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공화국 국민의 의무로 오늘 320백만인 '문화행사'에 다녀왔다. 오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으나, 오후 들어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언제까지 나같은 시민을 '바보' '백수' 취급하는 국회의원들을 보고 있어야 하는지. 내가 외면하면 그 사람들의 정치적 수명이 연장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서면 거리에 앉게 했다.

   우연히 만난 우리 학교 선생님 두 분과 처음부터 같이 행동한 선생님, 해서 모두 네 명이 나란히 앉아 목청껏 구호도 외치고, 공연도 보고, 몸짓도 배우고, 노래도 부르고, 맨 마지막에 대동놀이까지... 흥겹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중간에 아는 사람도 진짜 많이 만나고...(군대에서 함께 고생한 후배도 우연히 발견하고 찾아왔었다. 모일보 사회부 기자라 취재하러 나온 것이긴 했지만, 아무튼 반가웠다.)

   오늘은 계속 저 구절이 입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공화국의 국민이므로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나와야한다)는 권리와 책무를 수행하려고 그 자리에 앉았다. 빼앗긴 내 권리를 찾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었다. 권리를 찾으려는 내 행동은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나는 당당하다. (그 북새통에도 우리 학교 학생 몇 명은 노점에서 물건을 사고 있기에 어찌 어찌 알아 보고 내가 들어오라고 불렀다. 그러나, 바쁜 일이 있었는지 먼저 간다고 인사만 하고 가 버렸다.) 몸은 피곤해도 내 삶의 몫은 해 두고 싶다.

   그러나, 내가 다시는 거리로 나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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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3-2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집회에서 부산 모습 보여주던데.. 그곳에 계셨겠네요.. ^^

2004-03-21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나비( 노래는 류금신 또는 최도은)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밤이면 밤마다 자유 그리워
하얀 꽃들을 수레에 싣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우린 불나비

오늘의 이 고통 이 괴로움 한숨섞인 미소로 지워버리고
하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앞만 보고 걸어가는 우린 불나비 

오 자유여, 오 기쁨이여! 오 평등이여, 오 평화여!
내 마음은 곧 터져버릴것 같은 활화산이여
뛰는 맥박도 뜨거운 피도 모두 터져버릴것 같애

친구야 가자 가자 자유 찾으러 다행히도 난 아직 젊은이라네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테야 푸른 하늘 넓은 들을 찾아갈테야 

오 자유여, 오 기쁨이여! 오 평등이여, 오 평화여!
내 마음은 곧 터져버릴것 같은 활화산이여
뛰는 맥박도 뜨거운 피도 모두 터져버릴것 같애

친구야 가자 가자 자유 찾으러 다행히도 난 아직 젊은이라네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테야 푸른 하늘 넓은 들을 찾아갈테야 


   내가 저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가 언제였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들을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아무튼 2002년, 2003년 계속 저 노래를 듣고, 따라부르며 사람을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드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고 나면 세상 시름을 모두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 5시부터 서면 거리에 종이 한 장 깔고 4시간 반 동안 앉아 있었다. '문화 행사'가 흥겹고, 재미가 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역시 불나비도 있었다. 목청껏 부를 수 있는 '불나비'가 나와서 좋았다. 같이 있어준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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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2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노래가 아마 '인터네셔널가'처럼 외국번안곡인 걸로 알아요. 저도 한때 저 노래 가끔 불렀었는데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어떤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게 해줍디다. 그래서인지 답답한 삶의 매너리즘에 빠졌다 생각하면 듣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뭔가 피드백되는 기분이고요. 암튼, 좋습니다. 해지기 전부터 대규모의 집회 있었는데 저도 오늘 저 노래 들었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 열정에 불타올랐고, 집회의 흥분은 무르익어가고 도시의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문화, 의 힘이란 것이 뜻을 같이한 많은 사람들의 결속을 다져주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 새삼 오늘 일만은 아닌 듯 합니다. 놀라워요. 그것이 역사를 바로세우려는 사람들의 힘, 바로 민중의 힘이라는 생각, 천천히 걸어오면서 해 봤습니다.
 
 전출처 : 심상이최고야 > 자갈은 저희들끼리 부딪치며 다듬어진다. (신영복)

자갈은 저희들끼리 부딪치며 다듬어진다. (신영복)

   안녕하십니까? 딱딱한 얘기가 될 것 같아서 옛날 얘기 하나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방학중에 1월 1일날 등교를 했습니다. 조회를 마친 다음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우리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새해를 맞이하는 느낌을 1번부터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13번이었던가 그랬는데 제 차례가 되어서 저도 한마디 했습니다. 아마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겠다는 얘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순서가 30번쯤 되는 학생이었는데, 우리 반에서 공부도 별로 잘 하지 못하고 학교에 왔는지 안 왔는지 별로 눈에 띄지도 않던 한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왜 1월 1일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세월이란 물처럼 마냥 흘러서 지나가는 것인데 왜 1월 1일이라고 이름을 붙이는지 모르겠다는거예요.그 얘기를 듣고 제가 큰 충격을 받았지요. 속으로 '내가 저 얘길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거예요.(모두 웃음) 내가 저 얘기를 해야 하는데, 나보다 공부도 못하는 저 녀석이 저런 멋진 얘기를 하다니.......

   그 다음에 또 충격 받았던 일이 있었는데요, 그 친구 때문은 아니었고, 아마 한 학년 더 올라가서일 거예요. 새 학년이 되어서 분단을 나눌 때였습니다. 농구 시합하기 전에 선수가 소개받듯이 선생님이 '아무개 1분단'하고 호명을 하면 박수를 받으면서 1분단 줄로 뛰어들어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제 이름이 불리면 같은 분단원들로부터 제법 큰 박수를 받을 줄 알았는데 별로 박수를 못 받았어요. 그런데 공부도 별로 잘 못하는 한 친구가 몇 분단이라고 호명되자 그 분단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늦게까지 남아서 청소를 제일 열심히 하는 친구였어요. 그런 충격을 제가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 받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남아서 청소도 열심히 하고, 또 딴에는 철학적인 생각도 하면서, 세월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고 사람들이 말뚝을 박아서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 생각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어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생님들의 얘기가 학생들에게 충격이 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의 이야기, 후배들의 이야기, 또래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충격적이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흘러가는 세월 이야기도, 그 얘기를 선생님이 했더라면 저한테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을 거예요. 선생님이니까 으레 그런 이야기 하는 거겠지 했겠지요. 여기 오신 분들이 대개 교사이시거나 교육에 관련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가,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 배우고 어떻게 그것을 자신 삶 속에서 간직하고 키워나갈 것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희들끼리 배워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 6.3사태 때 울산의 어느 어촌에 피신가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울산은 아주 시골이었어요. 달리 할 일도 없이 하루종일 자갈이 길게 깔린 바닷가에 혼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주 예쁘고 둥근 자갈들이 해변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습니다. 누가 일부러 깍은 것이 아닌데도 둥글고 윤이 나는 아름다운 자갈해변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아름다운 돌로 다듬어지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면서 그 해변에 있던 자갈들을 들었다 놓는 거예요. 그러면 자갈들은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다시 가라앉아요. 또 다시 파도가 밀려오면 다시 잠시 파도에 들려 올려졌다가 자기들끼리 몸을 부대끼면서 가라앉습니다. 서로 부대끼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자갈들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가장 좋은 배움은 바로 자기들끼리 부대끼며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다만 파도처럼 잠시 들었다 놓아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고, 지금 저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제
가 생각하는 교육이라든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은 바로 그런 생각 속에 있습니다.

** 가장 좋은 배움은 바로 자기들끼리 부대끼며 배우는 것! 선생님은 다만 파도처럼 잠시 들었다 놓아주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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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나의서재에 아주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날이다. 목표를 세우고 서재를 꾸민 것은 아니라 별다른 느낌은 없지만 나의 서재를 찾는 사람들과 진정한 소통과 공감을 꿈꾼다. 사실, 학교에서 동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기를 얼마나 갈망하는가? 그래서 이런 공간은 더 아이러니컬하다.

   며칠 전에 우리동네 극장에 제안한 제안서에 답변이 왔다.- 며칠 전에 이미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해서 몇 번 전화가 오고 간 후, 오늘 드디어 최종 합의를 하는 날이다. 조금 있다가 연락이 오면 바로 나설 것이다.

   오늘 3학년 모의고사가 있었다.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당연한 것인데도- 씁쓸하였다. 1,2학년들과 시간표가 달라서 쉬는 시간에 들리는 소음에 3학년 학생들이 무척 민감했다. 감독하고 있는 나도 귀에 거슬리는데, 시험치는 학생들이야 오죽하랴, 싶다가도 그 격앙된 반응에 흠칫 놀라게 된다.

   학교운영위원 선거 실무를 맡고 있는 일이  내일로 끝난다. 오늘 후보자들끼리 기호 추첨하고, 나는 기호 순서대로 투표용지 만들었다. (65명) 이제 내일 선거만 남았다. 빨리 끝내고 싶다.

   오늘은 내가 일하는 단체에 모임이 있는 날이다.(그렇다, 이건 일하는 단체다~!) 저녁에는 내일 수업할 교재의 내용 연구도 해야 한다. 하루 하루가 해야할 일 투성이다. 나만 그런가? 좀 여유있게 살자고 다짐해도 쉽지가 않다.

   봄에 입을 체육복을 하나 사려고 한다. 옆에 있는 체육선생님이 좋은 옷을 추천해 주셨다. 값도 아주 싸다. 빨리 주문하고 새옷 오면 입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점점 날이 좋아진다. 가만히 있고 싶지 않은 날들이다. 아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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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9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애 편지

- 안도현


스무 살 안팎에는 누구나 한 번쯤 연애 편지를 썼었지

말로는 다 못할 그리움이며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외로움이 있던 시절 말이야

틀린 글자가 없나 수없이 되 읽어보며

펜을 꾹꾹 눌러 백지 위에 썼었지

끝도 없는 열망을 쓰고 지우고 하다 보면

어느 날은 새벽빛이 이마를 밝히고

그때까지 사랑의 감동으로 출렁이던 몸과 마음은

종이 구겨지는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곤 했었지

그러나 꿈속에서도 썼었지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고

그런데 친구, 생각해보세

그 연애 편지 쓰던 밤을 잃어버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타협을 배우고

결혼을 하면서 안락을, 승진을 위해 굴종을 익히면서

삶을 진정 사랑하였노라 말하겠는가

민중이며 정치며 통일은 지겨워

증권과 부동산과 승용차 이야기가 좋고

나 하나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이야 썩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친구, 누구보다 깨끗하게 살았노라 말하겠는가

스무 살 안팎에 쓰던 연애 편지는 그렇지 않았다네

남을 위해서 자신을 버릴 줄 아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잡 안에 도둑이 들면 물리쳐 싸우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사랑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씩 찾으러 떠나는 거라고

그 뜨거운 연애 편지에는 지금도 쓰여 있다네

 

   이 시를 읽으니 아직 나에게는 연애가 추억은 아니지만, 내 스무살 무렵의 어설픈 생각들이 떠오른다. 참 그 때 생각해보면 너무 단순한 세계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더 용기가 생긴 것도 같다.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해 가면서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 슬플 때도 있지만 아직도 나는 꿈을 꾸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행복한 사람이다.

   안도현의 연애 편지를 받은 오후, 마음과 뜨듯해진다. 어제는 열어둔 창문을 타고 건너온 햇살이 다사롭더니만 오늘은 바람이 분다. 서둘러 나서야겠다. 오늘은 공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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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7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