 경쾌, 상쾌, 유쾌한 문화제였다. 차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한참 걷고 있는데, 집에서 연락이 왔다. 진복이가 안 자고 놀고 있는데, 힘들다고 한다. 어쩔까 하다가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

   이후 시위대 선봉이 동보서적 앞에 이르러 8차선 도로를 점거하기 위해 뛰어들었고 단숨에 성공(?)했다. 그러자 경찰도 경고방송을 하기 시작했고, 시위대가 우회해서 서면로터리를 점령할 것을 걱정했는지 전경들이 로터리로 우회하는 골목을 막기 시작했다. 이후 지리한 대치가 계속 되었다.

   나는 인도로 나와 지하철을 타러 내려왔다. 도로 위의 긴박함과는 상관 없이 토요일밤의 지하상가는 젊은 사람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지하철 거리공연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만약에 오늘 집회에서 경찰과 충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 가방에 챙겨넣은 종이컵과 촛불이 서럽다. 지하철을 타니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도 최소한의 빚은 갚은 날이라는 생각이다. 제대로 갚으려면 아직 많이 멀었다. 이번 주에 올 수 있는 날짜를 꼽아본다. 음, 며칠은 나올 수 있겠다 싶은데... 세상 일은 참 알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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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6-0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동보서적 앞 8차선 도로를 차지하고 새벽 2시까지 집회를 하고 간간이 충돌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와서 아프리카를 보는데, 5.31-6.1 진압의 비극이 나와서 밤새 울었습니다. 현충일날엔 서울에라도 한번 올라갈까 하고 있습니다.

느티나무 2008-06-03 11:06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휴일에 데모하러 서울 가려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사회니 정말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부산은 '청와대'가 없어서 긴장감이 확실히 덜 하더라구요. 노래도, 부산 갈매기 부르던걸요?ㅎ
방금 교무보조 선생님이 저보고, '샘 어제 감만 부두에 가셨어요?'라네요. 이거 학교에서 완전히 찍혔네^^::(제 대답이 저 겁 많고 소심해서 그런데 못 가요, 라고 했어요. 얼마 전에 교실에서도 '샘은 왜 촛불집회 안 가요?'라는 소리 들었을 때도 똑같은 대답을 해 줬는데...그래, 말하면서도 영 기분이 찜찜한 게...어째야 할 지 모르겠더군요. 어떻게 대답해 주는 게 좋을까요?)
 

그대 왔는가 - <전교조 창립 19주년 전국교사대회에 부쳐>

그대 왔는가?
저 서울 변두리 어디에서 여기 여의도까지
그대 왔는가?
저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경기도
거기 어디 한 곳 아직은 절망할 수 없는
고민의 교실
그대 희망이 되어 아이들과 만나야 할
그대 빛나는 통찰이 되어 아이들 손을 잡아 주어야 할
그러나, 너무도 울화 끓어 오르는
절망의 미래만이 서성거리는
그대 존재의 비감한 현장
그 어둑한 교실 문을 나서서
그 허위의 교문을 나서서 오늘 여기까지
그대 왔는가?
그대 왔는가?


그대 왔는가, 여기 여의도
아, 명랑한 신자본주의자들의 국회가 떠 있는 섬
돈이 돈을 먹고 살찌거나 쓰러지는 거래소
그 자본의 블랙홀의, 섬
생산하라, 소비하라
단 두 마디, 인간을 위한 위험한 구호가 올해도
사쿠라처럼 찬란하게 피고 지나간
이 통제불능의 섬에
그대 왔는가?


손 잡아 보세
손 잡아 보세
왜 이리도 우리 나약하기만 하지
왜 이리도 우리들 교육은 흔들리기만 하는지
모든 인간과 모오든 가치와 모오든 이상이 냉혹한 시장으로 끌려나가고
여기 변방의 우리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너무나 무력하기만 한 손들
다시 잡에 보세
손 잡아 보세
그대 왔는가?
교육보다 막강한 것들이 교육을 흔들고
교실보다 거대한 것들이 교실을 흔들고
교사보다 권위 있는 것들이 교사를 종속하려 할 때
인간의 세상에 인간 아닌, 사악한 그 무엇이 인간의 머리 위
쇠그물로 덮치려 할 때
그 떨리는 손을 잡으려고
그대 왔는가?
나의 미래가 아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오늘과 다른 내일이 아닌, 작금의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를 위해
희망과, 그 무엇보다 튼튼한 희망의 신념을 그대 교실로 다시 가져가기 위해
그대
여기 왔는가?


아이들의 눈빛으로 그대 왔는가?
아이들의 고통으로 그대 왔는가?
아이들의 절규로


여기 여의도까지 왔는가?
서울까지 왔는가?
그대


2008.5.24 여의도에서 정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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