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작년 3월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주최로 열린, 처음 발령받은 선생님들을 위한 학급운영 연수에서 제가 선생님들께 말씀드리고자 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제 컴퓨터 속에 들어가 있네요 ^^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이 교사는 이런 고민을 하며 아이들을 만나고 있구나!'하고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진정한 소통을 꿈꾸는 학급운영의 원리

 

느티나무(XX고등학교)

   원고를 시작하려니 막막해서 며칠을 끙끙대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모든 일은 시작하기가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시집을 뒤적이다가 좋은 시 한 편을 골랐습니다. 결국 남의 생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셈이네요. 선생님들께서도 교직생활의 시작이 막막하실 때는 주변의 좋은 선생님들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으로 시작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고향 같은 선생님

내게 고향 같은 선생님 한 분 계셨으면
객지 어느 쓸쓸한 길모퉁이 돌다가
생업에 낯선 사람들에 시달리다가
문득 가슴 넘치는 안온함으로
떠올릴 수 있는 선생님
시외 버스로 두어 시간이면
달려갈 수 있는 동네
사립문 활짝 열려 있고
늦도록 남포불 내걸려 있는 집
그리운 흙냄새와 낯익은 풀꽃들
서리서리 벌레 울음도
가슴 가득 품고 계신 분
내게 그런 선생님 한 분 계셨으면

또한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선생님이 되었으면 (조향미선생님)

   여러 선생님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 아는 것마저도 교실에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어줍잖은 교사인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여러 선생님들께 '학급운영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같이 고민하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니 몹시 부끄럽고, 또 부담스럽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구체적인 학급운영의 실천 사례보다는 학급운영의 방향이나 원칙, 학급이나 학생을 보는 관(觀)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릴 건데 아마도 아주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또, 선생님들께서 익히 아시는 이야기를 제가 반복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중요하고 복잡한 일이 다 그렇듯이, 학급을 운영하실 때에도 '학급운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의 어설픈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선생님들께서 가지고 계신 학급운영에 대한 관점도 소개해 주시면 이 자리가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듯 싶습니다. 우선 학급운영에 대한 저의 짧은 생각이나 고민, 어쩌면 하소연 같은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학교에서 보면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선생님들도 많고, 특별한 주제로 아이들의 일상적인 삶과 만나고 계신 분들도 계시고, 참신한 학급행사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선생님들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학급운영에 대해 그렇게 놀라운 능력을 보이시는 분들을 보면, 어디서 저런 열정이, 이해심이, 참신한 생각이 나오는지 스스로를 되돌아  보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그러나 화단에 저마다의 색깔로 피는 꽃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곧 그 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그 꽃을 대하는 것처럼 우리반 아이들 각자가 가진 색깔을 존중하기로 다짐하면서, 여러 선생님들의 훌륭한 학급운영에 대한 저의 부러움은 잠시 접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제가 고민하고 있는 생각들을 저의 학급에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이 한없이 기뻤습니다만, 실제로 아이들과 부딪치면서는 수도 없이 실패를 겪고, 다시 고민하고 방법을 바꾸고, 또 실패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저의 학급운영에 대한 실패에서 나온 반성문 같은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과의 행복한 공동체를 학급목표로 정했습니다. 아이들이 저와 더불어 공동체 생활의 기쁨을 맛보며,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해진 규칙이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학급활동의 방법에 대해, 학급행사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하구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방법이야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것들입니다. 조례와 종례시간을 새롭게 활용하기(노래, 시, 신문 등을 학생들이 소개하기), 모둠 일기 쓰기, 모둠 활동하기(비빔밥 해 먹기, 식물 키우기, 모둠 노래자랑 대회, 방학 중 모둠 모임……), 학급회 시간을 이용하여 학급행사 꾸리기(학급체육대회, 학급노래 배우기, 편지 쓰기, 세밀화 그리기, 뒷산 오르기, 목욕탕 가기……) 학기초에 하는 집단상담, 학기 중에 하는 개인상담(학생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해서 선생님께 들려주는 상담)……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것 하나 성공했다고 말씀드릴 만한 게 없을 정도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돌이켜 보니, 짧은 경험이었지만 저의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학급운영 방법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굳어진 상처 자국을 싹싹 문질러 빨리 지워내려고 서둘렀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굳어진 응어리는 따뜻한 물에 담기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처럼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으려는 저의 마음에 '진정성'이 담겨있는 걸 느낀다면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릴 것이고, 그때야 저와 학생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들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급을 운영해 보신 선생님들께서는 이미 이 말을 마음에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말인지 잘 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머리와 귀에는 많이 들어왔으나 진정 우리의 가슴으로까지 내려가지 않는 그 말, 아이들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최근 들어, 교과 학습 방면에서는 학생들의 자율성과 능동성, 창의성과 자발성을 존중하는 흐름들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정작 이런 능력들이 일상적으로 존중받고 실천하는 공간인 학급활동이 그렇게 활발하게 펼쳐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도 새 학기가 시작되면 '3,4월에 웃고 다니면 애들이 만만하게 봐', '반장을 잘 뽑아야 담임의 1년이 편해', '애들은 초반에 꽉 휘어잡아야 해' 뭐, 이런 수준의 담론들이 교무실의 한켠에서 은밀히, 때로는 공개적으로 떠돌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아직까지 전해지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개별적인 존재로, 주체적인 삶을 살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청소를 아주 잘 하는 학생이나 공부를 잘 하는 학생처럼, 결석이나 지각이 잦은 학생도 그래서 당연히 '학급분위기를 흐리는' 학생도 우리 반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물론 그 학생의 개별 행동이 다른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면 교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결과적인 '공평함'도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급의 아이들이 모든 같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아이는 제 시간에 학교에 오는 것만으로도 너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고,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도 않는 아이도 있습니다. 점심을 정부로부터 지원 받아야 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며,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고,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는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예의바르고 공부도 잘 하는 아이도 같은 한 반에는 섞여 있을 테구요. 이런 다양한 환경의 아이들을 어느 적당한 기준에 맞추어 재단하려고 한다면 누구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넘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물론 '차별'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두면 괜찮을 겁니다.) 아이들의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자신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인내의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아이들과의 생활은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겠지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가 누군가의 잘못을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은 거의 형벌과도 같은 고통일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 하나지만 그 순간에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야 다음에 학생들이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물론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선생님들의 좋은 의도가 학생들의 행동 교정으로 이어질 것인가?'하는 점에서는 저는 회의적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습관이나 잘못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복합적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단순한 훈계보다 우리의 믿음과 관심이 학생의 '바람직한' 선택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 자신에게 맞는 학급운영의 계획과 실천입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모두 자기의 색깔을 가진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색깔이 어울려서 빚어내는 학급운영의 색깔은 또 어떨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보여준 학급운영의 모습은 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낸 독특한 색깔일 뿐이구요.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학급활동, 평소에 관심 있었던 학급활동,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학급활동을 계획하시고, 아이들과 의논하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계획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다면 더 좋겠구요. 다른 사람의 학급운영은 단지 실패를 줄이기 위한 참고자료로 필요할 뿐입니다.
   이 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데 밑바탕은 결국 아이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떨어지는 공은 아무리 받쳐 올리려고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떨어지는 공을 받쳐 올리려다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 공이 땅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 반작용으로 튀어 오를 때 힘껏 밀어 올려 주십시오. 결국 우리는 공이 튀어 오르려는 시기를 알고 도와주는 게 필요하지요. 또, 라면국물 한 사발을 희석시키려면 물 다섯 욕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가슴에 응어리진 분노와 좌절, 적개심을 없애려면 어쩌면 일년, 아니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을 겁니다. 차분히 한 걸음 한 걸음 아이들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가갔으면 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특권은 실패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것일 겁니다. 어쩌면 선생님들의 올 한 해 학급운영의 실패는 미리 예견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 과정에 대한 결과로써의 실패는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리라 믿습니다. 그럼 올 한해 여기 계신 모든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더불어 행복한 꿈을 꾸시기를 기대하며 잔소리 같았던 제 말씀을 이만 마치고자 합니다. 잘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학생들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위해 제가 시도해 본 방법입니다. 그럴듯하게 보여도 아이들과 갈등도 많았답니다. 정말 제가 보여줄 수 없는 부분도 있구요.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선생님들의 칭찬(?)보다 이런 학급 활동이 우리반 학생들의 더 나은 생각이나 행동을 가져올 것인가, 학생을 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계획하고 실천한 것입니다.

  • 3월 - 연간학급운영계획 세우기
          - 반장선거 [입후보-공약-유세-투표]
          - 급훈 정하기, 청소구역 정하기, 자리 배치
          - 꿈봉투 적기
          - 노래로 여는 아침(조례) [자신이 뽑은 노래 소개하기(들려주기)]→[12월까지 계속]
          - 모둠 활동하기[모둠 정하기]→[집단상담하기] [학급 생일잔치] [게시물 꾸미기]
          - 학급행사 꾸리기 [학급카페 만들기-글 남기기] [목욕탕 가기] [단체줄넘기]
          - 기타 [가정통신문 보내기1](학부모 설문지)
  • 4월 - 모둠 활동하기 [모둠일기 쓰기]→[12월까지 계속] [식물(고추) 기르기]
          - 점심시간을 이용한 개인상담하기
          - 학급행사 꾸리기 [학급노래 배우기] [세밀화 그리기] [시 외우기] [차 마시기]
  • 5월 - 특별한 종례 [토요일 야외 종례]→[5월 동안 계속]
          - 모둠 활동하기 [비빔밥 먹기] [모둠별 체육 대회]
          - 학급행사 꾸리기 [어버이날 준비] [사진 찍기] [백양산 오르기] [수학여행 준비]
          - 기타 [가정통신문 보내기2]
  • 6월 - 모둠 활동하기 [모둠 소식지 만들기1] [모둠 단합대회]
          - 학급행사 꾸리기 [학급 씨름대회] [학년 축구대회 참가]
  • 7월 - 1학기 학급 운영 설문조사
          - 모둠 활동 [비빔밥 먹기]
          - 학급행사 꾸리기 [학기 마무리 잔치]→[수박 먹기 대회] [학급 대청소]
  • 8월 - 모둠별 모임 [모둠별 계획: 선생님과 하루 놀기-노래방, 오락실, 영화, 등산]
          - [학급 야영]→동학년이나 교내 선생들과 같이 운영
  • 9월 - [개인상담하기] → 방학 생활 나누기 중심
          - 모둠활동 [집단 상담하기]
          - 학급행사 꾸리기 [비디오 감상] [사진 콘테스트] [편지 쓰기]
          - 기타 [가정통신문 보내기3]
  • 10월 - 학급행사 꾸리기 [뒷산 오르기] [율동 배우기] [학교 축제 참가하기]
            - 특별한 종례 [토요일 야외 종례]→[10월 동안 계속] 
            - 기타 [개교기념일-등산 : 밀양 천황산 사자평]→[사진 전시회]
            - 모둠 활동 [비빔밥 먹기]
  • 11월 - 학급행사 꾸리기 [동화책 읽기] [시 외우기] [사과 깎기 대회]
           - 모둠 활동 [학급 노래자랑 대회] [모둠 소식지 만들기2]
  • 12월 - 학급행사 꾸리기 [계란 삶기]
            - 모둠 활동 [비빔밥 먹기]
            - 기타 [가정통신문 보내기4]
  •  2월 - 학급행사 꾸리기 [꿈봉투 개봉] [학년 마무리 설문지]
           - 학년 마무리 [영상 편지 전하기] [친구 격려의 말 전하기(rolling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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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3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요일 오후라서 유쾌한 것이 아니고-보통 토요일은 잠을 자기 딱 좋은 날이거나, 공부방에 가야하는 날이 많기 때문에 그닥 유쾌한 날은 아니다.- 특별히 지난 토요일에는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유쾌한 토요일이 되었다. 이름하여 족구계! (실제로 '계'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모임 이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금요일 저녁 늦게, 부랴부랴 연락을 해서 모이기로 한 친구들은 대학 동기 넷!(나를 포함해서) 대학에 입학할 때 우리 동기들 중에서 남학생이라고 우리 넷이 전부였다. 각자 생각이 다 다르면서도 자주 같이 어울려 다니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여행도 함께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끼리 재미난 일이 무척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셋은 같은 시기에 입대도 하고 복학해서 또 학교를 같이 다녔다.

   우리 넷은 특별히, 대학교 교정에서 강의실에서 꺼낸 책걸상에 끈을 묶어서 네트라고 만들어 놓고 족구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입학해서부터 계속 공차는 걸 좋아했는데, 지나가던 교수님들께서 꾸중을 하셔도 다음날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로 다시 족구를 열심히 했다. 그러니 우리들의 실력도 쑥쑥 향상되어서 웬만한 팀과는 시합을 해도 지지않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대학교 4학년, 임용시험 준비를 위해 우리 과가 있는 건물-대학교 제일 꼭대기에 있어서 주변은 온통 소나무 숲이고, 올라오는 사람도 적어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도서실에서 여름방학내내 공부를 했다. 그러나, 저녁을 먹고는 항상 '족구'를 해야 그날의 일과를 마감할 수 있었다. 공부하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그 운동으로 모두 풀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시험은 다음해에 또 칠 수 있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발령을 받아 나가겠지만, 이 친구들이 이렇게 놀 수 있는 건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어울리고 운동했던 기억이 새롭다.

   옛날 이야기는 이제 이쯤하고,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모두 발령을 받아서 지금은 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그 버릇 그대로,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씩은 자기가 근무하는 학교에 초대를 해서 족구를 한다. 공을 차며, 가족 이야기, 학교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낸다. 그리고는 함께 목욕을 하고 보통 저녁을 함께 먹는다.

   우리는 닮은 점도 많지만 아주 다른 점도 많다. 모처럼 만나서 헤어지기가 아쉬운 날에는 술집이나 카페 같은 곳에 가는데, 주문하는 것도 모두 제각각이다. 유자차, O/J(오렌지 쥬스), 맥주, 커피...등 그냥 각자가 알아서 시켜먹으며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보통은 일상적이 이야기는 운동이나 밥 먹으면서 하기 때문에 이럴 때는 아주 진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본격적인 토론!(모두 다 '달변'-나를 빼고-이다. 어떤 후배는 우리와 어울려서 진지하게 듣고 있다가 '형들, 100분 토론에 나오는 패널들 같아요~!'는 말을 던져 우리를 웃겼다. 또 다른 후배는 이렇게 넷이 다른데 어떻게 같이 붙어다니는지 신기하다고도 말한다.) 동기들은 나름대로 치열한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아직은 관심의 영역이 자기와 가족에만 매몰되지 않고, 생각의 폭이 넓어서 활기찬 대화가 가능한 것 같다.

   지난 토요일에는 족구, 배드민턴, 탁구 등으로 힘을 완전히 빼고,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아주 기분이 좋아진 우리들은 '금정산성' 동문 옆에 있는 너넉바위에 올라갔다.(그 때가 밤 10시쯤이었다.학교 다닐 때가 함께 그 바위에 올라서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부산의 금정구/동래구/부산진구가 모두 불빛으로 보였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날은 아주 기쁜 날이다. 앞으로도 '족구계'가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다음에는 이 엽기적인 친구들의 행적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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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의 전부

 

악보

         

              좋은 이들과 함께 한다는 건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의 전부

              우리 시작도 좋은 이들과 함께 사는 세상 그것을 꿈꾸었기 때문이죠

              아무리 내 앞길이 험해도 그대로 인해 내가 힘을 얻고

              슬픔도 그대와 겪으니 나도 따라 깊어지는데

              언제나 당신에겐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커지고 맑아져 그대 좋은 벗 될 수 있도록 

                                                                                                노래부른 이 [유정고밴드]

 

유정고밴드의 '이 길의 전부'

 

   유정고밴드의 1집 [濫觴]을 듣는다. -람상은 넘치는 잔??? 뭔가 아릿하면서도 서글픔이 잔뜩 묻어나오는, 약간 냉소적이면서도 애잔한 느낌을 주는 노래들이다. 무엇인지 모를 답답함과 우울함이 밀려오는 날, 컴퓨터로 이 노래들의 볼륨을 높인다. 한참 동안 그러고 나면, 마음이 좀 가라앉고 다시 여유를 찾을 수 있다. 무엇이 넘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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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2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찌리릿 2004-01-13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소리가 참 편하네요.

유정고밴드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유정고 밴드는 [바위처럼][우산][진주]등의 작곡가 유인혁과
[시대][착한 사람들에게][주문]등의 자작곡 음반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정윤경
그리고 민중가요 록밴드 [메이데이]의 기타리스트 고명원
이 세사람이 모여 2000년에 결성한 밴드입니다

현재는 유인혁, 정윤경과 2001년부터 합류한
록밴드 [천지인]에서 활동했던 베이시스트 박우진
그리고 2002년 여름부터 객원 연주자인 기타리스트 신희준과 드러머 장석원
이 다섯사람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라고 되어있네요.

오랜만에 보는.. 글자들... ^^

궁금해서.. 카페까지 찾아가봤더니..

이 노래의 동영상도 있네요~ 노랫말은 원래 박노해선생이 쓰신거네요. ^^



 


느티나무 2004-01-1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정고밴드를 안 건 저도 2년 정도 밖에 안 되었답니다. 가끔 집에서 유정고밴드의 1집을 들으면 가슴 속이 아릿해지지요. 저도 가사가 필요해서 며칠 전에 카페도 들러봤는데, 이 동상상을 봤답니다. 얼굴을 본 건 저도 얼마 전이었지요. '또 친구에게' 같은 노래도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일요일에 천성산을 다녀왔다. 늘 산 아래 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절집(내원사, 홍룡사)은 자주 찾았지만, 정작 천성산 제1봉(구, 원효산)을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좋은 친구이자 같은 길을 가는 동지들인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선생님들과 함께 다녀와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부산에서 1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천성산을 비롯한 좋은 산들이 많아서 참 좋다.

천성산 아래, 화엄벌

   산 중턱에서 천성산 정상을 우회해서 접어든 길 앞에 펼쳐진 화엄벌이다. 처음부터 치받아오르는 산길에 헉헉대다가 한참을 올라와서야 우리들의 눈 앞에 보이는 억새밭, 화엄벌 앞에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화엄벌에 누워서 본 하늘

   넉넉하고 포근한, 아늑하고 따뜻한 억새밭 사이에서 본 하늘이다. 사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억새밭 사이에 누워 있으면 전혀 춥지가 않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무심한 구름은 흘러가고!  먼 훗날 우리들의 후손들은 이 억새밭 아래로 뚫어놓은 고속철도 터널을 보면서 어떤 평가를 내릴까?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칭송할까? 아니면,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고속철도 터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착잡하다.

 


화엄벌 입구에서 본 계곡

   잎을 다 떨구고 난 겨울 산을 보면 뭔가 흉칙스러운 느낌이 든다. 아주 둔중하게 움직이는 커다란 짐승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슴도치처럼 털은 왜 그렇게 빈틈없이 덮여 있는지? 내 눈에는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짐승의 털처럼 보여서 징그럽다.

   여기는 화엄벌 아래에서 본 계곡이다. 여기 계곡은 무척 경쾌하게 달리는 듯하다. 깊은 골짜기를 이루며 내달리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니 마음까지 탁 트인다.


홍룡사의 겨울 땔감

   천성산 자락에 소담하게 자리잡은 홍룡사의 겨울 땔감이다. 장작을 패던 불목하니의 마음씀씀이가 가지런하게 땔감을 정리해 둔 데서도 보인다. 따뜻한 눈길과 느긋한 웃음으로, 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간섭하는 등산객들의 객쩍은 소리를 받아주는 그 분의 마음이 곱고 반듯해서 사진 한 장으로 기억해 두려고 한다.

 


겨울 숲

나무들도 인간들 못지 않게 참 비좁게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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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2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Fundamental 2004-01-1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성산이라면? 그 내친구 롱뇽이와 모두가 소송을 건 그 곳-_-?

느티나무 2004-01-1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답니다. 오래간만이네요. 샘이 얼마나 님이 서재로 돌아오기를 기다린 줄은 모르죠?ㅋㅋ 다시 나와서 반가워요.
 

이미지(현상)와 본질을 나누어 생각하는 버릇!

   열심히 책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본질이라면 서재꾸미기는 본질에서 파생되는 이미지 아닐까? 하는 허튼(?) 생각이 들었다. 꼭 서재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요즘 책 읽는 시간과 차분히 내 생각을 하는 시간이 조금 줄어든 것 같다.

- 다시, 처음부터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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