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 아래를 흐르는 계곡물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

 

탁족을 하고 났더니 참,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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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강준만 편저 / 개마고원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지금 내 마음이 분노의 감정으로 가득차 있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내가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라는 책의 리뷰를 쓰기에 더없이 좋은 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은 뜨겁지만, 머리 속의 생각들은 차갑게 식히고 곰삭여서 이 리뷰를 쓰고 싶다. 감히 단언하건데, 그 분의 글쓰기가 야만적인 한국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이성적으로 풀어낸 결과물이 아닌가?

   얼마 전에 리영희선생님의 강연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강연이 끝나고 마지막 질문으로 "선생님께서 만약 교직 생활을 하셨다면 어떤 교사가 되시겠습니까? 교사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리영희 교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교사는 지식인 일반인으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특수한 임무와 가치 추구가 있다. 보다 더 균형잡힌 사회(관), 세계(관), 인간관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는 광적인 권력추구형 인간을 양성해왔다. 이제는 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기형적 가치에서 스스로 벗어나 깨우치려면 끊임없는 독서와 토론이 필요하다. 시간을 두고 각고하는 노력으로, 믿음으로 해나가야 한다. 후세들에게 어떤 유혹도 거부하고 진실을 추구하도록 아이들이 저항감 없이 옳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석하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어떠한 유혹도 거부하고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설사 내가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누군가에게는 말이 말로 끝나겠지만, 말을 한다는 것은 곧 '행동'한다는 것을 뜻하는 분이 리영희교수이다.- 내 자신이 부끄럽지 않도록 내가 진실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인가? 앞의 리영희 교수의 답변을 새겨볼 때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이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꿈꾸며 들어온 교직생활. 그러나 학교라는 곳도 우리나라의 이 모순적인 배경에서 비껴날 수 있었을까만,-정말, 학교가 딱 그 정도만 되어도 이해한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나라의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모습들만을 노골적으로 축소해 놓은 끔찍한 곳이 바로 학교다.

   합리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집단이 공공연하게 '왕따'시키자고 제안하는 곳이 학교다. 그러면서 그 선생들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왕따'를 어떻게 설명할지? 아무나 보고 "이 학교 선생들은 미쳤다"고 욕을 하는 선생이 없나? 합리적인 토론이나 설득은 없고, "몇 살인데?", "어린 게..." 가 입에 붙어 어떤 말도 소용없는 선생이 있지 않나?(더 웃긴 건 그런 말을 하는 선생이 겨우 34,33살이고 그 말을 듣는 선생은 29, 28, 27살이다.)

   나는 이런 황당무계한 사건들을 들을 때마다 미칠 것 같다. 처음에는 분노의 감정이 치솟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즉자적인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으면 차분히 무엇이 잘못 되었나?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어느새 그 감정들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 일상이 반복된다. 그리고 답답한 건 나에게 직접 이런 일이 맞딱뜨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의 감정도 이성적인 사고도 행동으로 잘 연결이 되고 있지 않는다.

   이런 답답한 환경 속에서 아무런 행동을 하고 있지 못하는 내가 리영희 교수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책을 읽으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비춰볼 수 밖에 없는데,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 내가 더욱 도드라지기 때문에, 책 속의 인물과 상황이 자꾸 책 밖으로 나와 내 곁에서 말을 걸기 때문에, 나는 괴로운 것이다.

   나의 괴로움과는 무관하게 그런 점에서 리영희 교수를 생각해 본다면 진실로 '대단한 사람'-'위대한'이라는 표현에는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우상'의 냄새가 풍기고 있지 않은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증할 수 있는 자료를 근거로 사실을 찾고, 사실에 근거해서 진실을 발견하고, 진실에 다가가려고 행동하는 일을 지식인의 의무로 알고 평생 그 의무를 감당해 온 사람이라 그렇다.

   나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아마도 '우상과 이성'이었던 것 같은데, 그 책을 읽고 나서는 안개 뒤에 가려진 실체가 조금은 보이는 것 같아 더 고민이 많아지기도 했다.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듯, 그의 책을 읽으면 고민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이후로도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역정',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스핑크스의 코', '반세기의 신화', '동굴 속의 독백' 등이 지금도 우리집 책장에 꽂혀 있는 리영희 교수의 책이다.

   결국 그의 글은 행동이기 때문에 진실하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해서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을 때,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진실을 외면할 때, 그는 그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진실에 다가갔다. 그러므로 그 진실을 알리고자 글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차원의 글쓰기가 아니라,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곧 실천하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행동과 분리될 수 없는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이제 리영희 교수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걸어간 눈 덮힌 발자국을 따라 뒷사람들이 따라야 할 시점이다. 이 책을 나침반 삼아, 벗 삼아, 리영희 교수가 걸어온, 진실을 찾아 걸어온 그 길에 나도 함께 오르고 싶다.

   그리고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본다면, 리영희라는 투명한 창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려던 이 책의 의도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침묵하지 않고 용기를 낸 '외로운 호랑이의 포효' 덕분이기도 하지만, 강준만 교수의 충분한 자료 준비와 쉬운 글쓰기의 미덕을 바탕으로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흐름들을 잘 짚어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서는 주관적인 감정의 개입이 너무 확연히 드러나서 조금 어리둥정한 부분도 있는데, 전라도 지역의 지역감정에 대해 발언한 대목이 특히 그렇다. 이런 주장이야 계속 제기되어온 문제였는데, '리영희를 통해 본 한국현대사'라는 이런 공간에서도 흐름을 끊어가며 길게 설명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그 부분을 읽는 동안 들었다.

   아직 리영희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말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유효한 리영희 교수의 勞作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나로서는 별 다섯 개가 전혀 아깝지 않다.

- 학교가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배움터였으면 하는 생각도 아울러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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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4-08-1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느낀 절망. 두려움. 무기력함. 학생일 때나 교사일 때나 마찬가지더군요. 내가 교사들에 대해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아이들도 (아무리 난 아니야!라고 소리치려해도) 나에게 여전히 느끼구요. 초면에 불쑥, 죄송합니다. 묻어둔 기억이 떠올라서요..

느티나무 2004-08-1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묻어둔 기억이라면 좋은 기억은 아니겠지요? clio님은 선생님이신가 봅니다. 사실, 학교가 참 답답한 구석이 많지요? 전 요즘 '이상한' 선생들 때문에 무지 답답합니다. 초면이라도 반갑기만 한데요, 죄송하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잠깐 근처에 있는 계곡에 다녀왔다. 날은 후덥지근했지만,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놀았더니 세상 근심이 모두 사라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볼링장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이어진 뒷풀이는 정말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 들은 말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오! 진정, 학교는 야수들이 사는 정글의 세계이다."

   학부모 알라디너님께, 교사로서 이런 말씀드리기 정말 뭣하지만-누워 침뱉는 꼴이라 더욱 내 말이 우습게 들리겠지만- 학교를 믿지 마세요. ^^;  글쎄, 제가 너무 우리 학교의 경우를 일반화시켜서, 논리적 비약이 심할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선생들'이 많답니다. 또, 학교가 여러분의 자녀들을 올바른 인성으로 이끌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지나친가요? 학교에 있어보면,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런 말 안 나옵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건, 이런 인간들일수록 학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온갖 미사여구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지...)

   예를 들어 볼까요? 어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인사 좀 해라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홈페이지에 학생들이 그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서 제일 학생들의 인사를 무시한다고, 인사 좀 받아달라고 하소연을 했답니다. 그 글을 본 그 선생님 왈, "걔네들은 아버지한테도 맞담배 피냐?"-한 마디로 너희들은 인사해라. 나는 안 받겠다. 그래도 너희들은 계속 인사해야 한다...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교육경력 20년이라고 매일 큰소리치고 있으니, 이런 사람이 학생을 지도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니, 제대로 되겠습니까?

   학부모 알라디너님! 목소리 높여서 자신의 교육활동을 자랑하는 '교사'를 조심하세요. 저도 그랬다면 저 역시도 조심하세요.(저를 조심할 일이 있을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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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7-0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버지도 선생님이시지만 그 논리는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네요. 만약 저라면 학생이지만 한 말씀 드릴 듯......(아버지 믿고라도......)

느티나무 2004-07-02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닉네임이 근사하단 말씀은 알라딘 뉴스레터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맞는지? 저는 유감스럽게도 '선생'들을 불신합니다. 만약 제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학교다닐 때 존경했던 선생님들 때문에 지금도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생을 믿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출근해 보니 책이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까치글방
  • 밥 벌이의 지겨움, 김 훈, 생각의 나무
  •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예문
  •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한겨레신문사
  •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이나미, 책세상

   이렇게 7권이다. 오늘은 책을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 다시 포장지에 넣어 두었다. 지금은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를 읽고 있다. 요즘은 책이 좀 빨리 읽힌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이 책도 읽고 꼭 리뷰를 쓰고 싶은 책이다.

   오늘부터 시험기간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년의 과목은 오늘 시험이 있었는데 별다른 문제점 없이 끝났다.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은 언제나 어렵다고 난리지만, 그런 푸념이야 이제는 가볍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시험이 끝는 학교는 약간 헐렁하다. 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는 장소에서 내일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고, 선생님들도 체육대회를 하거나 개인 연수를 하였다. 나는 도서실에 혼자 앉아서 수행평가 채점을 했다. 잠이 오면 도서실에서 졸기도 하고, 책도 읽고, 채점도 했더니 어느덧 6시를 넘겼다.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하다가 3학년 교실에 한 번 올라가 보았더니, 저녁을 먹고 잠깐 쉬는 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아이들이랑 이야기하고, 사진도 찍고, 시험문제 푸념도 하고... 낄낄거리다가 내려와 집에 돌아왔다.

   평온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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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7-0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무엔지 만족감을 주는 마지막 문장.
 
 전출처 : 심상이최고야 > 진실에 대한 신념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이념을 둘러싼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내가 살아가야 한다면, 어떤 삶을 마주했을까? 그 후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 가령, 6.25 전쟁,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 3.15 부정선거, 4.19혁명, 5.16 쿠데타, 군사 유신 독재 체제시절, 12.12 쿠데타, 5.18 광주 민주항쟁, 6월 민주항쟁.... 그 격동의 시기를 내가 살아나가야 한다면 나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어떤 이념을 선택했으며, 군사 독재 시절의 모진 탄압속에서 과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로 표현하고 행동했을지 막연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 쉽게 생각을 접기엔 꽤 진지한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그런데 상상이 아니라 그 시절을 몸소 겪은이가 있다.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리는 '리영희'가 바로 그다.

   '리영희'.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뇌리에 지진이 날  만큼 혁명적이었다던 '전환 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들어본적도 없고,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이런 책을 접해본 경험이 없다. 다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이 90년대에 출판되었다는것 정도 알고 있다. 그를 처음 뵙게 된 것은 지난주 강연때였다. 1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다. 강연은 고은 시인이 지은 '리영희'라는 시를 함께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칠십을 훌쩍넘은 나이지만 새삼 놀라운 것은 그의 살아있는 눈빛과 예리한 통찰력이었다. '또렷하고 생생한 눈빛'. 최근들어 그렇게 눈빛이 또렷한 사람은 본적이 없는것 같다. 강연의 내용은 북한과 미국, 이라크 파병에 관한 선생님의 입장이었다. 늦은시간까지 이어진 강연이었지만 모두 너무 진지하게 세시간이 넘는 강연을 들었다. 늘 궁금했던것들. 한번쯤은 고민해봤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엔 그냥 답답하기만 하고 너무나 막연한 그런 문제들, 가령 50년이 단절된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서로를 너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미국과의 종속관계는 어떻해 근절할 수 있는지?, 그리고 최근들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진보와 보수세력간의 갈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들에 대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강연을 듣고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강준만 교수님의 글은 수많은 인용으로도 유명한데, 리영희라는 인간의 삶을 1940년대부터 2000년대 지금까지 시대순으로 그가 쓴 책들과 현대사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접목시켜 잘 제시해 주었다. 

    강준만은 그를 가르켜 투명한 '인간 창'이라고 했다. 그의 그런 표현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1965년 베트남 파병때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이야기 한 언론인은 오직 리영희 한명뿐이다. 아홉번 연행에, 다섯번 구치소 수감, 두번의 기자직 해직과 두번의 교수직 해직.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섰다. 현실의 온갖 어려움 속에서 진실을 선택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진실을 알리는데 대쪽같은 신념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집에 걸려있다는 '휘호'가 생각난다. "눈길을 걸을때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

    존경할 만한 분을 만나게 되고 그의 글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오늘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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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30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