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또 평준화가 문제란다. 정작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학교 밖에서 들려온다. 학교라는 '체제'나 '제도'는 너무나 커다랗기에 바깥에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학교내의 목소리는 아직 '평준화'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는 것 같다.(오늘만 해도 고교 평준화에 대한 여러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신문에 나오는 기사는 거의 믿지 않는다. 따라서 거의 보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내 생각을 꼼꼼하게 적어볼 생각도 했으나, 지금은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으므로 평준화에 대해 짧은 생각만 덧붙이기로 한다. 지금의 평준화는 교육의 기회균등에 기여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이 거의 의무교육이 된 마당에 이러한 기회의 균등을 주는 것마저 포기한다면 심각한 교육불평등 현상이 초래될 것이다. 정말 문제는 최소한의 기회 균등마저 '정신분열증'으로 매도하는 소위 '먹물들'의 삐뚤어진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은 교육이 한 사회의 통합과 계층순환 기능을 수행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평준화야 말로 바로 이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모든 사람에게 숨쉴 수 있는 권리가 공평한 것처럼 의무교육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어야 한다.
평준화가 학력저하의 원인은 아니다. 만약 평준화가 학력저하의 근거라면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막연히 '그럴 것이다'하는 추정말고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평준화 이후에 학력이 올랐다는 연구 결과들은 무수히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한 명의 천재가 수만명을 먹여 살리게 된다는 미래 사회를 위해서 평준화 제도를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그럼, 그 한 명을 위해 나머지는 희생당해야 하는 것인가? 교육이 정말 그런 것인까?- 설령 그렇더라도 평준화 해제가 영재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인가는 의문이다. 그런 사람은 아주 특수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도 영재교육원이나 영재학교를 통해 수만명을 먹여 살릴(?) 그런 천재들은 특수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냥 '명문' 고등학교에 갈 정도의 실력으로 수만명을 먹여 살릴 천재가 될 수 있을까? 어림 없는 수작이다.
평준화가 오히려 소득수준에 따른 학력 격차를 가져왔다는 최근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부모의 소득격차와 교육격차가 가장 적은 국가에 속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명백한 사실이다.(언론에 소개되지 않으니 모를 수 밖에!) 이번에 나온 언론기사는 특수한 대학의 특수한 학과를 통계를 너무 맹신하고, 언론이 이를 교묘하게 자기 입맛대로 악용한 흔적이 분명하다. 그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마도 전문직 고소득층의 문화자본과 학교에서 요구하는 교육내용의 상동관계를 비교해 보는 것이 더 흥미롭고 의미있는 일이지 싶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정에서 받은 문화자본이 학교에서 발달시키기를 요구하는 문화자본과 비슷하기 때문에 교육 성취도가 더 높을 수 있다는 연구가 더 개연성이 높을 것 같다.
평준화가 오히려 사교육비의 증가를 가져왔다는 주장도 무리한 주장이다. 평준화가 사교육비 증가를 불러왔다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설명되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준화 해제가 사교육비를 가라앉힐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평준화가 해제되면 입시 열풍은 중학교로 내려갈 것이고, 사교육시장은 그만큼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러면 고등학교 사교육시장은 줄어들 것인가? 전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사교육시장의 팽창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공교육의 부실이 사교육시장을 키운 부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가정을 해 보자. 공교육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올라서 자기 아이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상대평가에 따른 입시 제도라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성적-성적은 곧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지표를 의미하고, 대학은 그 아이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강력한 꼬리표가 될 수 있으니까-을 얻기 위해 또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평준화 해제로 맞춤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교육 비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는 분명히 허구적이다. 평준화 해제는 사교육의 시장의 폭발적인 양적 확대와 사회적 서열화 조장으로 더 강한 사교육 욕구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평준화 해제는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정상화를 망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가 서열화되면 대학 진학하는데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반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고등학교마다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그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보고 고등학교 생활을 판달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평준화 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 단계로 내신성적 반영을 최소화하거나 없애자고 주장할 것이다.(이는 '가정'이지만, 과학고 학생들의 대량 자퇴 사태를 보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나마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지금처럼이라도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미미한 변별력이지만 내신 성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마저 없어지면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어려울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제대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않고 오로지 대입만을 목표로 하는 학사 운영이 될 것이라고 본다.
평준화 해제는 전형적인 기득권층의 논리이다. 평준화 해제의 목소리를 사회 기득권층에서 아주 강력하다. 그들은 '평준화가 사실은 서민들에게 더 불평등을 강요하는 제도'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러나 서민들은 그런 평준화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교육에서도 효율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비단 교육제도 뿐만 아니라 어떤 제도라도 효율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것도 국민 모두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 기본교육(의무교육-사실 돈만 국가가 안 내줄 뿐이지 고등학교 교육도 의무교육과 뭐가 다른가?)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 아무 곳에도 효율성이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다.
-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지만, 오늘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여기까지만.[사실, 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