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 모왓, (이한중 옮김), 돌베개, 2003

   그날 밤 나는 늑대주스로 오랫동안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알코올이 주는 치유 효과 때문에 심적인 상처에 대한 고통이 덜해지자, 지난 며칠 간의 사건들을 되짚어 볼 여유가 생겼다. 수백 년 묵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늑대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은 명명백백히 거짓말이라는 깨달음이 내 마음 밭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나는 모두 세 번씩이나 이 '포악한 킬러'들의 손에 완전히 내맡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려 하기는커녕 나에게 모욕에 가까운 절제력을 보여주었다. 내가 자기 집을 공격하고 어린 새끼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보였을 텐데도 말이다.

   이 정도면 충분했지만, 그래도 그런 신화를 그냥 하수구에 흘려 보내기를 주저하는 희한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주저하는 마음이 든 이유 중 하나는 늑대의 본성에 대한 통념을 폐기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반역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또 진실을 알아차림으로써, 위험과 모험이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분위기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주저한 이유가, 같은 사람이 아닌 한낱 미물이 보기에도 형편없는 얼간이처럼 되어버린 나 자신을 인정하기 꺼려서였던 것만은 전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통념을 버리지는 않기로 했다.

   늑대주스와 함께 한 시간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이 되자 내 몸은 더 지쳐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말끔히 씻긴 기분이었다. 나는 내 안의 악마와 싸워서 이긴 것이다. 나는 이 시간부터는 열린 마음으로 늑대의 세계로 들어가서 늑대를 보고 아는 법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러려니 하고 예측하는 게 아니라 실제 그대로를 말이다.

79-80쪽

 

   나 역시도 통념의 덩어리이다.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럴 것이다. 통념을 거부하는 것이 과학에 대한 반역죄를 짓는 것 같다는 말에 무척 공감이 간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실제 그 대로의 모습을 관찰하겠다는 다짐하는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에게는 글쓴이의 '늑대'가 '아이들'로 치환되어 읽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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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4-05-0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의 일상은 언제나 교육자로서의 인식이 밑바탕에 깊이 박힌것 같습니다. '늑대'가 '아이들'로 치환되어 읽히다니.... 참 존경스럽네요..

느티나무 2004-05-09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전 별로 그런 거 못 느끼는데... 그냥 내 주변에 아이들이 있으니까... 아마도 제 인식의 폭이 좁아서 그렇겠지요. 심상이 최고야님도 아이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은 최고잖아요? ㅋ
 

   히히, 전에 찍은 사진을 뒤져보니 서재에 안 올린 사진이 몇 장 보인다. 그래서 전에 경주 가서 찍은 양지꽃(이건 이미 올렸지만, 테마를 위해...)이랑 경북북부에 가서 찍은 산수유, 매화, 진달래 사진을 차례로 올린다.

   봄꽃들이 그립다.


양지꽃

 

 

 


산수유

 

 

 


매화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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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답한 마음이 들 땐 시원한 바다 바람이 그리워 찾는 곳, 다대포. 사람들이야 한 번 휘익 왔다가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생물들은 생존의 터전인 곳. 늦은 오후 모래밭과 갯벌을 비추는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발가락 사이로 감겨드는 보드라운 모래들 때문에 같이 간 선생님들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몰운대를 한 바퀴 돌아 내려와서는 저녁을 먹었다.

  - 햇살 따가운 봄날 오후는 그렇게 흘렀다.  

 

다대포의 자랑, 연흔

 

 


조개 발자국

 


게의 흔적

 


집 찾아 가는 게

 


물가에 쉬고 있는 갈매기들

 



몰운대 산책로에서

 

 


물이 차 오르는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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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5-0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개 발자국, 게의 흔적.. 몰랐던 또 다른 세계군요. 사진 구경 잘 하고 갑니다. ^^

kimji 2004-05-07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참말 곱습니다. 무슨 사진기를 쓰는 지 물어봐도 괜찮을지요.

2004-05-07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4-05-0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기요? 음...'canon A70' 이라고 310만 화소입니다. 잘 모르지만 그렇게 좋은 성능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작년에 초보자 보급용 사진기로 알고 있습니다.

프레이야 2004-05-07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 사진이 참 좋으네요. 다대포 가 본지 한 일년 된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보니 더욱 아름답네요.

kimji 2004-05-08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성능이 아니라면, 님의 솜씨가 정말 훌륭한. 물론 반대로 사진기가 훌륭해서 좋은 사진이라는 말은 아니고요.^>^ (화소수가 딸리는 저로서는 무척이나 부럽다는; )
p.s.봄꽃 사진도 잘 보고 갑니다.

느티나무 2004-05-09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 고맙습니다. kimji님의 사진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합니다. 담백하고 단아한, 그리고 님께서 잘 쓰시는 쉼표처럼 한 박자 느린 사진. 사진을 찍으실 때 완전히 평상심을 유지하고 호흡을 가다듬어서 찍으신다는 느낌이 든답니다.

느티나무 2004-05-09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심상이 최고야'님의 서재에 남긴 제 코멘트 보고 찾아와 주신 거지요? ㅋㅋ 그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즐겨찾는 서재라 올라오는 글들은 차곡차곡 읽어 보지만, 워낙 게으르고 수줍음(?)도 많아서 제가 글자국은 잘 못 남겼답니다. 아무튼 다대포에 한 번 가시면 그 넓은 모래밭에서 신발을 벗어보세요... 그 순간, 행복해지실 겁니다.

프레이야 2004-05-0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맞을게요. 얼마전 반구대에 가서도 선뜻 맨발이 되지 못하는 난 아직 뭐 그리 꽁꽁 싸매두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가장 연세 많은 교수님은 오히려 맨발로 깡총거리며 즐기시던데 말이죠^^

느티나무 2004-05-08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야 삶이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자신을 위해서도 그게 좋은 거죠... 좋은 것에 즉각 반응하는 것~!

2004-05-09 0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5월 5일 어린이날,

공부방 친구들과 카톨릭대학교에서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참 쑥쑥 자라는 것 같다.

내 피부가 벌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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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언덕 2004-05-06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시같습니다. 선생님. 잘 계시지요?

느티나무 2004-05-09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언덕님도 잘 계신지 궁금하네요 ^^
 

귀뚜라미

-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에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안치환의 노래 귀뚜라미는 바로 나희덕 시인의 '귀뚜라미'에 곡을 붙인 것이다. 나는 안치환의 귀뚜라미라는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좋은 시가 좋은 곡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노래가 먼저였고, 한참 후에야 나희덕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그 날은 종일 '귀뚜라미'를 뿌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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