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항] ‘교사’의 말을 통해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쓰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500자 정도로 쓰시오.(30분)


   “제군, 지난 일 년 동안 고생 많았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간만은 입학 시험과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일단 내가 묻는 형식을 취하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학생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에 한 아이가 일어섰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교사가 말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학생이 물었다.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의 놀람의 소리를 냈다. 그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묻겠다.”

교사가 말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전혀 묻히지 않은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똑같은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한 학생이 얼른 일어나 대답했다.

“저희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 답은 틀렸다.”

“왜 그렇습니까?”

“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을 테니까 잘 들어 주기 바란다. 두 아이가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교사가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다 ‘뫼비우스의 띠’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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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들어 꽃

곽재구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아이들은 저희들 나이보다 많은 수의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미사일 받아라 끝내는 좋다 원자폭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으니
아뿔싸 힘이 센 304호실 아이가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듯이
아버지의 슬픔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떠들면서 따라오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아름을 골라주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얘기했다
아름답고 힘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별과
나무와 바람과 새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늘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과꽃
한 송이를 꺾어들며 나는 조용히 얘기한다.
그리고는 그 꽃을 향하여
낮고 튼튼한 목소리로
받들어 꽃
하고 경례를 했다.
받들어 꽃 받들어 꽃 받들어 꽃
시키지도 않은 아이들의 경례소리가
과꽃이 지는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총' 대신에 '꽃'을 든다면? 빗소리를 들으며, '받들어 꽃'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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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노신 지음, 이욱연 옮김 / 창 / 1991년 3월
평점 :
절판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열심히 책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으나, 막상 입학한 대학은 할 게 별로 없는 곳이었다. 아마 고등학교 다닐 때 귀동냥으로 들어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찍어둔 책도 몇 권 있었는데, 예를 들면, 이방인, 제3의 물결, 수호지 등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 입학해서 대학도서관에서 가장 먼저 빌린 책은 루쉰의 '아Q정전'이었다. 이 책도 아마 그 귀동냥으로 들은 책 중에 한 권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루쉰은 대단한 작가라고 평한 것을 들은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그러나 실제로 읽어본 '아Q정전'은 나에게 별다른 감흥이 남는 책이 아니었다. 읽고 나서도 '근데 이 책이 왜 그렇게 유명해?' '이 작가가 왜 그렇게 대단하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살면서 루쉰은 대단한 작가라는 평을 몇 번이나 들었다. 그 때마다 나는 '잘 모르겠더라'고 대답하면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 구절!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만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루쉰의 책은 세 번째이고, 이번에 만난 루쉰의 책은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이다. 이 책도 표지는 오래전부터 봤지만 어쩐 일인지 읽고 싶지는 않았는데, 학교 도서실에 꽂혀 있는 이 책에 우연히 눈길이 가게 되어 뽑아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걸 본 내 친구는 '아직도 그런 책도 안 보고 뭘 했노?' 하는 표정과 함께 '철 지난 유행가'에 흠뻑 빠진 사람을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 책은 서술자의 목소리를 뒤집어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똑바로 전달할 수 있는 산문의 매력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좋다. 자신의 글이 곧 자신의 삶이 일부가 되는 것이다. 루쉰의  산문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멍청하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경우는 보통 지금, 우리의 현실과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페어 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편을 보면, 우리는 우리를 물려다가 물에 빠진 개를 보면 불쌍해서 개의 과거를 잊고 물에서 건져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의 속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물에서 나오는 대로 다시 우리를 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물에 빠진 개를 건져내지 않으면 인정이 없다느니, 공정하지 못하다느니 하는 소리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쉰은 물에 빠진 개는 반드시 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장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아직도 굳건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냉전 수구세력들의 생존 방식이 떠올랐다. 냉전 수구세력들은 지난 역사를 볼 때 몇 차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우라나라 주류 세력에서 밀려날 뻔 했으나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다는 '온정주의'나  '지역감정',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해 꿋꿋하게 살아남아 있다. 이것도 우리 사회의 개혁세력이 아직도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고 관용을 베풀면 개의 본성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루쉰도 말했지만, 관용을 모르는 자에게 관용을 베푼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관용해야 할 대상과 관용이 필요 없는 대상을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리라고 본다.

   삶과 글이 수레바퀴의 양날처럼 같은 곳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글은 서늘하다. 늦게나마 이 여름, 사람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루쉰의 글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고 행복했다. 루쉰이 다시 우리의 현실을 살아간다면, 그가 예전에 살았던 그 때만큼 분노와 슬픔을 안고 살아가지 않았을까?하는 결코 유쾌하지 못한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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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4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나무 2004-06-25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책을 도서실에서 읽다가 별 감흥이 일지 않아 반쯤 읽다 말았는데 그런 내용이 있었군요. 그 책을 선생님께서 가지고 가실 때 저도 속으로 ' 선생님 같으신 분이 아직도 그책을 ....' 이런 표정을 지었으니까요. ^^ 다시 한번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느티나무 2004-06-25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인 거 같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좋아할 책이지요. 여러가지로 슬픈 소식들이 많네요. 그래도 교실에서는 즐거운데...
 

   아이들과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본 놀라운 여론조사 결과도 알렸다. 나는 오늘까지 시험문제를 내야 하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마음이 무거워서 아무 것도 못한 거 같다. 퇴근 무렵에 서면으로 나가자고 하신 분이 있었는데 그냥 학교에 남았다.

   저녁도 먹지 않고 컴퓨터만 켜 두고 이리저리, 이것저것 잡일을 하다 돌아오니 11시가 넘었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 오늘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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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사익

간다 간다 내가 돌아간다

왔던길 내가 다시 돌아 간다

어-허아 어허야 아  어-허아 어허야 아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잎 진다 서러워 마라

명년 봄이 돌아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한번간 우리 인생 낙엽처럼 가이없네

어-허아 어허야 아 어-허아 어허야 아

하늘이 어드메뇨 문을 여니 거기가 하늘이라

문을 여니 거기가 하늘이로구나

어-허아 어허야 아 어-허아 어허야 아

하늘로 간다네 하늘로 간다네

버스타고 갈까 바람타고 갈까

구름타고 갈까 하늘로 간다네

어-허아 어허야 아 어-허아 어허야 아

아~ 하늘로 가는 길 정말 신나네요.

 

 

 

 

*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였던 그 며칠동안 얼마나 무서웠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다시, 다시는, 이런 죽음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쯤에서 멈춰야하지 않을까? 얼마나 더 피를 흘려야 그만 둘까? 이제 그만 하자. 더 분노의 불길이 치솟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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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6-2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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