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기적성을 빙자한 보충 수업기간이지만, 어제와 오늘 동안은 나만의 휴가기간이다. 이틀을 뺀 덕분에 앞으로는 1월의 끝까지 매일 4시간의 수업을 해야한다. 원래는 어떤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서 3일간 휴가가 필요했지만, 학교 사정상 2일 밖에 시간이 안 났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모임도 못 가고, 이왕 시간이 난 거 이렇게 집에서 뒹굴뒹굴거리며 책이나 읽자 싶어서 이렇게 있는 것이다.

   보충 수업을 위해 반편성을 새로 했고, 역시 임시 담임을 맡게 되었다. 이번에는 인문 여학생반인데, 이 녀석들이 아침마다 전화통에 불이 날 정도로 통화와 메세지를 보낸다. 이유는 단 하나! 이틀 전 종례시간에 아무런 연락 없이 결석이나 지각하면 샘이랑 '면담'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남아서 '면담'하는 건 질색인 것 같다.

   아이들은 아침마다(그래봐야 겨우 이틀이지만) "선생님 배가 아파서 못 가겠어요" "선생님, 병원 갔다가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더 몸이 아파서 도저히 못 가겠어요" "선생님! 저 오늘 못 갑니다. 감기들었어요." 같은 문자메세지를 너댓통씩 보내고, 집에 있는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그럼 내일은 꼭 오너라"라는 답메세지만 보낸다. 그러면서 속으로 은근히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사실은, 아이들의 건강에 대한 걱정보다는 '이러다 내가 맡은 반이 엉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은 왜 아픈 것일까? 예전에 내 친구(물론 선생이다.)가 남긴 명언 "아이들은 아파서 조퇴하는 것이 아니라 조퇴하고 싶어서 아프다"처럼 아픈 척 하는 것일까? 다른 반에는 별로 결석생이 없는 걸 보면, 유독 우리반에 몸이 약한 학생들이 많거나 우리반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싫어서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리라. 다른 선생님들도 사석에서는 '나 같아도 오기 싫겠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그래도 담임의 입장에서는 그 반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으니 선뜻 그렇게 말하고 말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조심스럽게 아이들에게 '자율'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맡은 한 달-그러나 학교에 오는 날은 15일 정도?-동안만이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받이들이는 연습을 해 보도록 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보충수업은 '교육 활동'이라기 보다는 '서비스 활동'에 더 가깝다.선생님들은 하기 싫어도 학생들을 위해 방학을 버려야하고(나 같은 사람만 해도 시간만 주어지면 방학 때 내 돈을 써가며 공부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지만, 매일 학교에 묶여 있어야 하니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도 비싼 수업비를 내면서 자유롭지 못한 방학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교실만이라도 즐겁고 씩씩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걸 전제로 해서 아이들 자신에게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

   둥둥두둥~! 내일이면 학교에 간다. 기다려라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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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최준식, 효형출판)을 다 읽었다. 책의 리뷰를 쓸 지 고민 중이다.

- 열 여섯의 섬(한창훈, 사계절-1318문고)을 읽었다. 주인공인 '서이'와 '이배'라는 이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리뷰를 한 번 써볼까 궁리만 하고 있다. (워낙 게을러서...)

-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김영현, 실천문학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 동안 미뤄두었던, 빨간 신호등(홍세화, 한겨레신문사)의 리뷰를 썼다.

- 혜민이가 빌려달라고 한 칼의 노래(김 훈, 생각의 나무)를 책가방에 챙겨 넣었다.

- 이제 잠이 온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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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한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는다. 실제 전투는 주로 사병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사병으로 남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오래 전부터 가졌던 생각이다.
   따라서 나에겐 나르시시즘이 있다. 내 딴에는 그것을 객관화함으로써 자율통제 하려고 애쓴다. 그러면 전투는 왜 하는가? 살아야하므로. 척박한 땅에서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워 작은 열매라도 맺게 하는 거름이고자 한다. 거름이고자 하는 데에는 자율통제가 필요치 않다. 욕망이 춤춘다. 그렇다.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빨간 신호등』의 책날개 중에서


   빨간 신호등의 책날개를 보고는 무릎을 쳤다.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내가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각하는 것이, 소통하는 것이, 깨달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즐겁다. 나는 언제가 되었든, 내가 교단에서 내려올 때까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아있고 싶다. 나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옳은 것, 아름다운 것,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홍세화 씨의 경우처럼, 내가 교실에서 수염 풀풀 날리며 실제로 전투를 치르는 '척탄병'이고 싶어도 학생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아마도 교사들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아이들을 피해 모두 다 '관리자'가 되려고 알게 모르게 애를 쓴다. 비단 '관리자'가 되려는 것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다른 즐거움을 찾아서 관심을 돌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도 아이들과 소통되지 않는 상황이 두렵다. 그러나 나는 이 두려움을 피하려고 딴전을 피우지는 않겠다. 이 두려움이 내가 교단에 선 그 날까지 계속되어서 끊임없이 나를 갈고 닦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빨간 신호등' 리뷰의 전반부이다. 그러나 배우며 가르치며라는 마이페이퍼에 써 두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옮겨 둔다.)

   오늘부터 특기적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 우리 학교가 좀 심한 경우긴 하지만, 학생들은 1월 31일까지 계속 학교에 나와야 한다. 정말 아이들보다 내가 더 학교에 나오기 싫다. 그러나 학생들을 다시 만나고 나니 새로운 의욕이 솟는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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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저녁부터 방금까지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여행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여행기는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우선 여행을 떠나게 된 사연만 말하려고 한다.

  '학급운영'에 대해 고민하는 모임-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정기총회가 어제(3일) 열렸다. 그 전에 내가 온라인으로 총회가 끝나고 3일부터 4일까지 여행갈 사람을 모았는데, 신청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여행은 무산된 것으로 알고 총회에 갔었는데, 여행갈 준비를 해 온(또는 여행갈 의사가 있는) 선생님이 네 분이었다. 나는 아무 준비 없이 나와서 가기가 좀 그렇다고 말씀드리고 죄송하지만, 다음에 갔으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해서 여행은 없던 일이 되는 것 같았다.

   여행 대신에 모인 사람들끼리 뒷풀이라도 하려고 '맥주를 마시자, 보드게임카페를 가자, 노래방을 가자, 바다 바람 쐬러 가자'...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냥 재미삼아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 의견대로 하자는 제안이 나와 모두 가위바위보에 참여했다. 그래서 가위바위보를 이긴 선생님께서 맥주 한 잔을 선택했다. 언제나처럼 맥주 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저녁 8시가 넘었다.

   보통 때 같으면 맥주 한 잔을 끝으로 헤어지지만, 지난 1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1년을 시작하는 자리였던지라 그냥 헤어지는 것이 약간 아쉬운 것 같았다. 그리서 맥주 집을 나와 다음 장소를 고르기 위해 또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 이번에도 역시 이긴 사람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는데, 이번에 가위바위보를 이긴 선생님께서 갑자기 "합천"(처음에 우리가 여행가기로 한 장소였다)이라고 말씀하셔서, 모두 다 얼이 빠진 표정이 되었다. 처음에 말씀하신 선생님도 농담으로 했겠지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자 서서히 분위기가 '약속을 지키야 한다'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래서 저녁 8시가 넘어서, 부산에서 3시간도 넘게 걸리는 합천 해인사 앞에 있는 청량사로 갔다. 11시가 넘어서 도착한 곳에는 민박집도 이미 불이 꺼져서, 집앞을 어슬렁거린 후에야 겨우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방은 당연히 냉기만 싸늘! 오늘 아침에는 '청량사-남산제일봉-치인시설지구-해안사'를 돌아서 조금 전에 집에 들어온 길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 없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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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아드 2004-01-0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없는, 어의없는~~ 무엇이 맞는표현일까요~?
이거 정말궁금했음~~

느티나무 2004-01-05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 없다'가 바른 표현이죠!!ㅋㅋ
 

   어제는 밤늦게까지 연하장을 썼다. 성탄 카드를 사면서 딱히 사람을 정해두지 않고 5장의 연하엽서를 함께 샀는데, 어제서야 그 연하장의 주인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세 장은 우리 학교의 학생들이 주인이다. 얼마 전에 갑작스런 편지로 나를 기쁘게 했던 조OO, 나에게 성탄의 즐거움을 전해준 백OO, 고OO 학생이다. 뜻밖의 편지로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으니, 내 연하장이 이 학생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장은 꼭 써야할 사람에게 썼고, 나머지 한 장이 남았다. 한 장의 엽서도 방금 주인을 찾은 것 같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작은 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물론 나도 '교사'니까 당연히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학생들의 작은 마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자본의 물이 많이 든 것일까?(아이들의 편지를 돈으로 환산하고 있을까?) 아이들은 며칠을 고민하며 보냈을 편지를 아무런 감흥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도 그랬다. 아이들이 건네는 편지 한 장, 음료수 하나, 사탕 한 개, 그리고 짧은 쪽지... 받을 줄 만 알았지 거의 한 번도 건네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제밤에 연하장을 썼다.

   오늘 손전화의 액정을 고쳤다. 사실 11월 20일쯤에 고장난 건데, 직장에 있으니 고치러 나갈 시간이 없어서 방학하면 제일 먼저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처음 며칠은 답답해서 당장 고치고 싶더니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그냥 무심해졌었다. 전화기를 고치자마자 허기진 사람이 밥을 앞에 둔 것처럼 허겁지겁 메세지를 보냈다. 이곳저곳에 사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새해 인사를 하고, 다음에 한 번 보자는 연락을 했다. 그리운 얼굴들이 눈에 선하다.  이들 중에서는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사람도 있고, 내년에 또 보자는 연락만으로 해를 넘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살면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는다. 그 짧은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고, 늘 챙겨주시는 분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 분들의 따스함이 내 마음 속에도 들어와, 다시 누군가에게로 흘렀으면 좋겠다.

  - '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은 끝에 30쪽 정도 남았는데, 여기서부터 잘 안 읽힌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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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아드 2004-01-0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쌤~ 드디어 손전화(!) 고치셨군요, 축하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