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달빛을 받으며 산을 오른지 이제 사흘 째. 아직도 그 기분이 느껴지며 마음이 흐뭇하다. 이제 바빴던 일도 대충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으며, 주말마다 이어지는 즐거운 약속들만 남았다. 이번 주말은 친구들과 운동하는 날이다. 그래서 이번 주말이 무척 기다려진다. 역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다. 그 다음 주말에는 '여수'로 모꼬지를 떠나기로 했다. 아직, 아직 여수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여수의 그 푸른 물빛도 보고,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새로운 다짐을 하련다.

   월요일, 도서실 문을 닫으니 7시를 넘었다. 학교 앞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하루가 끝나고 저녁을 먹는 시간은 즐겁다. 집에 돌아와서는 별다른 일이 없어서 책을 본다. 요즘은 "살아있는 한국사 이야기1"(전국역사교사모임, 휴머니스트)을 읽고 있는데 정말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다.

   화요일은 조금 바쁜 날이었다. 수업이야 일찌감치 끝났다. 수업은 2교시까지만 했고 학생들은 교실을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수능시험 감독관 회의가 2시에 열렸고, 이후 학교 안에서 0교시 문제로 선생님들의 모임이 이어졌다. 회의가 끝나고 다른 분들은 뒷풀이 자리로 가셨지만, 나는 논어 모임을 하러 다른 장소로 옮겼다. 이미 약속시간이 많이 늦어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제 4장 里仁편을 강독했다.

   논어 모임이 끝나자 다시 서둘러 일어섰다. 이번에는 공부방에 가야할 시간이다. 또 늦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공부방에도 지각을 했다. 5분 늦었다. 중학교 1학년 짜리들이 저희들끼리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판서를 해 가며 설명하고 쪽지 시험도 보았다. 생각보다 발전이 늦은 것 같지만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것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부방 아이들에게 내 마음이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바르게 자랐으면 좋겠다. 공부 못 해도 제 몫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제 힘으로 일하고 제가 가진 작은것을 나누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그렇게 자라는 동안 누군가가 자신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어서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녀님께서 만들어 주신 핫케익을 간식으로 먹었다. 배가 고팠는데, 그 빵을 먹으니 한결 낫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졸았다. 가끔 지하철에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쏟아졌다. 집에서는 간단하게 씻고 하루를 마감했다. 수요일은 모의고사 감독이 있는 날이다. 서둘러 출근해야 한다.

   수요일은 매년 11월에 치는 수능시험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모의고사를 치는 날이었다. 예년과 달리 시험방식이 조금 더 복잡해졌기 때문에 전체 진행 과정에 대한 '모의'의 성격이 강한 모의고사였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별다른 혼란 없이 무사히 끝났다. 아마도 11월의 수능시험도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험을 감독하면 아주 피곤해진다. 모두가 빠져나간 교무실에서 습관처럼 조금 앉아서 힘을 모았다.

   집에 돌아왔다. 평소처럼 텔레비전을 켜고 축구를 보다 잠이 들었다. 한 두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쉽게 잠 들 것 같지 않은데, 알라딘 마을이나 돌아다녀야 할까 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컴퓨터 속도가 더 느려진 것 같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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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보름이겠지? 달 떴다. 한 번 보시라!


이철수, 망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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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3시 30분. 부산을 출발한 우리들은 큰 버스에서 낯모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 안에서 공부도 하고, 여행 전체 일정에 대한 소개도 하고, 숙소도 배정 받고... 경주로 가는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함께 했다.

    버스에서 자기 소개를 겸해서 이번 여행에 참여하게 된 동기나 이유를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부모님과 함께 온 초등학교 2학년부터 40대 후반의 선생님까지. 여행을 나선 이유도 사람마다 모두 달랐지만,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같은 바람을 모두 말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경주에 닿았기에 예약해 둔 저녁 시간이 조금 일러서 안압지라고 일컬어지는 '임해전지'를 둘러보았다. 나는 거대한 인공 연못보다는 연못 주변에 있는 나무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온갖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줘서 날씨는 무더웠지만 상쾌한 기분이었다.

   순두부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도착. 대충 짐을 풀어놓고, 이어지는 남산 주변 문화유적 소개. 강사님께서 슬라이드까지 가지고 오셔서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다.  1시간도 넘는 강의를 겸한 안내가 끝나고, 서둘러 짐을 챙겨 남산 아래 삼릉 입구에 도착했다.

   보름을 나흘 앞둔 밤. 이미 달은 하늘 높이 떴고 나무에 가려지지 않은 달은 은은하면서도 훤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중 곳곳에 보물처럼 있는 유물들에 대한 강사님의 설명을 들어가면서 또 달빛 이야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산을 올랐다. 상선암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삼불사/포석정 방향으로 가는 등산로의 정상에 도착하고, 준비해 간 막걸리와 떡으로 간단한 고사도 지냈다.

   초등학생이 달밤에 딱 어울리게 부른 동요. 이어지는 김의주선생님의 노래. 그리고 산에 오른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부른 '개똥벌레'. 정상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사방은 조용하고, 달빛은 더 한층 밝아 사람들의 마음에 젖어 들고, 저 멀리 시내는 신기루처럼 가물거리고, 앞은 막힌 것 없이 툭 트여 눈을 맑게 하고... 모두 다 산에 오길 잘 했다는 말씀들이셨다.

   내려오는 길에서는 배리 삼존불을 구경하고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밤 12시. 이후 잠 잘 사람과 뒷풀이 할 사람으로 나뉘어져 새벽까지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주최측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오뎅탕으로 간단한 술상이 준비되었다. 낯모르던 사람들도 이 자리에 둘러앉아 게임도 하고 같이 술잔도 기울이니, 금방 친해진 느낌이라 다음에 만나도 어색할 것 같지가 않다.

   오늘 아침은 숙소로 배달되어 온 들깨 시락국으로 먹었고 버스를 타고 용담정으로 갔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많이 쏟아졌으나, 그것마저도 흔히 않은 경험이고 또 시골인지라 비를 맞는 걱정보다는 약간의 상쾌함을 주었던 것 같다. 용담정에 올라 수운 최제우의 영정을 볼 수 있었다.

   용담정은 주변이 참 예쁜 곳이다. 내가 처음 용담정에 온 때는 늦가을이었는데,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감과 밤은 따는 이가 없어 그대로 땅에서 뒹굴고... 단풍색이 너무 고운 단풍나무, 은행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들이 많았던 것 같다. 다시 가을에 가보아야겠다.

   그 다음은 독락당(獨樂堂). 독락당은 여러번 가 보았지만, 사유지라 한 번도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으나, 역시 미리 연락해 둔 터라 처음으로 독락당의 서재(=溪亭)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계정에서 바라본 '관어대(觀魚臺)'의 모습은 고요함, 편안함 그 자체였다. 모두들 조상들의 심미안에 감탄하며...

   독락당에서 옥산서원까지 걸었다. 옥산서원을 흐르는 용수(龍水). 그 옛날엔 물이 참 맑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수를 지나 옥산서원으로 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외나무다리. 조금 높은 돌에 새긴, '세심대(洗心臺)'라는 바위(=바위가 다른 곳보다 한 뼘 정도 높아서 용수의 물이 바위까지 차오르지 않고, 세심대 바위 주변으로만 흐른다고 한다. 그러면 그 바위 위에 올라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었다는데...) 옥산서원 답사... 설명해 주시는 분의 도움으로 많이 서원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근처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부산으로 내려오니 비가 많이 왔다. 차 안에서는 계속 졸았던 터라 허겁지겁 짐을 챙겨 내리고 보니 사람들은 이미 어디론가 다 가버렸다. 나도 일행들과 함께 뒷정리를 하고 집에 와서 쉬었다.

- 달빛 산행과 답사, 그리고 좋은 사람들 : 2004년 5월 29-30일 기억해야 할 날이다.

* 답사 내내 사진기를 꺼낼까 말까 망설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참기로 했다. 사진기가 없어도 행복했고, 사진을 찍을 여유도 없었고, 또 다녀와야 할 곳이니까 다음에 남겨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글을 쓰고 보니 약간 아쉽기는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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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 2004-05-3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시적이에요~

느티나무 2004-05-3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조하고 단순하고, 느낌이 없는 글인 것 같은데요... 칭찬(?)은 고맙습니다. 그루님!
 

사노라면

-노래 : 장필순, 리아, 김장훈, 조규찬, 윤도현, 이승환,이소라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데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한숨일랑 쉬지 말고 가슴을 쫙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 아직은 젊다. 힘내자. 이 노래는 여러 사람이 개성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좋다.

경주 남산으로 떠나는 달빛 산행과 경주 답사. 즐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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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5-29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경주 남산 달빛 산행... 제가 늘 꿈만 꿔오던... 좋은 여행 되시길.

느티나무 2004-05-29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날이 개었네요 ^^ 좋은 사람들이랑 함께 가니 행복할 겁니다. nrim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나에겐 책읽을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고, 내 내면을 조용히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로운 마음이 더 필요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와 쉴 수 있도록 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학급운영모임을 마치고 난 뒷풀이. 좋은 사람들을 만난 반가운 마음에 마음껏 떠들고 웃었더니 지금은 허허롭다.

   나에겐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에 대한 기쁨이 더욱 많이 필요하고, 일을 가려할 줄 아는 현명한 판단력이 필요하고, 일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더욱 필요하고, 몸과 마음의 건강함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쌓아가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다 써 놓고 보니 삶은 잡히지 않고 생각만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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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28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큭..제 머릿속에 요즘 떠오르는 어휘들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잘 몰랐었거든요. 일을 가려할 줄 아는 현명한 판단력! 크악..이제 감 좝았슴돠! 이거 느티나무님은 탈진상태이신 거 같은데 저만 에나지 충전하고 가는 거 같아 죄송한 걸요!

푸른나무 2004-05-28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의원이 허깨비론을 이야기 하더니 문득 제 하는 모든 일이 허깨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알곡으로 가득찬 실속있는 삶이 어떤 것인가 ..나는 진정 허깨비에 매달리고 있지않은가 느티나무님의 글을 보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것과 좋은 인연을 맺어야 겠지요.

다연엉가 2004-05-28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 저도 늘상 그것들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