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04년 2월 1일] 올해 들어 처음으로 경주에 다녀왔다. 느긋하게 출발했으나 다행스럽게도 도로가 막히지 않아 1시간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쌈밥[대릉원주변에는 아주 유명한 쌈밥집이 많다]으로 점심을 먹었다. 반월성-계림(내물왕릉)-대릉원(미추왕릉,천마총)-선덕여왕릉-사천왕사지-신문왕릉-진평왕릉-황복사터3층석탑-황룡사터
오늘은 시내 중심가에 흩어진 왕릉을 중심으로 둘러보고 왔는데, 사진과 느낌을 적어두고 역사적 사실을 찾아서 정리해 두고 싶다.
[13대 미추왕릉]
미추왕릉은 대릉원 안에 있다. 대릉원 안에는 유명한 '천마총'도 있는데, '천마총'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미추왕릉은 담을 세워두고 문을 굳게 잠궈두어서 그런지, 둘러보려는 사람조차 없는 한적한 왕릉이다. 아마도 '무지덧널무덤'일 것 같은 이 릉은 다른 무덤들보다 조금 더 커보였다. 그러나 신라 초기답게 특별한 장식은 없고, 봉분만 둥그렇게 올려져 있었다. 아마도 왕의 위세를 과시하려고 그랬을까?
[17대 내물왕릉]
김씨 성으로는 미추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내물왕. 대릉원을 지나 박물관쪽으로 가다 보면 첨성대가 나오는데, 첨성대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계림이 보인다. 내물왕릉은 계림 안에 있다. 계림 안의 숲은 여러가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물왕릉을 비추는 겨울 햇살이 따가웠다. 내물왕릉도 특별한 장식 없이 소박하게 꾸며져 있고, 봉분 아래에 드문드문 호석이 드러나 있는 것이 초기의 형식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26대 진평왕릉]
참으로 소박한,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신라왕릉의 백미다. 진평왕은 재위기간이 54년이었으니 위세도 대단했겠지만, 아주 소박하고 단아한 무덤을 남겼을 뿐이다. 진평왕의 세 딸도 모두 유명한데 첫째딸은 아버지의 뒤를 이은 선덕여왕이다. 둘째딸은 뒷날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의 어머니이다. 셋째딸은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훗날 백제 무왕이 된 서동의 마음을 사로잡은 선화공주이다. 논두렁 한 가운데, 아무런 장식 없이 아담하게 서 있는 진평왕릉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27대 선덕여왕릉]
선뎍여왕릉은 누에고치처럼 길쭉하게 생긴 낭산 남쪽에 있다. 낭산 아래는 그 옛날 신라의 수도, 경주 사람들의 베드타운이었을 배반들-왕굴을 세우려다 용이 발견되어 절로 바꾼 황룡사터가 있는 곳이다-이 펼쳐져 있다. 진평왕과 선덕여왕릉은 가까운 곳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한편, 선덕여왕릉 들어가는 길은 구불구불 자유롭게 자란 소나무들이 장관이다. 숲이 우거지니 당연히 새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하늘로 웃자란 뒤틀린 소나무들을 보니 세상 풍파의 흔적이 고스란히 읽힌다.
선덕여왕릉은 자연석을 밑에 두르고 봉분을 세웠다. 초석들은 가지런하고, 봉분의 모양도 무척이나 단정하다. 낭산 제일 꼭대기에 있으니, 언제나 햇살이 가득하다. 늘어진 소나무 가지에 앉아서 봉분을 바라보고 있으니 속(俗)이 아주 멀게 느껴졌다.
[31대 신문왕릉]
늘씬한 소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는 신문왕릉. 선덕여왕릉과 신문왕릉은 한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널찍한 터에 잘 가꾸어진 주변과 어울리게 신문왕릉은 화려함과 자연스러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자연석을 잘 다듬어서 호석을 두었으며, 이 호석을 받치기 위해서 장판석을 사용하고 있다. 터가 넓고, 평지라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찬찬히 봉분 주위를 둘러보기에도 좋은 곳이다. 아쉽게도 큰 나무가 몇 그루 밑둥이 잘려나가긴 했지만, 넉넉함이 가득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