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운동장 자전거 문제

2010년 3월 24일, 느티나무

주중에 한 두 번, 주말과 휴일에는 거의 매주 구민운동장을 이용하는 주민입니다.
주변에 운동장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봄이 되니까 더욱 더 운동장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자전거입니다.

겨울에는 뜸하더니 부쩍 자전거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자전거가 좀 문제가 많습니다.

대여하는 곳에서는 분명 " 주의사항"을 일러준다고 하는데, 전혀 지켜지지 않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안내방송을 한다고는 하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바로 자전거가 아무 곳으로나 다닌다는 것인데요.
느긋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안쪽의 흙 트랙으로 마구 질주하는 자전거가 많습니다.
가족들과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었던 트랙이 이제는 뒤에 뭐가 오나 안 오나 싶어서 자꾸 뒤를 살피고 돌아보게 됩니다.

지난 주말에도 애기(5살)랑 운동장에 산책을 나갔는데, 흙 트랙을 마음껏 달리며 좋아하는 녀석이
뒤에서 오는 자전거에 약간 부딪혀서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었지만, 애기의
손가락이 자전거 바퀴살에 끼일 뻔해서 얼마나 놀랬는지...(만약에 애기 손가락에 문제가 있었다면 자전거를 방치한 관리소에도 어떻게든 책임을 물었을 겁니다.)

이때부터는 산책을 하는 게 아니라 4차선 도로를 조심조심 걷는 거랑 똑같았습니다. 뒤가 불안해서요. (제가 구민운동장에 왜 나온 건지 모르겠더군요. 느긋하게 산책하러 왔는데...)

이때부터 제가 흙트랙으로 들어오는 자전거는 모두 바깥쪽 보도블럭트랙으로 쫓아내려고 했는데요. 그 때마다 자전거 이용자는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멀뚱히 쳐다봤습니다.
아마도 주의사항 같은 건 있는지도 몰랐다는 거겠죠?

애기가 걸어서 운동기구 있는 곳 근처에 왔을 때 흙트랙에서 보도블럭 트랙을 건너서 체육시설장으로 가야 하는데, 이건 자전거가 많아서 '시내 도로'를 건너는 거랑 똑같더군요.
보도블럭 트랙을 질주하는 자전거 때문에요.

지금 구민운동장은 분명, 애기가 있는 가족들이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혹시나 다칠까 싶어서 조심해야 하는 곳으로 변해버렸죠.
이런 경험이 비단 저 뿐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그래서 구청에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자전거 대여소가 꼭 있어야 할까요?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대여소가 필요하다면 자전거 주행도로[운동장 뒷편 강가쪽에 일직선 도로-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러면 자전거 타는 곳과 운동장 사용자가 분리될 수 있습니다.
3. 1,2번이 최선이지만 그것도 안 된다면, 흙트랙 안으로 자전거가 진입할 수 없도록 시설물 설치를 요구합니다.(안내방송이나 계도만으로 때우려고 하면 절대 안 됩니다.)

* 자전거가 들어오면서 너무 번잡한 건 이해할 수 있는데,(저만 이용하는 건 아니니까요.) 자전거 때문에 다른 이용자가 위험해지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빠른 해결책을 바랍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구민운동장 자전거 문제 두 번째

2010년3월 25일 /느티나무

" 아... 네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라고 답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름은 고심해서 쓴 민원인의 글에... "시간이 가면 해결되니 불편해도 참아라"가 답으로 올라왔네요. 솔직히 답 읽으면서 허탈합니다. 관공서의 답이란 게 매번 이런 식이죠. 안내방송 강화하겠다는 답을 얻으려면 굳이 구청에 이런 긴 글 쓸 필요 없잖아요. 그 때 관리소에 전화하면 되는 거죠...

사업이 늦어지면 원래의 용도에 맞을 때까지 다른 일정(자전거 대여 사업)도 미뤄야 하는 건 아닌가요? 이용자의 불편이 아니라 이용할 때 위험하다는데 ‘그냥 참고 다녀라’는 답은 쫌 아닌 듯... 앞으로 공사 일정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봐야겠네요. 게다가 전용도로가 완공되기 전까지, 모든 자전거 이용자가 이용수칙을 잘 지켜서 아무런 문제없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저도 이제부턴 마음 졸이는 일 없이 운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구민운동장 자전거 문제 세 번째

2010년 3월 29일/ 느티나무

안녕하십니까? 북구청 관계자 여러분! 저는 구민운동장을 이용하는 북구 주민입니다. 별 인연도 없는 북구청 홈페이지에 벌써 세 번째 글을 남기네요.(저도 참 뭐 하려고 이러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담당공무원에게 묻겠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올린 민원을 완료 처리해 놓으셨던데... 정말 완료된 거 맞습니까?
(저의 두 번째 글은 하나마나한 답변 내용과 태도에 대한 실망감을 적은 글이었는데, 아직도 처리중으로 뜨고 있네요.)

저는 지난 일요일(28일) 오후 2시 50분에 구민운동장에 도착했습니다. 불쾌해서 운동장을 떠난 게 3시 50분이었는데, 자전거에 대한 안내방송은 들어보지도 못 했습니다.(아니, 1시간 동안 라디오만 계속 나왔죠. 어떤 안내방송도 없었거든요. 입간판 세우는데 시간 걸리는 거 압니다. 그럼 방송은요?)

지난 주말과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더군요. 흙트랙을 질주하는 초딩/청소년, 아주머니, 아이와 아저씨, 다정한 연인들의 자전거까지 정말 훌륭한 볼거리였습니다. 마침 가져간 디카에 문제가 생겨서 생생한 그 장면을 이곳에 보여드리지 못하는 게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한 몇 대 정도가 있었을까요? 제가 트랙을 두 바퀴 도는 동안 바깥쪽 트랙으로 쫓아낸 자전거는 한 20대 정도??[뭐 누구나 가끔 과장할 때도 있지만, 이런 걸로 뻥치고 싶지 않습니다. 다섯 살 아들을 두고 맹세하죠!!]

그 와중에 아들 녀석 흙트랙을 좋다고 갈지자로 뛰다가 뒤에 오던 초보 자전거(중년의 아주머니)와 또 부딪히기 일보직전까지 갔습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좀 더 있다오려던 걸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요.

제가 유독 까탈스러운 걸까요? 서둘러 걷는 저희들 뒤에서 나직하게 들려오는 할머니 한 분의 목소리 : 자전거 때문에 운동은 망쳤다. 당최 불안해서 다닐 수가 있겠나?

설마 책상머리에 앉아서 글로 답하시고, 확인 안 하시는 건 아니시죠?

그럼 구민운동장에는 이번 주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갈게요.  

이번에는 꼭 제대로 된 사진기 들고 갈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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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0-03-2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청에 근무하시는 알라디너도 있겠지만, 민원인에 대한 저런 식의 답변은 사람을 정말 짜증나게 한다.ㅠㅠ 까칠하지 않은 사람도 점점 까칠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나? 아니면 내가 무척 예민한 사람인가? 아무튼 바쁜 일도 많은데, 저 문제에 또 걸려서 한 동안 주목하고 있다.ㅋㅋ[일 좀 해 달라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하고 싶은 일도 다 못해서 죽겠는데...ㅠㅠ]
 

2010년 1월 30일-여행 아홉째날(포카라)

   모처럼 숙소에서 달게 잤다. 집도 좋을 뿐 아니라 침대 바닥에 전기 장판까지 깔려 있어서 침낭이 필요 없는 잠자리가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더구나 그 전에 젊은 주인 내외분과의 즐거운 대화. 서로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탐색하느라 조심스러웠지만 그래도 대화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서 괜찮았다.  

   다음 날은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었다. 사모님이 준비해 주신 아침은 이곳이 네팔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우리 집에서 먹는 거랑 똑같다. 아침을 먹고 다시, 휴식! 오늘은 정말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리라 다짐을 해 본다.(이런 것도 다짐을 해야 하나?) 페와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것은 오후가 좋다는 주인장의 정보로 오전은 그냥 동네만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배낭을 메지 않은 어깨가 가볍고 무릎은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하다. 잠시 정리를 하다가 레이크 사이드로 나왔다. 여기는 완전 봄 날씨! 호수를 따라 온갖 가게들이 즐비한데도, 우리네 도심 같은 번잡함이 없다. 이상하게 도시는 평화롭고 고요하다. 낮술은 페와 호수의 입구에 있기 때문에 호수의 끝까지 가는 길이 제법 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경이롭다.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골목도 찬찬히 살피다가 기념품을 사기로 하고 편의점을 찾았다. 뭘 사 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나름, 선물하기에 좋다는 '히말라야 립 밤'을 10개나 샀다. 그런데 웃긴 건 인도에서 만든  립 밤의 정가는 20Rs. 그게 네팔로 넘어와서 가게에 팔리는 건 45Rs. 여기 사람들은 그런 표시가 같이 붙어있어도 별 문제가 없단다. 립 밤을 사고 간식을 사 먹고, 호숫가에도 갔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점심을 안 먹기로 하고 숙소에서 뒹굴고 있는데, 숙소에 불이 안 켜지니까 그냥 심심하다. 할 일 없는 두 남자, 그냥 낮잠이나 자다가 오후에 일어나 다시 레이크사이드로 산책. 곳곳의 야외카페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 천국이다. 의주샘이 갑자기, 한국인들에게 모모로 유명한 '소비따 네'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소비따 네'에 가서 김치전과 김치 모모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배도 부르고 이젠 슬슬 페와 호수로 뱃놀이를 하러 갈 시간! 

   페와 호수의 평화로움은 포카라를 상징한다. 게다가 호수 주변에 북적거리는 인파는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나는 포카라의 다른 면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무튼 인파에 섞여 호수 가운데 왕실 사원이 있는 작은 섬까지 갔다 왔다. 오는 길에 거리의 수 많은 노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실제로 과일도 사 먹었다. 여길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랴! 싶어서 포카라의 풍경 하나하나를 마음에 담으려고 애썼다.

   저녁은 낮술에서 먹었다. 낮술도 어제와는 달리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한 중간에 앉아서 오늘도 '고기'로 저녁을 먹는다. 게다가 주인장과 그곳 지인들과 어울려서 맥주 한 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는데, 이야기의 주제는 항상 '해외여행'이다. 우리가 내일 타이를 경유한다는 걸 알고는 자연스럽게 타이 여행이 주제가 되어 버렸다.(난 경험이 없으니 할 말이 별로 없다.) 식당이 몹시 바쁜 것 같아서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드디어 돌아가는 날이다. 다시 한 번 짐을 잘 챙겼나 살피고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퇴근하고 돌아온 주인 내외가 우리를 부른다.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깊은 밤에야 이야기는 끝나는 내일은 사랑콧에 올랐다가 공항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내일밤은 비행기안에서 보낼 것이고 아침이 되면 그리운 우리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난 여행이 잘 안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떠나는 그 순간에 바로 집이 그리워지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곳 포카라에 다시 올 수 있을 것만 같다. 고요함과 번잡함이 공존하된 평화가 있는 곳, 포카라는 참 매력적인 곳이다. 아, 히말라야야 다시  말해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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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31일-여행 열째날(포카라-사랑콧-공항-카투만두-방콕-부산)


    돌아오는 날 아침 6시. 사랑콧으로 출발했다. 사랑콧은 포카라 근교에 있는 언덕 같은 곳으로 이곳에 서면, 아침 햇빛을 받은 마차푸차레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의주샘과 나도 제법 넉넉한 시간에 도착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카메라를 들고, 저 아득한 마차푸차레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차푸차레는 '히말라야'(신들의 거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득하기만 하다.



   해는 마차푸차레의 반대편에서 떠오른다. 그래서 마차푸차레 뒤에서 장엄한 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에서 조금씩 해가 나면 마차푸차레의 꼭대기부터 서서히 밝아지면서 붉은 빛이 감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밝은 빛은 아래로 내려가고 붉은 기운도 함께 내려가서 어느 순간이 되어 해가 쑥 올라오면 완전히 밝다. 그러나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봤을 때처럼 산의 깊은 맛이 있는 건 아니어서 조금 그랬다.



   여기는 포카라공항. 9시 10분에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가 아무런 설명 없이 오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제법 큰 회사인 예티항공사의 비행기는 이미 여러 대 갔지만, 우리가 예약한 '붓다에어'는 감감 무소식!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더구나 우리는 오후 1시 40분, 카투만두에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한다. 불안감이 거의 폭발하기 직전에야 활주로에 내려서는 비행기가 창 밖으로 보였다.  

   비행기를 맨 먼저 타서 뒷자리를 잡은 다음 포카라 공항의 전경을 찍는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포카라 공항. 아마 이 공항은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찾아와도 지금 모습 그대로일 것만 같다. 반가울텐가? 씁씁할텐가? 묘한 기분일 것 같다.


 

   16인승 경비행기다. 우리가 오갈 때마다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비행기가 작으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이렇게 작은 비행기가 네팔 전역을 넘나든다니, 참, 인간은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히말라야 산맥을 보기 위해서 떠날 때는 당연히 왼쪽에 앉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는 맨 뒷자석에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가 약간 덜컹거리면서 출발을 한다. 가볍게 이륙했다. 순식간에 고도를 높여, 창 밖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점점 작아진다.



   점점 작아지는 것들 위로 거대한 벽이  솟아 있다. 비행기는 어느새 구름 위로 올라와서 심심한 하늘을 날고 있는데. 저 멀리 구름 위에 보이는 건 또 다른 구름이 아니라 바로 신들의 거처! 정말 저곳에 신들이 산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구름이 마치 고요한 호수 같기도 한데, 아무튼 저곳은  적어도 바다로부터 4000미터는 높은 곳이라는 사실!(물론 산의 정상은 그보다 훨씬 높지만...)


  

   비행기는 엄청난 속도로 달릴 테지만 거대한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체감하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계속 셔터를 누르지만 사진 속 풍경은 여전히 거대한 산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던 비행기가 갑자기 바로 선회 비행을 한다. 카투만두 공항에 가까워졌는데, 아마도 공항에 착륙하려는 비행기가 많나 보다. 그래서 같은 곳을 빙빙 도는데, 연료가 다 떨어지면 어쩌지, 라는 불안함이 다시 솟는다. 카투만두까지는 2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인데, 선회 비행을 서너 번 하느라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카투만두 공항에서 티켓을 받고 수속을 밟는데 몹시 삼엄하다. 군인들이 짐수색을 하고, 그것도 짐수색을 여러 번 반복한다. 겨우 탑승장 입구까지 왔으나 출발은 또 지연. 1시 40분에 출발한다던 타이항공은 2시 30분이 넘어서야 출발! 이제, 네팔을 뜬다. 

   마음이 참 미묘하다. 안도감도 들고 아쉬움도 드는 이 미묘함.  다시는 아득하게 느껴지는 히말라야의 산맥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편리한 생활에 익숙한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이곳을 떠나 일상으로의 복귀가 임박했다. 진복이도 곧 만날테고! 비행기에선 계속 이어지는 간식, 식사... 그리고 가수면 상태. 이어서 수안나 폼 공항에 도착했다.  

   수안나 폼 공항에 내려서 입국수속을 밟고 우리는 과감하게 택시를 탔다. 환승 대기 시간은 겨우 6시간. 입국 수속하는데 30분을 허비하고, 적어도 2시간 전에는 도착해서 탑승 수속을 밟아야 하니까 정말 빠듯하다. 택시로 거의 한 시간을 달려 타이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기로 유명한 곳인 카우산 로드에 도착해서, 곳곳에 널린 노점에서 이것 저것 맛보기도 하고, 그 유명한 타이 맛사지를 받았다. (타이 맛사지는 정말 환상적이다.)

   다시 돌아온 수안나 폼 공항. 입국 수속을 하려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정말 많다. 비행기는 밤 12시에 출발하는데 탑승 수속을 끝내고 나니 좀 여유가 있다. 공항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환전하고 남은 태국돈 밧을 쓸 일이 없는지 살피다가 결국 햄버거로 저녁을 먹는 것으로 결정! 진짜 몇 년만에 먹어보는 햄버거인데, 맛은 의외로 괜찮다. 그래서 번개 같이 스치고 가는 생각 하나! -어쩌면 내가 '아니라고' 배척했던 삶에도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니, 어떤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에 두려움이 생긴다. 

   비행기를 타니 마지막 휴가를 즐기고 돌아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타이항공이지만 타이 사람은 다 합쳐도 10명이 채 안 될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이 많다. 비행기가 출발하는 시간은  벌써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2시에 가깝다. 여전히 승무원들은 몹시 바쁘다. 스튜어디스도 참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착륙을 알리는 안내 방송에 깼다.  

   드디어 김해공항 도착! 짐을 찾는 동안 안내방송에도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이 상황이 좋다. 이래서 집이 좋은가 보다. 집으로 가는 내내 포카라를 생각해 본다. 며칠 있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곳도 그립다. 아마도 언젠가는 그곳에 다시 갈 날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슬금슬금! 다음번엔 가족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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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9일-여행 여덟째날(지누단다-뉴브릿지-사울리 바자르-비레탄티-포카라)  

   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가볍게 아침을 맞았다. 날씨는 여전히 청명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컨디션도 좋다. 오늘 저녁은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을테고, 적어도 오돌오돌 떨면서 잠들지는 않겠지. 

   오늘 아침도 가볍게 감자튀김으로 먹었다.(별로 먹히지 않았다.) 일행들의 컨디션도 다들 나쁘지 않은데, 계속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은영 씨가 걱정이다. 그래도 은영 씨의 표정은 여전히 씩씩해서 아침을 먹는 동안에도 분위기가 좋다. 오늘 출발할 때 우리 팀은 모두 여섯 명이 되었다. 어제 밤에 어울리게 된 아버지와 아들(초3학년) 팀이 새로 합류했기 때문이다.(이 특이한 팀 때문에 약간 신경이 쓰였다.) 

   아무튼 지누의 나마스떼 호텔에서 출발할 때 뉴 브릿지로 내려가는 길을 내려다 보니까 마음이 흐뭇하다. 햇살은 따뜻하고 길은 계속 내리막길에다가 이제 산의 아래쪽은 서서히 초록색의 물결이다. 9시가 좀 넘어서 출발이다. 올라올 때 약간의 탈진 증세로 힘들었던 길이었는데, 내리막길은 문제 없다. 뉴브릿지까지는 거침 없이 달리다시피 왔다.  

   아버지와 아들 팀이 제일 앞서 가고 그 다음엔 내가 뒤에, 의주샘, 인도에서 넘어온 아가씨, 은영 씨... 이런 순서인데 걷는 동안은 서로 간격을 두고 띄엄 띄엄 걷기 때문에 서로 말이 없다. 일행들은 뉴브릿지에서 잠시 만나 물만 먹고 다시 출발. 다음 목적지는 사울리 바자르이고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사울리 바자르로 가는 길은 평탄한 들길을 걷는 것과 같다. 중간에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

   사울리 바자르를 지나 첫날 머물렀던 숙소에 드디어 도착했다. 사람 좋은 롯지 주인도 여전히 웃으면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차례차례 내려온 일행들과 의논해서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벌써 시간은 2시를 넘겼다. 포카라까지 가는 로컬 버스가 나야폴에서 4시에 출발한다고 하니, 로컬 버스를 타려는 팀은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그 때, 의주샘이 은영 씨에게 던진 한 마디, "내 점퍼는?" 은영 씨 "-----" 이 때부터 30분 정도는 모두가 초긴장 상태. 사연은 이랬다.  

   의욕은 좋지만, 역시나 무릎이 문제인 은영 씨를 위해 의주샘이 은영샘의 배낭을 받아들었고, 대신 의주샘의 점퍼를 은영 씨에게 맡겼는데, 은영 씨가 사울리 바자르-우리가 점심을 먹은 곳은 바자르에서 10분 정도 내려온 곳에 있었다-에서 잠시 쉴 때 그 점퍼를 가게의 의자에 그냥 걸어두고 온 것이었다. 서둘러 비스누가 뛰어갔고, 나머지 일행들은 '있겠지, 있을 거야' 하면서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점퍼 안주머니에 의주샘의 '여권'이랑 지갑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속이 타서 천천히 바자르로 올라가고 있는데, 저 쪽에서 환하게 웃으며 내려오는 비스누! 점퍼를 흔들어 보인다. 나도 서둘러 되돌아 와서 비스누가 점퍼를 들고 온다고 말하니 그제야 모두들 표정이 환해진다. 이제는 정말 나야폴에 도착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사울리 바자르 아래쪽은 길이 꽤 넓다.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이다.(물론 도로 사정은 말이 아니지만) 개울물이 흐르는 곳은 시멘트로 통로를 만들어 둔 곳도 있다. 비스누가 말하길, 나야폴에서 이곳을 거쳐 고라파니까지 차가 다닐 수 있도록 공사를 시작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공사가 끝날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고 한다.(공사를 했던 곳도 벌써 유실된 것이 보였다.)  

   아마도 이 길이 정비가 된다면 ABC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일 것이다. 늘 그렇듯, 세상의 모든 변화에는 명암이 있겠지만 너무나 뻔히 보이는 '암'에도 우리는 너무 무기력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시가 다 돼서야 비레탄티에 도착. 체크포인트에서 다시 그린 카드를 꺼내서 검사를 받았다. 이제 모디콜라로 가는 계곡물은 아주 넓어지고 계곡을 걸친 다리의 길이도 제법 길다. 이곳은 우리로 치면 유명 관광지에 있는 집단시설지구쯤 될 것이다. 아이들도 우리를 쫓아와서 "sweet"라고 소리치면서 손을 내민다. 웃으면서 "no" 라고 말하면서도 서글프다.(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 중에 하나가, "네팔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나?"였다.) 

   우리는 나야폴까지 30분을 더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비스누가 여기서 택시를 타자고 한다. 나는 앞에 있는 길을 보고 이 길을 택시로 간단 말이야? 어, 올 때 사람 하나 겨우 건널 수 있는 다리를 건너왔는데... 그 다리는 어떻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택시가 들어와 있으니, 어떻게든 건너가겠지 싶어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흥정은 비스누가 했고, 택시 두 대에 여섯 명이 나눠서 탔다.  

   와, 그 울퉁불퉁한 길을 낡은 택시가 잘도 달렸다. 택시는 우리가 처음에 건너온 다리의 상류 쪽으로 난 길을 올라가서 얕은 개울물이 흐르는 지점을 골라서 그대로 건너버렸다. 우리가 탄 택시가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 마침 말떼들이 섞이게 되었는데도 젊은 택시기사는 거침없이 질주한다.  

   포카라까지의 50분간의 질주. 도로는 여전히 엉망이라 우리가 탄 택시가 속도를 내서 앞에 가던 차를 좇으면 먼지가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일어났다. 도로 곳곳에는 고장난 차들이 차를 고치느라 길가에 대놓고 있었다. 나는 우리 차가 가는 동안 무사하기만을 비는데, 비스누 또래인 기사와 비스누는 택시에 인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흥겹다. 

   여섯시쯤 포카라의 낮술에 도착했다. 다른 일행들과는 헤어지고, 오늘부터 숙소를 따로 잡은 은영 씨와 포터 비스누를 위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우리는 일단 낮술에 맡긴 짐을 찾고 낮술 사장님의 집으로 짐을 옮긴 다음, 다시 낮술 입구에서 은영 씨와 비스누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서 우리 넷은 포카라에서는 가장 유명한 한국음식점 서울 뚝배기로 찾아갔다. 

   서울 뚝배기에서는 한국말도 잘 통하고 시설도 비교적 깔끔했다.(롯지에 비해서는 호텔급이다.)삼겹살 정식을 주문하고 귀동냥을 하니, 어제 한국 뉴스에 '포카라에 여행 온 두 남자 실종'이라는  기사가 났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해프닝으로 밝혀졌지만... 집에서 걱정하고 있겠다, 싶어서 의주샘 전화기를 빌려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뉴스 보고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 동안 음식이 나왔다. 얼마만에 보는 삼겹살이냐? 음식이 꽤 훌륭하다. 상추는 좀 억세긴 하지만 먹을만하고 고기, 고추나 마늘, 쌈장도 한국에서 먹는 것이랑 똑같다. 무엇보다도 밥이 날리지 않는 게 젤 맘에 든다. 의주샘이나 은영 씨가 주문한 음식도 훌륭했다. 비스누는 뭘 시킬지 몰라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길래, '닭바베큐'같은 걸 주문했다. 다행히 비스누도 잘 먹었다. 

   식사후에 비스누에게 천 루피를 팁으로 줬다(10달러가 훨씬 넘으니 여기서는 제법 큰 돈이다).비스누가 고맙다고 했다. 닭바베큐의 가격을 보더니 좀 놀라면서 망설였다. 가격이 450루피였으니 그가 태어나서 가장 비싼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물론 비스누가 잘 먹긴 했지만, 나는 그 닭바베큐가 450루피나 할 정도로 비스누에게 맛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내가 비스누 같았다면 100%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내가 만약 포터였다면 저녁을 안 사줘도 좋으니 그 돈을 현금으로 줬으면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좀 씁쓸했다. 비스누는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그는 이 저녁도 마지막 서비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입맛과는 상관 없이 맛있게 먹어줘야 할 의무감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다음날 낮술에서 저녁 먹을 때 여전히 포터들을 '위한' 저녁 식사가 이어지고 있더라.) 갑/을의 관계에서는 항상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우울함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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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8일-여행 일곱째날 (뱀부-시누와-촘롱-지누단다) 


   방콕의 수안나 폼 공항에서 연결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저기 한국 분이죠?" 이러면서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좀 쭈뼛쭈뼛. 괜히 한국 사람과 엮였다가 귀찮은 일이라도 생길까 봐. "어디 가세요?" 뻔한 질문. (알면서 그러시네) " 네팔이요." "와, 나도 네팔 가는데......" 이렇게 시작된 동행! 같은 비행기를 타고 서로 일정을 얘기하던 중에 우리랑 달라서(아가씨는 한 달 여행-카투만두에 보름 있다가 나중에 포카라에서 트레킹을 할 예정이었음) 공항에서 바로 헤어지려고 했는데 공항에서 택시를 함께 타고 가게 되었고, 그러다가 각자의 숙소에 짐을 놓고 대충 6시 30분에 '소풍'이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약속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밥을 먹고 있는데, 늦게 아가씨가 왔고, 자기도 내일 바로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숙소-네팔짱-에서 포카라에 미리 다녀오는 게 좋다고 추천했단다.) 우리가 1시간 정도 먼저 출발하니까 혹시 포카라에 오게 되면 우리는 낮술에서 트레킹 준비를 해서 가기로 했으니 그리로 오라고 했다.  

   다음날 포카라에 도착해 낮술에 짐을 맡기로 지도를 사고 가방을 빌리느라 좀 돌아다녔다가 다시 낮술에 가니 아가씨가 와 있었다. 아가씨는 가이드나 포터도 못 구한 상태! 우리는 짐이 비교적 가벼워서 포터가 좀 더 지고 갈 수 있는 상황. 이러니 그냥 아가씨가 우리 팀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둘째날부터 다리가 아파서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은 바로 걷지 못하고, 뒷걸음질로 ABC부터 나야폴까지 내려 온 전설적인 인물! 아무튼 이 아가씨 때문에 아찔했던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많았다. 아가씨가 눈물도 많아서 우리랑 같이 다니는 동안 두 번이나 울었다.ㅋ(지금쯤이면 여행을 끝내고 집에 왔을 것 같은데...)


 

   나의 장거리 여행의 든든한 동행자, 의주샘. 음 의주샘과의 여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시시하게 1,2박 정도로 다닌 건 다 빼고도 벌써 네 다섯 번 정도 되는 거 같다. 부산-해남 땅끝 도보여행(14일), 부산-통일전망대 도보여행(19일), 목포-태안반도 도보여행(12일)을 같이 다녔으니까 여행 파트너라고 해야겠다. [아, 의주샘 어머님이 나를 싫어하신단다. 뭐, 힘든 일 자꾸 같이 하자고 한다고...ㅠ 어머님 죄송합니다.] 이번 네팔여행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안 가려고 했다가 막판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 혼자 갔으면 어땠을까? 뭐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겠지만 재미는 적었겠지? 일행이 있으니까 든든하고 좋았다. 더구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만 말도 술술! 처음 보는 여러 나라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재주가 있더군. 늘 알게 모르게 나한테 맞춰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또 상황이 안 좋아도 별로 불평이 없고,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편이라서 나로서는 안성맞춤의 동행자.(근데 사진이 꼭 교수님 같이 나왔네.)


 

   뱀부의 잠자리는 힘이 들었지만 아침에 출발할 때는 마음도 몸도 훨씬 가벼웠다. 이젠 해발 2500m 정도니까, 고산 증세는 더 이상 없고 길도 가파르지 않은 길이라 무릎도 훨씬 풀렸다. 더구나 밑으로 내려갈수록 음식맛도 더 괜찮아지니까......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뱀부에서 출발할 때 우리 팀은 나, 의주, 은영 씨에다가 어제밤 뱀부에 도착했으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촘롱으로 내려가서 기다린다는 재수생(올해 대학입학생)이 합류하게 되었다. 그래서 뱀부에서 함께 출발했다가 시누와 근처에서 인도 여행을 하다가 네팔로 넘어와 트레킹을 한다는 31살 아가씨도 합류하게 되었다.(음, 이 아가씨가 MBC에서 ABC로 가는 길에 우리에게 마지막 한 모금의 물을 나눠준 분이다.) 

   우리는 사람도 많아지고 오늘 일정이 그리 빡빡하지 않기 때문에 느긋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아가씨 셋도 전체적으로 걸음이 느려서 일행의 간격이 아주 길게 늘어졌다. 쉬엄쉬엄 걸어서 시누와에 닿았을 때가 벌써 점심 때 그리하여 시누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정말 그림 같은 풍경(눈앞에 앞산의 촘촘롱이 그대로 들어왔다.) 속에서 '배불리 먹었던-신라면으로- 점심 식사였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여유로운 한 때였다. 

   이제 남은 길은 저 멀리 보이는 촘롱까지 가는 길이다. 시누와에서 계속 내려갔다가 얕은 계곡을 건너면 줄창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길이다. 내려가는 길은 당나귀들이 계속 돌아나니니 꽤 신경이 쓰이고, 더구나 녀석들이 아무 곳에나 싸 놓은 똥을 피하느라 여간 조심스러운 걸음이 아니었다. 내려가는 길은 아무 문제 없이 성큼성큼, 그러나 마지막 촘롱까지 올라가는 길은 그야말로 또 한 번의 사투! 그래도 결국 우리는 며칠 전에 머물렀던 촘롱의 숙소에 도착했다.


 

   촘롱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맡겨둔 짐을 찾고 나서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 ABC 트레킹 중에서 가장 가파른 길이다. 올라갈 때는 이 길만 1시간 반을 올라갔는데, 내려가는 길은 아주 가볍다. 저 멀리 파란색 나마스떼 호텔의 지붕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내려올 때는 토마토를 이고 가는 행상을 만나서 토마토를 사 먹었다.(포카라에서 사흘 동안 이 토마토를 지고 왔다고 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누단다의 나마스떼 호텔에 도착. 얼른 짐을 풀고 세면도구와 수건만 챙겨서 다시 길을 나섰다. 바로, 지누단다의 hot spring으로 온천욕을 다녀오기 위해서다. 내려가는 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천온천을 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후다닥 달려다시피 해서 온천에 닿았다.  

   노천온천은 모디콜라로 흘러가는 계곡 바로 옆에 있는데, 시설이야 보잘 것이 없었다. 우리의 목욕탕 정도 크기의 탕이 세 개.(온천의 온도에 따라서 구분해 놓았다.)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간이탈의실이 하나. 우리는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몸을 씻은 다음 손을 넣어서 온도를 확인해 본 다음 가장 뜨거운 곳에 들어갔다. 온천욕은 별로 관심도 없었으니, 노천 온천은 당연히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다. 

   오랫동안 탕에서 몸을 풀었더니 뭉친 다리와 어깨의 근육이 서서히 풀리는 것 같았다. 나오기 싫었지만 해가 져서 서서히 어두워져 오는지라 할 수 없이 옷을 챙겨입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다시 제법 가파른 오르막! 돌아오니 늦게 도착한 일행들이 짐정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온천욕을 강추했으나, 다리가 몹시 아픈 그들에겐 별로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저녁 이 숙소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우리 일행들 밖에 없는 듯 사람들이 없다. 우리가 라면으로 풍성한 저녁을 먹는 동안, 숙소의 스태프는 디브디(DVD)로 상영하는 인도 영화에 전부 넋이 나가 있다. 자신들의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화 속의 삶.(아마 영화 속에 나오는 빨간 스포츠카를 이 산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웃고 떠들다가 밤이 깊어 숙소로 들어갔다. 음, 내일이면 이 산 속 생활도 끝이 난다. 이 생활을 더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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