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횡단 5일째

   오늘도 평소대로 일어나 바로 문산읍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문산 터미널 근처의 슈퍼에서 빵과 우유를 사 먹고, 진주 시내를 향하여 걸었습니다. 문산읍에서 진주로 넘어오는 2번 국도는 위험해도 무척 예쁜 길이었습니다. 시내 변두리에는 금방 도착했으나 중심지까지 가는 길도 무척 멀어서 둘 다 많이 지쳤습니다. 중간에 은행에 앉아서 한 번 쉬고는 계속 걸었습니다. 가다가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기에 아예 깃발을 마련하자고 의기투합해서 진짜로 현수막 공장에 들어가 "부산에서 해남까지" 플랜카드를 만들어 달라고도 했답니다.(아쉽게도 그 집은 실제로 제작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발로 끝났지만)

   진주 남강을 끼고 돌아 망경동으로 빠져 나와 경전선(慶全線)을 나란히 하며 하동방면으로 걸었습니다. 중간에 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는데 일인당 500원씩 깎아 주셨습니다. 저는 점심을 먹고 12시 반부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계속 잤습니다. (동행자는 뭘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고, 엽서도 쓰고 하는 것 같았는데...)
   오후 3시쯤에 일어나 다시 강행군을 했습니다. 3시 좀 넘어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비가 엄청나게 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마음 졸아며 걸었습니다. 근데 아무리 아무리 걸어도 마을이 안 나옵니다. 한 3시간을 걸어도 마을다운 마을이 안 나오고, 찻길은 넓어져서 차들은 쌩쌩 달리는데...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만 계속 이어집니다.


   쉬지 않고 3시간을 넘게 걸어서 도착한 마을이 완사(浣紗). 자고 가기로 마음먹고, 보건소, 복지회관, 초등학교를 돌아다녀도 허탕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음 마을까지 가기로 하고 우선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마을을 둘러보니 좀 이상했습니다. 여느 시골 마을과는 다르게 건물들이 모두 양옥집이고, 지어진 시기도 비슷하게 보이고, 문패도 모두 똑같습니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서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이 마을이 진양호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수몰주민들의 집단 이주지역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는 이 마을은 "꿈꾸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녁도 공짜로 먹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그냥 주시더군요. 우리는 작은 돈이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막무가내로 받지 않으셔서 그냥 주소만 적어왔습니다. 부산가면 엽서라도 꼭 써야겠습니다. 
   저녁 먹고, 교회 담을 타고 널린 포도를 따먹으며 걸었습니다. 한 1시간 정도 가겠지 하며 나섰는데, 실제로 한 시간쯤 지나니까 날이 컴컴해져서 마음이 좀 급해졌습니다. 날은 완전히 어둡고, 잠자리는 아직 마련하지 못했고...겨우, 곤양면이라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파출소부터 들어가서  "하룻밤 재워 주세요."라는 말씀드리니 돌아오는 건 어이없어 하는 웃음. 숙박은 곤란하다는 경찰관의 말씀을 듣고 난감해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운 숙소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십니다.(순찰차가 사고 조사처리하러 나가 좀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음) 바로 나와서 차를 얻어 타고 가까운 곤양읍으로 나왔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별로인 여관이었지만 차들이 많아서 비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주머니가 25000원 부르시기에 20000원에 하자고 말씀드리니 선선히 승낙하시네요. (에이, 15000원이라고 하는 건데...^^;) 씻고, 빨래하고, 뭘 할까 하다가 3일 전부터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동네 한 바퀴 둘러보자고 나왔다 피시방으로 들어 와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오늘 길을 걷는 동안 길가에 가장 흔하게 널린 게 잡초였습니다. 잡초는 왜 이름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고,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길가에 숱하게 널려 우리에게 이름을 얻지 못한 잡초와 우리가 이름을 알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꽃들이 차이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는 온전한 한 생명으로서 잡초와 꽃에게 제 몫의 삶을 주셨겠지요? 잡초의 생명도 예쁜 꽃의 삶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하시는 생각을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의 삶도(특히, 우리학교 학생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잡초처럼 쓸모 없을지라도 다 그 나름대로 소중한 가치가 있고, 충분히 제 몫을 해나가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이 있는 것이고, 자기 몫은 다른 사람과는 경중(輕重)을 가리는 게 아니라 자기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것과 스스로가 자기 몫의 삶의 살도록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랑 그렇게 많이 싸웠던(?) 해용이가 새벽에 술 먹다가 문자로 "샘,뭐 하는데요?"라고 묻고, 제가 "걸어서 여행 다니는데, 힘들어 죽겠다"고 하자, "샘, 화이팅"이라는 메세지를 보내오는 걸 보면서 나름대로는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그래도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술 마시다가도 누군가가 생각나서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적어도 사람에 대해서 실망한 사람은 아니니 크게 나쁜 사람으로 크지는 않겠지요?

   앞으로 더 열심히 걷고 힘내서 가겠습니다. 이번 여행은 제가 얼마나 열심히 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 같습니다. 저만 힘들어하고 김의주샘은 무척 잘 걸어가네요. 저는 아무데서나 퍼질러 자고, 일어나지도 않고, 게으름도 많이 부리고...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계속 꾀만 부리려고 하네요. 내일부터는 아프더라도 좀 열심히 걷겠습니다.


  그럼 늦은 밤! 편안히 주무십시오.

경남 사천시 곤양에서.
이주형드립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나무 2003-11-2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2001년 여름, 처음으로 도보 여행하는 동안, 몇 분의 선생님들께 보낸 메일입니다. 밤마다 급하게 쓰느라 짜임새도 없고, 내용도 엉망이지만 그래도 저에게 이 글이나마 있어 그 때를 추억해 볼 수 있어 소중하답니다. 해마다 도보 여행다닐 때 쓴 글도 이 곳에 몇 편 올려볼까 합니다. 이만 퇴근해야 겠네요.
 


희망의 교육공동체

   '이성적 비관주의, 의지적 낙관주의'라고 했던가? 학교가 희망의 교육공동체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2003년 전국교사대회에서 하늘 높이 떠 오른 저 연처럼 희망의 교육공동체가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 희망의 교육공동체를 향해서 열심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동안경굴에 사는 게

  역시 제주도 여행 중에 찍은 사진입니다. 여기는 우도의 '동안경굴'이라고 하지요. 동안경굴 입구 바위 위 부분 파인 물 속에 살고 있는 작은 게 한 마리! 우리도 어쩌면 이 게만큼 좁은 우주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산방굴사에서 본 해안가 마을

   2003년 여름의 제주도 여행은 내 인생에 무척 기억이 남을 만한 여행이었습니다. 해마다 여름엔 도보여행을 떠났지만, 동행자가 있었지요. 하지만 이번 제주도 여행은 저 혼자였습니다. 거기다가 늘 동행자의 몫이었던 사진기까지 들고 말이지요.

   혼자서 길을 걷는 것이 익숙해질 때였나 봅니다. 제주도 남쪽의 이름난 관광지 산방굴사를 오르던 날은 얼마나 햇빛이 강했던지요. 그러나 산 중턱에 있는 절 앞에서 바라 본 마을 풍경에 넋을 잃고 말았답니다. 참 평화롭게 보이지요? 바라보는 것으로도 좋았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대나무꽃 2003-11-26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선생님 사진 솜씨도 장난이 아닌데요?
ㅋㅋ
저도 제주도 꼭 가보고 싶어요. 아직 못 가봤거든요.
 


아끈다랑쉬오름

   지난 여름 제주도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입니다. '아끈'은 '버금가는, 제2의' 뜻이랍니다. '다랑쉬'는 월랑(月郞)이란 한자어로 바꿀 수 있는 제주도 말이지요. 또 오름은 제주도의 기생화산을 일컫는 말이지요. 안개에 싸여 아무도 없는 다랑쉬오름에서 본 아끈다랑쉬 오름입니다. 제주도에 가신다면 제주도가 사람사는 곳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오르셨으면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