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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은 저희들끼리 부딪치며 다듬어진다. (신영복)
안녕하십니까? 딱딱한 얘기가 될 것 같아서 옛날 얘기 하나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방학중에 1월 1일날 등교를 했습니다. 조회를 마친 다음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우리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새해를 맞이하는 느낌을 1번부터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13번이었던가 그랬는데 제 차례가 되어서 저도 한마디 했습니다. 아마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겠다는 얘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순서가 30번쯤 되는 학생이었는데, 우리 반에서 공부도 별로 잘 하지 못하고 학교에 왔는지 안 왔는지 별로 눈에 띄지도 않던 한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왜 1월 1일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세월이란 물처럼 마냥 흘러서 지나가는 것인데 왜 1월 1일이라고 이름을 붙이는지 모르겠다는거예요.그 얘기를 듣고 제가 큰 충격을 받았지요. 속으로 '내가 저 얘길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거예요.(모두 웃음) 내가 저 얘기를 해야 하는데, 나보다 공부도 못하는 저 녀석이 저런 멋진 얘기를 하다니.......
그 다음에 또 충격 받았던 일이 있었는데요, 그 친구 때문은 아니었고, 아마 한 학년 더 올라가서일 거예요. 새 학년이 되어서 분단을 나눌 때였습니다. 농구 시합하기 전에 선수가 소개받듯이 선생님이 '아무개 1분단'하고 호명을 하면 박수를 받으면서 1분단 줄로 뛰어들어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제 이름이 불리면 같은 분단원들로부터 제법 큰 박수를 받을 줄 알았는데 별로 박수를 못 받았어요. 그런데 공부도 별로 잘 못하는 한 친구가 몇 분단이라고 호명되자 그 분단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늦게까지 남아서 청소를 제일 열심히 하는 친구였어요. 그런 충격을 제가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 받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남아서 청소도 열심히 하고, 또 딴에는 철학적인 생각도 하면서, 세월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고 사람들이 말뚝을 박아서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 생각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어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생님들의 얘기가 학생들에게 충격이 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의 이야기, 후배들의 이야기, 또래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충격적이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흘러가는 세월 이야기도, 그 얘기를 선생님이 했더라면 저한테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을 거예요. 선생님이니까 으레 그런 이야기 하는 거겠지 했겠지요. 여기 오신 분들이 대개 교사이시거나 교육에 관련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가,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 배우고 어떻게 그것을 자신 삶 속에서 간직하고 키워나갈 것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희들끼리 배워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 6.3사태 때 울산의 어느 어촌에 피신가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울산은 아주 시골이었어요. 달리 할 일도 없이 하루종일 자갈이 길게 깔린 바닷가에 혼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주 예쁘고 둥근 자갈들이 해변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습니다. 누가 일부러 깍은 것이 아닌데도 둥글고 윤이 나는 아름다운 자갈해변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아름다운 돌로 다듬어지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면서 그 해변에 있던 자갈들을 들었다 놓는 거예요. 그러면 자갈들은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다시 가라앉아요. 또 다시 파도가 밀려오면 다시 잠시 파도에 들려 올려졌다가 자기들끼리 몸을 부대끼면서 가라앉습니다. 서로 부대끼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자갈들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가장 좋은 배움은 바로 자기들끼리 부대끼며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다만 파도처럼 잠시 들었다 놓아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고, 지금 저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제
가 생각하는 교육이라든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은 바로 그런 생각 속에 있습니다.
** 가장 좋은 배움은 바로 자기들끼리 부대끼며 배우는 것! 선생님은 다만 파도처럼 잠시 들었다 놓아주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