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 내 사랑
- 안도현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 저는 정말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화암사에 반해 버렸습니다. 동행들이랑 화암사를 내려와 굳게 약속했지요. 우리라도 '화암사'에는 아무나 데려오지 말자! 그래서 몇 번 안도현 시인의 이 시를 본 순간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시를 보고 화암사로 몰려가면 어쩌나...하는.
* 제가 퍼놓은 시인의 시를 보며 화암사에 가 보실 생각을 내시는 분은 없겠지만서도, 그 날의 동행들과 했던 약속이 떠올라 조심스럽습니다. 또, 그 날 화암사에 반했던 순정이 다시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돕니다. 그 날의 동행들이 더욱 그립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