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 책세상, 2001년
보수주의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어는 문인에 의해 아주 적절히 지적된 바와 같이, '이념'이 아니라 '욕망'이다. 즉 사회를 굳건히 떠받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필수적인 신념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욕망이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많은 정치가들이 이 당, 저 당, 자신이 내세우는 신념과 관계 없이 집권당이라는 이유로, 또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당이라는 이유로 쉽게 야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 정치가들은 자신들을 주로 보수주의자라고 부르는데 매우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의 신념 아닌 신념은 단지 자신의 기득권과 안락함을 잃고 싶지 않은 욕망이 내용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보수주의는 욕망이므로 우리 모두는 그것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다. 그냥 이대로 누워 있고 싶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나야 하고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 즉 변화해야 한다. 보수가 욕망이라면 변화는 고통이다. 어린 새는 별로 날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냥 어미 새가 물어다주는 먹이만 받아 먹으며 한평생 지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새는 어미 새에 떠밀려 날게 된다. 보수주의는 날고 싶지 않은 어린 새의 마음이다. 날개는 변화와 진보를 이루기 위한 힘이다. 어린 새가 날지 않으면 날개가 퇴보하듯이 보수는 정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퇴보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보수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싫든 좋든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보수주의는 결코 날개가 아니다. 그렇다면 균형을 위해 진보라는 날개와 함께 어떤 날개가 필요한가? 아마도 그것은 '성찰'이라는 날개가 아닐까? 성찰은 진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완성되도록 돕는다. 성찰은 진보가 지금보다 더 나은 현실을 가져오도록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에 대해 숙고하며 미래의 부작용을 대비하게 한다. 그런데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성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자유주의에 대한 하나의 성찰이 되길 바란다.
11-13쪽, '들어가는 말'에서