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3시 30분. 부산을 출발한 우리들은 큰 버스에서 낯모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 안에서 공부도 하고, 여행 전체 일정에 대한 소개도 하고, 숙소도 배정 받고... 경주로 가는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함께 했다.
버스에서 자기 소개를 겸해서 이번 여행에 참여하게 된 동기나 이유를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부모님과 함께 온 초등학교 2학년부터 40대 후반의 선생님까지. 여행을 나선 이유도 사람마다 모두 달랐지만,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같은 바람을 모두 말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경주에 닿았기에 예약해 둔 저녁 시간이 조금 일러서 안압지라고 일컬어지는 '임해전지'를 둘러보았다. 나는 거대한 인공 연못보다는 연못 주변에 있는 나무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온갖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줘서 날씨는 무더웠지만 상쾌한 기분이었다.
순두부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도착. 대충 짐을 풀어놓고, 이어지는 남산 주변 문화유적 소개. 강사님께서 슬라이드까지 가지고 오셔서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다. 1시간도 넘는 강의를 겸한 안내가 끝나고, 서둘러 짐을 챙겨 남산 아래 삼릉 입구에 도착했다.
보름을 나흘 앞둔 밤. 이미 달은 하늘 높이 떴고 나무에 가려지지 않은 달은 은은하면서도 훤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중 곳곳에 보물처럼 있는 유물들에 대한 강사님의 설명을 들어가면서 또 달빛 이야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산을 올랐다. 상선암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삼불사/포석정 방향으로 가는 등산로의 정상에 도착하고, 준비해 간 막걸리와 떡으로 간단한 고사도 지냈다.
초등학생이 달밤에 딱 어울리게 부른 동요. 이어지는 김의주선생님의 노래. 그리고 산에 오른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부른 '개똥벌레'. 정상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사방은 조용하고, 달빛은 더 한층 밝아 사람들의 마음에 젖어 들고, 저 멀리 시내는 신기루처럼 가물거리고, 앞은 막힌 것 없이 툭 트여 눈을 맑게 하고... 모두 다 산에 오길 잘 했다는 말씀들이셨다.
내려오는 길에서는 배리 삼존불을 구경하고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밤 12시. 이후 잠 잘 사람과 뒷풀이 할 사람으로 나뉘어져 새벽까지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주최측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오뎅탕으로 간단한 술상이 준비되었다. 낯모르던 사람들도 이 자리에 둘러앉아 게임도 하고 같이 술잔도 기울이니, 금방 친해진 느낌이라 다음에 만나도 어색할 것 같지가 않다.
오늘 아침은 숙소로 배달되어 온 들깨 시락국으로 먹었고 버스를 타고 용담정으로 갔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많이 쏟아졌으나, 그것마저도 흔히 않은 경험이고 또 시골인지라 비를 맞는 걱정보다는 약간의 상쾌함을 주었던 것 같다. 용담정에 올라 수운 최제우의 영정을 볼 수 있었다.
용담정은 주변이 참 예쁜 곳이다. 내가 처음 용담정에 온 때는 늦가을이었는데,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감과 밤은 따는 이가 없어 그대로 땅에서 뒹굴고... 단풍색이 너무 고운 단풍나무, 은행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들이 많았던 것 같다. 다시 가을에 가보아야겠다.
그 다음은 독락당(獨樂堂). 독락당은 여러번 가 보았지만, 사유지라 한 번도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으나, 역시 미리 연락해 둔 터라 처음으로 독락당의 서재(=溪亭)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계정에서 바라본 '관어대(觀魚臺)'의 모습은 고요함, 편안함 그 자체였다. 모두들 조상들의 심미안에 감탄하며...
독락당에서 옥산서원까지 걸었다. 옥산서원을 흐르는 용수(龍水). 그 옛날엔 물이 참 맑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수를 지나 옥산서원으로 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외나무다리. 조금 높은 돌에 새긴, '세심대(洗心臺)'라는 바위(=바위가 다른 곳보다 한 뼘 정도 높아서 용수의 물이 바위까지 차오르지 않고, 세심대 바위 주변으로만 흐른다고 한다. 그러면 그 바위 위에 올라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었다는데...) 옥산서원 답사... 설명해 주시는 분의 도움으로 많이 서원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근처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부산으로 내려오니 비가 많이 왔다. 차 안에서는 계속 졸았던 터라 허겁지겁 짐을 챙겨 내리고 보니 사람들은 이미 어디론가 다 가버렸다. 나도 일행들과 함께 뒷정리를 하고 집에 와서 쉬었다.
- 달빛 산행과 답사, 그리고 좋은 사람들 : 2004년 5월 29-30일 기억해야 할 날이다.
* 답사 내내 사진기를 꺼낼까 말까 망설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참기로 했다. 사진기가 없어도 행복했고, 사진을 찍을 여유도 없었고, 또 다녀와야 할 곳이니까 다음에 남겨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글을 쓰고 보니 약간 아쉽기는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