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왜 사탕 달라고 안 하니?

   오늘부터 이번 주 내내 0교시 수업을 해야한다. 어제 잠을 설친 탓인지 오늘 아침 일어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늦은 것에다 더해서 옷 꺼내 입고 꾸물거리다 보니 평소보다 약간 늦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수업시간까지는 3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0교시는 남학생 문과반. 공부 안 하기로 유명한 반이다. 고3이라지만 많은 학생들이 엎드렸다는데 내가 도끼눈을 해서 그런지, 안 보이게 자는 것인지, 딴 생각만 하고 있는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감기에 걸려서 콜록거리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래서 수업은 더욱 힘들었다. 처음에는 '얘들아, 힘들지? 우리 조금만 참고 열심히 해 보자!'고 했는데 점점 고개를 숙이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나도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다.

   연속되는 1교시 수업. 이번엔 여학생 이과반. 교실에 들어가서 토요일에 촛불집회에 다녀온 이야기를 잠깐 하고, 화이트데이 얘기를 꺼냈다.

   "여러분들은 어제 뭐 했습니까? 남자친구한테 사탕 많이 받았나요?"

  "아니요. 샘은 여자친구한테 사탕 주셨어요?"

  " 글쎄요..."

   이렇게 싱거운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아, 이 녀석들이 고3만 아니었으면, 그래도 사탕사달라고 졸랐을텐데... 하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문제집 풀이를 하면서도 내내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문 하나 읽고, 문제 풀이하고.

   "여러분, 여러분들은 왜 저에게 사탕사달라고 얘기하지 않지요?"

   그제서야 긴 잠에서 깨어난 듯 "선생님, 사탕 사주세요" 라고 난리다. 지금은 수업시간 중이니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하고 다시 수업을 해서 1시간이 지나갔다.

   3교시 수업은 여학생 문과반. 2교시에 미리 사탕 다섯 봉지를 샀다. 지난 발렌타인데이에 나에게 초코렛을 전해 준 2학년 여학생 두 명에게 각각 사탕 한 봉지씩을 건네 주었다. 세 봉지를 들고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다. 문제집 풀이하는 삭막한 고 3교실에도 사탕 한 알의 달콤함은 입 속에 번지고, 봄햇살이 교실 가득 들어와 화사하게 피었다.

   창 밖으로 건너다 본 햇살이 더 없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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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16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쌤여~ 지두요, 질문 있어요! '글쎄요', 가 당최 뭔 소리대요? 쿠쿠...

비발~* 2004-03-16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0교시... 이래야 하는 건지...ㅜㅜ

느티나무 2004-03-16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교시 때문에 죽겠습니다~!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걸 보면 안타까운데...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만 하니...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안밖으로 피곤한 일이 겹쳐서 힘들기도 했고... 서재문을 닫고 자리에 누워서 멀거니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뉴스 보여주는 곳을 건너다녔다.

   휴~! 무슨 말을 해야할까? 막막하기만 하다. 분노를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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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재는 조기를 게양하고 문닫습니다. 근조, 공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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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1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검은비님 서재에도 달아드리고 오는 길인데.... 여기에도 달아드리겠습니다. 출처는 어딘지 아시죠? (nrim님 서재에서 퍼옴)

 

이번 415선거에 꼭 투표하실 거지요?

투표하지 않고, 정치인 욕 하지 맙시다.

정치인들이 그 자리에 가도록 만든 건 투표 안 한 당신이거든요.

(하도 답답해서 한 마디 써 봤습니다.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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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1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오...반성하고 있습니다. 투표는 매번 했지만, 사실 관심을 안 두고 있다가, 그냥 평소 엄마아빠가 지지하던 당(내가 지지하는 당도 아니고...-.-)으로 대충 했던 터라... 이제는 그러지 않으렵니다.

모래언덕 2004-03-1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 선생님...지금쯤은 허탈감에서 깨어나셨겠지요.
국민들은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을 것입니다.
말없는 민중들을 마음대로 편을 가르고 아전인수격인 해석을 하는 것이 정치인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알게되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일에 항상 놀러갔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렵니다.

느티나무 2004-03-1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고 있습니다. 토요일에는 서면 거리로 나섰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나니 좀 나아지는 것도 같고... 왜 또 거리로 나와야 하나? 하는 답답함도 들고... 그랬습니다. 이제 훨씬 낫네요
 

   이제 모든 일과가 끝났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생들은 8교시 수업이라고 해서 보충수업을 1시간 더 한다. 나는 3학년 수업을 하고 있으니, 이 8교시까지 해야 한다. 5시 20분에 수업이니 약간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오늘 저녁엔 별다른 일이 없다. 6시 10분에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서 달리기를 하고 싶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게 무엇보다도 귀찮다. 그래서 마음은 여러번 먹었지만, 실제로 집앞의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간 적은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운동장으로 나가야겠다. 사실, 나는 서른 다섯이 되기 전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로 목표를 정했다. (1년 정도는 연습해야 도전할 수 있을텐데... 나의 밑천이라고는 하프코스 1번 완주해 본 경험 밖에 없다.)

   즐거운 마음으로 8교시 수업을 하고, 집으로 가서 체육복을 챙겨 입고 운동장으로 달려가야지. 이제 슬슬 새로운 학년에 적응이 되는 것 같다. 생각보다 3학년 아이들이 예쁘게 보인다. 수업도 처음에 너무 긴장했던 것도 풀리고, 점차 활발한 수업이 만들어지는 듯!

   신규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학급운영에 대한 강의 의뢰가 들어왔지만 내가 맡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거절했다. 어제 극장에 보낸 제안서에 대한 답이 아직 안 왔다. 작년에 맡았던 학생의 학부모님께서 전화 상담을 해 오셨다. 학교 밖에서 점심을 먹었다. 인터넷 뉴스 사이트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심란했다. 틈날 때마다 수업 교재를 들여다 보고 있었으나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나의 서재'에 가장 많은 분들이 방문하셨다. 서재에 즐겨찾기 등록 숫자도 늘어 기뻤다. 교무실이 할랑하다. 교무실에 계신 분들이 몇 분 되지 않아서 수업이 시작되면 교무실이 거의 텅텅 비어버린다. 수업시작 5분 전이다.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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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1 18: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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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1 2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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